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

$17.00
Description
● 시라는 예술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혁명의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대표 시선집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시의 정수를 담은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이 민음사 세계시인선 59번으로 출간되었다. 마야콥스키는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미래주의를 이끌었던 혁신적 시를 선보여 러시아 현대 문예사에 위대한 이름을 남겼으며, 명실상부한 ‘혁명 시인’이자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하나로 국가적 존경을 받고 있다.
이번 시선집은 마야콥스키의 창작 세계를 변화 시기에 따라 4부로 나누어 구성하여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정수를 뽑아 고루 담았다. 마야콥스키의 창작 세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역자 조규연 단국대학교 교수가 그 시 세계를 보다 전체적인 조망 안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시기별 대표 시를 엄선하였으며, 국내 초역인 시도 다수 있어 마야콥스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1, 2부에서는 그를 세계적인 시인으로 자리하게 한, 마야콥스키의 초창기 미래주의 대표작을 소개했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이후의 마야콥스키 후기작을 수록한 3, 4부는 시편 중 절반 이상이 국내 초역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혁명 시인’이라는 이름에 가려 자칫 놓치기 쉬운 시인의 고뇌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시선집을 통해 국내 독자들은 정치와 예술의 통합이라는 어려운 길을 추구하면서도 또한 예술가로서의 영혼을 잃지 않고자 했던,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한 인간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고군분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생각,
기름때 묻은 소파에 누운 배불뚝이 머슴처럼
물렁한 뇌로 공상에 잠긴 그 생각을
피투성이 내 심장 조각으로 자극하리.
파렴치하고 신랄한 나, 마음껏 조롱하리.

내 영혼에는 한 올의 흰머리도,
늙은이의 연약함도 없네!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힘으로 세상을 흔들며
스물두 살
잘생긴 내가 가노라.
-「바지 입은 구름」,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나의 영혼은
산산이 찢긴 먹구름처럼
불타 버린 하늘
종루의 녹슨 십자가에 매달려 있나이다!
시간이여!
절름발이 성상화가 그대만이라도
내 얼굴을
시대의 불구자 제단에 그려 주오!
장님이 되어 가는 자의
하나 남은 마지막 눈처럼 나는 고독하오!
-「나」,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나는 말〔言〕의 위력을 말이 울리는 경종을 안다
극장 특별석이 박수갈채로 화답하는 그런 말이 아닌
관(棺)이 불쑥 튀어나와
참나무 네 다리로 걷게 하는 그런 말
간혹 인쇄도 출판도 되지 않고 버려지지만
말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질주해
수 세기를 쟁쟁하게 울리고 시의
굳은살 박인 손을 핥으려 열차처럼 기어든다
말의 위력을 나는 안다
댄서의 굽에 밟힌 꽃잎처럼 하찮아 보일지라도
인간은 영혼으로 입술로 뼈로 이루어진 존재.
-「미완성의 시」,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에서

“그의 삶과 시에는 그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순과 갈등이 내재해 있었다. 그는 혁명의 기관차이길 원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의 상처와 대립과 내적 균열의 표상이 될 운명이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그의 시를 ‘리얼리즘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과 세계의 치명적 이면과 균열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손쉬운 결론으로 봉합하려 들지 않는 미학적 자세를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 이것으로 끝인 것일까? 그럴 리가. 미래의 누군가는 문화사의 ‘박물관’에서 청년 마야콥스키를 꺼내 새로운 힘의 질료로 삼지 않을까? 마야콥스키의 전복적 에너지를 변주하고 변용하여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균열을 전시하지 않을까? 시든 음악이든 영화든 장르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도래할 문화사적 폭풍의 한가운데인 듯, “장님이 되어가는 자의/ 하나 남은 마지막 눈처럼”,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채로, 고요하고 격렬하다.”
-이장욱(시인), 추천의 글에서
저자

블라디미르마야콥스키

저자:블라디미르마야콥스키(VladimirVladimirovichMayakovskii)
러시아의혁명시인.1893년그루지야의바그다디에서태어났다.1906년부친이사망한후가족과함께모스크바로이주했다.정치적문화사적으로시의형식과내용을혁명적으로변화시켰다는평가를받는다.1908년모스크바에서볼셰비키혁명에가담하여세번체포되었고,화가이자시인인부를류크의영향을받아시인의길에들어섰다.볼셰비키혁명을찬양하고민중의혁명정신을고양시키는작품을다수썼다.1924년레닌의죽음이후소비에트사회속에서점점밀려나게되었으며,만년에는러시아문학계에서고립되었다.1929년'혁명예술전선'을창간하지만절망을멈추지는못했다.1930년권총자살로생을맺었다.

