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현대문학에서독보적위상차지하는마르그리트뒤라스
태평양을배경으로펼쳐지는식민지시대가난과고통,사랑
뛰어난예술성과경이로운언어구사로독보적인문학세계를창조해낸,현대프랑스문학의대표작가마르그리트뒤라스의『태평양을막는제방』이민음사세계문학전집387번으로출간되었다.1950년에발표한이작품은『철면피들』(1943)로인상적인데뷔를한뒤라스가세번째로세상에내놓은작품이다.공쿠르상후보에오르기도한이작품은르네클레망에의해「해벽(ThisAngryAge)」(1958)이란영화로제작되었으며,작품속내용이사실을왜곡했다며격노한어머니와결별하게된이유가되기도한다.『태평양을막는제방』은작가스스로“두책은한몸”이라고고백할만큼자전적요소와주제에서『연인』(1984)과같은뿌리를가진다.“열여덟살에나는이미늙어있었다.”라고고백한『연인』의‘나’와『태평양을막는제방』의쉬잔은청춘기에사랑과절망을동시에경험한작가뒤라스의분신들이라할것이다.
쉬잔은캄보디아남중국해캄평야의불하지에서한때교사였던어머니,오빠조제프와가난하게살아간다.아버지없이가족을건사하던어머니는돈을끌어모아식민지를지배하는은행토지국으로부터땅을샀고,풀한포기나지않는그땅으로밀려들어오는바닷물을막기위해제방을쌓느라가진돈을모두탕진한다.조제프는쉬잔이숨을쉴수있게해주는유일한존재이지만,망상에사로잡힌어머니로부터남매는자유로울수없다.어느날부유한조씨가쉬잔에게반해구애하며물질공세를퍼붓더니급기야다이아몬드반지를내미는데,가족은반지를팔기위해시내로간다.
『태평양을막는제방』의지리적배경은뒤라스가유년기를보낸인도차이나이다.이전소설인『철면피들』과『평온한삶』에서도애증으로뒤엉킨가족의가난과권태가담겨있지만이책에서는그모든이야기가가장명료하게드러나있다.뒤라스는생전마지막으로출간된일종의문학적유서라할수있는『이게다예요』에서지금껏쓴책중어느책이제일좋으냐는얀앙드레아의질문에『태평양을막는제방』을꼽았다.그러고는이렇게덧붙였다.“어린시절.”
■뒤라스의초기작『태평양을막는제방』은『연인』과한몸:
“독자들이읽어주었으면하고바랐던,그모든나의이야기!”
『태평양을막는제방』은캄평야의불하지에서살아가는가족의이야기로,1920년대의어느날방갈로에서이른바운송업을가능하게하던말이죽은날부터역시방갈로에서어머니가죽은날까지의시간을그린다.가족을이끈어머니는너무많은불행을겪느라병들었고,다시실패할지모른다는전망마저희망의끈으로붙잡고있는모순적인물이다.쉬잔과조제프는그런어머니에게진저리를치지만그런어머니를또한사랑해서떠나지못한다.이기이한가족은공동의적앞에서는서로뭉쳐기이하고강력한한편을만드는데그때가장큰무기는광기에가까운웃음이다.이들의불행의근원은식민지시기빈민층모두가겪는절대적인가난이다.이작품의가족은가난한,정확히는가난해진,그래서뻔뻔해진사람들이다.이뻔뻔함이조제프에게는위압적공격성으로드러나며,그공격성은어머니의고통을향한증오의다른면인죄의식에서기인한다.오빠만사랑하는쉬잔은그의말과행동을따라하고그만바라본다.사랑을강요한조씨의요구를들어준것도오빠에게즐거움을선물하기위해서다.
『태평양을막는제방』은훗날세상에내놓게될『연인』과같은뿌리를가진다.한권에서는캄보디아의평야에서살아가는쉬잔의이야기가삼인칭으로주어졌고,또한권에서는사이공기숙학교에다니는마르그리트의이야기가일인칭으로주어졌지만,두작품은하나의이야기다.쉬잔은곧마르그리트이고,쉬잔의오빠조제프속에는거칠고세상에대해공격적이던큰오빠피에르와프레이놉의방갈로에서함께「라모나」를듣던작은오빠폴이동시에들어있다.그리고발작적으로쉬잔을때리던어머니는광기에휩싸여딸을때리던도나디외부인이다.두남편의죽음을겪었고,평생교사였던자신의자부심을꺾는아들들을안타깝게지켜보았고,돈을벌기위한거의모든시도에실패했고,자신의뜻이가로막힐때마다수많은탄원서를쓴,하지만거지여인을받아주거나가난한아이들을돌보던마리도나디외는『태평양을막는제방』의어머니에그대로담겨있다.뒤라스는두작품에대해다음과같이말한다.
