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순간, 검은 예감

푸른 순간, 검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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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민음사 세계시인선 46번으로 게오르크 트라클 대표 시선집 『푸른 순간, 검은 예감』이 출간되었다. 게오르크 트라클은 유럽 표현주의 대표 시인으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다. 당시 유럽은 전통의 쇠락과 새로운 시작이 길항하고 있었고, 특히 오스트리아는 미술, 음악, 문학, 정신의학, 철학 등 예술과 사상의 전 분야에서 미증유의 탐험과 특이한 문화적 동요가 함께 일어나던 공간이었다. 유복한 사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건강하고 바른 시민의 삶에 그다지 잘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세기의 전환을 온몸으로 살아 내며 끝까지 ‘몰락하는 자’로서 노래했다. 그의 시에서는 바깥으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고통, 우울과 전망 없음이 자연의 다채로운 색채와 음향이 뒤섞인 독특한 감각으로 구현된다.
저자

게오르크트라클

GeorgTrakl,1887-1914
유럽표현주의대표시인.오스트리아잘츠부르크의유복한철물상의여섯남매중넷째로태어났다.열여섯살때부터약물과마약에손을대기시작하였고,이와관련이있을어두운광기와우울,죄의식이그의길지않은생을가득채웠다.누이와의비틀린관계가영향을주었다고도전해진다.니체와도스토옙스키,랭보등을좋아하여시와극작창작에열중하는한편,약제사가되기위해빈대학교에서약학을공부한다.1914년위생병과장교로세계1차대전에참전하는데,전투와그에따른수많은부상병들의끔찍한광경은재앙과같은충격이었고,급기야자살을시도한다.이는실패로끝났으나몇달지나지않아결국스물일곱의나이에약물중독으로생을마감하였다.실존의고통,우울,사념의무상등은그의시에서색채와음악성을통해구현되었다.푸른색,붉은색,황금빛,은색,검은색,갈색의색채를통해하나의새로운세계를건설하고,그곳에서시인의감정과존재의상태는구체성을갖게된다.각각의색깔에맞는음이있고,그음들이울려하나의교향곡이된다.20세기중반에이미세계시문학사에서중요한위치를갖는시인으로평가받았고,잉에보르크바흐만,파울첼란등에게영향을주었다.

목차

1부시집
까마귀들
미라벨궁전의음악
겨울의황혼
아름다운도시
가을에
저녁에나의마음은
가을의변모
겨울에
인류
심연에서
트럼펫
화창한봄
우울
오후에게속삭이다
누이에게
조락
저녁노래
밤노래
헬리안
2부꿈속의제바스티안
어린시절
풍경
소년엘리스에게
엘리스
꿈속의제바스티안
봄에
란스의저녁
카스파하우저노래
공원에서
겨울저녁
고독한사람의가을
안식과침묵
탄생
종말
서양의노래
변용

침묵하는자들에게
수난
겨울밤
잡힌지빠귀의노래
3부1914년과1915년《브레너》에발표한시들
마음

뇌우
저녁

귀향
그로덱
4부유고
노발리스에게
주(註)
작가연보
작품에대하여:독일표현주의서정시의스타(김재혁)
추천의글:트라클을만나러가는길(박상순)

출판사 서평

●하이데거는트라클의시에서‘존재의진리’를찾았다!

“이아름다운시속의모든시작과흘러감은이루말할수없이달콤하다.”
-라이너마리아릴케

저녁에박쥐들의울음소리들려오고.
두마리가라말이초원에서뛰어논다.
붉은단풍나무는바람에살랑거린다.
나그네에게길가의작은선술집나타나고.
새포도주와견과들은맛이훌륭하다.
어둑해져가는숲에서술에취해비틀대는것은멋지다.
검은가지사이로고통스러운종소리울린다.
얼굴에떨어지는이슬방울.
-「저녁에나의마음은」에서

그의시는말로에워싸여있지만침묵에가깝다.같은오스트리아출신시인라이너마리아릴케는트라클시의특징을“한없는말없음을둘러싼몇겹의울타리”라고칭하기도했다.무엇을말하려는지똑바로가리키는명확함대신,우리가끝없이마주치는것은바로색채와소리다.“트라클의시는색채로연주하는음악이다.”(「작품에대하여」에서)트라클의시는말할수없는것을말한다.독일의철학자하이데거는인간의언어에앞서이미모든‘존재’가말없는소리로인간에게다가온다며,이‘존재의언어’와의관계에서언어의본질을찾았다.“한시인의시는말해지지않은채로머물러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모든시는어떤하나의시전체로부터말하며,매번이전체를말한다.”(하이데거)하이데거가이러한존재의진리를드러내는가능성으로꼽은것이바로트라클의시작(詩作)이다.그는트라클의시에대해"시야의폭,사유의깊이,말행위의단순소박함이형언하기어려울정도로친밀하고도영원하게빛난다."고남겼다.

