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 (전예진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보글 (전예진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15.00
Description
다시는, 다시는.
먹지 말자, 먹지 말자.
사람을, 사람은.

손가락을 두드리면 입을 더 벌리자는 뜻,
손끝을 잡아당기면 눈앞의 것을 삼키자는 뜻
목구멍 아래로 내려보낸 뒤에도 끝끝내 튀어나와
다시 자라나고 마는 어느 ‘보글’들의 질기고도 애틋한 기록
쓸쓸하고도 따뜻한 여운을 남기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애틋하고도 재치 있는 인물들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전예진의 신작 장편소설 『보글』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보글』은 함께라면 무엇이든 ‘먹어 치울’ 수 있는 한 자매의 이야기다. 자매는 마음이 동하면 어김없이 입을 벌려 눈앞의 대상을 삼켜 버리는데, 그 후에는 꼭 몸 어딘가에 ‘보글’이 돋아난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간단해 보이던 세상이 커 가며 실은 하나의 거대하게 엉킨 실타래였다는 잔혹한 진실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혹은 간단하고 확실한 경고를 전하기 위해 행하던 자매의 ‘삼키기’도 그들이 성장할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뒤탈을 남긴다. 상자에 넣어 숨겨두거나 믹서기에 갈아 없애 버리던 ‘보글’ 역시 이럴 줄 몰랐냐는 듯 자매의 삶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둘이라면 모든 게 괜찮았던 자매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자매를 덮치는 시간의 습격을 함께 겪어 나가다 보면 우리 역시 각자의 엉킨 실타래와 마주할 용기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전예진

2019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어느날거위가』,장편소설『매점지하대피자들』등을썼다.

목차

보글7

작가의말162
추천의글_정용준(소설가)164
추천의글_선우은실(문학평론가)166

출판사 서평

■영성가신데,먹어서없애버릴까?
자매에게는함께일때만발휘가능한능력이있다.눈앞에곯려주고싶거나미워하는대상이있다면그것을먹어서없애버리는기술이다.서로뺨을맞대고동시에입을벌리면‘언니’와‘나’의입은하나가되고,그입으로는무엇이든삼킬수있다.처음에는현수막,단풍,죽은무당벌레이던대상은점점몸피를불려가고,삼키는행위역시단순한놀이에서응징과복수로그의미가변해간다.나뭇가지로종아리를긁은강아지는‘나쁜강아지’이니꼬리를삼켜혼내주고,자매를두고좋지않은소문을낸친구는아무도없는길위에서불러세운뒤검지를삼켜앙갚음한다.눈에거슬리고마음을아프게하는대상을입에넣기만하면손쉽게세상에서사라지게할수있다니.과연발휘하지않을수있을까싶은능력이다.음식을먹으면소화가되어배변활동을하듯이,자매가삼킨것은예상치못한방식으로다시금모습을드러낸다.‘언니’의경우에는신체곳곳에서작은씨앗이튀어나오고,‘나’의경우에는여드름처럼붉게돋은돌기안에서귀,코,입등신체일부가튀어나오는식이다.자매는이렇게돋아나는잔여물을‘보글’이라부르며본능적으로그것을감추고없앤다.

■다시는,먹지말자,사람은.
어떤대상이든먹어없앨수있는능력은곧자매가삶을대하는하나의태도가된다.처음에는속력을조절할수있지만가속도가붙은이후로는통제할수없게되는긴긴미끄럼틀을탄듯,자매의‘삼키기’는아슬아슬하게지속된다.그러다결국자매는이런다짐을하기에이른다.“다시는,다시는.먹지말자,먹지말자.사람을,사람은.”돌이킬수없는‘삼키기’를저지르고만둘사이에는누구에게도말할수없는비밀이쌓인다.둘만의비밀이생긴다는것은비밀을들키지않기위한거짓말을쉴새없이내뱉어야한다는말과같다.자매는‘그날’이후,수시로맥도날드에마주앉아그간의시간을거듭점검한다.무심코엄마얘기나할머니얘기를하지는않았는지,지어낸사연을수상하게생각하는쉼터아이들은없었는지,새로사귄친구에게안심하고진실을터놓지는않았는지.삶을온통거짓말로새로칠하기시작한자매에게는당위가필요하기마련이고,자매는“우린우리만생각하면돼.”라는말을수없이되새긴다.그러나다짐과당부로쌓은비밀의성은작은바람에도벽이통째로흔들릴만큼약하고위태롭다.

■‘보글’마주보기
삼켜없앤것이형태를바꾸어‘보글’이되듯,자매가지우고자거짓말로덧칠했던숱한순간들은어떤모습으로든흔적을남긴다.때로는그저신기해서,때로는가진능력을무기처럼휘두르고싶어서삼켜왔던수많은것들은시간속에섞여어디서부터손을대야할지모를끔찍한덩어리가된다.예상치못한순간에불쑥고개를내미는흔적들을그저없애는일로만대처해오던자매는이제더이상전과같은방법으로는삶을지속할수없으리라는체념속에놓인다.그러자어린시절엄마가불러주던자장가의노랫말이새삼스럽게떠오른다.“우리아가살며시눈감고자자,어서자라먹고뱉고얘기를하자,손발머리눈코입모두다나면,성큼성큼걸어서멀리떠나자…….”둘만의성을허물고세상을비로소마주보게된자매의시선은우리에게도새로운눈을달아준다.삶을똑바로대면한다는것,그리하여나자신을스스로책임진다는것의의미가무엇인지골똘히생각해보게만드는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