“위장을했고,개인적인몇가지사실을다르게바꾸어놓았다.독자의호기심을덜자극하고,그럼으로써독자가읽어주었으면하고내가바라는이야기에서독자가멀어지지않게했다.첫이야기,사라진그이야기에모든것이들어있었다.『연인』이나올때까지계속그랬다.”―마르그리트뒤라스,윤진옮김,「책」,『물질적삶』(민음사,2019),99쪽.
■이야기를이끄는독특한서술방식,타자의섬세한목소리투영
훗날‘뒤라스적글쓰기’라지칭할글쓰기의원형이되는작품
“고독한사람들의밤,인위적이고민주적인밤,모두를평등하게만드는영화의위대한밤,진짜밤보다더진짜인,그어떤진짜밤들보다더매혹적이고더큰위안을주는밤,누구나선택하면누릴수있는,누구에게나제공된,그어떤자선단체나교회보다더너그럽고더큰선행을베푸는밤,모든치욕이위로를얻는,모든절망이사라지는,젊음에달라붙은청춘의때를,그끔찍한때를씻어내주는밤이었다.”(193쪽)
뒤라스의소설세계에서『태평양을막는제방』은뒤라스특유의글쓰기가정립되기이전작품으로분류되었고,사실상소설의글쓰기자체에대한관심보다자전소설로서의특성,식민주의에대한비판으로회자되어왔다.하지만뒤라스의소설중예외적으로긴분량으로완성된이책은후일‘뒤라스적글쓰기’라지칭할것들의원형이,무엇보다삶의고통을세상에드러내는뒤라스특유의방식이오롯이담겨있다.가장눈길을끄는것은서술을이어가는화자의불안정한시점이다.삼인칭으로이어지는서술에서인물들의모든것을아는것같던화자가수시로사라지고외부시선이나타나는데,그외부시선은관찰하는것이아니라느끼고짐작한다.때로화자는인물들에게목소리를넘겨주기도하는데,그것은다성성(多聖性)이라기보다주의를기울이지않으면눈에띄지도않는흔들림혹은떨림과같다.예컨대“의사는제방이무너진충격을발작의원인으로진단했다.아마도틀린생각일것이다.어머니가품고있는그토록깊은원한은아주서서히,한해한해,하루하루쌓여온것일수밖에없다.”(387쪽)라든가,“쉬잔은조씨를바라보며약간의연민이느껴졌다.앞으로이남자가방갈로에자주찾아온다면,조제프는견뎌내지못할것이다.”와같이진짜중요한진단은화자자신이아니라그상황을공통으로체험한가족의목소리로전해진다.
이야기서술에서수시로짧게앞으로돌아가는방식도특징으로꼽을수있다.도시에서돌아온조제프가쉬잔에게들려주는기나긴독백,어머니가토지국에보내는긴편지등이회고되지만,이야기의현재속에서일어나는일들을서술할경우먼저사건을알려준뒤뒤로돌아가그사건을만든진짜이유를밝힌다.예컨대만난지한달만에조씨가축음기를들고왔다는사건자체를먼저기술한후,곧바로돌아가쉬잔의벗은몸을보기위해축음기를내걸게된조씨의노력과그를대하는쉬잔의환멸이그려지는식이다.이같은형식을통해뒤라스는선(線)적서술이아니라그서술들이겹겹이쌓여층을이루게한다.사건의진행뿐아니라어떤대상을설명하거나묘사할때에도천천히떠올리며말하는듯한,침묵과망설임이섞인듯한,그것들이겹쳐쌓이는뒤라스특유의글쓰기가잦은쉼표의사용과함께완성되고있는것이다.
“독자는글을눈으로읽어나가는것이아니라목소리를귀로듣는것같은느낌을받는다.독자들은태평양의소금기에절어버린가족의광기와폭력을그린이이야기에서가난과권태에질식해가는인물들의소리없는비명을듣고,가쁜숨의헐떡임과차가운침묵으로써나가는뒤라스의목소리에서그녀가전하는글쓰기의고통과쾌락을맛본다.”(옮긴이의글에서)
열아홉살에고향을떠나파리로온뒤라스는그뒤한번도그곳을찾지않았으며,다음과같은말을남겼다.“나는고향이없다.”유년기의고향은어른이되어떠나올때그곳에두고와야했기때문이다.그래서유년기시절의자전적이야기가담긴『태평양을막는제방』을읽는다는것은뒤라스가두고온고향을찾아가는일이자,식민지시기작가가느꼈던가난과권태와절망,그리고사랑을추체험하는시간이다.아울러이책을『연인』과함께읽기를권해본다.“아무것도읽을것이없을때”의뒤라스.서른여섯의뒤라스와일흔살의뒤라스를함께만날수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