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일지 : 일기들 - 민음사 탐구 시리즈 10

호르몬 일지 : 일기들 - 민음사 탐구 시리즈 10

$16.00
Description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솔직해진 트랜스여성의 일기
여성호르몬제와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생긴 ‘살고 싶다’는 의식,
자아 존중감, 폭발하는 분노에 관하여
차마 말할 수 없는 것까지 말해 버리는
500일간의 트랜지션 기록
영이 님의 『호르몬 일지』를 소개하기 위하여, 인문학 편집자로 일하면서 제가 찾아 헤맨 작가가 여기에 있다는 말로 시작하겠습니다. 최고의 저자. 그는 자신만의 사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남에 대해 말하고 세계에 관해 논하겠어요?
온갖 정념과 잡소리가 들끓는 트위터에서도 폭력성과 유머로 단연 돋보였던 영이 님이 호르몬 대체요법 과정을 일기로 쓰고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습니다. 2022년 12월에 시작한 호르몬 대체요법으로 그는 신체적 트랜지션 중입니다. 살결이 부드러워지고, 털이 줄어들고, 근육이 줄어들어서 무거운 것을 못 들고…… 그런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변화의 내용이 궁금했어요. 그렇게 입수한 원고는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으로 가득했습니다. “트랜지션이 손에 쥐어 주는 양날의 검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그전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으로 솔직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77쪽) 나 자신에게 진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내가 그걸 얼마나 원하는지를 상기시키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원고 또한 ‘양날의 검’이었으니, 훔쳐볼 때는 재미있지만 출간할 생각을 하면 아득해지는 수위의 글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인문잡지 《한편》에서 청했던 원고를 쓰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정신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기록을 읽자, 호기심에서 시작한 기획으로 내가 이 사람에게 연루되고 말았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뒤는 말도 못합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해 버리는 일기들이 쏟아지는데요. 아버지, 자해, 성감, 여자애들, 만화, 절망……에 관해 쓰며 그는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호르몬 일지』의 테제는 이렇습니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너 때문에 화가 난다.’ 일상적인 트랜스젠더 혐오에 둘러싸인 영이 님은 ‘자기 때문에 화가 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저 포함) 무지한 자들에게 화를 냅니다. 그리고 일지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글 「100% 실패의 트랜스 모성」로 존재 증명을 한차례 완수하는데요. 시스젠더 여성으로서 첫 번째 독자가 되어 호기심 → 공감 → 웃다가 생각해보니 웃을 때가 아님 → ……를 거친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추천하겠습니다. 살아가며 더 솔직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권합니다.
저자

영이

저자:영이
폭력과고통,분열의상관관계에관심을갖고글을쓴다.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학과예술사를졸업하고전문사에재학중이다.『정서지도그리기』,『밑빠진독(毒)에물붓기』,『월간종이』등제작하고연극‘오페라샬로트로니크’드라마터지를맡았다.2023년제2회『게임제너레이션』게임비평공모전에서「게임과행위원리:놀이와협박」으로수상했으며,웹진《연극in》과《게임제너레이션》에비평을게재했다.『미친,사랑의노래』를함께썼다.twitter.com/monthly_paper

목차


들어가며호르몬대체요법시작

1부2023년
24일째:2023년1월12일
35일째:1월23일
킬타임트래시1회
45일째:2월2일
호르몬대체요법과별개로20년가까이24시간365일지속되는정신질환증상
71일째:2월28일
139일째:5월7일
174일째:6월11일
트젠과선택
253일째:8월29일
바깥활동에서의고충
257일째:9월2일
폭력과훈장
게임제너레이션게임비평공모전시상식
265일째:9월10일
266일째:9월11일
267일째:9월12일
268일째:9월13일
터프보다비참한것,트랜스의료주의
330일째:11월14일
《한편》원고청탁
333일째:11월17일
339일째:11월23일
341일째:11월25일
348일째:12월2일
349일째:12월3일
356일째:12월10일
360일째:12월14일
내영역
「내영역」을쓰며
호르몬투약1주년기념행사

2부2024년
386일째:2024년1월9일
387일째:1월10일
388일째:1월11일
게임충동회의
392일째:1월15일
393일째:1월16일
397일째:1월20일
398일째:1월21일
400일째:1월23일
401일째:1월24일
402일째:1월25일
404일째:1월27일
423일째:2월15일
『진격하는저급들』북토크후기
435일째:2월27일
438일째:3월1일
440일째:3월3일
441일째:3월4일
442일째:3월5일
445일째:3월8일
447일:3월10일
448일:3월11일
450일째:3월13일
452일째:3월15일
453일째:3월16일
454일째:3월17일
455일째:3월18일
459일째:3월22일
463일째:3월26일
467일째:3월30일
471일째:4월3일
475일째:4월7일
476일째:4월8일
477일째:4월9일
정신분석:여성과저항성
480일째:4월11일
481일째:4월13일
482일째:4월14일
483일째:4월15일
484일째:4월16일
487일째:4월19일
488일째:4월20일
490일째:4월22일
493일째:4월25일
『미친,사랑의노래』서울북토크
500일째:5월2일
505일째:5월7일
520일째:5월22일
522일째:5월24일
『미친,사랑의노래』진주북토크
532일째:6월3일
100%실패의트랜스모성

