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의 요정 : 일기들 - 민음사 탐구 시리즈 9

교정의 요정 : 일기들 - 민음사 탐구 시리즈 9

$16.00
Description
박살 난 이 세계를 교정해야 한다
지옥에서 온 교정공의 일기
‘로써’와 ‘로서’를
‘든’과 ‘던’을 구분해야 한다
망해 가는 세상에서 파괴된 한국어를,
대학교수와 출판노동자의 사회적 관계를,
한국에서 읽고 쓰는 일을 고치려고 하면서
미쳐 가는 한 교정공의 일기
『교정의 요정』을 소개하자면, 늘 떠오르는 일화가 있습니다. 제가 민음사 편집부에 막 입사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회과학계의 거장의 원고가 주어졌어요. 설레며 한글 파일을 열자, 화면에 견명조체로 된 무시무시한 글자들이 출현했습니다. 이 세상이 나아갈 길에 관한 글인데, 글을 구성하는 한국어가 박살 나 있었던 것입니다. 편집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원고 이전의 상태인 글더미를 말이 되는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첫 책 『교정의 요정』을 펴낸 유리관 님은 출판노동자입니다. 그가 교수들의 원고를 교정하는 일을 하면서 미쳐 가고 있다는 건 놀랍지 않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직장에서 그가 태업을 하면서 쓴 일기들의 존재 때문입니다. 그는 ‘로써’와 ‘로서’를 틀리는 사람들을 돕고자, 그 유명한 「로써와 로서의 구분」을 올려 1000회가 넘는 대리 교정을 수행한 파워블로거입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꼭 슬리퍼를 끄는 상사에게 저항할 방법을 궁리하고, 노동절 집회에 나가서 우리의 미래에 관해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유리관 님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웃기고 늘 화가 나 있고 교수XX를 X로 XX하고 싶어 하는 그가 알고 보니 문창과를 나왔으며,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사회지도층과는 다른 입장에서 이 세상을 바꾸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요.
2018년 9월에서 2024년 4월까지 유리관 님이 쓴 일기와 산문들을 엮으면서 저는 너무 많이 웃은 끝에 이상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막상 교정지의 오자 외에는 아무것도 고치지 못하는 방구석 정덕(정치 오타쿠)이 난맥상인 한국 정치와 한국 문학에 관해 늘어놓는 이야기에서 힘을 얻은 것입니다. 가히 도스토옙스키의 장광설에, 브레히트의 서정시에 비할 글들입니다. 지난 3월의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당의 실패에 대해 쓴 마지막 일기까지 일독을 권합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돌려읽고 싶은 일기예요.
저자

유리관

저자:유리관
일해야한다,일하고싶다,일하기싫다사이에서흔들리는출판노동자.생계외마음의보전을위한취미로읽기와쓰기를하며,문예계팀블로그곡물창고(gokmool.blogspot.com)에서사이버창고관리인으로도일하고있다.

목차

들어가며망해가는세상에서

1부지옥의교정공
피와해골신도
무명용사
나를좆되게하려는모든사람들과사람아닌것들
로써와로서의구분
지옥에서밭갈기
울어라!
2018년9월12일
교정기관차
이차원의교정공들
최악의저자
든과던의구분
핵광야의피케팅과라디오방랑
2019년9월21일
나의교정노하우들
교정의요정
번제물
띄어쓰기
교정의골짜기
엉덩이:두개인가?
아다르고어다른세상에서上
아다르고어다른세상에서下

2부문학과일기
독서,모임
아버지의해방일지(2022)
우리의사람들(2021)
인간만세(2021)
모든것은영원했다(2020)
연년세세(2020)
엘리자베스코스텔로(2003)
황금물고기(1997)
먼별(1996)
토성의고리(1995)
다섯째아이(1988)
리옴빠(1927~1949)
드리나강의다리(1945)
일리아스또는힘의시(1941)
2019년12월1일
미쳐가는교정공
오늘일기챌린지
2022년5월2일
연자매
2022년6월7일
늪괴물

