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기쁨과점령의무게
1945년8월15일부터남과북에서로다른정부가수립되는1948년8,9월까지한반도의북위38도선이남을미군이,이북을소련군이점령했다.일본의패망으로한국인들은식민통치에서해방되었지만동시에외국군대의점령아래에서의독립과새국가건설을도모해야했다.그런데미소공위를통한미ㆍ소간협상,한국인의자율적인통일독립정부수립노력이모두실패로끝나고,한반도남과북에서로다른정부수립이가시화하자점차냉전의언어와논리가한국사회를지배하기시작했다.그리고탈식민의현실로부터냉전으로진입한1945년에서1950년사이에한국사회는전쟁터로변했다.한국사회의다양하고구체적인정치ㆍ사회적갈등의당사자들가운데억압에참여한자들은냉전체제의대립의논리를활용하여이견을억누르고,한국사회를정화하려했다.그리고해방된지70여년이지났지만한국사회는지금도여전히그유산을부여잡고씨름하고있다.
해방공간또는점령기로불리는이시기역사연구는‘탈식민’이라는한국사회의역사적과제가한국인들에의해해결되지못하고외세의개입으로결국분단으로귀결되는과정과통일독립국가건설의실패원인에대한해명을주요목표로전개되었다.그러나그시대를올바로이해하기위해서는당시일어난갈등과충돌을좌우대결이나이데올로기대립으로단순화하거나사후적으로냉전의기원을소급하는데그쳐서는안되며,그에더해당대삶의현장에서이러한사태의전개를매개하던사건들의실체는무엇이었고,그시기‘보통’한국인들이이를어떻게수용또는저항했는지그들의역할과행위를가까이에서들여다보아야한다.해방직후한반도에거주했거나한반도로돌아온한국인들에게가장시급한과제는전쟁과식민주의의유산을하루빨리극복하고,자신과공동체의삶을복원하는것이었다.
■보통사람들의편지가말해주는점령기한국현실
이책은점령기에오간여러편지들을활용해당시한국인들이해방과점령을어떻게보았고,또어떻게대응했는지살핀다.이편지들은당대인들이그들자신의표현으로자신보다영향력이큰목소리나그시대의주요사건들을향해어떻게응답했는지를보여주는귀중한시선을제공한다.저자는이편지속에나타난보통사람의인식과통념,사회적여론과소문,개인의감정을단지냉전의영향으로서다루는것이아니라충돌하는현실을구성하는다양한주체들의목소리로드러내고자한다.
이를위해저자는‘편지’라는에고도큐먼트(Ego-document)를통해역사를서술하는방식을취한다.에고도큐먼트는일종의자기고백이자동시에시대에대한증언이라는이중의성격을지닌다.즉편지에는개인의심성과사회적사건이결합되어나타난다.그리고역사가자료또는텍스트의매개를통해개인또는집단과연관된세계를보는것이라고할때편지는현실속에존재하는개인자신의의미와그가지향하는가치를동시에보여준다는서사적특징을가진다.편지문면에서술된내용을그대로전달하는차원이아니라편지의작성배경과작성경위,수집ㆍ보존경위등편지의작성과전달,수집을둘러싼상황구속성과전후맥락을충분히이해한토대위에서편지내용을분석한다면편지의주관성과우연성,일회성,표집의제한성이갖는대표성의문제,내용의단편성등편지자료의사료적제한성을극복하고오히려편지문면이간직한내용이상의풍부한역사성을드러낼수있다.
과거로부터배달된이편지들은미국국립문서관에소장되어있다.발신인은이승만,김구,여운형등한국인지도자들부터장삼이사에이르기까지다양하다.수신인도맥아더장군,하지장군,웨드마이어장군등미군고위당국자들과장성들부터평범한시민들에이르기까지다양하다.편지자료들은소통의주체와상대,소통방향이다양했고,미군이그편지들을수집,정리한동기와목적역시다양했다.어떤편지는점령군당국의검열이후수신인에게배달되었고,어떤편지는압수당하여배달되지못했으며,어떤편지는6ㆍ25전쟁중미군에의해‘노획’되기도했다.
저자는이국의문서고(文書庫)에서70년이나잠자고있는그편지들이어떤사연을간직하고있는지,오늘날이편지들이후손에게전달하는메시지는무엇인지,같은문서고에수장된미군정의각종통치자료나정책문서,보고서들,그리고당대에간행된신문,잡지등을통해재구성된역사와이편지들이증언하는역사는얼마나차이가나는지에주목한다.
■과거로부터배달된편지,‘해방과미점령’을증언하다
남한을점령한미군은전신,전화등보다신속하고발달한통신수단을독점했고,그것들을이용해남한을통치했다.하지만한국인들은주로편지로소통했다.수신자가주요인물도아닌보통한국인들사이에서사사로이교환된편지들이왜당국으로부터수집되어미국국립문서관에소장되어있을까?서신검열전담기구‘민간통신첩보대’는일본인정치가들,한국인정치가들,정당,단체들을중요도에따라분류한감시대상자명부를만들어그들이주고받은편지들을우선검열했다.그리고보통사람들의편지도일정비율을임의추출해검열했다.미군은기본적인사회적소통수단인편지들을검열ㆍ분석해여론동향을예의주시하고,남한의정치,경제,사회관계와인간활동을이해하는데이용했던것이다.
