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15.00
Description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깨끗한 문장으로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작가,
한국 수필에 미학적 기준을 세운 피천득 산문집

피천득 수필집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기존의 수필집 『인연』을 바탕으로 자식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들을 새롭게 더했다. 해당 편지들은 ‘수영이에게’라는 파트로 묶였으며, 딸 ‘서영이’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피천득의 또 다른 얼굴, 아들을 향한 담담하고 절제된 애정을 처음으로 보여 준다. 새롭게 수록된 이 편지들은 피천득 문학을 이루는 정서의 지평을 한층 넓혀 준다.
작품 해설은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뷰어 김지수 작가가 맡았다. 국내외 석학들의 사유가 집결하는 인문학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지켜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등의 저서로 시대의 사유를 인물의 얼굴과 말의 결을 통해 길어 올려 온 김지수는, 사람의 삶에서 책임과 태도를 발견해 온 인터뷰어다. 이번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에서는 딸에 가려져 있던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피천득의 또 다른 매력을 조명하며 한국 근대 수필의 정수가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좌표 안에서 다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제목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피천득의 대표 수필 「인연」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다. 피천득은 그 글에서 어떤 만남들은 애초에 스쳐 지나갔어야 했고, 어떤 관계들은 조용히 물러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했을 인연’이라는 고백 뒤에 이어지는 이 담담한 문장은, 인연의 빛이 아니라 그 본질에 깃든 그림자를 드러낸다. 우리가 인연이라 부르는 것들 가운데 많은 경우는 이렇듯 악수조차 나누지 못한 채 끝나 버리는 ‘미완의 문장’이다. 이 제목은 지금껏 피천득 읽기에 있어 대중화되지 않은 비창감(悲愴感)과 함께 그의 문학이 지닌 사랑과 윤리의 이면을 조용히 비춘다.
저자

피천득

저자:피천득
서울에서태어나중국상하이(上海)공보국중학을거쳐1937년호강대학교영문과를졸업했다.일제강점기때경성중앙산업학원교사로근무했고,8·15광복직후인1945년경성제국대학예과교수를거쳐1946~1974년까지서울대학교사범대학교수로재직했다.1946년서울대학교에서영시(英詩)강의시작,1954년미국국무성초청으로하버드대학교에서1년간영문학을연구하였으며,1966년서울대대학원학생과장을역임했다.1930년《신동아》에「서정소곡(抒情小曲)」을처음으로발표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고1932년《동광》에시「소곡(小曲)」(1932),수필「눈보라치는밤의추억」(1933)등을발표하여호평을받았다.대체로투명한서정으로일관,사상과관념을배제한순수한동심에의해시정(詩情)이넘치는생활을노래하였다.

목차

서문13

인생은작은인연들로아름답다

수필17
신춘20
조춘23
종달새25
봄28
파리에부친편지31
오월34
가든파티36
장미40
여성의미42
모시45
수상스키48
꿈50
선물52
플루트플레이어56
너무많다58
보기에따라서는60
여성의편지62
장난감64
가구66
눈물68
맛과멋71
호이트컬렉션73
전화75
시골한약국77
장수79
황포탄의추석81
기다리는편지83
용돈85
금반지88
이사90
보스턴심포니94

서영이

엄마99
그날105
찬란한시절109
서영이에게111
어느날114
서영이116
서영이대학에가다120
딸에게124
서영이와난영이127
외삼촌할아버지131
인연134
유순이138
도산143
도산선생께146
춘원148
셰익스피어151
도연명153
로버트프로스트Ⅰ157
로버트프로스트Ⅱ160
찰스램163
브룩의애국시166
여심169
치옹172
어느학자의초상177
아인슈타인180

나의사랑하는생활

나의사랑하는생활185
멋189
반사적광영192
피가지변196
이야기200
잠204
구원의여상208
낙서212
은전한닢215
술218
순례224
비원230
기행소품233
토요일237
여린마음240
초대243
여름밤의나그네245
기도248
우정250
1945년8월15일253
콩코드찬가255
시집가는친구딸에게258
유머의기능262
문화재보존264
송년266
만년269

수영이에게

날짜없음272
1976년3월19일274
1977년5월15일276
1977년4월3일278
1980년4월3일280
1980년9월4일282
카드.날짜없음283

작품해설

겸손의심연을만나다_김지수(기자/작가)

작가연보

출판사 서평

‘개인’을알았고,‘개인’으로살았으며,‘개인’을원했던작가
피천득은한국의시인이자수필가,영문학자이자번역가다.1910년에태어나2007년에생을마감한그는20세기를온전히경험한지식인이기도하다.식민지와전쟁,분단과산업화를거친격동의시대속에서도그는시대의구호보다개인의감정과일상을신뢰했다.20세기지식인으로서그가남긴글은근대적개인으로살아간한인간의태도와윤리를고요하게증언한다.그의글은마음을위로하는소박한문학일뿐만아니라,근대문학의핵심인‘개인의탄생’이한국사회에서어떻게사유되고체현되었는지를보여주는드문기록이다.

