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언덕풍경 (반양장)

창백한 언덕풍경 (반양장)

$13.00
Description
흐릿한 기억 속에서 재생되는 과거의 상처!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부커 상 수상작가이자 현대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떠오른 가즈오 이시구로의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 과거의 유산이 아닌 살아 있는 이 시대의 젊은 고전들을 선보이는 「모던 클래식」 시리즈의 61번째 책이다.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전쟁과 원폭 후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그리며 전쟁의 상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현재 영국에 살고 있는 중년 여인 에츠코는 일본인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 게이코의 자살로 상심에 빠진다. 영국인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 니키가 집에 와 있는 동안 에츠코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둘 회상하고, 이 모든 회상은 게이코와 게이코의 자살을 향해 있는데….
이 작품은 탄생과 파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과거의 상처가 한데 얽혀 있는 원폭 이후 일본의 풍경을 보여준다. 원폭이 여러 번 언급되기는 하지만 전쟁이나 폭격을 묘사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으며, 차분하게 에츠코의 과거를 따라갈 뿐이다. 원폭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일본의 소위 ‘원폭 문학’과 달리, 담담한 서술로 인간 내면의 상처에 집중하며 일본적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수상내역
- 1982년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 수상
저자

가즈오이시구로

저자:가즈오이시구로
1954년일본나가사키에서태어났다.다섯살이되던1960년해양학자인아버지를따라영국으로이주했다.켄트대학에서철학을공부한후,이스트앵글리아대학에서문예창작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1982년일본을배경으로전후의상처와현재를절묘하게엮어낸첫소설『창백한언덕풍경』을발표해위니프레드홀트비기념상을받았다.1986년일본인예술가의회고담을그린『부유하는세상의화가』로휘트브레드상과이탈리아스칸노상을받고,부커상후보에올랐다.1989년『남아있는나날』을발표해부커상을받으며세계적인명성을얻었다.이작품은제임스아이보리감독의영화로제작되어또한번화제가되었다.1995년현대인의심리를몽환적으로그린『위로받지못한사람들』로첼튼햄상을받았다.2000년상하이를배경으로한『우리가고아였을때』를발표해맨부커상후보에올랐으며,2005년복제인간을주제로인간의존엄성에의문을제기한『나를보내지마』를발표해《타임》‘100대영문소설’및‘2005년최고의소설’로선정되었고,전미도서협회알렉스상,독일코리네상등을받았다.그외에도황혼에대한다섯단편을모은『녹턴』(2009)까지가즈오이시구로는인간과문명에대한비판을작가특유의문체로잘녹여낸작품들로현대영미권문학을이끌어가는거장의한사람으로평가받고있다.그문학적공로를인정받아1995년대영제국훈장을,1998년프랑스문예훈장을받았으며,2010년《타임스》가선정한‘1945년이후영국의가장위대한작가50인’에선정되었다.

역자:김남주
1960년서울에서태어나이화여자대학교불어불문학과를졸업하고,주로문학작품을번역하고있다.옮긴책으로가즈오이시구로의『우리가고아였을때』,『창백한언덕풍경』,『녹턴』,『나를보내지마』,귀스타브플로베르의『마담보바리』,프랑수아즈사강의『브람스를좋아하세요...』,『마음의심연』,『슬픔이여안녕』,제임스설터의『스포츠와여가』,로맹가리(에밀아자르)의『새들은페루에가서죽다』,『가면의생』,『여자의빛』,『솔로몬왕의고뇌』,미셸슈나이더의『슈만,내면의풍경』,야스미나레자의『행복해서행복한사람들』등이있으며,지은책으로『나의프랑스식서재』가있다.

