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고의번역으로만나는프루스트,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그여섯번째이야기「사라진알베르틴」
알베르틴의떠남과죽음,그녀의자취를찾아헤매는마르셀
1편「스완네집쪽으로」,2편「꽃핀소녀들의그늘에서」,3편「게르망트쪽」,4편「소돔과고모라」,5편「갇힌여인」에이어『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6편「사라진알베르틴」이11권으로민음사에서출간되었다.지난「게르망트쪽」에서“청년기에서성년기로,감성에서지성으로넘어가는중간단계”를경유하여,환상과환멸,환희와죄책감으로소용돌이치는정념의정중앙,즉「소돔과고모라」에서발베크의소녀들과운명의여인알베르틴을마주하게된화자마르셀은사랑의불씨를감지하는한편,신비로운연인이비밀스레품고있는‘고모라적성향’을깨닫고격렬한질투에사로잡힌다.결국마르셀은「갇힌여인」에서알베르틴을완전히소유하기위해,도망치듯파리에정착한뒤결혼까지결심하지만연인을둘러싼온갖의혹,끝없는거짓과모호한진실,고모라의여인들이야기하는불안탓에깊은번민에빠진다.마르셀은사랑할수록커지는불안,관심을거둘수록흩어져가는사랑의본질을깨닫고알베르틴과의이별을다짐하지만,그순간그녀에대한진정한사랑을되찾고새로운앞날을기약하려한다.그러나알베르틴은어느날아무런예고도없이마르셀의집을떠나사라지고만다.알베르틴이떠난걸받아들이기힘든마르셀은중개자로생루를보내지만,전언을통하지말고직접나서라는그녀의편지를받는다.마르셀은앙드레와의결혼을암시하는편지로,롤스로이스와요트를사준다는식으로알베르틴의질투와환심을유발하려하지만‘사랑하는알베르틴은더이상이세상에없다’라는봉탕부인의전보를받고상실감에무너지는데…….
두개의목소리,알베르틴효과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를통틀어「사라진알베르틴」만큼많은논란과의혹을자아낸작품도없다.사랑하는이의도주와죽음이라는긴시련후새로운출발을시도하는베네치아여행이라는짧은두개의장만을남겨놓고프루스트는정말작품의3분의2에해당하는부분을삭제하려했던것일까?1986년가족의서고에서발견되어1987년그라세출판사에서발간한새로운판본의출현은플레이아드를위시한출판사들,나아가프루스트연구가들사이에많은혼란을야기한사건이며,「사라진알베르틴」이란제목의변화와더불어소설의불완전한성격을증폭시키는동인이된다.1925년의「사라진알베르틴」에서1954년의「도주한여인」,1989년의「사라진알베르틴」에이르기까지불안정한움직임을보이는작품의제목에대해,프루스트가맨처음생각했던제목은「소돔과고모라III」으로1부「갇힌여인」,2부「도주한여인」이었지만,갈리마르출판사는이들부분을각각독립된권으로묶기를원했고,여기에1922년타고르의시집이『탈주자(LaFugitive)』란제목으로프랑스에서발간되면서「사라진알베르틴」으로빛을보게된다.
하지만이제목이단순히우발적상황때문에강요된제목인지에대해서는의문이남는다.‘사라진(disparue)’이란단어에는“알베르틴양이떠났어요.”라는프랑수아즈의목소리와“알베르틴은더이상이세상에없답니다.”라는봉탕부인의목소리가동시에들어있기때문이다.따라서이단어는더이상‘우리시야에보이지않는여인’이라는본래의미외에도완곡어법에의해‘죽은여인’,‘육체적으로죽은여인’일뿐만아니라‘우리의의식에서도사라진여인’,‘망각한여인’이라는비유적의미도내포한다.또사라진다는말은마치사라졌다다시돌아오는뱅퇴유의소절처럼,나타남의움직임을그자체로야기한다.어느순간망각속으로추락했던과거가비의지적기억의출현에의해찬란히솟아오르듯이,사랑하는사람에대한고통스러운추억이갑자기되살아나는‘마음의간헐’이나,어느날돌연흔적도없이사라진실종자처럼우리마음을그토록아프게하는연인이사라지기를바라는욕망,또는이런죽음을바란데대한죄의식을투영하는것은아닐까.따라서9권,10권「갇힌여인」이현존하는연인을대상으로하는사랑이야기라면,11권「사라진알베르틴」은부재하는여인을대상으로하는사랑이야기라고할수있다.
