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 평전 (농촌계몽에 헌신한 영원한 상록수)

최용신 평전 (농촌계몽에 헌신한 영원한 상록수)

$18.00
Description
시대적인 소명 의식과 깊은 신앙심으로 소설 『상록수』의 모티브가 된 역사 인물 농촌으로 달려가 여성 교육과 민족 운동에 헌신한 최용신의 아름답고 숭고한 삶을 읽는다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소설 『상록수』 주인공 채영신의 전신인 최용신의 평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농촌에서 현실 모순을 극복하는 데 온몸으로 노력을 기울인 최용신은 종교적 차원에서 시작된 계몽 활동을 민족운동으로 승화시켰다. 시대적인 소명 의식으로 여성, 어린이,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실천한 최용신의 아름답고 숭고한 삶은 오늘날 새로운 울림을 준다.
저자

김형목

중앙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한국근대사전공으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한국민족운동사학회편집위원장,국가보훈처독립유공자공적심사위원,숭실사학회편집위원,동국사학회편집위원,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책임연구위원등을역임했다.현재나혜석학회연구이사,육군본부군사연구소편집위원장,한국사학회지역이사,한국교육사학회연구이사,한국여성사학회지역이사·편집이사,최용신기념관자문위원등으로활동중이다.저서로『대한제국기야학운동』,『충청도국채보상운동』,『최용신,소통으로이상촌을꿈꾸다』등이있으며공저로『한국근현대인물강의』,『안중근과동양평화론』,『나혜석,한국근대사를거닐다』,『100년전사진으로만나는한국·한국인』,『충남여성의삶과자취』등이있다.

목차

책을내며5

1신교육수혜로꿈을키우다
왜최용신에주목하는가17
민족의진로를고민하다26
현실인식이심화되다33

2농촌계몽운동에앞장서다
김학준과인연을맺다39
농촌계몽운동을설계하다42
봉사활동으로계몽운동론을심화하다46

3덕원지역민족교육을일으키다
계몽운동을선도한할아버지52
계몽활동가큰아버지54

4활동가아버지의영향을받다
원산지역민족운동57
흥농회가조직되다61
최용신에게영향을미친사람들63

5샘골에서이상촌을꿈꾸다
무지와가난에허덕이는농촌76
샘골에깃발을올리다84
주민들에게희망의불을지피다87
샘골강습소를증축하다91
위생생활에힘쓰다96

6세상의밑거름이된한알의밀알
일본에유학하다98
마지막투혼을불사르다101
샘골강습소운영을유언하다105
사회장으로거행되다109

주112
연보118
참고자료152
참고문헌212

출판사 서평

1930년대,어두운시절
농촌계몽의등불을밝힌
최용신의인생역정을읽는다

서울지하철4호선을타고사당역을지나내려가면상록수역이있다.우리에게잘알려진심훈의『상록수』에서이름을따온전철역이다.상록수역이있는안산시상록구본오동,옛지명으로‘샘골’은『상록수』의모티브가된역사인물최용신(崔容信)이농촌계몽운동을펼친곳이다.
최용신은1909년함경남도덕원군에서태어나루씨여학교를졸업하고천곡,즉샘골로내려가농촌교육에헌신했다.1935년샘골과가까운수원도립병원에서25년6개월의생을마치기까지불꽃같은인생역정은당대부터큰반향을일으켰다.《동아일보》의농촌소설공모에당선된심훈의『상록수』는엄청난인기를얻었고,학생들은‘채영신’을이상으로삼았으며,기독교의관점에서쓰인『최용신소전』등이최용신의숭고한삶을알렸다.
그럼에도오늘날우리에게최용신은충분히알려져있지않다.민족운동을연구하고근대여성인물의삶을재조명해온최용목독립기념관책임연구원이이에『최용신평전』을펴낸다.‘문맹’을계몽한성인(聖人)이아니라여성,농민,어린이등사회의약자들과함께하며어려운현실을지치지않는소통으로돌파한인간최용신이되살아난다.

