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8

명인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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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설적인 ‘불패의 명인’ 슈사이의 생애 마지막 대국
바둑이 지닌 구도적인 면모와 예술적 품격을 서정시처럼 그려 낸 걸작

“고매한 정신의 모습이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였다. (......)
그윽한 향 같은 모습이다.”
▶ 『명인』은 소설이라기엔 기록 요소가 많고, 기록이라기엔 소설 요소가 많다. 기사의 심리에 대해서는 모두 나의 추측이다. 이를 당사자에게 물어본 것은 하나도 없다. 날씨 묘사 하나를 들더라도, 역시 나의 소설이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명인에게 바둑은 단순히 흰 돌과 검은 돌이 겨루는 경기를 넘어, 숭고한 미적 가치를 지닌 기예이자 정교하게 구축된 예술품이다. ─ 유숙자(「작품 해설」에서)

일본 바둑계의 전설 혼인보(本因坊) 슈사이 명인의 마지막 승부를 소재로 한 『명인』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바둑 애호가였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8년 6월부터 12월까지 약 반년 동안 치러진 슈사이 명인의 은퇴기를 참관하고 신문에 총 64회의 관전기를 연재했다. 일본 바둑계에서 ‘명인’은 당대 최고의 기사를 의미한다. 『명인』은 지병이 악화된 슈사이 명인이 1940년 세상을 떠난 뒤 가와바타가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잡지에 나누어 게재한 작품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눈 덮인 니가타 지방의 아름다운 정경을 배경으로 하는 대표작 『설국』이 동양적 미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고 평가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작가는 『명인』에서 병환에도 불구하고 은퇴기에 나선 예순다섯 살의 ‘불패의 명인’과 서른 살의 패기만만한 신예 기사의 대국을 통해 단순히 시합이나 게임이라는 관념을 넘어 ‘예도’로서 바둑의 경지를 보여 준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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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가와바타야스나리

유럽의허무주의,미래파,표현주의의영향을받은일본문학유파인신감각파를대표하는작가.난해한문체속에내밀하게숨겨진탐미와죽음,그미학적경지의불가해성으로일본평론가들사이에서조차그의언어체계가보여주는의미망에대한논란이끊이지않고있다.

1899년오사카에서태어났다.어려서부모와조부모,하나뿐인누이와사별했다.사별한혈육을추모하고,외롭고허무한인생을견뎌내는방법...

목차


명인7

혼인보슈사이명인은퇴기기보159
작품해설162
작가연보172

출판사 서평

■바둑외길에인생을건예인,슈사이의마지막승부

혼인보(本因坊)는이노우에(井上),야스이(安井),하야시(林)와함께일본에도시대의바둑명문가중하나로,‘혼인보’는혼인보가문의대표자를일컫는명칭이었다.21대혼인보슈사이명인은삼십여년간,흑을쥔적이없는‘불패의명인’으로동시대의경쟁자를완전히압도한,이인자가없는일인자다.그동안일본바둑계에서는한번명인의지위에오르면죽을때까지명인이라는일대제(一代制)가상식이었기에명인이되면그권위가손상될까우려해시합에나서지않았다.그런슈사이가은퇴를앞두고마지막승부에나선다는소식에약일년에걸쳐‘명인은퇴기도전자결정전’이치러진다.

여러가지의미에서슈사이명인은신시대와구시대의경계에서있는사람인듯하다.구시대의명인으로서정신적숭배를받는동시에,신시대의명인으로서물질적이로움도얻었다.그리고우상을숭배하는마음과파괴하는마음이교차하는날에,오래된우상의흔적으로일어서,명인은최후의바둑에임한것이었다.―본문에서

실제슈사이명인의대국상대였던‘기타리미노루’를문학적으로형상화한‘오타케’7단은리그전에서라이벌들에게전승을거두고,자신의옛스승들마저모두쓰러뜨리는파죽지세로명인의은퇴기상대가된다.아내와둘뿐인명인과달리오타케는내제자와자녀들로복닥복닥한가정을이루고살며대국중에는말이없는명인앞에서농담을늘어놓기도한다.

대국은닷새에한번진행된다.제한시간은각40시간.마지막수는봉수로,종이에적어봉인해두었다가다음대국일에공개한다.몇차례대국장소가바뀌고,도중에명인이병환으로입원하면서석달간대국이중단되는일이벌어진다.명인의건강문제로인한대국일정을조정하는과정에서오타케7단은급기야대국포기선언을하고,관전기자인‘나’는설득에나선다.순조롭게이어지던대국의흐름에미묘한변화가일면서,명인의마음이동요하기시작한다…….

‘불패의명인’의거대한모습은기사들위에우뚝솟아있었다.명인에게도일생의운명을건싸움은여러번있었으나,정말로중요한바둑시합에서진적은없었다.명인이되기까지의싸움은기세였다고해도,명인이된후특히만년의싸움에이르기까지,세상사람들이불패를당연한걸로믿고자신도굳게믿으며대국에임해야만했다는점은오히려비극이다.―본문에서

■가와바타야스나리,역사적인대국의관전기를연재하다

혼인보슈사이명인의은퇴기는1938년6월26일부터12월4일까지치러졌다.명인은은퇴기를치른뒤,지병이악화되어1940년1월숨을거두고말았다.가와바타야스나리는이대국의관전기를담당해,대국보다한달남짓늦은7월23일부터9월6일,11월30일부터12월29일에걸쳐도쿄《니치니치신문》과오사카《마이니치신문》에총64회를연재했다.바둑은작가가평소즐기던취미로,아마추어이상의기량을보유했으며명인의은퇴바둑관전기를계기로,일본기원은작가에게초단자격을수여했다.지난해(2022년)11월에는『명인』집필의공적을높이평가해바둑전당입성을발표하기도했다.가와바타는문인바둑모임에참가하는등실력을꾸준히갈고닦아,만년에는5단,사후에는6단자격을얻었다.

일본이태평양전쟁으로치닫던당시,일간신문은대대적으로슈사이명인의은퇴기를알리는기사를실어홍보했다.명인의은퇴바둑관전기는바둑애호가는물론,일반인들의관심까지불러일으킬정도로크게성공했다.문단의중심에서활약하는가와바타의존재감이한몫했으리라추측된다.이후작가가1951년부터1954년까지잡지에나누어게재한작품들을모아단행본으로출간했다.『명인』에대해작가는,이작품이단순히전기소설이아니라,자신의창작물임을명확하게밝히고있다.

“『명인』은충실한기록소설이라말할수있을지도모른다.하지만소설이라기엔기록요소가많고,기록이라기엔소설요소가많다.기사의심리에대해서는모두나의추측이다.이를당사자에게물어본것은하나도없다.날씨묘사하나를들더라도,역시나의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