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가 (배삼식 희곡 | 반양장)

화전가 (배삼식 희곡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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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씨의 환갑. 남편은 온데간데 소식이 없고 둘 있는 알들 중 하나는 앞서 보냈으며 남은 하나는 옥에 갇혀 있다. 흉흉한 시국에 환갑상이 웬말인가 싶은 김씨(닭실할매)의 의중과 달리 서울에 공부하러 간 막내딸 봉아와 대구로 시집간 둘째 딸 박실이 등이 모이자 떠들썩한 분위기가 된다. 아들 손자 없이 여성들만 모인 자리는 생각보다 활기차다. 난생 처음 봉아가 가져온 초코렛도 먹어 보고 쓰디쓴 커피도 마셔 보고 반짝반짝 빛나는 설탕을 녹인 설탕물도 나눠 먹으며 간만에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 이야기하다 보니 기왕에 하는 잔치, 집 안에서 하지 말고 화전놀이를 가자는 데 일치단결한 여성들은 분주한 가운데 화전놀이를 준비한다.
저자

배삼식

1970년전주에서태어났다.서울대학교인류학과를졸업하고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극작과전문사과정을마쳤다.1998년「하얀동그라미」로데뷔했다.2003년극단미추의전속작가이자대표작가로활동하며「삼국지」,「마포황부자」,「쾌걸박씨」등의마당극과뮤지컬「정글이야기」(창작),「허삼관매혈기」(각색)를비롯해「최승희」(창작),「벽속의요정」(각색),「열하일기만보」(창작),「거트루드」(창작),「은세계」(창작)등다수의작품을만들었다.이후「하얀앵두」(창작),「피맛골연가」(창작),「3월의눈」(창작),「벌」(창작)등왕성한작품을선보이며우리시대를대표하는극작가로자리매김했다.2007년「열하일기만보」로대산문학상과동아연극상희곡상을,2008년「거트루드」로김상열연극상을,2009년「하얀앵두」로동아연극상희곡상을,2015년「먼데서오는여자」로차범석희곡상을,2017년「1945」로'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올해의작품상을수상했다.저서로『배삼식희곡집』과『1945』가있다.

목차

1장종소리
2장경신야1
3장경신야2
4장화전놀이
5장종소리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삼월의눈」,「1945」의배삼식신작희곡
전운이감도는1950년4월.김씨의환갑을맞아모여앉은여인들이
환갑잔치대신화전놀이를떠나며벌어지는하룻밤꿈같은이야기

“이들의화전놀이는마지막으로아름다운삶의한순간,
그기억을마음에새기는일이다.”-배삼식

“어느덧고부관계도주종도손위도손아래도아닌그녀들이
죽마고우처럼어울려노는한판재미나고슬픈놀이,
세월지나대청그림자뒤로한채그기쁨떠올리는마음에
깨고싶지않은꿈이다”.-박민정(소설가)

작가들이사랑하는작가이자평단과독자의신뢰를두루얻고있는작가배삼식의신작희곡『화전가』가민음사에서출간되었다.『화전가』는한국전쟁발발두달을앞둔1950년4월,경북안동김씨댁여성들의하룻밤이야기를다룬다.집안을건사하기위해만주를떠돌며산전수전다겪은김씨의환갑을축하하기위해딸,며느리,고모등이어렵사리한데모인자리.

‘이야기꽃을피운다’는말은누가처음생각했을까?편안한자장가인듯파도치는웃음바다인듯엄마와이모들의대화는밤새들어도지겹지않았던기억으로남아있다.걱정하고공감하고이해하고,그러면서도유머를잃지않은채이어지는대화속에는여성들내면의평화,그원동력이라할만한비밀이빛나고있다.마침내환갑잔치대신화전놀이를떠나기로마음먹은아홉여성들.경신밤에는잠을자면안된다는풍속에따라이들은동이틀때까지웃고울며떠든다.다정하고다감한순간뒤로살육의순간이다가오고있을거라고는누구도예상하지못한채.

