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출발한혁신으로시와소설,
사실과허구사이경계를허무는가장‘크노다운’첫시집
“결과적으로나는소설,내가기술하고자욕망하는
소설그리고시사이에근본적인차이를
단한번도목격하지않았다.”
-레몽크노
20세기프랑스문학의거장이자실험문학의첨단에섰던레몽크노의『떡갈나무와개』가민음사세계시인선51번으로출간되었다.『떡갈나무와개』는그의첫시집으로,이작가가이후어떠한작품세계를펼쳐나갈것인지대표성을선취하였다.크노는시인이자소설가,시나리오작가,번역가,수학자,화가,출판인등다방면을넘나들며활동했고,자신의시대에가장유명한작가중하나였다.다양한경험과언어에대한지대한관심을바탕으로,극단적인실험을통해‘말놀이’의문학세계를구축했다.대담한언어실험과문학장르의경계넘나들기,유머러스하고서민적인감각이돋보이는작가특유의문장은이미여기완성되어있다.또한자전서사와정신분석이라는틀을이용해고유하면서도단일하지않은시적자아를확립하는젊은작가의모습이고스란히담겼다.
어린시절부터시와소설,일기쓰기를즐겼던크노는,20대시절앙드레브르통을위시한초현실주의그룹과활발하게교류했다.그러나1931년이되면이들과완전히결별한뒤,자기탐구의길에접어든다.이에따라1939년까지정신분석을받는한편,민주공산주의클럽에가입하고,기관지를펴내고,철학에몰두하여조르주바타유,메를로퐁티와함께알렉산드르코제브의헤겔강의를듣는등다양한활동을했다.이모든경험은크노가다시새롭게문학으로돌아올수있도록준비시켰고,1937년출간된『떡갈나무와개』에는그흔적이진하게남아있다.
20세기초유럽은기존의세계가종식된후다시새로운세계를만들어야하는시대적임무를의식할수밖에없었다.그러나혁신은역설적으로전통이존재해야가능했고,크노의문학적실험의근원역시전통과의새로운관계맺기에서출발했기에강력했다.크노는자전을쓰는데있어일부러시로쓴소설,즉운문소설이라는형태를차용했는데,18세기이후소설이산문형태가되기전에오랫동안쓰였던전통적형태다.시를활용하여이야기의형태를갖추되,시적이라고여겨지는‘서정성’을지웠다.동시에소설적이라여겨지는‘일관된주체의내레이션’을일부러조각내고혼란스럽게만들었다.이로써사실과허구,시와소설등의구분이무의미해지고,오히려이모든것의섞임과긴장으로작품을설명할수있게된다.
●새로운시적자아의발견,위대한실험문학의첫걸음
이책은연속된시가아니라,서로다른형식과내용을담은독립적인세개의부가일종의시리즈처럼구성된시집이다.1~3부로이어지는형식과내용의변화는,작품속“나”로표상되는이가정신분석치료에임하여신경증을치료하는과정의기록으로볼수있다.또한작가크노가초현실주의와결별하며억눌렀던시적자아를재구축하는과정이기도하다.
1부는시인의탄생에서시작하여유년시절을담고있다.19세기말이미폐기된고전적인운문형식을차용하여,자잘한개인적사건과타이타닉호의침몰,1차세계대전의발발등20세기초의거대한역사적사건들을시간의축에따라콜라주처럼배치한다.2부는집필당시진행중이던정신분석치료경험을바탕으로한아홉편의시로구성되어있다.시적형식은1부에비해간결해지고,사건의이야기는뒤로물러서고꿈의서정과이미지가앞선다.시집의제목이기도한‘떡갈나무와개’는이러한과정에서통찰한자아의신성과비천을의미한다.위대하고이상적인떡갈나무와상스럽고절망에집착하는개사이의긴장,그리고통합의모색은이후크노의창작세계에서무한히반복된다.
3부는‘마을의축제’라는장시한편으로이루어져있다.형식에서이제완전히전통적운율이사라졌고,인용이나구두점사용이자유롭다.내용역시1,2부와달리시인의삶과직접적으로연결되는부분이전혀드러나지않는다.크노는이에대해“3부에서X씨는,자신이회복되기전날,고향의축제에참석하고대중적기쁨에동참한다.”는해설로유기적관계를설명한다.이목소리는이제자기자신이아닌축제의풍경을묘사할뿐이다.다만축제의바깥이아니라그안에서체험하고있으며,이에갈수록시적언어의폭발이일어난다.
