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최소한아직까지는페소아의조건을갖추지못했다.그사고방식은아직도페소아를논할자격이없다.”―알랭바디우
●『불안의책』의작가로알려진천재시인페르난두페소아
“페소아는19세기레오파르디로부터20세기베케트까지무(無)를뮤즈로두었던거장시인들의계열에속한다.페소아의수많은이명들은그를뛰어난모더니스트로만드는요인들가운데하나인데,이는오스카와일드가‘가면의진실’이라고부르는것을믿는시인들의산물이며,또한T.S.엘리엇이J.앨프리드프루프록일때보다더엘리엇다울수없는것과같은맥락이다.”―《뉴요커》
수많은이름으로썼던천재시인페르난두페소아의대표시선집두권이민음사세계시인선으로출간되었다.세계적인문학비평가인헤럴드블룸은셰익스피어,조이스,네루다와함께서양문학사상가장위대한작가26인의목록에포르투갈의작가페소아의이름을올려놓았다.세계문학계에서이제페소아의이름은더이상낯설지않다.국내에도그의대표작중하나인산문집『불안의책』이소개되면서,수많은정체성의작가페소아에대한관심이더욱높아지고있다.그러나페소아는무엇보다도시인이며,국내처음제대로작가의대표시들을원전번역으로소개한다.
●가명(假名)이아닌이명(異名)을창조한시인페소아,국내처음제대로소개하다
페소아는평생장르불문하고왕성하고폭넓게글을썼지만,본인스스로시인으로여겼다.페소아,그는일곱살때처음시를쓴이후죽기직전까지평생시작(詩作)을멈춰본적이없다.그러나국내에선1994년그의이명중하나인알베르투카에이루의시집이『양치는목동』이라는제목으로출간되었다가절판된이래,페소아의시는거의소개되지않았다.이번에출간된두권의시선집에는국내최초로정식소개되는페소아본명및그의이명들의시가다수수록되어있다.
이명(異名)은페소아의문학을이해하는핵심이다.그의이명은적게는70여개에서많게는120여개에이르는것으로알려져있다.가명으로창작활동을한작가는많지만,페소아처럼각이명마다독자적스타일과개성을가진하나의독립된존재로서여러개의정체성을창조하고또그들간의상호관계를설정하여‘이명놀이’를발전시킨사례는없었다.이번시선집에는페소아의가장대표적인이명삼인방알베르투카에이루,리카르두레이스,알바루드캄푸스의대표작을엄선하였다.또한페르난두페소아가자신의본명으로살아생전유일하게출간했던시집『메시지』의일부도함께수록하여,이두권의시집만으로‘시인페소아의총체’를확인할수있도록하였다.페소아는생전에출간한작품은거의없지만,자신의시에서‘예언’했듯이현재그의작품들은‘masterpiece’라는꼬리표를달고전세계독자들의사랑을받고있다.
만약내가일찍죽는다면,
책한권출판되지못하고,
내시구들이인쇄된모양이어떤건지보지도못한다면,
내사정을염려하려는이들에게부탁한다,
염려말라고.
그런일이생겼다면,그게맞는거다.
나의시가출판되지못하더라도,
그것들이아름답다면,아름다움은거기있으리.
하지만,아름다우면서인쇄되지못한다는건있을수없다,
뿌리들이야땅밑에있을수있어도
꽃들은공기중에서그리고눈앞에서피는거니까.
필연적으로그래야만한다.아무것도그걸막을수없다.
―『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에서
●“한국에김한민만큼페소아에미친사람은없을것이다.”―심보선시인
번역자김한민은포르투갈포르투대학교에서페르난두페소아의작품을연구한,국내에유일하다시피한페소아전문가이다.김한민은글과그림을자유자재로오가며매작품마다서로다른다양한스타일을선보여왔다.김한민의작가로서의다양한개성과시와번역에대한엄격한학자적태도의공존은문학을통해‘복수(複數)되기’를구현했던페소아의모습과닮아있다.
아직한국에서는생소한작가페소아에대해,김한민은시와관련된페소아의텍스트,전기적정보,그리고해외연구자들의읽어볼만한의견들을꼼꼼히정리하여소개하였다.페소아의시와관련한정보가거의전무한국내실정에서,김한민의작품해설은페소아의시세계로항해해나가는데든든한나침반이될것이다.
"페소아는낭만주의적감정의분출이라는측면의진실성에는전혀공감하지않았다.(...)시의무대에서,시적자아는진실성의연기를실행할뿐이고,이‘배우’의안무나연기는시인에의해사전에철저히계획되고연출된것이어야했다.페소아는시적자아가시인본인과다르지않은낭만주의의등식을수정하며,“감정적진실성=?시적진실성”또는“시적자아=?시인=?저자”라는점을강조했다.왜냐면한저자안에는수많은저자들이있을수있기때문이다.이차이가자리를잡으면,감정의객관화라는목적도실현될수있다."