영혼은지상의나그네.결딴난숲위로성스럽고
푸른어스름이지고,마을에서들려오는
길고검은종소리.평화로운동반자.
망자의하얀눈꺼풀위로는조용히도금양이피어난다.

가라앉는오후속에물소리나직이울린다.
물가의황야는더욱짙게파래지고,장밋빛바람속기쁨.
저녁언덕에들려오는오빠의부드러운노랫소리.
-「영혼의봄」에서


●실존의고통을색채로그린표현주의대표시인
프란츠마르크,에곤실레,바실리칸딘스키와함께읽다
트라클시의색채는그무렵막일어나기시작한표현주의미술과도겹친다.표현주의회화는현실을뛰어넘어주관적감정과감각의주체를표현하는것을목표로하며,구도나구성에있어서전통적인규범을파괴하고강렬한색채가특징이다.트라클역시당시표현주의화가들과적극적으로소통했고,오스카코코슈카의그림「바람의신부」의경우는그의시「밤」과연결된한쌍이다.동시대의정신이시와그림이라는서로다른형식으로구현되고,서로에게영향을주며새로운모더니티를만들어낸것이다.이책에는표현주의미술의대표화가들의작품이함께실렸다.자연,특히동물로서의순수를그린프란츠마르크,자아의불안한욕망을화폭위에옮긴에곤실레,색채와음향을조합하고자했던바실리칸딘스키의그림은모두트라클시와닿아있고,닮아있다.

끝없는고통에
너는신을사냥하러나섰다,
부드러운정신이여,
폭포속에서,
물결치는전나무숲에서한숨지으며.

종족들의불꽃은사방에
금빛으로활활타오르고.
검게물든벼랑위로
죽음에취해
작열하는바람의신부가곤두박질치고,
빙하의
푸른파도,
계곡사이로굉굉울리는
세찬종소리.
-「밤」에서

●새로운세계의도래와기존세계의몰락을아프게예감했던예술가의상징
트라클은제시대에가장민감하게반응한작가였다.그는구체제에완전한종말을가져온사건인세계1차대전이발발한1914년,스물일곱의나이로세상을떠났다.위생장교로참전했던첫전투에서그는끝없이밀려드는부상병들의피에젖었다.재앙과도같은충격에완전히정신이무너졌고,몇달지나지않아약물중독으로세상을등지게된다.그의짧은생은타고난우울과아주어린시절부터의죄의식,실존의고통이언제나함께했다.이러한고통은저물어가는시대와궤를같이했고,가장예민한존재로서시인은기존세계의파멸이자누구도알지못하는완전히다른새세계의도래를가장아프게맞이했다.

오,저녁바람은얼마나쓸쓸하게그치는가.
올리브나무의어둠속에서머리는죽어가며기운다.
종족의몰락은충격적이다.
이시간에바라보는자의눈은
그의별들의황금빛으로가득찬다.
저녁에종소리는잦아들어더는울리지않는다.
광장옆의검은장벽들은무너지고,
죽은병사는기도를외친다.
-「헬리안」에서

세계가이전으로다시는돌아갈수없다면,그러나그도래할다음세계도장밋빛으로전망할수없다면,모든것이무너져내리는시대를어떻게살아야할까?트라클의시는몰락하는세계의아름다움을고이쥔다.그렇게눈앞의진실을더욱똑바로바라보고자한다.지금까지의언어그이상,그너머의언어로무너져내리는세계,그리고다시탄생할세계를예언자처럼노래한다.새로운시대는부드럽고유순하게오지않는다.변화는죽음과도같은고통이있은후에야가능하다.위기와변화는같은뜻일수있다.다만이러한대격변의시대와공명하는,혹은이시대를제대로따라잡지못하는우리영혼은어떤모습을하고어디에머물게될까?100여년전가장예민한정신이진리를찾기위해헤맸던기록은하나의답이될수있을것이다.

한마리파란짐승이늘따라오니까,
어둑한숲속에서지켜보는짐승이다,
이어두운오솔길에서,
밤의화음에,부드러운광기에
깨어움직이며.
또는어두운황홀의음조가
현악기를가득채워
속죄하는여인의서늘한발치에닿는다,
돌로된도시에서.
-「수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