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이, 화이 (배지영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담이, 화이 (배지영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15.00
Description
“세상 끝, 우리 둘만 살아남았다.
하필 우리 둘만”
“국어대사전의 ‘하필’이라는 표제어에
이 소설을 예문으로 추가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절망적인 단어라는 걸
소설을 읽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장진영(소설가)

배지영 장편소설 『담이, 화이』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담이, 화이』는 좀비가 잔뜩 등장하지만 좀비물이라기보다는 ‘인간물’에 더 가깝다. 멸망한 세상을 배경으로 하지만 종말기보다는 창세기와 더 비슷하다. 가벼운 농담 같으면서도 웃음보단 서늘함이 앞서고 의미 심장한 우화 같으면서도 상징보단 현실감이 더 두드러지는 이 소설의 백미는 낯선 배경과 익숙한 감정의 부조화에 있다. 지하에서 하수관을 청소하는 남자 담과 백화점 지하주차장 정산소에서 일하는 여자 화이. 옷깃도 스친 적 없는 두 사람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의문의 대재앙 가운데 살아남는다. 생존을 위해 두 사람은 협업 아닌 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위협 없는 세계의 진짜 위협은 ‘둘’이라는 조건이다. 누가 둘이 더 낫다고 했는가. 이들은 차라리 혼자이길 바라듯 서로를 탐탁치 않아 한다. 둘도 힘든 ‘나 혼자’ 세상, 사랑과 연애가 종말을 맞은 세상. 『담이, 화이』는 도저한 시체들 사이에서 진짜 죽어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저자

배지영

저자:배지영
2006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중편소설「오란씨」가당선되어등단했다.소설집『오란씨』,『근린생활자』와장편소설『링컨타운카베이비』,『안녕,뜨겁게』가있다.

목차


1장
담은끊임없이걸었다9
그날화이는백화점지하1층주차정산소에있었다17

2장
담은지는해를바라봤다25
화이의머리위로커다란그림자를드리우며새떼가낮게날았다30
담은버릇처럼자신의냄새를맡았다41
화이는죽은자들이두려웠다50
담은가슴이뛰었다57

3장
화이는잠이쏟아졌다69
담은걷는자들을처리하는데집중했다74
화이는자동차를이동시켜다리를막았다78
담은화이와함께하는시간이불편했다86

4장
화이는담의일하는모습을내려다봤다99
담은신이자신을이세상에남겨둔이유에대해생각했다106
화이는P의손을잡았다114
무인도에단둘만살아남는다면,상대가누구면좋을지생각했다128

5장
화이는뒤늦은의문이떠올랐다139
담은강둑에서있는화이를바라봤다143
파리떼가화이의시야를가로막았다155

6장
담은깊은잠에서깨어났다163
화이는자신의첫거짓말을기억한다173

7장
담은지하를헤맸다183
화이는이제야완벽한세상이됐다고생각했다188
담은개가짖어대는소리를들으며브람스를틀었다194
화이는담의뒷모습을낯설게바라봤다202

작가의말219
추천의글_장진영(소설가)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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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기다려온멸망,그이후
어느날갑자기사람들이걸어다니는시체로변한다.담과화이,두사람만빼고.초자연적현상이왜두사람만비켜갔을까.담과화이사이에는어떤관계도없지만그러고보면말못할공통점도있다.두사람다스스로를낙오자라고여긴다는점에서.더욱이둘다지하에서일하는데,사랑과연애의세계에서또한그들은빛한점안드는세계에거주한다는점에서지하는그들실존의위치이기도하다.거부당하는일에익숙한사람들에게시체가즐비한이곳은마침내도래한‘그들만의세상’이자비로소‘완벽해진세상’이다.그렇다면두사람은정말‘구원’받은걸까?문제는그들사이가좁혀지기는커녕점점더멀어진다는사실이다.두사람은,달라도너무다르다.

■싫어하는소설
『담이.화이』는‘싫어하는소설’이다.서로를싫어하는감정으로점철되어있다.그런데그감정이너무익숙해서우리마음의거울을보는것같다.둘의관계는한마디로상극이다.담은쉬지않고일한다.시체를몰아서강물속으로빠뜨리는일.그렇게하는게무슨의식이라도되는것처럼담은점점더그일에몰입한다.그런담의눈에비친화이는게으른데다사치나일삼는한심한여자다.그러나화이입장에서본담역시쓸데없는일에집착하며으시대는‘하남자’일뿐이다.시체가떼를지어몰려다니는이세상에서살아남은것은담과화이두사람이지만,이들의생존은최후의순간까지살아남은감정이미움과혐오라고말하는것같다.

