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 : 정지돈 장편소설 -  오늘의 젊은 작가 35

…스크롤! : 정지돈 장편소설 - 오늘의 젊은 작가 35

$14.00
Description
“블랙박스를 만든 사람조차 블랙박스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치 붕괴, 의미 부재, 창궐하는 음모론…
미래는 다시 위대해질 수 있을까?
소설가 정지돈의 신작 장편소설 『…스크롤!』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소설의 선형적인 전개 구조를 뒤섞고, 다종다양한 장르를 한 텍스트에 결집시키는 독특한 시도로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그만의 인상적인 문학적 궤적을 그려 온 정지돈이 또 한 번 독자들에게 문학의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난해 출간된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에서 공산주의자 현앨리스의 아들 ‘정웰링턴’의 삶을 중심으로 굳건한 믿음이 뿌리내린 과거와 회의가 깃든 현재를 오가며 시간 그 자체에 대해 골몰하도록 만들었던 정지돈이 이번 신작에서는 근미래로 그 시선을 옮긴다.

『…스크롤!』은 21세기 초의 팬데믹 유행으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흐른 근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줄기(SE와 NE)로 전개된다. 한 줄기에서는 물리적 현실보다는 증강?가상 현실에 기반을 둔 복합 문화 단지 ‘메타플렉스’에 소속된 서점 ‘메타북스’ 점원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줄기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음모론을 파괴하기 위해 창설된 초국가적 단체 ‘미신 파괴자’ 소속 대원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각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뒤섞고 생략하거나, 인과관계 없이 파편적으로 나열된다. 정지돈 작가는 ‘컷업’ 기법을 차용해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실재, 미디어와 메타미디어를 오려” 붙여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이는 각 개인, 그리고 저마다 마주한 현실이 분화될 대로 분화된 근미래의 일면을 효과적으로 선보인다.
저자

정지돈

2013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및에세이,비평등을쓴다.여러권의책을냈다.젊은작가상대상,문지문학상,김현문학패를수상했다.

목차

…스크롤!9

작가의말193

참고문헌196

출판사 서평

소설가정지돈의신작장편소설『…스크롤!』이민음사‘오늘의젊은작가시리즈’로출간되었다.소설의선형적인전개구조를뒤섞고,다종다양한장르를한텍스트에결집시키는독특한시도로문지문학상,젊은작가상을수상하며그만의인상적인문학적궤적을그려온정지돈이또한번독자들에게문학의새로운즐거움을선사한다.지난해출간된장편소설『모든것은영원했다』에서공산주의자현앨리스의아들‘정웰링턴’의삶을중심으로굳건한믿음이뿌리내린과거와회의가깃든현재를오가며시간그자체에대해골몰하도록만들었던정지돈이이번신작에서는근미래로그시선을옮긴다.

『…스크롤!』은21세기초의팬데믹유행으로부터얼마간시간이흐른근미래를시간적배경으로삼는다.소설은크게두가지줄기(SE와NE)로전개된다.한줄기에서는물리적현실보다는증강,가상현실에기반을둔복합문화단지‘메타플렉스’에소속된서점‘메타북스’점원들의이야기가,또다른줄기에서는전세계적으로창궐하는음모론을파괴하기위해창설된초국가적단체‘미신파괴자’소속대원들이야기가펼쳐진다.각각의이야기는시간의흐름을뒤섞고생략하거나,인과관계없이파편적으로나열된다.정지돈작가는‘컷업’기법을차용해“현실과비현실,가상과실재,미디어와메타미디어를오려”붙여한권의책을완성했다.이는각개인,그리고저마다마주한현실이분화될대로분화된근미래의일면을효과적으로선보인다.

개인으로쪼개진우리와우리의현실은얼마나더잘게분화될수있을까?미래에도그보다앞선미래를열망하는것이가능할까?『…스크롤!』은끊임없이질문을던진다.우리는『…스크롤!』을통해질문에대한정답을찾는대신,질문그자체를체험하게된다.

■SE:‘메타북스’점원들이당면한현재

『…스크롤!』에서그리는미래는당면한현실적문제와분투하는우리가미처모르는사이에바로곁으로성큼다가와있다.프랜과정키는“무한히확장”하는서점‘메타북스’의점원이다.프랜은드라마작가지망생으로,드라마대본집필수업을등록해혼자글을쓰며자신의드라마가OTT에서상영되기를꿈꾼다.정키는인스타그램으로연락이끊긴여자친구의결혼소식을접하고크게당황하지만여자친구를만나사정을듣는것조차녹록치않다.이처럼프랜과정키,그리고친구들은각자지독히현실적인문제들에골몰하면서도이를서로깊이공유하지는않는다.그들사이공유되는것은오직볼만한영화나소설작품,그리고서점‘메타북스’에관한흉흉한소식들뿐이다.생생한개인적경험은서로공유되지않은채점점축소되지만,온전히이해하는것조차어려운공통의현실과관심사는자의반타의반으로활발히공유되며확장된다.이는“우리삶에직간접적으로영향을미치는일”에대해“절대그속사정을알수없”고“대부분의경우아주작고표면적인일을통제하고실천하는것에만족하며”살아가고있을소설밖우리의모습과도꼭맞게겹친다.