역자:조규연
단국대학교노문학과를졸업하고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마야콥스키의희곡연구로석사학위를받았다.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RSUH)에서마야콥스키의조형시학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고,현재단국대학교유럽중남미학부부교수다.『예술이꿈꾼러시아혁명』(공저),『InternationalYearbookofFuturismStudies』(공저)등마야콥스키와러시아미래주의시학에관한저서를집필했고,주요논문으로는「시적장르로서의마야콥스키의책예술」,「문학의계승과소비에트적변형」,「새로운레디메이드와삶의예술」등이있다.그간의연구를토대로소비에트와현대러시아예술로연구범위를넓히고유럽예술이라는큰틀속에서러시아아방가르드의의미를찾아가는작업을이어가고있다.“나는말의위력을안다.”라고강변했던시인마야콥스키를국내에보다친절하게알리고자그의창작에서방대한부분을차지하는문학,예술관련에세이의우리말번역을계획하고있다.

목차


1부미래주의:시인의도시풍경화
밤13
아침14
항구16
거리의시17
거리에서거리로18
그런데당신은할수있는가?20
블라디미르마야콥스키.비극:프롤로그21
간판에게24
극장25
페테르부르크에관한몇마디26
여인의뒤에서27
나29
포괄적인봄풍경35
피로때문에36
사랑37
우리는38
갖은소음들39
도시대지옥40
자,받으시오!41
그들은아무것도이해하지못하네42
자동차안에서43
멋쟁이의재킷44
들어보라!45
그래도어쨌든47
또다시페테르부르크49

2부전쟁의노래
전쟁이선포됐다53
엄마,그리고독일인들이살해한저녁55
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58
나와나폴레옹61
바지입은구름67
척추플루트69
당신들에게!70
판관에게바치는찬가72
과학자에게바치는찬가75
건강에대한찬가77
그렇게나는개가되었다78
근사한난센스81
이보시오!84
모든것에부쳐87
릴리치카!―편지를대신한시95
싫증99
암흑103
이튿날107
작가가사랑하는자신에게바치는글110
마지막페테르부르크동화114
러시아에게117
작가동지들119
책임을묻자!123

3부혁명의시,시의혁명
우리의행진127
먹구름조각129
말에대한올바른태도130
혁명의송가133
예술군령136
기뻐하긴이르다138
노동자시인141
상대편에게144
전우의안부를전하며,마야콥스키149
우리가간다151
여인을대하는태도154
하이네처럼155
내전의마지막페이지156
쓰레기에대하여158
예술군령2호162

4부소비에트자화상
회의중독자들169
개자식들!173
나는사랑한다183
5월1일201
농촌통신원206
노동통신원209
5월212
집으로!216
세르게이예세닌에게222
진보의최전선234
의제로상정하라240
인조인간들244
종이혐오(블라디미르마야콥스키가느낀점)248
최고의시253
레나258
취향차이에관한시265
타티야나야코블레바에게쓰는편지266
레닌동지와의대화272
나는행복하오!277
목청을다하여―서사시에대한첫번째서문283
미완성의시295

작가연보307
작품에대하여:나는시인이다,그것만으로흥미롭다(조규연)311
추천의글:아직도래하지않은청년전위의초상(이장욱)327

출판사 서평

그대들의생각,
기름때묻은소파에누운배불뚝이머슴처럼
물렁한뇌로공상에잠긴그생각을
피투성이내심장조각으로자극하리.
파렴치하고신랄한나,마음껏조롱하리.

