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13.00
Description
“삶을 훼손하는 자들 때문에 삶을 혐오하게 되는 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인류의 비극과 개인의 운명에 대한 성찰이 담긴
‘운명 4부작’의 세 번째 작품
인간의 존엄이 말살된 곳에서 지독히 읊조리는 생명의 숭고한 카디시
현대 헝가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0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임레 케르테스의 주요 작품 가운데 하나인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1990)가 출간되었다.(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번) 이 책은 이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번, 360번으로 각각 출간된 『운명』(1975)과 『좌절』(1988)에 이은 이른바 ‘운명 4부작’의 세 번째 작품으로 일컬어진다.(‘운명 4부작’은 2003년 『청산』을 마지막으로 완결되었다.) 십삼 년에 걸쳐 쓴 첫 소설 『운명』에 나치 절멸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에 대한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십 대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케르테스는 이 책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 노년에 접어든 작가이자 문학 번역가로 다시 등장한다. 『운명』이 아우슈비츠 절멸 수용소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이라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의 삶에 관한 이야기, 『운명』에 대한 응답과 같은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임레케르테스

1929년부다페스트에서목재상을하던유대인중산층가정에서태어났다.기숙학교에들어간지얼마지나지않아시작된유대인박해에의해열네살의나이로폴란드아우슈비츠수용소에끌려갔다가악명높은독일부헨발트수용소와차이츠수용소를거쳐2차세계대전이끝나면서부다페스트로돌아온다.일간지편집인,공장노동자,프리랜서작가,번역자로일하면서니체,프로이트,비트겐슈타인등많은철학가와작가의작품을독일어에서헝가리어로번역,소개했으며1973년에는13년간의집필기간을걸친첫소설『운명』을탈고한다.

이후의미상속편에해당하는『좌절』,『태어나지않은아이를위한기도』등홀로코스트를주제로한일련의작품을통해인간성의본질을끈질기게탐구했다.소로스재단상,라이프치히문학상,헤르더상에이어2002년노벨문학상을수상한그는이듬해『청산』으로‘운명4부작’을완성한다.문학과인류에대한공훈을인정받아헝가리최고의훈장인성이슈트반훈장을받았고2016년향년86세의나이로부다페스트자택에서타계하였다.

목차

태어나지않은아이를위한기도9

작품해설173
작가연보190

출판사 서평

■태어나지않은아이의죽음을애도하는까닭

이소설의의미심장한제목은역설적이다.아직이세상에태어나지도않은아이를위해‘애도’의기도를한다는뜻이담겨있기때문이다.원제의‘카디시(Kaddis)’는히브리어-아람어다.신성(神聖)을의미하는고대유대인의기도인카디시는하느님의위대함과전능함,자비를시적인형태로표현한것이다.사랑하는가족을잃고도하느님을향한믿음에는변함이없다는마음을표현하기위해상을당한자들이유대교회당에서이카디시를암송하곤했다.케르테스는왜자신의소설에이러한의미가담긴말을제목으로붙였을까?그것은신의명령이자인간의특권인생육에대한단호한거부의의사표시다.홀로코스트의트라우마에서벗어나지못하는케르테스는자신과같이유대인으로태어날미지의아이가아우슈비츠라는지옥이실재했던이세계에서고통을겪게하고싶지않다는이유로생육을거부한다.
소설을여는짤막한첫문장“아니요!”(혹시아이가있느냐는한철학자의질문에소스라친케르테스의답이다.)와아이를갖고싶다는아내에게외치듯토해내는“안돼!”라는말은테르테스의선언과다름없다.이강렬한부정어속에는작가자신의지독한신념과두려움이투영되어있는것이다.“아니요!”와“안돼!”라는날카로운외침은소설이진행되는내내헤어날수없는강박처럼지속적으로울려댄다.이일의충격으로자신을그토록사랑했던아내가떠나버리지만그의결심은그후로도전혀흔들리지않는다.