3부교정공기
개꿈
2023년1월18일
신발을끄는녀석들이있다
2023년3월24일
2023년4월25일
불타는들판
2023년9월25일
2023년11월13일

교정공이되어


문필공화국(멸망편)
2024년1월3일
2024년3월26일
심청이정신,反심청이정신
2024년4월2일
2024년4월9일
시를위한옹호
2024년4월11일
일기의끝

출판사 서평

일기는어디까지갈수있을까?
훔쳐보고돌려읽는일기의재미와묘미
탐구시리즈의에세이라인‘일기들’

새로운세계를보는새로운시대의시각.민음사탐구시리즈의‘일기들’이출간되었다.박살난이세계를교정하고자지옥에서온출판노동자의『교정의요정』,500여일간의호르몬대체요법과정을기록한트랜스젠더여성의『호르몬일지』,연세대한국어학당노조지부장의비밀일기인『지부장의수첩』은내밀한기록을통해반드시세상에전해야할이야기가있다.각각세대도분야도다른저자들이쓴‘일기들’은세권을함께읽을때더큰연결을이룬다.이는가장개인적인것이정치적인것이되는회로이니,구체적인연결은책장을넘기는사람의손끝에서드러날것이다.2022년『철학책독서모임』으로시작해3만부판매를기록하며독자들의강력한지지를받고있는탐구시리즈는2024년하반기청년정치와페미니즘을주제로계속된다.

책속에서

내가도대체지금뭘하고있는건지모르겠다는생각도이제는희미해졌습니다.교정공이라는직업도점점희미해져가고있습니다.바늘방석의바늘들처럼꽂힌채일터로집으로실려가는출퇴근길나는생각합니다.바로지금이인류역사상상대적으로든절대적으로든최대의읽고씀이이루어지고있는시기아닐까?그런데아이러니하게도,또는바로그래서일지,나교정공의일은점점희미해져가고있는것입니다.

어떤뭔가로곧교정공을대체할수있으리라는이야기도있습니다.쓴사람자신의조심성으로,아니면무슨검사기로,발달한AI로.전혀그렇지가않다는사실을교정공들은그누구보다잘알고있습니다.굳이대체할필요도없이어차피헐값이고……해본적도없는녀석들이멋대로말합니다.‘교정이라는일은필요하지않다’고하지나않으면다행인판국입니다.실제로교정같은건필요하지않다고소리높여외치는이들이있습니다.여러이유를대면서요.그런얘기를들으면꼭인종이나민족에대한욕을들은것처럼흠칫놀랍니다.나는청소당하는걸까요?그러나내가놀라는진짜이유는,견디기어려운모욕감을느끼면서도,실은마음한편에서는,그에동의하기때문입니다.인간이굳이외치지않아도이세계가내귀에대고그렇게외치고있습니다.필요하지않다고요.맞습니다.나는비밀스럽게공공연하게분명하게동의하고있습니다.그래,그딴거,나같은거,교정공따위는필요가없다!너희맘대로들해!그겁니다.그냥맘대로들해…….
---「들어가며:망해가는세상에서」중에서

내가입사하기전,어떤교수녀석이□□□이라고틀리게쓰려는걸끝까지□○□으로고치려다대판싸우고퇴사한교정공이한명있었다고들었다.그는단하나의자음을옳게고치기위해자신의거의모든것을,우리같은노동자들에게는거의모든것이나다름없는노동그자체를걸었다.부러질지언정구부러지지않은그의불굴을생각하면내가지금로써와로서따위에서물러날수는없는법이다.나는그의얼굴은물론이요이름도모르지만그는오늘무명용사되어내안에살아숨쉬고있다.잘못된교정을다시옳게되돌리며,나는그무명용사가왜교수와대판싸웠는지이해한다.내가겪은일인것처럼이해한다.그것은글자의옳음을위한것이아니다.전혀아니다.
---「무명용사」중에서