■창세기비틀기
사람들이시체로변하기전,사는게힘든화이는죽고싶다고생각한다.그러다생각을고쳐먹는다.자신이아니라자신을아는사람들이다죽어버렸으면좋겠다고.모두7장으로구성된소설『담이,화이』는창세기를비틀어쓴종말기다.주인공중한사람인담은침례의식을연상하는행위속에서스스로를세상의끝사람이아니라아직오지않은세상의첫사람일거라고의미부여한다.과장된자의식으로위축된자존감을포장하는것이담이라면화이는거짓말을밥먹듯이하고사치품에탐닉하며만들어낸허위의식으로바닥난자존감을위장한다.성서속아담과하와가태초의인간이라면소설속담과화이는최후의인간이다.그러나이것도최후는아니다.두사람에게는아직최후가오지않았다.

■소설가배지영의재발견
2019년출간한소설집『근린생활자』이후6년만에선보이는이번작품은배지영작가의기발한상상력과해학이유감없이발휘된작품이면서이전작품들보다한층성숙한면모를보인다는점에서작가의새로운출발점이라할만하다.세권의장편소설과2권의소설집을출간한작가는2006년,친숙하면서도섬뜩한,생생하면서도야성적인언어로일상적공간에난무하는폭력을실감나게그리며한국문학의새로운가능성으로주목받았다.이후줄곧현대인의불안과공포,우리사회의어둠과광기,개인의본능적욕망과괴물성을입체적으로조명하면서도인간에대한따뜻한시선을잊지않던작가가이번에는조용한공포의극단을선보인다.아무일도일어나지않는것같은침묵의재앙속에서우리가잃어버린것들이하나둘실체를드러낸다.

책속에서

“그의앞으로한무리의사람들이지나갔는데,담은저도모르게코를움켜쥐고말았다.이렇게끔찍한냄새를맡아본적이있었던가.고개를든담은그만자리에주저앉고말았다.걸어다니는그들에겐생명의빛이없었다.얼굴에도눈에도피부에도,비틀거리는걸음걸이에도,다만움직일때마다분명하고끔찍한시취가역하게콧속을파고들었다.좁은골목길을휩쓸고줄지어걸어다니는사람들은이미죽어있었다.그들은시체였다.”(15쪽)

“죽고싶다는생각이들었다.아니,모두다죽어버렸으면좋겠다고생각했다.몇푼의주차료는아까워하면서도외제차를끌고다니는노인도,P도P의와이프도,하루아침에화이를쓰레기취급하는눈길과손가락을,그리고그녀를아는모든인간들이다죽어버렸으면좋겠다고생각했다.”(19쪽)

“걸어다니는시체들은딱사흘치의부패만정상적으로진행된것처럼보였다.이후부터는아주느린속도로썩어갔다.겨울이었으므로대개는정도가심각하지않았으나시체는시체였다.고약한냄새를풍겼다.어느장소,어떤상태에서죽음을맞이했느냐가부패의정도를가름했다.그들은시체가된채걸어다녔다.살아난것은아니니‘부활’이라고하기엔곤란했다.영화에서처럼살아남은사람에게달려들어물어뜯지도않으니‘좀비’라기엔박진감이부족했다.”(26쪽)

“정말살아남은사람이없는걸까.화이는살아있는누군가가더없을것같아두려웠다.그러면서도‘누군가’더있을까불안했다.정체를알수없고실체를알수없는누군가가있다면그사람은이모든일을계획한악인일것같았다.그것이합리적인생각이아닐지라도살아남은자는강간범이거나살인자,미치광이,알코올중독자일것만같았다.화이에대해쓰인악의적인커뮤니티글을이미본사람이라서,그녀를보자마자손가락질할지도모른다는생각에이르면누구든두려웠다.”(54쪽)

“문득담은,자신이시체들로가득한세상을깨끗하게만들어갈,새세상의‘첫사람’이란생각이들었다.마지막으로남은사람이아닌,첫사람으로새롭게시작하는사람.담은가슴이벅차오르는걸참을수없었다.”(77쪽)

“화이는탄식하듯말했다.‘왜하필’이란말을화이는자주했다.그말은‘감히’란말과더불어담을불쾌하게했다.하지만그말에대응해대꾸할말이생각나지않았다.”(94쪽)

“아무짝에도쓸모없는여자.차라리사내였다면.그랬다면훨씬더나았을텐데.일도더빨리수월하게할수있었을텐데.레슬링을함께즐기며볼수도있었을텐데.그리고그리고……”(96쪽)

“뭔가단단히잘못됐다는생각이들었다.음료수를준것도,자신을향해그토록따스한시선을보낸것도,다정한말을건넨것도P가먼저였다.잘못이있다면P가화이를사랑하지않는다는걸알면서도사랑이라고믿었던것뿐이다.만약일을그만둬야한다면되돌리고싶었다.화이에겐목표가있었다.조금만더있으면지하가아닌지상에서일할수있다.계약서만쓰지않았을뿐이지팀장은그렇게말했따.주말근무도야근도도맡아가며,오롯이혼자작은플라스틱상자안에갇혀일했던것도그때문이었다.”(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