애도와망각
「사라진알베르틴」은사랑하는사람의상실로인한고통,그고통을견디기위한일련의탐문조사(생루를중개자로보내고,에메를탐문자로파견하고,앙드레를공범으로소환하는),그리하여무관심과망각으로귀결되는세개의주요모티프를중심으로이루어진다.그런데프루스트의동생로베르프루스트의주관아래출간된1925년의판본은총4장으로구성되어각각의장에1장슬픔과망각,2장포르슈빌양,3장베네치아체류,4장로베르드생루의새로운면모라는소제목이붙어있었다.이중‘슬픔과망각’은프로이트가말하는‘애도와애도작업’과맥을같이한다.애도(deuil)가“사랑하는사람의상실로인한반응”을가리킨다면,이것은「사라진알베르틴」에서알베르틴의도주와죽음이라는두개의움직임으로표출된다.알베르틴의갑작스러운떠남은그존재가우리옆에있을때느끼게했던온갖모순되는인상이나감각을망각하게하고,사랑하는육체의현존과완전한일체감을이루었던순간에대한추억만을상기시키면서,이런그녀를옆에두기위해서라면모든것을희생할수있다는결심으로이어진다.
그런데프로이트가말하는‘애도작업(travaildedeuil)’은사랑하는대상이더이상존재하지않는다는현실인식아래“사랑하는대상에묶여있던리비도를모두철회하고”그애착을다른대상으로이동하는것을가리킨다.그러기위해서는“많은시간과에너지의투자”가필요하며,또사랑했던시절로다시거슬러올라가는역여행을해야한다.이런현실인식은「사라진알베르틴」에서도거의동일한울림을발견하며,화자는이런시간속의역여행,반대방향에서의횡단을통해알베르틴을사랑하기이전의시절로돌아가서알베르틴의실체적진실에접근하려고한다.그러나이여행은그가지금까지해온것처럼사랑의대상이자기도모르게폭로하는시선이나말투,몸짓같은세부적인것에관한탐색이아니라,사랑하는대상의본질에관한존재론적탐색이다.마르셀은더이상알베르틴이누구였는지(qui),그녀가누구를생각하고누구를좋아했는지와같은그녀의정체성에관한질문이아닌,“그녀가무엇이었는지(que),무엇을생각하고무엇을좋아했는지”와같은그녀의자질이나특성,즉고모라적실체에관해질문한다.그런데이런존재의본질은막연히의미하는‘무엇’에,갑자기“그녀가내게거짓말을했는지”라는문장으로이어진다.마치“화자와알베르틴의관계가존재한다면,이관계는거짓말위에설정되거나매개된다는듯,”이제모든것은이런거짓말의진위를파악하는일로귀결된다.그리하여마르셀은셜록홈스처럼이제껏그에게서빠져나갔던알베르틴의과거행적들에대한증거들을수집하고추론하고논리적결론을유도하는탐정놀이를시작한다.
두결혼이야기
모든것이화자의내적독백처럼진행되는이소설에서유일하게사건이라할수있는것이결혼이야기이다.화자와알베르틴의관계가단순한사랑이야기라면필연적으로결혼이라는문제에부딪힐수밖에없으며,작품을자세히들여다보면이결혼이야기는앙드레의마지막폭로,즉알베르틴이베르뒤랭연회에참석하고싶어했던이유가봉탕부인이알베르틴의결혼상대로생각한베르뒤랭부인의조카옥타브를만나기위한것이지,알베르틴의고모라적취향을입증하는뱅퇴유딸과의만남때문이전혀아니었다는사실에서부터,알베르틴의필체로오인한질베르트의전보가실은질베르트와생루의결혼을알리는청첩장이라는사실에이르기까지작품의후반부를장식하는주요모티프로작동한다.마치「금빛눈의소녀」에서처럼‘황금과쾌락,’즉‘돈과악덕’이지배하는사회에서는행복한결혼이란존재하지않으며,생루가질베르트와결혼한것도실은그녀가가진엄청난부와모렐과의관계를숨길수있는방패막이로삼기위해서이며,또샤를뤼스가모렐로부터버림받은쥐피앵의조카딸을양녀로삼고캉브르메르후작의아들과결혼시킨것역시모렐의배신으로인한상처받은자존심을보상하려는샤를뤼스의선의또는복수라는듯모든것이파국으로끝날수밖에없는운명임을확인한다.
