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시인중의시인릴케가남긴필생의역작
인간실존의의미를찾으려는간절한질문
근현대시문학정신의거대한원형으로일컬어지는라이너마리아릴케의대표작『두이노의비가』가민음사세계시인선으로출간되었다.릴케는이탈리아두이노성에머물며첫번째비가를집필하기시작했고십년의세월에걸쳐열편의비가를완성,1923년출간한다.이후수많은예술가와철학자를사로잡은필생의역작『두이노의비가』의탄생이다.초판출간100주년을기념하여출간된이번책은독일어원문과번역문외에국내최초로전문(全文)에대한해설을수록하였다.번역과해설을맡은독문학자이자시인김재혁교수는1980년대부터40년간몰두해온릴케연구를일단락짓는다는각오로오랜준비끝에문장부호하나하나의운용방식까지고심하여가장정확하고아름답게벼린결과물을내놓았다.
내가울부짖은들,천사의위계에서대체
누가내목소리를들어줄까?한천사가와락
나를가슴에끌어안으면,나보다강한그의
존재로말미암아나스러지고말텐데.아름다움이란
우리가간신히견디어내는무서움의시작일뿐이므로,
우리이처럼아름다움에경탄하는까닭은,그것이우리를
파멸시키기를,냉정히뿌리치기때문이다.모든천사는무섭다.
-「제1비가」에서
릴케는열편의비가를통해삶과죽음,사랑과고통,인간실존의고독과불안,예술과시인의임무라는문학의영원한주제를탐구한다.바람결에들려오는소리를받아적었다는첫비가의시작에서그는인간의유한성과결핍에대비되는완전무결한천사의이미지로아름다움을정의한다.인간에게관심이없는이절대적세계는잔인하고무섭다.그러나시인으로서는절망할것을알면서도끊임없이해야만하는질문이있다.모든비가는사랑하는사람이떠나버려아쉬운마음을그시작점으로삼는다.비탄이음악으로변화할때슬픔에젖은이들은상실을극복하고,죽음이곁에있어삶의의미는도드라진다.릴케의시에는본질적으로불안하고외로운우리가왜그리고어떻게살아야하는지그의미를찾으려는간절한시도가담겨있다.
연인들아,너희서로에게만족한자들아,너희에게묻는다,
우리에대해.너희는껴안고있다.증거라도있는가?
보라,나의두손이서로를알게되거나,
나의지친얼굴이두손안에서쉴때가
있다.그러면약간의느낌이온다.
그렇다고해서누가감히존재한다할수있으랴?
그러나상대가압도되어
이제그만-;이라고간청할때까지
상대방의황홀감속에서성장하는너희,수확철의
포도송이처럼손길아래서더욱무르익는너희;
상대방이우위를점하는이유하나만으로도가끔
쇠락하는너희:너희에게묻는다,우리에대해.
나는안다,그처럼행복하게서로어루만지는까닭은
애무하는동안너희연인들이만진곳이사라지지않고,
너희가거기서순수한영속을느끼기때문임을.
그리하여너희들은포옹으로부터거의
영원을기대한다.그리고하지만,너희가
첫눈길의놀람과창가의그리움,단한번
정원사이로함께한너희의첫산책까지겪어낸다면,
연인들아,그래도너희는그대로인가?너희가
서로입을맞추고-:꿀컥꿀컥키스를마시기시작하면:
오마시는자는얼마나기이하게그행동에서떠나고있을까.
-「제2비가」에서
●지난백년,수많은예술가와철학자를사로잡은시집!
시를쓰고싶은이들에게전하는즐거운명령
릴케는『두이노의비가』에서평생천착해왔던자신의예술론을확립한다.시인은영원한것은없는지상의세계에서별들의세계,열린우주로언어를옮기는이다.외부세계를감지하는주체로서인간은시간성과무상성,변화속에놓여있다.지상에서살아가면서내면에받아들인것들을본질에맞게말로표현하여그것들을무상성에서해방시키는것이그의사명이다.시를쓰라는,표현하라는자기내면의목소리에귀기울이고자하는이들에게릴케의이러한명령은여전히가장즐거운응원이될것이다.
모든존재는한번뿐,단한번뿐.한번뿐,더이상은없다.
우리도한번뿐.다시는없다.그러나이
한번있었다는사실,비록단한번뿐이지만:
지상에있었다는것은취소할수없는일이다.
그래서우리는달려들어그일을수행하려하며,
그것을우리의소박한두손안에,넘치는눈길속에,
말없는가슴속에간직하려한다.
그것과하나되고자한다.-누구에게주려고?아니다,
모든것을영원히간직하고싶다...아,우리는,슬프다,
다른연관쪽으로무엇을가지고갈것인가?우리가여기서
더디게익힌관찰도,여기서일어난일도아니다.아무것도.
우리는고통을가져간다.그러니까무엇보다존재의무거움을가져간다,
그러니까사랑의긴경험을가져간다,-그래,
정말말로할수없는것을가져간다.그러나훗날,
별들사이로가면어쩔건가:별들은더말로할수없는것이니.
방랑자역시산비탈에서계곡으로가지고돌아오는것은
누구도말로표현할수없는한줌의흙이아니라
어렵게익힌말,순수한말,노랗고파란용담꽃아니던가.
어쩌면우리는말하기위해이곳에있는것이다:집,
다리,샘,성문,항아리,과일나무,창문,-
잘해야:기둥,탑....하지만,너는알겠는가,오이것들을
말하기위해,사물들스스로도한번도진정으로
표현해보지못한방식으로.
-「제9비가」에서
릴케를‘모든시인중의시인’이라칭한철학자하이데거는『두이노의비가』를주요텍스트로삼아자신의고유한존재론을확립했다.영국의시인W.H.오든,미국의포스트모더니즘대표소설가토머스핀천역시그에게서큰영향을받았음을작품으로드러낸다.한국의시인역시마찬가지다.김수영은하이데거의「릴케론」을외워서읊을정도라고고백했고,윤동주는「별헤는밤」에서그의이름을부른다.인간실존의의미에대해끈질기게질문하는그의간절함은지난백년동안수많은예술가와철학자들에게강렬한영향을남겼다.특유의서정으로대중에게사랑받으면서도동시에그심원한철학적사유로인류의지적여정을크게확대한것이다.죽음은삶의종말이아니라전체적관점에서존재의근원적바탕으로돌아가는것임을드러내는비가의마지막구절은이것이죽음과슬픔의노래가아니라삶에대한찬가임을깨닫게한다.
그러나그들,영원히죽은자들이,우리에게하나의비유를일깨워주었다면,
보라,그들은어쩌면손가락으로텅빈개암나무에,매달린
겨울눈을가리켰는지도모른다,아니면
비를말했을까,봄날어두운흙위에떨어지는.-
그리고상승하는행복만을
생각하는우리는,
어떤행복한것이추락할때면
가슴이무너지는듯한충격을느끼리라.
-「제10비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