서울에서유학중인막내딸이며대구로시집간둘째딸까지모두모여들썩이는가운데이따금드리우는부재의그림자.때는바야흐로1950년.누군가는이념을위해목숨바치고누군가는이념때문에죽어야했던과잉된의미의시대에남편은소식이없고아들은죽었거나갇혀있다.차라리무소식이희소식인불행의시대.비극의와중에도여성들의대화는끊이지않는다.소박한기억과정직한기대감으로가득찬이들의대화는의미없이충만하고의미없이아름답다.끝이보이지않는암흑의한가운데에서도일상을포기하지않고삶의터전을지킬수있는건이토록의미없이충만한대화가있어가능하다는것을,가족같고친구같은여성들이서로를보듬어주는말들의풍경안에서우리는어렵지않게알수있다.‘사람냄새가나는작품을쓰고자했다’고밝히는배삼식작가는이번작품을통해역경속에서사람을보듬어줄수있는것은함께하는이들이라는것을다시한번확인시켜준다.

■화전놀이,한국식‘여성의날’
일찍이우리에게도‘여성의날’이있었다.화전놀이는1년에한번,농번기가오기전봄기운이충만하고꽃이가장예쁠때즐기던꽃놀이로여성들에게는시집살이에서해방될수있는유일한날이었다.만주를떠돌던시절에는하지못했던화전놀이를떠올린김씨는불길하고불안한상황속에서언제다시만날지모를딸들과사랑하는사람에게아름다운기억을남겨주고싶은마음으로화전놀이를추진한다.가장예쁜옷을입고맛있는음식을만들어먹는날인만큼화전놀이를준비하는과정도극의재미를더한다.서로더예쁜옷을입으려고다투는자매들의신경전이나결혼할때가져왔다지금은다팔고한두개만남은장신구들에얽힌사연,‘박실이’나‘영주댁’같은택호들은1950년대를살아가는여성들의삶을구체적이고생동감넘치는장면으로표현한다.

■2020년의언어로다시쓴가사문학
규방가사(內房歌辭)·규중가도(閨中歌道)·규방문학(閨房文學)·규중가사(閨中歌辭)등으로불리는장르는여성들이주체적이목소리를냈던형식으로꼽힌다.주로영남지방양반집부녀자들사이에서유행했으며6·25전쟁이후에는거의소멸된것으로전한다.그중에서도‘화전가’는조선시대‘여류문학’의한전형으로봄철을맞은여성들이화전놀이를하며읊은가사다.배삼식의『화전가』는소멸직전인20세기중반을배경으로당시‘가사문학’으로쓰였을법한이야기를현대희곡의언어로다시쓴다.전운이감도는공포의시대를살아가던김씨댁여성들의애환과슬픔,의지와연대는문학사에서소외되었던‘여류문학’의자리가변방의그곳이아님을방증한다.

■사투리에담긴음악성
작품속표현을빌리자면화전놀이는“집안어른들,액씨들,동기간에시집간액씨들꺼정다”모여서“이삐게단장허고꽃매이채리입고”나가“바람도시컨쎄고꽃도보고꽃지지미도부치가농가먹고노래도하고춤도추꼬하며1년에딱하루놀다오는”것이다.『화전가』에는지금안동에서도듣기힘든안동사투리가완벽하게재현됐다.자연스러운사투리를위해작가는『아직도내귀엔서간도바람소리가』,『베도숱한베짜고밭도숱한밭매고』,『경북대본소백산대관록화전가』등의구술자료와방언자료를적극적으로참고했다.

지역성짙은사투리는흔히가독성을떨어뜨리고의미전달을방해하는요소로인식된다.그러나말은의미를전달하는기능적도구만은아니다.사투리의음악성과아름다움은장식적요소에그치지않고인물의말과생각,그리고행동의여백을표현하는또다른언어로역할한다.특히안동은우리나라여성이주체적인목소리를내는규방가사의전통이가장강하게남아있는곳인바,안동사투리를읽는다는것은주체적인여성들이남긴문학의유전을읽는일이기도하다.

■작은것들의예술
『화전가』는국립극단70주년을기념하며제작된작품으로의뢰당시작가에게주어진주제는‘예술’이었다.따라서『화전가』는예술이란무엇인가라는질문에대한배삼식작가의대답이기도하다.지금은잊힌정겨운풍물들,지난시간에대한소소한기억,기억을나누는행위에서비롯되는그리움과아쉬움의감정들……이념을기준으로갈라져너무도쉽게서로가서로의적이되었던시절을배경으로처음먹어보는커피나설탕맛에대한이야기,한복노리개나옷감의느낌에대한이야기를나누는행위는한없이사소하고무용해보인다.그러나이사소하고무용한즐거움을잃지않음으로써과거와미래를잃어버리지않는것만이참혹한현재를살아갈수있는무기가된다.그것은또한예술의의미이자예술의가치이기도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