교정교열자의업무는지옥에서의밭갈기와같은것이다.아무도중요하게생각하지않고,아무도신경쓰지않고,아무도거들떠보지않는일을,전혀가능하지않은조건속에서감히가능하게하려고,무한한책임영원한책임으로홀로떠맡는것이다.(……)
이세상이다틀려도내가교정공으로서딱하나를교정할수있다고하면‘든과던’이다.든과던을모두고치고난뒤,욕심많은내가눈물로엎드려제발하나만더……하나만더……빌고울고불고손을깨물고발을깨물고……그렇게해서하나더고칠수있다면단연‘로써와로서’다.둘은아주다른단어인데또많이혼동된다.끼새수교들원고에서도보면백중팔십이반드시틀리고넘어가는오류맛집으로서,내생각에는,자기노동에있어언어를주요하게사용하는사람이라면마땅히이정도는기본적으로구분할줄알아야만한다.나는뭐어려운얘기까지안한다.우린야만스러운저교수녀석들과달라야한다.우리는충분히해낼수있다.
---「로써와로서의구분」중에서

어쩌다보니그만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뭔가를읽다가,나도뭔가를좀써보고자,약간은자폭하는심정으로입학했다.쓰려면읽어야했으므로,실제로읽건안읽건학과내에는전체적으로‘읽어야한다’는분위기가있었다.서로가쓴것을수업때도수업이아닐때도읽었다.옹기종기독서모임도했다.우리는대문호들과동기선후배의쓴것을나란히읽었다.무엇이건비웃고감탄하고감동하고지적하고……냉소적으로되었다가열렬히옹호하고……뭐그랬다.졸업을하고서도거의10년이더지나,새내기때같이독서모임을했던선배이자친구가그걸또해보자고연락을해왔다.독서모임을.일테면인생이……허하다는거였다.나도그랬다.

독서회라고해봤자2주에한번퇴근하고만나저녁을먹고읽은책에대해가벼운감상을나눈뒤다음읽을책을정하는것이전부다.사실책같은건아무래도좋고그날먹을메뉴나반주로마실고량주생각,끝나고같이코인노래방(학생때도엄청나게다녔다.)에가는일따위가더중요하게느껴지기도하지만,그래도꾸준히이어져어느새한해두해세해째로접어들었다.사실나는이제쓰는인간들이라면지긋지긋하다.머릿속이까매질때까지교정을한다음또뭔가읽는다는것도현기증나는일이다.그렇지만먹었으니싸는것처럼또이런저런감상문을남기면서,학생때그렇게도떨쳐내기어려웠던질문들을다시생각하지않을수없다.왜쓰는가?왜읽는가?도대체무엇이우리를읽고쓰게하나?
---「독서,모임」중에서

네이버블로그녀석들이자꾸무슨영상을찍어올리라느니사진을찍어올리라느니아주위험천만한자기판매를포맷까지딱만들고돈까지쥐여주겠다며자꾸시키는데,진짜토가나온다.누군지도모를사람들한테여러분들이거보셔요저가일기를썼ㅡㅂ니다저의오늘하루는이랬고저랬고저는이런저런생각을햇ㅅㅂ니다보여주는거?말할것도없이재밌는일이다.쓰기뿐아니라읽기도재밌다.비슷한얘길전에했지만,세상의재밌다하는일들이란다위험한(악의그림자가서려있는)짓이고그만큼조심해야할일이다.읽는이에게나쓰는이에게나그렇다.나는그일에요구되는종류의조심스러움이오늘날의우리에게어쩔수없이중요한미덕이라고도생각한다.그게무슨미덕이냐?그것은‘사람을존중하기’의지하에있는미덕이다.어디서누가제대로가르쳐준적없는미덕,몸통박치기로익히는수밖에없는미덕,도저히간단치가않은,그러나반드시필요한,특히읽고쓰기를이제필연으로맞이한우리에게……그미덕은‘사람을사용하기’와관련있는미덕이다.자신을,또는타인을.그런면에서내생각에,공개된일기는현시대의최고로문제적인/지배적인문학이며,병성과치유가함께고이는곳이고,해석되길기다리고있고,변화되길기다리고있고,어쩌고저쩌고……이는우리가전자레인지나정치의사용법을,차타지않고차도로들어가는여러방법을익혀야하는(익히게되는)것과도같다.우리가실로서로의길고짧은일기와함께살고있기때문에,하여튼많이들조심스럽게읽고써보셨으면좋겠다는것이내생각이며,이는네이버블로그팀의토나오는기획과도어느정도일치하는바다.같이갈수있는데까진같이가고,챙길수있는오까네는일단챙기는것이나의개인적인수칙이다.2주간매일일기를쓴다는것은쉽진않지만해볼만한일이다.블로그에디터에도카페처럼투표템플릿이도입되면좋겠다.챌린지로받을만육천원상당의포인트를어디에쓸것인지정할수도있을테고……
(1)사회운동기부
(2)취미생활에사용
(3)생활비로사용
(4)기타……(댓글로)
……그리고언젠가우리는나머지를청구할것이다.그것이이개짓거리를함께하며내가여러분과하고싶은약속이다.우리의경험은만육천원은물론이요천만금으로도구매할수없으며,네이버는언젠가상상도못한방식으로제값을치러야할것임을……
---「오늘일기챌린지:2021년4월30일」중에서