목차

1부7
2부127
옮긴이의말241

출판사 서평

■슬픔과희망이뒤섞인오묘한빛깔을띤한점도자기같은소설

에츠코는일본나가사키에서태어나현재영국에살고있는중년여인이다.사별한영국인남편과의사이에서낳은둘째딸니키가집에와있는동안에츠코는그네를타는소녀를산책길에우연히목격한다.소녀,그네,매달림의이미지는프루스트의마들렌과홍차처럼그녀를과거로이끈다.과거를떠올리고싶지않다는이유에서둘째딸에게일본식이름을붙이는데반대했던그녀는이제그시절의기억을,첫남편지로와시아버지오가타상,이웃친구사치코와마리코모녀에대한기억을짚어나간다.그리고이모든회상은하나의방향,즉지로와의사이에서낳은첫째딸게이코와게이코의자살을향해있다.
소설은탄생과파괴,새로운미래에대한희망과과거의상처가남긴얼룩이한데뒤엉켜있는원폭이후일본의풍경을그린다.에츠코가회상하는1950년대초반나가사키는원폭후복구가한창이다.젊은에츠코는새생명을잉태한몸으로폭격의끔찍한기억을털어버리고점차안정을찾아간다.그녀는유망한전자회사에다니는지로와결혼했고,전후지어진신식콘크리트아파트에산다.그러나전쟁의그늘은에츠코의삶을쉽게놓아주지않는다.아파트건설은그녀가사는동(棟)이후로중단됐고그너머로는원폭투하의흔적이여실한거칠고말라붙은황무지뿐이다.바로그황무지에있는외딴오두막에사치코와마리코모녀가흘러들어온다.폭격으로모든것을잃은사치코,폭격당시받은충격으로이해할수없는행동을보이는마리코는에츠코에게일말의불안감을안기는존재이다.
반복되는인과의연결고리는잔인하리만치에츠코의삶에들러붙는다.미군을따라미국에건너가려했던사치코의꿈은에츠코에게로옮아간다.에츠코는마리코의교육과행복을걱정하며사치코의미국행에넌지시불편한감정을표하지만,딸게이코가행복할수없으리라는것을알면서도훗날재혼한영국인남편을따라일본을떠나는사람은정작그녀자신이다.삶과죽음의문턱을아슬하게넘나드는듯하던마리코의위태로움은게이코에게옮겨간다.에츠코와함께영국으로건너온게이코는몇년이나은둔하다시피지내다가결국스스로목숨을버리고만다.
하지만에츠코는아픈과거를부정하거나억지로잊으려고애쓰지않는다.모든일을겪은후에도그저담담히이렇게읊을뿐이다.“그래,특별한건하나도없었단다.그저행복한추억이었을뿐이야.”이렇게현재까지그림자를드리운과거의상처를받아들임으로써치유의싹이뿌려진다.장르와소재,배경을초월해‘상처를살아내는인간’자체에주목한이시구로의작품세계는바로이지점에서시작한다.그는마치은근한빛을내는도자기를빚듯슬픔과희망이동시에자리한삶의미묘한빛깔을작품에담아낸다.

■말하지않음으로써더욱선명하게드러나는전쟁의상처

『창백한언덕풍경』은시종일관차분하고절제된서술로에츠코의과거를좇는다.원폭이몇번언급되기는하지만전쟁이나폭격을묘사하는장면은일체등장하지않는다.이시구로는원폭의비극을단순히서술을통해,혹은등장인물의입을빌려말하기보다그것이사람들마음속깊은곳에남긴흔적을보여주는쪽에초점을맞춘다.
이것을대표적으로드러내는인물이전후의고통스러운삶속에서아기를익사시키는여인을목격한어린소녀마리코이다.사건당시마리코가느꼈을충격과공포의감정은서술이유보된채잠재되며,독자들은에츠코와함께마리코의기묘한행동들을목도하면서그충격의여파를짐작할따름이다.마리코가여인이자신을데려갈거라고말하는모습이나강물에빠질듯위험하게강가에서노니는모습,거미를들고에츠코에게천천히다가가는모습은에츠코뿐아니라독자에게도기묘한느낌을주기에충분하다.
에츠코의첫남편지로와시아버지오가타상은전후제도적으로나사상적으로급격한변화를겪던일본의혼란스러운시대상을드러낸다.은퇴한교육자로휴가차아들부부의집에머무르고있는오가타상은품위있고성실하지만원폭과함께일본을점령한미국식제도와사고방식을못마땅해하는구시대적인물이다.신세대에속하는지로는전쟁을일으킨,그럼으로써나가사키를원폭투하의희생양으로만든책임이있는전통적,집단적사고방식을서둘러단절해야할유습으로여기는입장이다.두사람은겉으로는서로를존중하면서도내심으로첨예하게대립하며,그래서두사람이함께있는집안은언제나긴장의기운이느껴진다.
에츠코는자신을둘러싼환경에가장순종적인인물이다.남편과시아버지가충돌할때도어느한쪽편을들지못하고두사람모두에게순응하며,일자리나돈을부탁하는사치코에게도싫은내색한번비치지않는다.심지어어린마리코에게도종종꼼짝못하는모습을보인다.마치아파트안에서보내는텅빈오후처럼그녀의감정도증발되어사라진듯하다.소설은에츠코가원폭때어떤일을겪었는지명시하지않지만상처의흔적은조용하고혼자있기를좋아하는그녀의모습에남아있다.
에츠코가아파트창밖으로멍하니바라보곤했던황무지너머에는작품의제목이지칭하는언덕능선이희미하게펼쳐져있다.그언덕은사치코가속한험한황무지도,에츠코가있는텅빈아파트도아닌새로운미래이다.어떤상황도받아들이기만했던에츠코는단한번미래를좇아본인의의지로선택을내린다.일본을떠나영국에서새삶을시작하는것.그리고그미래는다시영국에서낳은딸니키로형상화된다.동양과서양의결합이기도한니키는기질면에서언니게이코와닮았으면서도건강하고독립적인삶을이끌어간다.게이코가행복하지못할걸알면서도영국에데려왔다고고백하는에츠코에게니키는삶을낭비하지않도록최선을다한것이라며다정하게위로한다.과거의모든것과얽혀있지만어느것에도얽매이고싶어하지않는니키에이르러과거와현재는화해를이룬다.이시구로는이를통해새로운미래를,‘그럼에도삶은계속된다’라는평범하지만빛나는진리를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