펜은칼보다강하다ㅡ문학과전쟁,떼려야뗄수없는‘고발문학’
2차세계대전이종결되기일년여전,이제막가정을꾸린스물두살의청년노먼메일러는위대한전쟁소설을쓰리라는야심을가지고군에입대한다.『벌거벗은자와죽은자』의오십주년기념판본의서문에서,자신은“이미대학시절에25만단어이상의글을썼을만큼글쓰기를좋아했고문학에헌신할준비가되어있었다.”라고메일러는회고한다.하버드대학졸업생으로서장교가될수도있었으나,그는사병으로입대하는것을선택한다.장교가될경우전투를제대로경험할수없으리라는이유에서였다.그는기초군사훈련을받은후,맥아더장군이이끄는미군의필리핀탈환작전에투입된다.이때의경험은『벌거벗은자와죽은자』의근간을이루는중요한재료가된다.
메일러는제대후아내와함께파리로건너가,톨스토이의작품들과당시프랑스에서전개되었던실존주의사상운동의영향아래서본격적으로소설을집필하기시작한다.그리고마침내1948년,“2차세계대전이종결된지삼년에가까운세월이흘러사람들이모두전쟁의실체에관해생각해볼수있는장편전쟁소설을읽을준비가되었을때”『벌거벗은자와죽은자』를출간한다.소설속에서전쟁터에던져져전쟁기계로내몰린병사들은때론자신이개성과의지와존엄을가진인간임을망각한다.미군이상륙작전에돌입하여결국에는일본군을궤멸시키고작전을승리로이끄는내용임에도,이소설을지배하는것은낙담과무력감,패배와좌절의정서다.그리고이것은이소설이내는반전(反戰)의울림과공명한다.
전쟁의포성이아닌,전쟁을치르는인물내면의목소리에주목한작품
이소설의구성면에서독특한점을지닌다.시간순으로이루어지는서사사이에영화의플래시백기법과비슷한장치인‘타임머신’과병사들의연극같은대화로이루어진‘코러스’가삽입되어있다.‘타임머신’은주요인물들의내면과과거삶을조명하며,이를통해그들의현재를이해할수있게해준다.‘코러스’와‘타임머신’은또한2차대전발발전후미국의사회상에관한실마리를제공하는데,그면면에는전쟁특수를반기는자본가,우익의반공주의선전활동,반유대주의,노조탄압,실업자와부랑자들,인종차별속에서출세를꿈꾸는이민자,억압적인가부장,방황하는젊은지성들이있다.‘코러스’에서는배식,여자,교대,제대등병사들의가장현실적인관심사가날것그대로전달된다.이를통해메일러는단지전쟁의끔찍한순간을그리는것이아니라전쟁에투입된한사람한사람의과거와현재를조망하며,전쟁이한평범한인간을밑바닥까지떨어뜨리는가를선명하게보여준다.
또한장편전쟁소설임에도대규모의교전장면은등장하지않는다.배경음으로들려오는간단없는포성과총성,커밍스장군의책상위에쌓이는전황보고서,죽은혹은죽어가는병사의모습에대한지극히냉정하고사실적인묘사가직접적인전투장면을대신한다.오히려며칠간의노동을헛수고로만들어버리는폭우,온몸을짓누르는더위,위협적인정글등과의지난한싸움이나전투를준비하기위한끝모를노동과행군의과정,인간의적나라한야심과욕망,인물들간의갈등과복잡한심리가중점적으로다뤄진다.병사들은이지배하는군대조직에서계급불평등과억압에시달리며,명령에무의식적으로반응하는‘파블로프의개’가될위험에늘노출되어있다.전쟁이라는극한상황,압도적인자연력,불평등한군대조직은누군가에게는기회이자자신의가능성을펼칠수있는무대가되지만,대부분의병사들에게는어떻게든벗어나고싶은족쇄가된다.그들은자신들에게부여된한계앞에서수치심과절망감을느끼고그것을해소하기위한공격성을내면에키운다.그것은때로불평이나욕설로어설프게표출되고,때로는무력한후퇴와굴복으로불발되며,때로는죽음이라는가장파괴적인결과를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