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의 낮

올빼미의 낮

$15.00
Description
“진실은 우물 밑바닥에 있소. 우물을 들여다보면 거기 비친 해나 달이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몸을 던지면 해도 달도 사라져요.
진실만 있을 뿐이지요.”


탐정 소설이라는 대중적 형식으로 권력과 부패의 본질을 파헤친
이성과 진실의 작가 레오나르도 샤샤의 대표작

이탈리아 문학에서 마피아의 실체를 최초로 정면 고발한 정치 소설의 고전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레오나르도 샤샤의 대표작 『올빼미의 낮』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1961년 발표된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 정부가 그 존재조차 부정하던 마피아 문제를 처음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로, 출간과 동시에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샤샤는 범죄 소설이나 추리 소설의 개념을 포괄하는 ‘로만조 잘로’의 형식을 빌려 단순한 살인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진실이 은폐되고 정의가 실패하는 사회 구조 자체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올빼미의 낮』은 마피아 서사의 출발점이자, “누가 범인인가”보다 “왜 정의가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정치 소설의 고전이다.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북부 출신 군경찰 벨로디 대위는 법과 이성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단순한 범죄 조직이 아니라, 침묵과 공포, 이해관계와 정치적 유착이 만들어 낸 거대한 권력의 그물이다. 목격자는 있지만 증언은 없고, 모두가 보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시칠리아 사회에 깊이 스며든 ‘오메르타’, 곧 침묵의 계율은 진실을 가로막는 장벽이자 마피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샤샤는 이 침묵을 개인의 비겁함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국가가 민중을 보호하지 못했던 오랜 역사, 법보다 총구가 더 가까웠던 현실, 생존을 위해 침묵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던 공동체의 왜곡된 윤리를 차갑고도 정밀하게 보여 주면서, 정의의 실패가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뿌리내린 묵인과 타협의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집요하게 해부한다.


이성과 진실을 대변한 작가, 레오나르도 샤샤

레오나르도 샤샤는 1921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라칼무토에서 태어났다. 사범학교에서 문학의 길로 이끈 스승 비탈리아노 브란카티를 만났고, 졸업 후 농업협동조합에서 일하며 시칠리아 농촌의 가난과 불평등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이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독재의 우화』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고향에서의 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쓴 『레갈페트라의 교구』를 통해 시칠리아의 역사적·사회적 현실을 예리하게 드러내며 주목받았다.
샤샤에게 시칠리아는 단순한 고향이나 작품의 배경이 아니었다. 그곳은 권력, 불평등, 침묵, 부패가 응축된 현실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시칠리아를 이해하는 일이 곧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올빼미의 낮』 이후에도 『각자의 몫』, 『토도 모도』 등 잘로 형식을 변주한 작품들을 통해 마피아와 권력의 공모, 국가 정치까지 오염시키는 부패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또한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문학이 지향한 정의와 진실의 문제를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도 놓지 않았다. 시칠리아인들과 이탈리아인들에게 샤샤는 이성과 진실을 대변하는 작가, 부패가 통치의 불변 조건이 아님을 일깨운 도덕적 지식인으로 기억된다.


시칠리아의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된 침묵의 사건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건설조합장 콜라스베르나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살해된다. 범행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졌지만,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하나같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도 입을 닫는다. 사건을 맡은 이는 북부 파르마 출신의 군경찰 벨로디 대위. 반파시스트 파르티잔 출신인 그는 법과 제도가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 합리적이고 강직한 인물이다.
벨로디는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이 침묵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조직적인 두려움과 결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지한다. 콜라스베르나가 살해된 직후, 같은 마을 사람인 니콜로시가 실종되고, 마을에는 그의 아내가 부정을 저질러 남편이 떠났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러나 벨로디는 이 소문을 믿지 않는다. 그는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으며, 실종된 니콜로시가 살인의 진실을 보았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직감한다. 수사가 진척될수록 모든 실마리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지역 유지이자 실력자인 돈 마리아노 아레나를 향한다.
그러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사건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달아난다. 범행을 실행한 자, 중간책, 배후의 권력자까지 윤곽이 드러나지만, 정치권과 제도권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움직이면서 수사는 무력화된다. 마피아 범죄는 치정 사건으로 둔갑하고, 조작된 알리바이에 진실은 덮인다. 샤샤는 범인이 밝혀지고 처벌받는 통속적 결말을 거부한다.