내영혼에는한올의흰머리도,
늙은이의연약함도없네!
쩌렁쩌렁한목소리의힘으로세상을흔들며
스물두살
잘생긴내가가노라.
―「바지입은구름」,『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나의영혼은
산산이찢긴먹구름처럼
불타버린하늘
종루의녹슨십자가에매달려있나이다!
시간이여!
절름발이성상화가그대만이라도
내얼굴을
시대의불구자제단에그려주오!
장님이되어가는자의
하나남은마지막눈처럼나는고독하오!
―「나」,『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나는말〔言〕의위력을말이울리는경종을안다
극장특별석이박수갈채로화답하는그런말이아닌
관(棺)이불쑥튀어나와
참나무네다리로걷게하는그런말
간혹인쇄도출판도되지않고버려지지만
말은허리띠를졸라매고질주해
수세기를쟁쟁하게울리고시의
굳은살박인손을핥으려열차처럼기어든다
말의위력을나는안다
댄서의굽에밟힌꽃잎처럼하찮아보일지라도
인간은영혼으로입술로뼈로이루어진존재.
―「미완성의시」,『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그의삶과시에는그스스로도감당하기어려운모순과갈등이내재해있었다.그는혁명의기관차이길원했으나다른한편으로는시대의상처와대립과내적균열의표상이될운명이었다.우리는이대목에서그의시를‘리얼리즘적’이라고표현할수있을지도모른다.삶과세계의치명적이면과균열을외면하지않고,그것을손쉬운결론으로봉합하려들지않는미학적자세를리얼리즘이라고부른다면말이다.(......)이것으로끝인것일까?그럴리가.미래의누군가는문화사의‘박물관’에서청년마야콥스키를꺼내새로운힘의질료로삼지않을까?마야콥스키의전복적에너지를변주하고변용하여우리시대의또다른균열을전시하지않을까?시든음악이든영화든장르는중요하지않을것이다.그는여전히무언가를기다리고있을지도모른다.다시도래할문화사적폭풍의한가운데인듯,“장님이되어가는자의/하나남은마지막눈처럼”,그는여전히현재진행형인채로,고요하고격렬하다.”
―이장욱(시인),추천의글에서

러시아아방가르드와미래주의의기수,
언어를혁신하고세계를바꾸다!
시와회화의경계를섞고삶과예술을통합하다!

혁명의시대(1905~1917년)는아방가르드라는전세계에서유례없는혁신적인예술을러시아에선사했다.정치,사회적혼란속에서‘혁명’과상응하는급진적인예술실험이문학뿐아니라회화,음악,연극,영화등러시아예술전분야에걸쳐다채롭게이루어졌다.마야콥스키는이러한러시아아방가르드,특히미래주의경향을이끌었던상징적인물이다.1911년전업화가가되고자미술학교에입학한마야콥스키는다비드부를류크를비롯하여이후문예사를바꿀,미래주의를함께이끌동료들을만난다.완전히새로운언어,완전히새로운예술,완전히새로운세계를꿈꾸었던젊은예술가들은“대중적취향에따귀를때리라”외치며모든전통과의단절을표방했다.

마야콥스키는이러한러시아미래주의의기수로서파괴적인영향력의문예운동을주도했지만,또한동료들과차별화된지점을보여준다.급진적인언어실험의결과물인러시아미래주의시는대부분난해하고심지어내용파악자체가불가능하다.그러나마야콥스키에게시란미학이라는이름아래밀폐된언어실험이아니라,현실시공간과의내면적소통을통한‘삶의예술’이었다.그렇기에그의시언어는특정부류의자족적인예술실험이아니라,세계와연결되고소통하며그로써세계를변혁하고자하는의지로빛난다.

신경이곤두선바이올린,
졸라대다가이내아이처럼
울어댔다.
참다못해북이하는말.
“그래.알았어.알았다고!”
그러다지쳐
바이올린의말을끝까지듣지도않고
분주한쿠즈네츠키거리로
황급히떠났다.
가사도없이,
박자도없이
울고있는바이올린.
(......)
“머저리,
울보,
눈물이나닦아!”
나는일어나
비틀비틀악보를지나,
두려움에몸을굽힌악보대를지나기어갔고,
무슨까닭인지외쳤다.
“맙소사!”
나무목에매달리며말했다.
“바이올린아,알고있니?
우리는지독히도닮았어.
나역시
외쳐본들
아무것도증명할수가없어!”
―「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내가좋아했거나좋아하는당신들,
성화(聖?)처럼동굴속영혼에보존된
당신들모두를위해
나는시가가득한해골을
축배의와인잔처럼들어올리리.