“안돼!”―그즉시어떤망설임도없이,내안에서무엇인가흐느끼며,울부짖었다,그리고아주오랜세월이지난후에야비로소나의흐느낌은천천히가라앉았다,하지만결국강박증적인고통으로변하여,천천히,불길하게,서서히퍼지는질병처럼,하나의물음이되어내안에서더욱뚜렷한형태를갖추어가기시작했다―혹시네가검은눈동자를가진딸아이로태어나지는않을까?너의작은코주위에는주근깨가엷게흩어져있지는않을까?아니면네가고집센아들인것일까?너의눈은회청색조약돌처럼근사하고힘찰까?―물론,나의삶을너의존재의가능성으로생각할경우에해당하는말이겠지만말이다.그날나는밤이새도록오로지이질문만을깊이생각했다.(25~26쪽)

■기나긴애도처럼이어지는혼잣말혹은읊조림

이소설은별도의장(章)구분이나소제목없이상당히긴단락들로만이루어져있고전적으로작가의의식의흐름을따라전개된다.시간과장소또한이리저리뒤섞인다.서로를사랑하지않았던부모아래서불행하게보냈던어린시절과기숙학교에서목도한다양한인간군상,아우슈비츠에서겪은끔찍한일들과인상적인사건들,아내와의운명적인첫만남부터이혼에이르기까지의지난한과정,글쓰기와문학에대한사색등이얼핏두서없이결합되고연결되며하나의뚜렷한의미망을만들어낸다.마치기나긴애도처럼이어지는혼잣말혹은읊조림은반복되는주제의식때문에때로는한없이비통하고때로는더없이격정적이며작가의내면에공존하는빛과어둠을수시로넘나든다.
2차세계대전이남긴상흔과인류가스스로에게저지른홀로코스트라는비극은여전히세계곳곳에서수많은예술작품을통해다양한형태로표현되고있다.작가이자홀로코스트생존자인케르테스가자신의개인적고통의기억에집요할만큼끈질기게매달리는모습은역설적으로우리로하여금치유와행복에관하여생각하게한다.나아가인간의존엄성이라는것과생명이지닌숭고함에대해서도숙고하게한다.이것이바로예술로서케르테스의문학이가진위대한힘이다.

참혹한장면하나없이홀로코스트의참상을환기하고있는이소설은살아남은자들에게건네는치유의손길로서,홀로코스트이후의삶을괄호쳐버린기존작품들에대한독자들의허기를채워준다.케르테스에게홀로코스트문제는우연이아니며인류가오래전부터인간성을상실해옴으로써발생한비극으로해석된다.때문에홀로코스트의진정한비극은인류가파시즘의야만에대한자기성찰의기회를잃어버리게되었다는것이다.그리고인간성의본질을탐구해온케르테스는기억하는것은인간애의표현이자문명의신호라고,이러한일이되풀이되지않도록경계를소홀히하지말아야한다고반복해서상기시키고있다.(176쪽,「작품해설」에서)

■개인의상처와비극을인류공통의아픔과숙제로환원하다

이책『태어나지않은아이를위한기도』는케르테스의‘운명4부작’중자전적성격이가장짙은작품이다.운명의무게에억눌린듯한상실과슬픔가득한갈망,지독한회한이실타래처럼뒤엉켜있는이소설은,끝내홀로코스트의기억을떨치지는못했으나오히려문학과글쓰기를통해다시는되풀이되어서는안될역사의진실을오롯이드러낸,한상처입은영혼의내밀한고백이라할수있다.고통스러운아우슈비츠체험이고스란히담겨있는첫소설『운명』과『운명』을출간하기까지문단의무관심과생활고에시달리며겪은좌절과문학에대한희망을그려낸『좌절』에서와마찬가지로,『태어나지않은아이를위한기도』에서도케르테스는비극적세계에서처절하게영혼을짓밟힌인간의존엄과개인이짊어지고극복해가야할운명에대한문학적성찰을보여준다.개인의상처와비극을인류공통의아픔과숙제로환원시키는큰작가케르테스의면모를여실히확인할수있는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