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어차피평행우주라지만,
‘한국어시리즈’를관통하는핵심은소설속‘나’와소설밖의‘나’사이에존재하는묘한긴장이다.주인공의이름은소설가와동일하게‘문지혁’이고,그의삶은작가의삶과여러면에서겹친다.하지만소설속현실과소설밖현실은“평행우주”처럼비슷하면서도어긋나있다.평행우주란서로닿지않는세계들이동시에존재한다는개념이다.소설속지혁과소설밖지혁이아무리닮았다한들결코동일인은될수없다.이야기와삶이아무리가까워도끝내포개지지않듯이.『실전한국어』는겹쳐질수없음을슬퍼하는대신차라리그간격을이야기가시작되는자리로삼는다.만나지않아서계속될수있고,계속되기에예기치않은변화가발생한다.
■자조와유머의협업
문지혁의이력은화려하다.한마디로‘고스펙’이다.뉴욕에서의생활,두개의석사학위,영어강의경력,다수의출판작업까지.그러나그의손에들린건좌절과낙담의무한반복이다.대학의전임교수자리도,소설가로서의인정도,그에게는너무멀리있다.다소간의짠함이없는건아니나이소설을지배하는분위기는웃음이다.문지혁은자신의씁쓸한상황을끊임없이유머의소재로활용한다.냉소가아니라웃음을선택한것이다.이유머는삶이계획대로흘러가지않는다는것을알면서도기꺼이다음판에뛰어드는사람이삶을사랑하는방법이자,현실을있는그대로인식하면서도무너지지않으려는사람이선택할수있는품위있는태도다.덕분에문지혁의자조는비극이아니라위안이된다.평행우주의연속에서도유머와자조만은절묘하게만난다.
■끝말잇기하는마음
소설의중간중간,지혁은딸은채와끝말잇기게임을한다.다람쥐,쥐구멍,멍게,게시판,판타지,지식,식당,당근,근엄……끝말잇기는예측불가능하다.상대가어떤말을던질지알수없기때문이다.하지만분명한규칙이있다.끝이다음의시작이된다는것.끝말이이어지기위해서는끝말을잇겠다는의지가있어야한다는것.마치문지혁의인생처럼.뜻대로흘러가지않고,개연성도없고,계획도자꾸어긋나지만,그는인생이걸어오는끝말잇기게임에군말없이응한다.구청의강의요청에응하고,낯선노트를받아들고,유튜브에새채널을만든다.“언제나예고없이시작하는이초대에응하기로”하는것.『실전한국어』가환기하는삶의규칙이다.
■문학적배움
『실전한국어』에서문지혁은교사다.조지프캠벨의영웅의여정,낸시O.스미스의스토리텔링4요소,플롯과하마르티아와아나그노리시스.그는학생들에게좋은이야기만드는법을가르친다.그러나강의실에앉아있는어느수강생의질문은지혁이수업에서가르쳐온모든이야기의문법을단번에흔들어놓는다.“이야기로만들면다말이되잖아?근데그게맞아요?”말이안되는삶,인과와개연성으로는도무지설명되지않는현실앞에서이야기를가르쳐온문지혁은아무말도할수없다.그건누구보다자신이하고싶은말이기도하니까.그러나끝말잇기가아름다운건어떤말도완전한끝이아니기때문이다.이야기는말이안되는것들을모아말이되게만드는일이고,그일은지금이순간에도계속된다.이야기의학교에는졸업이없다.『실전한국어』는오늘도스스로를어쩌지못하며실전인생을살아내는우리에게담담하고따뜻한인생수업이되어준다.
■작가의말에서
우리각자의이야기가노래를거쳐기도가될때까지,계속해서서로의안부를물었으면좋겠습니다.우리의단어장에서이문장들이지워지지않기를바랍니다.안녕하세요?잘지내나요?어디가아파요?
■해설에서
그러나우리가기억해야할것은바로그때,우리의앎과이해가무너지는그자리에서만열리는남다른배움의영역이있다는사실이다.이야기가삶을완전히수습하지못하고,의미가최종적인결론으로굳어지지못한채흔들리는바로그자리에서,『실전한국어』는문학을통해얻을수있는고유한배움의가능성을열어보인다.(중략)『실전한국어』는무지앞에서자신을열어둘수있고,이해불가능한것과함께머무를수있는주체들,다시말해지극히평범한기적을보여주는사람들을향한헌사이다.-강동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