한국수필문학의미학적기준

격동의시대를살았으되,그가남긴단정하고절제된문장들은투명한서정을빚어내며한국수필의미학적기준이되었다.순수한동심,맑고고매한정서,고결하고담백한정신이결합된그의글은한국근대수필을교양의문학으로끌어올린이정표이자한국인들에게영원한정신의안식처가되어준다.「인연」,「나의사랑하는생활」,「오월」,「은전한잎」등수필의대명사로각인된작품들은일찍이작고아름다운것들을사랑했던피천득의수필정신을우아하고산뜻하게전한다.『악수도없이헤어졌다』는그미학의정점을이루는작품들을다시묶어,한국수필이도달한한기준을오늘의독자앞에또렷이제시한다.

사랑을하다간사람

피천득문학의핵심은‘사랑’이다.그의사랑은감정의고백이나열정의분출이아니라,삶을대하는태도이자세계를바라보는윤리다.그의사랑은타인을소유하거나변화시키려는욕망이아니라있는그대로를받아들이고끝까지존중하려는인내의형식에가깝다.문학적으로그것은극적인사건이나서사의고조대신사소하고미미한순간들을조심스레붙드는문장으로나타난다.작고연약한것들,쉽게스쳐가는일상과관계를끝내외면하지않고기록하려는태도,말해지지않은감정앞에서한걸음물러서는절제는그의사랑이지닌미학적성격을이룬다.피천득에게사랑이란드러내는것이아니라지켜내는것이며,확신을주장하는것이아니라오래바라보는일이었다.그것이그가평생의글을통해보여준사랑의가장조용하고도단단한실체였다.

젊음을예찬하는감각

청신하고파릇한피천득의글은유난히늙지않는글이다.많은글에서피천득은한결같이젊음을예찬한다.그가이글들을쓴것이청춘이지난중년무렵이어서이기도할것이다.돌아갈수없는시절에대한그리움은그를과거에머물게하기보다,오히려현재와현실속에서만족과절제의태도로행복의실체를발견하게한다.이속에서우리독자들은시간의흐름을받아들이는태도,나이들어간다는것의품위를함께사유하게된다.이책은삶의끝자락에서조차삶을사랑하는법을잃지않았던한지식인의기록이다.

아들에게보낸편지추가수록

피천득의독자들에게그는딸‘서영이’를극진히사랑하고그리워한아버지로기억된다.그러나현실에서그는아들의아버지이기도했으며,작고후작품을정리하고관리하는실질적인역할역시줄곧아들피수영이맡아왔다.피수영은아산병원에서국내최초로신생아의료체계를정착시킨명의로,여든살에하나로의료재단고문직에서은퇴하기까지평생을의료현장에서보낸인물이다.이책에수록된편지들은피수영박사가미국미네소타주덜루스클리닉에서신생아전문의로일하던시절,피천득이아들에게보낸것들이다.편지에는아들을향한걱정과염려,자식들을모두멀리두고지내야했던노년의적적한생활,그리고절제된말속에숨은깊은애정이고스란히드러난다.이는피천득문학에서좀처럼드러나지않았던‘아버지로서의얼굴’을조용히비추는기록이기도하다.

김지수의‘인터뷰해설’수록

이번책에수록된해설은인터뷰를겸한확장된비평이다.김지수의인터뷰해설은피천득의문학을오늘의언어로다시읽게만든다.그는텍스트바깥에서인물을소환해한인간의삶과글을입체적으로엮어내며,『악수도없이헤어졌다』를단순한수필선집이아닌지금이시대에다시묻는삶의태도에관한책으로확장시킨다.

피천득을읽는독자의시선에서출발해,오랫동안많은독자들이궁금해했을딸에대한아버지의마음,아들에게는어떤아버지였는지,어떤사람들과즐겨어울렸는지,작가의가족으로서어떤삶을살았는지까지차분히묻고따라간다.이인터뷰해설은피천득의글을다르게읽고,더깊이읽는길들을독자앞에펼쳐보인다.

해설에서

그렇게감회에젖어느긋한마음으로첫장을읽기시작했는데,채한장을넘기지못하고떨리는손으로연필을깎아서밑줄을긋기시작했습니다.이토록단정하고격조있고생생하면서겸양의심연을갖춘한국말을대면한적이언제였던가……주저함없는미문이주는아우라가대단했습니다.피천득선생은“수필은마음의산책”이라했고“수필의빛은비둘기빛이나진줏빛”이라고했습니다.“한가하면서도나태하지”않은문학이며“가고싶은대로가는것이수필의행로”라고쓰고있습니다.힘을빼고쓴문장이오감의적재적소에산뜻하게꽂히는것은그표현의정확함과세련됨때문이겠지요.무엇보다피천득산문의거의모든시작은사소한문장으로시작해서가슴팍에포옹의잔물결이일도록다정하게마무리됩니다.(중략)이글을읽고저는한강에산책을나갈때마다강물이꽁꽁얼어붙은시린날씨에도어느비둘기목털에윤이나는지를살피게되었습니다.허공을향해턱을들고“햇빛속에고생을잊어보자.”라고속삭였지요.피선생의문장은그렇게읽는이의생활에윤택하게파고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