질베르트의불행한결혼은또다른의미의동인이된다.스완의죽음이후어머니오데트가포르슈빌후작과결혼해서포르슈빌양으로불리게된질베르트,그래서지금은파리에서가장매력적인상속녀가되었으며,이런질베르트를돈때문에아들과결혼시키려고애쓰는게르망트가의마르상트부인,또스완에대한죄책감때문에과거에는부정했던그의딸질베르트를게르망트가의일원으로받아들이면서적극적인보호자역할을하겠다고나서는게르망트부부,이런일련의모습뒤로앞서언급했던부친모독또는모친모독의주제가나타난다.오직게르망트부인에게아내와딸을소개하고싶다는간절한소망때문에오데트와의결혼을감행했던,딸을통해자신의이름이기억되기를바랐던스완이이제아버지의이름을거론하는것조차수치스럽게생각하며아버지에대한‘죽음과망각의작업’을완성하는딸에의해부인되고잊힌존재가되는것이다.그러므로결혼이야기는‘돈과악덕’에의해타자와의결합이실패로끝날수밖에없는벨에포크시대의사회적현실을반영하면서도,자신의악덕에의해아버지나어머니에게무한한고통을유발한뱅퇴유의딸이나질베르트또는화자에이르기까지,사랑을하면서도증오하고증오하면서도자책하는가족간의심리적갈등을재현한다.
사랑의글쓰기,무한한글쓰기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중「갇힌여인」과「사라진알베르틴」은‘알베르틴소설’이라는별칭으로불릴만큼알베르틴을둘러싼양가감정,어쩌면사랑의양면성을주제로한정밀한연구서라할만하다.화자마르셀은알베르틴의고모라적성향에강한의혹을품고집안에가두지만,외부의감미로운유혹을향한그끈질긴탈주의욕망앞에서그것을저지하려는화자의노력은결국사랑하는존재의떠남으로,사랑하는이의죽음으로끝날수밖에없는필연성을가진다.왜냐하면‘움직임’자체인알베르틴의영원한항해는과거에서미래로,이공간에서저공간으로끝없이확대되면서결코하나의단일한의미로귀결되지않은채무한한의혹만을증폭시키는신기루같은움직임을창출하기때문이다.
프루스트는「사라진알베르틴」의서두부터일반심리학이존재의내면을이해하지못하는절름발이이론이며고통만이존재의깊이를파헤치게해준다고역설한다.그것은명철한의식속에서우리지성이수집하는객관적이고외적인사실의나열이아닌,어둠과침묵속에서느끼는인상을일체의수사적표현없이진솔하게경험한그대로묘사하는일을통해
이루어짐을말해준다.그런데고통속에서체험한이현실은알베르틴이거짓말을했는지,아니면화자자신이믿고싶어하는것만을얘기했는지,알베르틴의본질을알고싶어하는그모든질문은블확실성의회로에사로잡힌채빙빙제자리만돌뿐시간이나계절,그날의기분에따라끊임없이변화하는알베르틴의실체앞에서는순간적으로반짝거리는신기루같은움직임만을창출한다.얼굴을가진타자를있는그대로느낀그대로묘사하는것,이것이어쩌면마르셀이「사라진알베르틴」에서시도하는글쓰기인지도모른다.항상도주하는알베르틴앞에서마르셀은결코알베르틴의진실을알지못하며,성적으로그녀를소유하는데도(죽음에의해서가아니라면)실패한다.이처럼끊임없이빠져나가는타자의육체에대한인식은영혼이나영원한결합이라는낭만주의적개념을무화시키며,이런의혹과불안정성은이타성의표징인알베르틴에의해극화되어미완성의소설이라는구조적인특색마저띠게한다.동시에이런이타성의체험은자신을떠받쳐줄어떤절대적지시물도존재하지않으며다만나를구성하는여러다양하고도모순되는감각이나감정들,즉공포나쾌락,욕망,충동,질투가곧자아라는것을,그리고이자아는매순간그것이생각하고느끼고말하고욕망하는내용에따라달라질수밖에없음을조명한다.그러므로마르셀프루스트가죽음과사투하며마지막으로쓴것이「되찾은시간」이아니라「사라진알베르틴」이라는사실은,프루스트에게서알베르틴은‘무한한존재’,‘끝없는글쓰기’그자체로서,사랑하는사람을있는그대로사랑하고,그이타성을받아들이고,바로그렇게함으로써만사랑하는이의상실로인한‘우울증’에서벗어나죽음의욕망을극복할수있다는것을말해주는것은아닐까.사랑하는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