자꾸만드는생각.
내삶의끝에총알의마침표를
찍는게낫지않을까.
만일을대비해
나오늘
고별연주회를열리라.
―「척추플루트」,『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마야콥스키의특별한점중하나는그가시인이기이전에전문적인미술교육을받은화가였으며,그의삶과창작에서시와회화는별개의장르가아니었다는것이다.빛과색채에대한완전히새로운회화적인식은20세기초러시아아방가르드의중요한특징이었다.그에게회화는창작의주된주제이자형식이었다.미술과문학의경계를넘나들며만들어낸새로운언어와이미지는지면에국한되지않는방향의예술로뻗어나간다.그의창작세계에서는광선주의,입체파,구축주의등회화의영역과적극적으로상호작용하는모습이드러난다.

나는컵으로물감을뿌려
일상의지도를단숨에지워버렸다.
나는아스픽접시에서
대양의비뚤어진광대뼈를보여주었고,
양철물고기비늘에서
새로운입술의부름을읽었다.
그런데당신은
빗물홈통을플루트삼아
녹턴을
연주할수있는가?
―「그런데당신은할수있는가?」,『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혁명시인이라는이름아래가려진예술가의고뇌를만나다

1917년소비에트혁명은시인에게세계의혁신을의미했다.혁명이후창작을포기하거나도피를선택했던이들과는달리,마야콥스키는정치와예술을통합한혁신을실천하고이데올로기에충실한선전선동시와국영기업의광고포스터작업을하는등큰변화를감내한다.게다가그는명석함과자유분방함을타고난궁핍한십대소년으로서일찍이자연스레마르크스주의혁명에끌렸으며사회주의사상선전활동으로인해성년이되기전이미세차례의수감생활을겪은바있다.이러한마야콥스키의이력은사후그를‘혁명시인’으로만드는매력적인재료가되었다.소비에트비평의틀에박힌서사속에서시인은영웅이되었으나,이는동료시인보리스파스테르나크의말처럼‘제2의죽음’,즉시인에대한제대로된평가가아니라정치적수단으로이용당했을뿐이다.

그러나1917년이전의소위미래주의시기와비교하여지금까지그다지주목받지못했던이시기의작품에대해,예술적가치가떨어진다고그저폄훼하고제대로살펴보지않는것또한온당한평가는아니다.정치와예술의딜레마는마야콥스키의생애전반에반복되고있으며,그의예술세계를이해하는열쇠이기도하기때문이다.억압이강할수록자유로운영혼의펄떡임은더욱드러나기마련이다.소비에트체제아래격변의현실을살아내며예술가로서의창조의고갱이를지키고자했던고군분투는이시기그의작품에고스란히드러난다.

시인들이란
노련한족속.
시?
좋지.
압운만있으면그만인것을.
5월에관한시보다

저속한건없었어.
―「5월1일」,『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믿고자했던정치혁명에의해예술혁명이폐기되고,더이상‘목청을다하여’노래할수없는시대의암흑을마주한마야콥스키는자신의‘창작20주년’기념전시회에서이러한비극적인식을담은유언시를대중앞에서낭송한다.이마지막목소리를끝으로그는1930년4월14일서른일곱이라는젊은나이에권총자살로자신의생을마감한다.그의창작은내용과형식,인간과시인,삶과예술,나아가정치와예술간의첨예한대립속에서발전했다.그의죽음은혁명이후‘12년간천천히진행’되고있었다고지적했던동시대시인마리나츠베타예바는또한그가“시인으로죽었다.”라고말했다.그의후반기창작세계는실존의마야콥스키와시인마야콥스키가치열하게분투한현장이었다.그의죽음은한인간의죽음이아닌시의종말,그리고20세기초위대한러시아아방가르드의종언이자예술혁명으로서의미래주의의끝이었다.

나역시
선전선동시는
신물날지경.
나역시
당신들에게로맨스를
지어줄수있었건만.
그것이돈벌이도되고
매력적인일이니.
하지만나는
스스로를
누르고
내노래가흘러나오는
목구멍에
올라섰다.
―「목청을다하여」,『바이올린과약간의신경과민』에서

1973년시작한국내최고(最古)문학시리즈!

‘카르페디엠’의시인호라티우스로부터영화「패터슨」의시인윌리엄칼로스윌리엄스까지,『셰익스피어의소네트』,모더니즘의대표작품『황무지』,『악의꽃』,페르난두페소아,미국시문학계의이단아찰스부코스키,19세기대표시인에밀리디킨슨등반세기동안엄선된시선집으로가장오랜생명력을이어오고있는국내최고문학시리즈‘세계시인선’은앞으로도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