■NE:‘미신파괴자’들이그리는현재

파편적사실들로가득찬현재는이해가능한영역으로부터완전히멀어져버렸다.21세기초팬데믹을거치며그모호성이더욱심화된현재는언뜻터무니없으나그자체로완결성을갖춘이야기,즉음모론이창궐하기에더없이좋은환경이된다.이에음모론과음모론자를수사하고가짜뉴스,미신,광신도를퇴치하는것을업으로삼는‘미신파괴자’가창설된다.‘나’는미신파괴자로서의임무를수행하기위해마약캔-D3000밀리그램을주사하기로한다.일정량이상의캔-D를주사하면현실과가상의경계가흐려져,음모론이끊임없이재생산되는가상서버에접속할수있는존재인‘존재론적행방불명자’가될수있기때문이다.한번‘존재론적행방불명자’로변모한뒤에는영영원래상태로돌아오지못할수도있지만‘나’는조직의계획대로캔-D를주사한다.너무크고멀리있는문제들보다는가까이에위치한,실천가능한일들에최선을다하기위해서.또한“뭔가이해하려한다”는실감을느끼기위해서.음모론을파괴하기위해음모론의세계한가운데로진입한‘나’는어떻게될까?조직은마침내진실을마주할수있을까?확신할수있는것은아무것도없다.‘나’는상상한바를그저실천에옮길뿐이다.

■우리가할수있는유일한일

『…스크롤!』은근매래의세계를떠도는개인과이야기들을그존재양태그대로포착해둔다.태어나한번도남한을벗어난적이없고,공식유통망을통해구할수있는책들만읽는프랜의삶은헬싱키가상마을출신에다크웹에서구한작품들만향유하는정키의삶과전혀겹치는구석이없다.한개인의사연은다른개인의사연과선형적으로이어지지않고,일시적으로만나고겹치는어느‘순간’이있을뿐이다.손에쥘수있는현실은오직순간적인접촉들,혹은접촉으로부터상상한구체적인장면들로서만가능할것이다.미래는시간의흐름에따라찾아오는것일텐데,그렇다면시간의연속성이깨진파편적인세계에서도미래에대한전망과열망은여전히유효한걸까?정지돈은『…스크롤!』을통해미래에대한새로운시각을제시한다.“사람들이어떤상황을현실이라고정의하면그상황은결과적으로현실이된다.(……)그러니지금구체적으로상상해야한다.구체적인건무엇이나현실이니까.미래는시간이아니라꿈속에있다.”우리는각자의진실속에서살아갈것이다.그진실이음모론에가까울지라도.모두에게공통적으로주어진단하나의이야기대신,수십수백개의이야기가저마다달리주어질것이다.미래는예상과설명대신,오직실천을통해모습을드러낼것이다.“설명할수없는일”을“실천”하기위해소설을쓴다는정지돈의말처럼.

■「작가의말」에서

이렇게하나마나한말을왜하는걸까.나는책이깨달음을준다는말따위는믿지않는다.모든언어는이미깨달은사람,깨달을준비를한사람에게만이해된다.(물론이경우에도진짜이해한건아니다.)그렇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나는여전히언어의힘을믿는다.언어는그것이담고있는의미보다훨씬많은일을한다.어떤일을하는지는설명할수없다.이건설명할수없는일이니까.단지실천할수있는일일뿐이고그래서나는소설을썼다.앞으로도쓸것이다.

―정지돈,「작가의말」에서

■본문발췌

리의혈관속에들어간캔-D가벌써약효를내고있었다.어젯밤에머신건을훔쳤는데총알이없잖아…….팔수있겠어?나는고개를끄덕였다.바람이거세졌고수류탄만한빗방울이쿵쿵떨어졌다.바닷물이요트를집어삼켰고빗물사이로지느러미를펼친가오리가녹색형광물질을번쩍이며날아다녔다.나와리는부둣가의기울어진콘크리트위를미끄러져내려갔다.전봇대의전단이펄럭이고있었다.미신파괴자들을모집한다는내용이었다.미신파괴자들에대해서좀알아?오호츠크해에서불어오는바람이라고?아니……나는입속으로들어가는차가운빗방울들을뱉으며소리질렀다.
―12~13쪽

프랜은자신이원하는걸진심으로원하는지알수없었다.메타북스에들어온후생각이변한걸지도모른다.프랜은단지말들을떠돌게하고싶었다.대단한예술작품,베스트셀러,히트작,영원불멸의클래식따위를만들고싶은게아니라어떤생각,아이디어,논평,꿈,일상,작은이야기,사소한논쟁들이우리주변을맴돌며하루하루를즐겁고슬프게스치고사라졌으면했다.이게뭘까?이건어떤종류의꿈일까?프랜은명확히설명할수없었고누구도이해시킬수없었다.자신도이해하기힘들었고어느날에는드라마를써야겠다고생각했고어느날에는다시연기를해야겠다고생각했다.그러나신통한건아무것도없었다.무엇도완전히마음에들지않았고마음에드는것은오직순간적인것뿐이었다.
―71쪽

쉽게비유해보겠습니다.서페이스웹이걸어서갈수있는장소라면딥웹은자동차를타야갈수있는장소예요.또는회원제클럽과퍼블릭서비스공간.아니면구글맵에등록된식당과구글맵에등록되지않은식당.어느쪽이더맛있냐고요?먹어보기전까지는알수없죠.어느쪽이더진정성있고더프로다운요리를선보이냐고요?그것역시알수없죠.하지만깊이의개념으로문제에접근하면먹어보기도전에결론을내리게됩니다.진짜는더아래,숨겨진곳에있는거야.알려지지않은맛집이진짜맛집이다!반대경우도마찬가지죠.유명한곳이더믿을만해!제말은둘다아니라는겁니다.여기까지이해안된사람?
―79쪽

프랜은생각했다.우리삶에직간접적으로영향을미치는일이벌어지고있지만우리는절대그속사정을알수없다고,안다해도되돌리거나움직일수없고움직인다해도우리가원하는방향으로흘러가지않을거라고.그것이때로우리를절망하게할지모르지만대부분의경우아주작고표면적인일을통제하고실천하는것에만족하며살거라고.
―148~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