‘낮’에 나타난 올빼미, 양지로 나온 어둠의 권력

『올빼미의 낮』이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에서 가져온 말이다. 본래 올빼미는 밤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다. 그러나 샤샤가 그리는 마피아는 더 이상 어둠 속에 숨어 있지 않다. 정치권, 행정, 사법, 지역 경제와 결탁한 마피아는 이제 대낮에도 공공연히 힘을 행사한다. 이 제목은 마피아의 ‘양지화’, 곧 범죄가 제도와 결합해 하나의 권력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동시에 ‘낮’은 이성과 진실의 빛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 속에서 작동하던 권력이 빛 아래 드러날 가능성, 그 폭로의 순간이 이 작품의 긴장을 이룬다. 그러나 샤샤의 세계에서 빛은 쉽게 승리하지 못한다. 진실은 드러나는 듯하다가도 권력의 압력과 공동체의 침묵 속에서 다시 묻힌다. 이 체념과 희망의 팽팽한 긴장이야말로 『올빼미의 낮』을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 현대 정치 소설로 만들어 주는 동력이다.
특히 벨로디 대위와 돈 마리아노 아레나가 취조실에서 마주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 벨로디가 법과 정의를 믿는 근대적 이성의 인물이라면, 돈 마리아노는 힘과 침묵, 사적 질서와 카리스마로 군림하는 전근대적 권력의 화신이다. 그러나 샤샤는 돈 마리아노를 납작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품위 있고 논리적이며, 자신의 윤리를 가진 인물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선과 악의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법의 세계와 힘의 세계, 공화국의 정의와 사적 권력의 질서가 맞부딪치는 가치관의 대결로 확장된다.


“누가 범인인가”보다 “왜 정의가 실패하는가”를 묻는 소설

『올빼미의 낮』의 새로움은 탐정 소설의 형식을 뒤집는 데 있다. 보통의 추리소설이 독자를 범인의 정체로 이끈다면, 이 작품은 독자를 정의의 실패 원인으로 이끈다. 사건의 실마리는 잡히고, 범죄의 증거도 드러나지만, 법적 진실은 끝내 성립하지 못한다. 이 실패는 벨로디 개인의 무능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끝까지 정중하고 합리적이며,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메스처럼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사용하려 한다. 문제는 그가 상대하는 세계가 이미 법보다 더 오래된 질서, 도저히 뿌리 뽑히지 않는 힘으로 움직인다는 데 있다.
샤샤는 진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도의 지적 긴장감이 흐르는 건조하고 직설적인 문체를 구사하며 불필요한 감정적 과장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러나 이 담백한 문장들의 행간에는 시칠리아 사회의 모순과 인간 공동체의 어두운 진실이 치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서사로 풀어내는 이야기와 사건 당사자들 간의 대화 장면, 정치권 익명의 인사들 간에 오가는 대화가 교차되며 한 마을의 살인 사건은 점차 국가적 차원의 부패라는 문제로 연결된다. 그리하여 독자는 단순히 범죄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고, 정의가 어떻게 제도 안에서 무력화되는지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끝에 비쳐 보인다. 고향 파르마로 돌아온 벨로디는 안락한 일상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시칠리아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거기서 머리가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다. 이 의지는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가 부조리에 맞서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 바로 이 결말이야말로 『올빼미의 낮』을 통해 샤샤가 문학에서 추구했던 정신이 아닐까. 진실은 깊은 우물 밑바닥에 있고, 그곳에 몸을 던지는 순간 해도 달도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 어둠 속으로 내려가려는 사람이 있는 한, 문학은 여전히 정의의 가능성을 물을 수 있다는 것.
저자

레오나르도샤샤

LeonardoSciascia
이탈리아시칠리아출신의작가이자정치인.20세기이탈리아문학의가장위대한인물중한명으로평가받는다.1921년이탈리아아그리젠토주라칼무토에서태어났다.1935년사범학교에입학하여,문학의길로이끈스승이자작가비탈리아노브란카티를만났다.졸업후농업협동조합에취직하여8년간일하면서소규모농사를짓는농촌의현실에깊이공감하게되었다.1949년부터초등학교에서교사로근무했다.1950년『독재의우화』를출간하면서작가의길로들어섰다.고향에서교사로일한경험에서영감을얻어쓴『레갈페트라의교구』(1956)로큰성공을거두었다.르포르타주형식의이작품에서시칠리아의후진성이지닌역사적·사회적뿌리를예리하게포착했다.
1961년잘로(giallo)에속하는『올빼미의낮』으로큰성공을거두었다.최초로마피아를본격적으로다룬이작품은큰파장을일으켰고,1968년영화화되었다.『각자에게그의몫을』(1966),『토도모도』(1974)등잘로형식을변주한작품들을잇달아발표하며마피아와권력의공모,그리고국가정치까지오염시키는부패의구조를집요하게파헤쳤다.이후날카로운‘조사자적상상력’을역사연구에쏟아부어『레몽루셀의죽음에관한문서들』(1971),『마요라나의실종』(1975),『단도살인자들』(1976)등의작품을썼으며,테러리즘이라는비극적인동시
대현실에맞서『모로사건』(1978)을쓰기도했다.또한하원의원으로활동하며작품세계의지향과맞닿은정치활동에도매진했다.샤샤는놀라울정도로다작한작가였을뿐아니라지극히도덕적인인간이기도했다.시칠리아인들과이탈리아인들에게그는이성과진실을대변하는작가로서,윤리적으로사는것이가능하며부패가통치의불변하는속성이아님을일깨워주는존재로여겨진다.1989년팔레르모에서사망했다.

목차

올빼미의낮9

작가노트154
일러두기157

작품해설161
작가연보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