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검은 피 (양장)

불온한 검은 피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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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허연의 시집 『불온한 검은 피』. 저자 특유의 은유가 돋보이는 시집이다. 《장마ㆍ장마ㆍ장마 - K를 추모함》, 《최근에 만난 분 중에 가장 희망적이셨습니다》, 《나는 또 하루를》, 《내 사랑은 언제나 급류처럼 돌아온다고 했다》, 《청량리 황혼 - CANVAS에 유채》 등 다양한 시를 감상할 수 있다.
저자

허연

1966년서울에서태어났다.집다락방과학교근처도서관에서손때묻은고전들을꺼내읽으며어른이됐다.고전을만나면서세상이두려운것만은아니라는진리를깨달았고,지금도‘독서는유일한세속적초월’이라는말을책상머리에붙여놓고있다.연세대학교에서「단행본도서의베스트셀러유발요인에관한연구」로석사학위를,추계예술대학교에서「시창작에서의영화이미지수용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일본...

목차

1부

지옥에서듣는빗소리
전쟁기념비
내가나비라는생각
날아가세요―비가(悲歌)
장마?장마?장마―K를추모함
상계동
새벽
무반주
경원선
나는빛을피해걸어간다
K
방문앞에와서울다
그날
목요일
비야,날살려라


2부

권진규의장례식
곡마단
구상(具象)
공작도시―손상기의그림에서
최근에만난분중에가장희망적이셨습니다
손상기는곱추가아니다
판화
오윤작(作),바람부는곳
GOGH
영화에서
철도원―영화
대화
오샹젤리제
MidnightSpecial?1
MidnightSpecial?2
필름
그거리에선어떤구두도발에맞지않았다

나는또하루를
이사


3부

너는사라질때까지만내옆에있어준다고했다
저녁,가슴한쪽
참회록
갈대에게
별곡?1
별곡?2
교정(校庭)
철로변비가(悲歌)
칠월
내사랑은언제나급류처럼돌아온다고했다
진부령
나를가두지마
꽃다발
내사랑은


4부

거미와나
포구
잠들수있음
벽제행
편지
출근
나무
희망
그해폭설
파르티잔
불간섭
그날도아버지는
청량리황혼―CANVAS에유채


발문|김경주
퀘이사의신탁

출판사 서평

■여전히뜨겁게흐르는불온한검은피

모든것이불확실하고불합리하며부조리한세상에서시인은과연어떤시를쓸수있을까.어떤의미도조합해낼수없는무의미한세계에서시인에게희망이란“화살표도숫자도모두지워져”(「희망」)버린이정표와같다.“세상모든소금덩어리들이비를맞고있”(「장마?장마?장마」)는것처럼사라져버릴듯위태롭다.
허연시인은20년전『불온한검은피』초판자서에서자신의시쓰기에대해이렇게말했다.“고통으로부터벗어나기위한헛수고에지쳤을때그고통의악습과매혹에차라리고개가끄덕여질때시를썼다.외따로떨어진무수한불유쾌한말들의조합―시라는것―이내게는면벽이나환희에가까웠다.”
그는20년후개정판자서에서다시이렇게고백한다.“패배한공화국이었지만묻어버리고싶지는않았다.”
고통뿐인세계일지라도,패배한공화국일지라도,피하거나묻어버리지않고,그먼지같은폐허를끌어안고사는일,그에겐그것이시쓰기이고삶이다.
시인이자문학평론가인차창룡의말처럼“시인이란일찍이허무를알아버린자들이고,허무를알았음에도대책없는자들이고,또스스로대책없는자라는것을아는자들”이며,허연은생래적으로바로그허무를몸으로깨달은시인이다.
허연에게시는반항이다.구원을부정하고세상에대한도전과반항적인자세는이첫시집에서가장두드러진다.“때묻은나이”,“죄와어울리는나이”가되기전,시인허연의가장순수했던“나쁜소년”의유년기를엿볼수있다.