시집의마지막에서시적주체의목소리는그자신의것이자동시에타자의것,즉나와타자의구별이없어지게된다.한시집내에서의이러한의도된변화양상은이후1960년크노가수학자프랑수아리오네와함께창시한울리포,즉잠재문학실험실의사상에까지이어지는것으로보인다.조르주페렉,이탈로칼비노등이함께했던이문학그룹은제약을통해언어의잠재된가능성을일깨우고자했다.마치수학에서그러하듯이렇게발명된규칙은,처음시도한한사람의작가가아닌문학을하는모두의것이된다.
나는일천구백삼년이월하고도이십일일에
르아브르에서태어났다.
어머니잡화상인아버지도잡화상인이었다:
두분은기뻐서날뛰었다.
이루말할수없는부당함을내가깨닫게된
어느날아침나는넘겨졌다
-1부에서
르아브르고등학교는매력적인건축물,14년에전쟁이
터지자이건물은아름다운병원으로변형되었다;
내첫담임선생님-초등학교-에게는호되게매질을
가하곤하던아들이있었다;그녀석은울었다,짐승처럼!
나는교묘하게가해진구타로붉게물들어버린
그녀석의엉덩짝을보고그만공포에사로잡혔다.
-1부에서
나는소파위에몸을눕혔다
그리고내인생을이야기하기시작했다,
내인생이라고내가믿고있었던것을.
내인생,이것에대해내가뭘알고있는가?
그리고너의인생,너,너는그것에대해뭘알고있는가?
그리고그,여기에있는,그는알고있는가,
자기인생을?
봐라,모두가한통속이되어
자기가바라는대로행동한다고
상상하는자들이죄다여기에있다
마치자신이바라는것을자신이알고있다는듯
마치자신이바라는것을자신이바라고있다는듯
-2부에서
떡갈나무와개여기에내이름
두개가있다,섬세한어원:
신들과악마들앞에서어떻게
이름을감출수있겠는가?
(중략)
쓰레기통을드나들지않으면
개는도토리로배를채울뿐이다
떡갈나무의가지는뻗어있다
하늘을향해.
-2부에서
커다랬다커다랬다사람들기쁨의마음의저기쁨은
산너머로태양을춤추게하고수확물을거둬들이는대지를
요동치게할만큼
커다랬다커다랬다기쁨은강물을솟구치게만들고
바위사이로샘물이솟아나웃으며오줌을누게할만큼
커다랬다커다랬다언덕위로별들이흔들거리고
지극히명랑한천체와
밤이며낮이며기억의수액으로부풀어오른달이
구름조각들의바람에실려떠다닐만큼
기쁨이언덕전체를뒤발하고골짜기를따라흔들리고있었다.
-3부에서
“어이,이보라고,이맴은좋아라춤을추것네고럼저산도덩달아춤춘다니께!”
으으윽뼈가삐거덕거리고으아악관절이삐걱거리며쑤시고
얼쑤얼쑤소리를질러대는영감은즐거워하며
그의아내산이내는소리꽈당꽈당그의애인산이내는소리꽈당꽈당
너도밤나무와겨우살이덩굴골짜기와조약돌드레스를차려입고
머리카락의눈을털어내면서그의댄스파트너가꽈당꽈당
그러자늙은이의
빵빵빵빵빵아들도
빵빵빵빵빵빵
-3부에서
●원문과함께읽는레몽크노식‘말놀이’의의미
레몽크노의작품은흔히번역불가능에가까운현대문학사의문제적텍스트라여겨지곤한다.원문으로읽을때에야비로소알수있는,자유자재로언어자체를다루는형식과그솜씨자체가작품에큰의의를차지하기때문이다.프랑스현대시에대한전문적인이해에더불어,한국어와프랑스어,출발어와도착어를세심하고성실하게,또한창의적으로다루는번역가의감각이있어야만가능한어려운작업을,한국의문학평론가이자번역가인고려대학교불문학과조재룡교수가해냈다.이로써실험문학의거장인레몽크노의정수가담긴대표작을믿음직한번역으로읽을수있게되었다.또한프랑스어원문을같이실어,작가와번역가의창조적인말놀이를번갈아즐길수있도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