한국전이끝나던때광주,좌우익에대한상호린치의여파로태어나자마자자신의아버지를여의고성인이될무렵상경한이래수십년간플라스틱사출공장에서일해왔으며동남아시아노동자동료들과는사이가좋고중국은싫어하는나의아버지.그에게는어느정치인이똑똑한가안한가가중요한판단준거다.적어도설득의영역에서는그렇다.일테면뭐저사람은서울대를나왔느냐아니냐,대학은어디대학나왔느냐……전에나한테우리당대표가똑똑하냐고물어봐서‘인성이좋다’고답한일이있었다.이쪽(?)은그사람이똑똑한가안한가는별로중요하지않다,다그연구소가있고정책으로다가하는거니까는……그런얘기를멍청하게덧붙이다가‘어딘안그러냐’해서힘이빠졌었다.

서산시골소녀시절,누가시키지도않았는데혼자베틀앞에앉아쪼가리를짜봤다가수재소리를듣고역시성인이될무렵상경해생의반정도는미싱을돌려옷가지를만지고또반정도는요양보호사로서노인과환자들을돌보며조선족노동자들에대해서는어쩐지호의적이면서도근처에무슬림회당이들어서는건매우경계하는나의독실한어머니.‘ㅇㅅㅇ을찍느니차라리ㅅㅅㅈ을찍으시라’했을때어머니는‘ㅅㅅㅈ은어쩐지깡패같아서싫다’고답했다.이유가재밌지않은가?깡패같아서싫다고.그러면내가뭐할말있나?‘ㅅㅅㅈ이그래도융통성이있는사람’이라고그냥등신같은소리한다.

그러면아버지는옆에서어쩐지실드를쳐주는데(‘이쪽’찍은적은없어도,어쨌든편은들어줌),그럴때꼭‘그래도ㅅㅅㅈ이똑똑하다’고,‘그래도똑똑해’이러면서실드를친다.그래ㅇㅅㅇ을찍느니ㅅㅅㅈ을찍어라맞장구를치면서.그런아버지는ㅇㅈㅁ을찍었고기본소득에도꽤공감을표하는편,‘우리같은사람들’은이제점점살방법이없다는거다.그말이무슨뜻인지알수있는이는당연히알것이다.그걸모르는이들과는나부터가이야기하기어렵다.방법이없어뵌다고개새끼들아!1(……)
나,부모님을호강시켜드리기는커녕도대체어떻게된것인지문학을배우겠다고대학에가서교정공이된내가,두사람의일을이렇게팔면서까지하고싶은말은뭐냐면,참으로우리가우리를,노동계급을설득하려면,지옥같은노동과신성한노동을함께이해할필요가있다는것이다.
---「2023년1월18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