사람들이끊어놓은지평선을
달음질치는상상을하던열두살적
마른개나리가햇살에미쳐서있던늦은겨울
주일헌금으로과자를사먹고
퉁퉁부은종아리를만지며
기어오르던제방길
울컥하고돌을주워하늘에던지면
살아움트는건모두눈물이었습니다

용서하는일보다
언제나먼저따라와밟히던
먼지뿐인길이여
발목을붙잡던불켜진창들이여
―「길」

“주일헌금으로과자를사먹고”,“울컥하고돌을주워하늘에던지”는것이아직어린그가할수있는반항의전부이지만,그는이무기력한반항의결과가결국허무일수밖에없음을생래적으로알고있다.그럼에도그는반항을멈추지않는다.

나는지금목숨을건다.얼굴을마주한세상과여자와술값과연탄가스에.나의꿈은언제나섬이며,선착장의붉은깃발이며,운명처럼사라진고향이다.왜가난은항상천재이며,고독과번민이천재여야하나.사랑을일삼기에도난시간이없다.서커스에서춤추는용과나는다를게없다.뭐시인만세라고빌어먹을너희들은나를학생이라고부르고,허군이라고부르고,가끔은젊은시인이라고부른다.독일이폭력에마약에시달린다고,갈놈은다가는데나는지금출근을한다.이해하지못한채끌려간다.언제부터너희들은내가가는곳마다버티고있었나.왜나는목숨을거나.도대체나는왜아버지를닮고있나.나는지금병원엘간다.목숨을걸었으므로,바람처럼가야하므로,발자국을지워야하므로,나는지금목숨을건다.지중해에태어나지않았으므로.
―「출근」

이처럼열두살소년의반항은사회초년병이된후에도계속되며,통념과관습에대한반항으로이어진다.
그의시는거침없고솔직하다.날것그대로의일상적인언어로가슴시린서정성을보여준다.“럭비공같은비약,문맥의비예견적인뒤틀기”로표현되는그의개성적인언어가그대로드러난다.
이시집은비애로가득차있다.슬픔을인간존재의보편적형식으로노래하면서,사라져가는것들을감싸안으며사랑을치열하게탐색한다.그는그가몸담고있는세계와끊임없이불화하고충돌하면서“어디에도희망은없으므로”너를“사랑한다”고고백한다.

뒤돌아보면
채닦이지도않은눈물만얼어붙어
먼불빛들사이
우뚝서있어라,운명처럼
그대를사랑한다
어디에도희망은없으므로
―「진부령」

창문이흔들릴때마다나는내인생에반기를들고있는것들을생각했다.불행의냄새가나는것들하지만죽지않을정도로만나를붙들고있는것들치욕의내입맛들

합성인간의그것처럼내사랑은내입맛은어젯밤에죽도록사랑하고오늘아침엔죽이고싶도록미워지는것살기같은것팔하나다리하나없이지겹도록솟구치는것

불온한검은피,내사랑은천국이아닐것
―「내사랑은」

이러한자기부정을통한자기긍정이“무의미의의미”라는아름다운미학을만들어낸다.
이시집속엔술에취해밥상을엎는아버지,까무러치듯쓰러지는어머니,멍든4라운드권투선수,실어증에걸린인간,피를파는소년,따귀를맞는직업훈련생,구치소에서돌아와중국집에서문신을새기는청년들,담벼락에기대어우는사람들이분노와연민속에뒹굴고있다.
온통쓸쓸하고슬프고고통스럽고절망적이며죽음으로가득차있음에도불구하고그의세계가이토록아름다운건,“주저앉으며일어서며/다시살아가는일”만남은사람들,“울기위해”사는사람들,“살아서/느린걸음으로가야만”하는사람들을연민하며그들에게“사라질때까지만옆에있어준다고”영원한약속을고백하기때문이다.

다시돌아온너에게,말없는눈발로내옆에서있었던쓸쓸함을묻지않으리라,어느날막막한강변로에서다시너를잃어버리고창문틈에너를기다린다는연서를꽂아놓을때까지,네가내옆에없음을알고전율할때까지

낡은자명종의태엽을감으며,너는사라질때까지만내옆에있어준다고했다.
―「너는사라질때까지만내옆에있어준다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