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14.00
Description
뜨겁지만 희미한 ‘기억’과 선명하지만 차가운 ‘기록’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의문사’로 휘발된 삶과
실종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그리움의 긴 여로, 그리움이라는 긴 여로
조용호 장편소설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등의 작품을 통해 사랑에 실패하고 관계로부터 단절되는 주인공들의 정처 없는 마음을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로 그려 온 작가 조용호는 색 바랜 사랑과 흔적으로 남은 사랑을 그리면서도 사라진 것들의 회생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유하는 그의 소설은 정처 없되 한 번도 가라앉은 적이 없으니, 상실과 그리움의 추진체는 그에게 사랑의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은 『떠다니네』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소설이자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이후 12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작가는 이 소설이 될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어진 뒤 평생 동안 그 사람을 그리워하다 그리움을 빼놓고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 한 남자의 이야기. 조용호가 가장 잘 쓰는 마음이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용호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만나는 조용호는 이전의 낭만적 열정을 지닌 조용호인 동시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세계와 조우하는 조용호다. 그리움과 상실이라는, 조용호 문학의 원형과도 같은 질료들이 현대사의 그리움과 상실로 자리를 넓힌 탓이다. 1980년대라는 시대가 낳은 비극은 어느 순간 문 닫힌 비극처럼 낡음 속에 갇혔다. 조용호의 이번 소설은 야학연합회 사건을 중심으로 닫힌 문을 열고 그 시대를 다시,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미시사나 거시사로 규정되지 않는 이야기는 문학적 시선이 무엇인지 확인시켜 준다. 개인과 국가, 현실과 환상, 사랑과 이별, 상실과 회복이 한데 뒤섞인 채 다만 잃어버린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주인공은 그동안의 부유함을 만회하려는 듯 거침없이 행동한다. 만날 수 있다면 간다. 실망하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길을 나선다. 물 위를 떠다니던 작가 조용호는 이제 길 위를 걷는다.
야학연합회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역사에 대한 연장된 시선을 제공하는 소설로 읽힐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이후 삶도 죽음도 의문에 부쳐진 한 사람에 집중해 읽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흥미로운 추적기가 될 것이며, 사라진 사람을 성실하게 그리워하는 한 사람이 자신의 그리움에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로 읽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그리움에 대한 실존적 성찰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의 세계로 수렴한다. 그리워하는 일에 대한 낙관이다. 포기하지 않는 그리움이야말로 완성된 사랑이다.
저자

조용호

조용호_1998년《세계의문학》에단편을발표하며소설을쓰기시작했다.소설집『떠다니네』『왈릴리고양이나무』『베니스로가는마지막열차』,장편소설『기타여네가말해다오』,산문집『꽃에게길을묻다』『키스는키스한숨은한숨』『여기가끝이라면』『시인에게길을묻다』『노래,사랑에빠진그대에게』『돈키호테를위한변명』등이있다.무영문학상,통영김용익문학상을받았다.

목차

사자가푸른눈을뜨는밤7
작가의말187
발문191

출판사 서평

■사라진하원을찾아서
『사자가푸른눈을뜨는밤』에는1980년대야학연합회사건이자리한다.사건의경험자인‘나’는당시실종된인물인하원을잊지못한채살아간다.30년이지나도록소식을알수없는그녀를향한그리움은이제‘나’자신이되어버렸다.그시절의기억으로부터멀어진시간과공간을살아가고있을때조차‘나’를붙들고있는건하원과함께보낸기억이다.그러던어느날하원의젊은시절과꼭닮은여인을만난‘나’는그녀와함께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진상규명이불가능하다고결론내린하원의실종사건을추적한다.그녀가실종된시점으로부터30년,조사시점으로부터는20년이지난지금,단서라고는없는이무모한추적의길에서하원을,혹은하원의흔적이라도찾을수있을까?

■기록과기억사이,그리고기억의연대
한사람의시작과끝에는삶에대한기록과죽음에대한기록이있다.사람은출생신고를통해사회에나타나고사망신고를통해사회로부터사라진다.그런데기록이그증명하는일을할수없다면어떻게될까.의문사라는상태는사람의존재를휘발시킨다.살아있지만존재하지않고존재하지않지만죽지않은상태.하원은의문사로‘처리’되었지만‘나’는그의삶과죽음을좀처럼‘완료’하지못한다.의문사로일축된한사람을기억하는개인이있다면이야기는달라질수있을까.한사람의기억이할수없는일을별로없다.하지만여러사람의기억이있다면가능할지도모른다.‘나’는잠든기억들을깨우기위한여행에나선다.필요하다면‘이상한사람’으로오해받을만한선택도불사하면서.하원에대한세상의기억을깨울수만있다면오해쯤은아무것도아니다.

■‘푸른눈’으로보고싶은것
작품제목의일부이기도한‘사자의푸른눈’은소설속에서이스파한의3대미스터리중하나의이야기로등장한다.남쪽사자상앞에서강건너북쪽사자의두눈을보면청록색빛이레이저광선처럼뻗어나오는데,신기한것은그사자상주변에반사될만한아무런조명도없고자체발광할조건도파악할수없다는것이다.어둠속에서빛나는푸른눈으로사자상은무엇을보려는걸까.우리가바로그북쪽사자상이라면어둠속에서무엇을볼까.반사되는것이라고는없는그캄캄한밤에우리는우리가가장그리워하는것을보게될것이다.“세월이흐를수록더선명해지다가미라로박제되는기억”을품고살아온한남자의이야기는‘그리워하는존재’들의눈이어둠속에서청록색빛을띤다는아름다운전설로우리가슴속을떠다닐것이다.

■발문에서
소설의기원은서사시이며,서사시의기원은노래다.노래가소설의기원인것이다.노래는듣는이의몸을진동시킨다.맥박을진동시키고,심장을진동시켜듣는이의감각을자연의상태로변화시킨다.나의눈에소설가조용호는의식적이든무의식이든‘노래꾼조용호’를그리워하는것처럼보인다.그래서읽는이의몸을진동시키는소설을쓰고싶어하는게아닌가,하는생각이든다.그흔적이소설의결을짙게채색하는낭만적정서가아닌가싶다.-정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