그런데일반인들의편지검열을통해남한사회의생생한여론동향을추적한미군정의의도와달리점령군이수집한편지들과관련보고서들은역으로후대의연구자들에게해방직후한국사회의민심과민의를들여다볼수있는‘때늦은지혜’를제공해주었을뿐아니라점령자의시선까지파악할수있는기회를제공했다.8ㆍ15광복이후한반도는해방의감격과점령의엄중함이공존하며서로교차했다.그복잡하고역동적인시기에,새국가새사회를건설하기위해광장과골목,마을어귀나사랑방에모여시국담과애환을나누었던민초들의목소리가이편지들에생생히남아있는것이다.
우리가직접겪지않은시대를이해하기는쉽지않고역사는손에잘잡히지않는추상적인것으로다가온다.하지만이책에서소개한편지들이그시기에대한우리의역사적망각을불식시키고,또우리의기억을과거에만머물게하지않고현재의시점에서끊임없이재해석할수있게새로운영감을던져줄수있을것이다.
나와최근까지충칭(重慶)에주재했던대한민국임시정부요원들이항공편으로입국하는것과관련하여나와동료들이공인자격이아니라엄격하게개인자격으로입국이허락되었다는것을충분히이해하고,그것을확인하는바입니다.나아가우리가입국하여집단적으로나개인적으로나행정적,정치적권력을행사하는정부로서기능하지않을것을선언합니다.우리의목적은미군정이한국인들을위해질서를수립하는데협조하는것입니다.(27쪽)
-1945년11월19일,대한민국임시정부주석백범김구가귀국하기직전에중국주둔미군사령관웨드마이어중장에게쓴편지.점령의무게를고스란히보여주는자료로,망명정부주석이라도귀국하기위해서는점령군당국의입국허가를받아야했다.
각하,(전략)경기도재산관리처의니스벳소령이갑자기10월1일까지현재우리가거주하는주택의명도를지시한것을거두어주시기를간절히호소합니다.우리는이명도령에당황하고있고,또이것이귀하의승인하에발부된것인지의아해하고있습니다.그래서감히이사안을각하에게직접전달하려고합니다.곧추위가닥칠텐데지금이계절에청천벽력과같은소식을듣고노인과어린이,가녀린부녀자들은어쩔줄을몰라하고있습니다.우리는당신의동료군인들이우리동네에같이사는것을달갑지않게여기는것이아닙니다.당신네미국인들에게땅을내놓지않으려는것도아닙니다.하지만이곳의거주민들이모두이미너무많은고통을받고해외로부터돌아왔고,지금양식걱정과입을옷이없어고통을받고있는것또한사실이아닙니까?우리는이불쌍한영혼들이살집도없이어떻게될지말로다표현할수가없고,또그들을위해어떻게해야좋을지정말로모르겠습니다.(중략)이문제를재고해주시고,귀하의권한으로이명령이가능한한빨리철회될수있도록해주시기를간절히비나이다.(15쪽)
-귀환동포들이고국정착과정에서겪는간난신고를상징하는편지
대중과함께하는인문학의향연
서울대인문강의
서울대인문강의
01청나라,키메라의제국|구범진
02제인오스틴의여성적글쓰기:『오만과편견』새롭게읽기|조선정
03카프카,유대인,몸:「변신」과「학술원에드리는보고」|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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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죽음을넘어서:순교자이순이의옥중편지|정병설
06메이지유신은어떻게가능했는가|박훈
07즐거운식인:서양의야만신화에대한라틴아메리카의유쾌한응수|임호준
08시베리아유형의역사|한정숙
09오스만제국시대의무슬림-기독교인관계|이은정
10편지로읽는해방과점령|정용욱
출간사
급격하게변화하고있는21세기를맞아창의적인인문학연구를고취하고인문학의연구성과를대중과소통하여그내실을다지며사회와현실에대한보다깊이있는시선을확보하는일은무엇보다중요하다.옛것을거울삼아새로운것을창조해내는이른바법고창신(法古創新)의정신을되살리고변화하는사회에능동적으로대처하기위해서는무엇보다도인문학이가져다줄수있는심화된교양과고전에대한깊이있는이해가필요하다.인문학의위기를걱정하고그미래를고민하며시대를헤쳐나갈인문학의지혜에목말라하는사람들은많아졌지만정작‘대중인문학’이라고부를수있는저술들은턱없이부족하다.
서울대인문강의총서는창의적학술성을지닌인문학적지식이가독성과깊이를겸비한저술을통해학계및사회와소통할수있는계기를만들고자한다.이를위해대중과호흡할수있는창의적인인문학주제들을발굴해내고인문학스스로대중및사회와의접점을능동적으로찾아나가는길을모색하고자한다.
서울대인문강의총서는“대중과함께하는인문학의향연”이라는취지에서2010년시작된‘서울대학교인문강좌’의성과를저술로묶어낸것이다.서울대인문강의총서는교양서와학술서라는진부한이분법에서벗어나품격있는고급교양서를지향한다.이를위해서울대학교인문대학의소장교수들이동양과서양,고대와현대문사철(文史哲)의경계를넘나들며최고의인문학적지식과상상력을펼쳐보이고자한다.
서울대인문강의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