─김한민,「작품에관하여:시인,페소아」,『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에서
●변방의포르투갈문학을유럽모더니즘의중심으로끌어올린거장시인
“우리모두는전혀다른사람이되었다.다시말해,진정한우리자신이되었다.”─페르난두페소아
『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에는페소아의대표이명삼인방중두명,알베르투카에이루와리카르두레이스의대표작과페르난두페소아가본명으로생전출간했던단한권의시집,『메시지』의일부를수록하였다.
알베르투카에이루는포르투갈리스본출생으로,시골에서생의대부분을보낸목가적인전원시인이다.그는다른모든이명들에게영향을끼치는중심인물로,페소아는그를“내안에서태어난내스승”이라고표현하였다.형이상학적해석에대한경계,사물을있는그대로보려는순수한직관등을중시하였다.그의대표작「양떼를지키는사람」에는“세상을바라봄으로써이해할수있다고주장하는자연의견자(見者)”가등장한다.
하지만눈을뜨고태양을보면,
이제아무것도생각하지않을수있다,
왜냐하면햇빛은그어떤철학자나시인의
생각보다더가치있기에.
햇빛은자기가뭘하는지모르고
그렇기에틀리는법이없고흔하며좋은것.
―「양떼를지키는사람」,『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에서
리카르두레이스는‘포르투갈어로시를쓰는호라티우스’라고불리는우아한고전주의자로,경구를연상시키는문체를구사하였으며정형시를많이남겼다.외과의사를직업으로가진그는,다른이명카에이루를스승으로존경하였으나또다른이명인캄푸스에대해서는못마땅하게여겼다.그의시에서는에피쿠로스학파의현재의만족을추구하는이상과스토아학파의완전한자주성의경향을발견할수있다.사포,아리스토텔레스등고대그리스문학및철학서를번역하기도했다.
에피쿠로스를사랑하지만,
그의가르침보다는우리식대로
그를더잘이해하는나의형제들아,
이차분한두체스기사들의
이야기속에서인생을
어떻게보내야할지배우자.
진지한것들은전부우리와별상관이없게,
심각한것은무겁지않게.
본능들의자연스러운충동이
근사한게임을두고자하는
(한가로운나무그림자아래)
무용한쾌감에양보를하게.
―「다른송시들―체스를두는사람들」,『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에서
페소아는수많은글을남겼지만,생전에정식으로출간된책은포르투갈어시집『메시지』단한권뿐이었다.『메시지』에서드러나는민족주의적경향으로인해페소아를민족주의시인으로여기기도한다.그러나페소아는그의본명마저도다른이명들과마찬가지로여러정체성중하나로사용했기에,그의본명시를마주하면서오히려자동적으로여러명의시적정체성을상기하게된다.
오소금기바다여,너의소금중얼마만큼이
포르투갈의눈물인가?
너를건너느라,얼마나많은어머니들이눈물흘렸으며,
얼마나많은자식들이부질없이기도했던가!
또얼마나많은신부들이결국결혼에이르지못했는가
너를우리것으로만드느라,아바다여!
―「『메시지』중발췌―포르투갈의바다」,『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에서
●페소아가가장사랑했던이명,거침없이내지르는도취된모더니스트알바루드캄푸스
『초콜릿이상의형이상학은없어』에는페소아가가장사랑했던이명으로,월트휘트먼의영향을받은알바루드캄푸스의대표작을실었다.알바루드캄푸스는1890년포르투갈에서태어나글래스고에서교육받은선박엔지니어로,20세기초도래한기술전성시대를시적으로해석할임무를부여받은도취된모더니스트였다.무려900행이넘는대표작「해상송시」에서짐승처럼폭발하는광기와말끔하게정돈된현대성을번갈아가며보여준다.
노란쇠줄철망으로된창구가있는사무실처럼깨끗하고,정돈되고,현대적인,
신사처럼자연스럽게절제된,지금의내감각들은
실용적이며,착란따위와는거리가멀고,바다공기로허파를채운다,
바다공기를들이마시는게얼마나위생적인지를아주잘아는사람들처럼.
날은이미완연히일과시간으로접어들었다.
모든것이활기를띠고,질서정연해진다.
자연스럽고직접적인큰기쁨을안고나는영혼과함께다닌다
상품들의적재를위해필요한모든상업적인활동들.
나의시대는모든송장(送狀)에찍히는도장,
그리고내느낌에모든사무실들의모든서신들이
내게로보내져야할것만같다.
―「해상송시」,『초콜릿이상의형이상학은없어』에서
그는페소아의이명중가장왕성한생산성을자랑하였으며,페소아와마지막까지함께한이명이기도했다.페소아는“아무도나를개인적으로만난적은없다,캄푸스를제외하고는.”이라고말할정도로캄푸스에대한애정을드러내기도했다.
하지만내가절대되지못할것들을향한씁쓸함으로
최소한이시구들의서투른글씨체,
불가능으로향하는부서진관문은남는다.
―「담배가게」,『초콜릿이상의형이상학은없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