시대적인소명의식과깊은신앙심으로
함께사는공동체적삶을실천한
교육가이자민족운동가최용신

일제강점기일찍이개방되어서구문물이유입되는창구였던원산항의바로근처에서최용신은태어났다.문명사회건설을위한계몽활동에적극적이었던가족분위기속에서그는당시여성으로서는매우드물게학교교육을받았다.어릴때부터깊은신앙심과이타심을기른최용신은고등학교를졸업하기전이미농촌으로달려갈계획을그리고있었다.

이사회는무엇을요구하며누구를찾는가?무엇보다도누구보다도신교육을받고나아오는신인물을요구한다.그중에서도더욱이현대중등교육을받고나아가는여성들을가장요구하는줄안다.……이제우리의활동의첫걸음은무엇보다농촌여성의지도라고생각한다.나는농촌에서자라난고로현실농촌의상태를잘안다.그러므로내가절실히느끼는바는농촌의발전도여성의분투함에있을줄안다.참으로현대교육을받은여성으로서북데기쌓인농촌을위해헌신하는이가드문것은사실인동시에유감이다.문화에눈이어두운구여성만모인농촌이암흑에서진보되지못한다하면이사회는언제든지완전한발전을이루지못할것이다.
─최용신,「교문에서농촌으로」(1928)중에서

최용신은계몽활동가인할아버지최효준과아버지최창희를비롯해고모최직순과신학교교수황에스터,교목(校牧)전희균의영향을두루받으며실천의중요성을익혔다.농촌봉사활동과브나르도운동을직접경험하며참담한현장을절감하고,농촌운동이식민지배의질곡에서벗어나는민족해방운동의일환이라고인식했다.
1931년10월10일최용신은경기도수원군반월면천곡,일명샘골에한국YWCA의‘농촌지도원’으로파견되었다.1934년봄까지2년6개월동안과1934년9월부터이듬해1월하순사망하기직전까지본격적인활동을전개했다.문맹률이90퍼센트에달하는농촌이라는현장에서아동은물론청년,부녀자에대한문맹퇴치가최우선사업이었다.근대야학의여명기를전문으로연구한저자는다양한사료를통해야학이근대교육의사각지대에빛을비추는계몽운동이었을뿐아니라,지극히열악한환경에서온몸으로부딪힌민족운동의한갈래였다는점을지적한다.

소통과신뢰라는가치로
21세기의귀감이될신여성최용신
처음최용신이도착했을때현지사정은녹록하지않았다.지역유지들은비웃고주민들은무관심으로일관하는냉랭한분위기였다.최용신은부인계를조직,확대하는동시에샘골강습소확장에전념했다.건물증축에틈이나는대로학생들과함께직접참여하는등왕성한활동에주민들의인식도점차변화되었다.외지에서온계몽가가아니라공동체생활을이끄는선각자로인식하고그를따랐다.이리하여샘골강습소는현지를대표하는교육기관으로거듭났다.
보다체계적인농촌계몽을위한일환으로최용신은일본유학길에올랐다.고베여자신학교청강생으로등록하고봉사활동에도참여하는등행복한시간이었다.그러나학업중자주피로를느끼는가운데각기병에걸려학업을중단할수밖에없었다.결국유학을떠난지여섯달만에병든몸으로샘골로되돌아왔다.주민들의극진한간호로어느정도회복되자곧바로자리를박차고일어나열성적인활동을거듭했다.그러다가중병으로교단에서가르칠수없는상태에이르렀다.운명하는마지막순간에도최용신은샘골강습소를반드시유지해달라는유언을남겼다.1935년여러신문과기획기사로널리알려진최용신의사망소식은암울한식민지시기한국인의심금을울리기에충분한내용을담고있었다.
사망60년이지나광복50주년인1995년,독립운동공적을인정받아최용신에게건국훈장애족장이추서되었다.최용신이역사무대에다시등장하는순간이었다.그로부터2020년까지최용신연구를이어온저자는다문화시대인오늘날최용신이전하는의미를되새긴다.언어,문화,피부색이다른타자와의소통이어느때보다필요한시점에서로신뢰하는공동체적삶을개척한최용신의재발견이다.사후85년이지난지금최용신의인생역정을정리하는이유도여기에있다.이책은6장으로이루어져최용신이살아간시대와그의활동을짚으며,상세한연보와참고자료를통해짧지만강렬한삶을이해하는데도움이되도록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