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이없는인간바틀비를통해인본주의적한계드러내는「필경사바틀비」
“전그러지않는편이좋겠습니다.(Iwouldprefernotto.)”
「필경사바틀비」는단편에불과하지만간단하지않다.줄거리야지극히간단하지만왜그런식으로줄거리가흘러가는지를이해하기가쉽지않다.왜바틀비는그런선택을하는가,왜화자는그런선택을하는가가분명하지않기때문이다.‘왜줄거리가이렇게흘러가는가’라는질문이‘왜바틀비는그런선택을하는가.’라는질문으로이어진다면,다음필연적으로따라오는질문은‘바틀비는과연어떤인간인가.’이다.이최종질문에대한답을찾는데는다양한길이있을수있다.이질문에대해상당한설득력을갖춘설명은대개바틀비를‘소외된인간’으로규정하는것이다.이‘소외론’이주로주목하는내용은벽에갇혀벽만바라보는인간,남이써놓은글을그대로복사하는단순작업을반복하는인간,자신을이해하지못하는고용주가일방적으로시키는일만해야하는임금노동자,저항으로아무차이를만들어내지못하는인간,의사소통의주요수단인편지를불태우는일을오래했던인간,결정적으로인간의존재론적고립감에대한화자의마지막탄식“아바틀비여!아인간이여!”등이다.
바틀비는기원과관련이있는존재이다.필사의기원은서구기독교관점에서볼때‘말씀’을기록하는작업이다.신성한노동이며신의의지를인간에게전달하는일이다.그러나지금바틀비나터키와니퍼가하는필사의원본은화폐단위의이동과관련된계약의내용을기록한것이다.교환가치의순수한표현으로서의화폐는애초권위와는아무상관이없다.이전의권위와그와관련된후광을잃어버린작업이화자의사무실에서행해지는노동의본질,소외된노동이라볼수있다.바틀비의“전그러지않는편이좋겠습니다.(Iwouldprefernotto.)”는절대적인발언이다.나에게제안된행위가그무엇이건,그어떤가정에서추론된것이건,어떤전례에기초한,어떤상례에맞는것이건상관없이거부하겠다는보편적인부정을담고있는말이다.그렇기에화자의문제해결능력이바틀비에게는통하지않는다.바틀비에관한한화자의개입은언제나실패한다.바틀비는언제나상궤를,가정을,전례를,일상을벗어나있기때문이다.따라서바틀비를인본주의관점에서희생자로규정하는것은화자가이줄거리전체를통해일관되게범하는해석의오류를답습하는것일수있다.
바틀비의이런절대적부정을‘자유의지’의표현으로해석할여지도있다.소외를극복하는가장전형적인방식이소외를초래하는억압적조건으로부터자유로워지는것이기때문이다.바틀비는억압으로부터의해방을지향하는가.바틀비에게원래돌아갈그무엇이있는가.바틀비에게는아무내용이없다.기원도없으며,경과도없고,흔적도없다.바틀비는‘유령’이며,‘죽음’이며,텅빈구멍이다.바틀비는어디에나있으면서어디에도없으며,기원이면서,목적지이며,효과이지존재가아니다.바틀비를상궤와연결시켜그부정성을‘해결’또는‘상쇄’해보려는화자의시도가번번이실패하는이유가바로여기에있다.결국바틀비를‘개인’으로규정하기를포기할때일반적인소외론의한계를벗어날수있다.화자는그를구원하려했으나그상처가너무깊어서실패한자가된다.화자는다른고통받는인간에게우편환을보내고,사면장을보내고,갖은구명조끼를다던져보았으나그모두가배송불능의편지가되어버린것이다.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화자의절규“아바틀비여!아인간이여!”는따라서바틀비의존재또는죽음을자신의인간성을강화하려는핑계의최종결정판이된다.
순수한인간빌리버드를통해법을넘어서는숭고함그린「선원빌리버드」
“비어함장님께하느님의가호가있기를!”
1924년에출판된『빌리버드』는멜빌을재평가하는계기를제공했다.『모비딕』과「필경사바틀비」의작가로서오늘날의멜빌을있게한일등공신인셈이다.이책에수록된단편소설「선원빌리버드」에대한설명은대체로두가지문제에초점을맞춘다.첫째,클래거트와빌리버드는왜갈등을일으키는가.둘째,비어함장의판단은과연옳았는가.사건발생의동기나원인을규명하는첫번째부류의설명에서는선과악,이성애와동성애,문명과원시등의대립관계가핵심개념으로설정되며,비어함장의판단과관련해서는정의의문제,사건과기록,현실과종교,과학과종교,현실과법등의대립관계가논의의중심이된다.
빌리버드라는등장인물은순진함,아름다움,용기,힘,정의감,남성다움,여성적아름다움,원시의무구함,신적인성스러움등거의모든긍정적자질을거의모두갖춘인물로설정되어있다.빌리버드의이런성격적,육체적특징에대한화자의언급은신화,종교,철학,역사등온갖영역에서가져온비유와인유와상징을망라한다.「필경사바틀비」의줄거리가그대립구조에있어단순하고,그반복에있어희극적인효과를발생시키는것처럼「선원빌리버드」역시어처구니가없어헛웃음을짓게하는상황적아이러니구조를갖는다.핵심사건,즉빌리버드가상관인클래거트를살해하는사건이발생하기전까지는모두이사건에이르는빌드업이다.빌리버드의선과아름다움,클래거트의‘자연발생적’악함,비어함장의초월적인품을지시하는디테일과잉에당시영국과유럽,미국등의국내사정과국제적관계에서부터영국해군내의반란문제에이르기까지어마어마한설명이더해진다.따라서독자는역사적,철학적,정치적,종교적등온갖가능한문맥에서곧발생할핵심사건을판단할준비를갖춘다.얼마나어마어마한사건이벌어질것인가.기대가극에달한순간,어처구니없는사건이벌어진다.
결정적인해석을가능하게해줄수있는그대로의사실이부재하는곳을채우는것은화자의해석이다.그런데이화자는독자와같은삼인칭이면서어떤면에서는독자와마찬가지로제한된시점만을가진다.직접경험했다는화자나화자의이야기를통해사건에접근하는독자나그해석의권위에차이가없다.그어떤해석도,그누구의해석도다른해석보다우위에있을수없다.마지막두장은이사건에대한두가지정반대라할수있는해석의예로구성된다.해군의공식입장과동료해군수병들의판본이다.전자에서는클래거트가,후자에서는빌리버드가성자로추대된다.화자가전달한정보는그양의풍성함에도불구하고,혹은너무풍성하기때문에,이사건에대한‘진실한’판단이불가능해진다.
「필경사바틀비」와「선원빌리버드」:블랙홀과빅뱅을읽는순간
세계는사건이발생하는무대이다.사람은사건을‘처리’함으로써세계에존재한다.삶의방식이란결국사람의작동방식이며,사건을처리하는방식이다.바틀비의존재와맞닥뜨린변호사나우발적살인사건을처리해야하는비어함장은어떻게해서든그사건을처리해야한다.변호사의작동방식과함장의작동방식은일견아주다르게보일수도있다.변호사는이기심과자부심과자존심을우선으로하는지극히평범한개인이비범한바틀비의존재를처리하는방식을보여준다면,함장은이세상진지한모든것을고려하는신중함과용기,책임감,사랑,연민,인류애등을우선시하는영웅적인방식으로빌리버드사건을처리한다.하지만그결과의면에서범인과영웅의차이는없다.
바틀비의존재와행태가변호사의처리방식을무화시킨다면,빌리버드의주먹은함장의지혜와용기를무화시킨다.두경우모두에서‘유효한’,또는‘의미있는’,‘진실된’결과가나오지않기때문이다.결과가의도를무의미하게만든다는점에서두경우는동일하다.멜빌의문학에서「필경사바틀비」와「선원빌리버드」의근본적차이는범인과영웅의경우라기보다는소설형식상의차이에있다.바틀비는정보부재,즉궁핍함으로그앞에등장하는모든시스템을무효화한다.그런점에서일종의블랙홀이다.「선원빌리버드」는정보과잉으로어떤판단도정답으로성립하는것을허락하지않는다.모든것을담고있어서그이후모든것이가능해지는빅뱅의순간이다.이제바틀비라는블랙홀과빌리버드라는빅뱅을읽을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