나가며더아래를보며

출판사 서평

일기는어디까지갈수있을까?
훔쳐보고돌려읽는일기의재미와묘미
탐구시리즈의에세이라인‘일기들’

새로운세계를보는새로운시대의시각.민음사탐구시리즈의‘일기들’이출간되었다.박살난이세계를교정하고자지옥에서온출판노동자의『교정의요정』,500여일간의호르몬대체요법과정을기록한트랜스젠더여성의『호르몬일지』,연세대한국어학당노조지부장의비밀일기인『지부장의수첩』은내밀한기록을통해반드시세상에전해야할이야기가있다.각각세대도분야도다른저자들이쓴‘일기들’은세권을함께읽을때더큰연결을이룬다.이는가장개인적인것이정치적인것이되는회로이니,구체적인연결은책장을넘기는사람의손끝에서드러날것이다.2022년『철학책독서모임』으로시작해3만부판매를기록하며독자들의강력한지지를받고있는탐구시리즈는2024년하반기청년정치와페미니즘을주제로계속된다.

책속에서

호르몬을맞는다는것은참으로몸안의신경계전체가계속이동하고재조합되는느낌이다.뭔가……그런변화들이끊임없이일어나면서생겨나는어떤유지,감소,증가,또이것들에내가어떻게반응해야하는지등등에관한많은고민들이있음.어쨌든그런고민들이향하는곳은항상,내가지금까지나자신에게거짓말해왔던것들에대해서더이상거짓말하지않게되는지점이다.그것이욕구든욕망이든판타지든성향이든페티시든충동이든기호든환상이든뭐든간에내가원하고바라고하고싶고되고싶은것이내몸가장깊은곳으로부터그어떤것보다도가장강렬하게올라오고느껴지는것이라이런것에대해서는어떻게거짓말이라는거를할수자체가없다.

솔직해지는것에대해얘기하자면나는지금내가솔직해지는것이좋고더솔직해지고싶고솔직해질것이더없나끊임없이뒤지고싶다.그래서내가더솔직해질것이영원히무한하게나왔으면좋겠다.근데찾는것에비해서는외적자원은이분야에대해참으로부족하긴하지만……그래서요즘좀척박하고가난한느낌……
아무튼……
그래도피부랑살결은굉장히야들야들하고부드러워졌다.
거기다가몸에근육이줄어들어서힘없어진거체감할때참어이가없다.무거운거못들때……이게뭐냐……싶다.웃겨서.
그리고또호르몬을하고나서느낀거는그전까지나는정말메마른땅이었고지금은그나마적당히비가오는……
---「253일째:8월29일」중에서

누군가가겪은어떤끔찍한일에대한이야기를들었을때웃음으로반응하는것.이때뭐가웃긴지물어본다면사실그웃음의끝엔거지같다는꼬랑지가생략되어있는것이라고대답할것이다.하지만그럼에도아직그앞에웃음이남아있다는것은결국웃기지않는다는얘기는아닌것이다.여기서의웃음은기본적으로나도안다는공감의웃음이다.다시말해아는척하고싶단얘기기도한것이다.그렇지않다면속으로웃으면될걸왜소리내서더거지같게웃는단말인가?물론이렇게쓰면어떠한경험에대해아는척하는게되게거지같은행위인것처럼보이겠지만,혹은이렇게안써도그냥거지같은행위인것처럼보이겠지만,사실누군가가겪은어떤끔찍한일에대해아는척하는것과(물론진짜알아서아는척하는경우의이야기다.눈꼽만큼도모르는데그냥동정과연민에의해공감해주는척(그것은절대로무슨일이있어도불가능함에도불구하고!)하는것과는전혀다르다.)그누군가가자신이겪은거지같은일을자기입으로말하는것사이에그렇게까지커다란차이가존재하는지는잘모르겠다.애초에둘모두결국자기경험에대한아는척아닌가?그러니까근본적으로는둘다자신이겪은일을자기입밖으로꺼내고외부로드러내고그시간과사건과역사를증명하고싶은것일진대,다만전자는그냥말하는것이고후자는전자가말한경험에기대어,혹은보태어말하는것일뿐이다.
---「폭력과훈장」중에서

(오전9시)
매일매일약을먹다가갑자기안먹으니기분이존나이상하다……그리고약은먹으면뭔가거의즉각적으로바로바로효과가느껴졌던거에비해(혈액검사수치보면플라시보일지도모르겠지만)주사는그런게없으니까(약은매일먹는거에비해주사는한번맞으면2주치니까)이게맞나?싶고……이거효과없는거아닌가?이런불안이갑자기……(분명검사해보면수치는지금이훨씬높을것임에도불구하고)
그리고이것마저도그냥전부플라시보인걸수도있겠지만주사맞으니까뭔가감각하는느낌?신경체계같은게또바뀐느낌?잘모르겠다.모든것들이좀비교적멀고만성화된느낌이랄지……어쨌든무언가를정확하게느껴보려고존나게노력중……(나만이렇게예민한가??약에서주사로바꾸고난뒤의변화나반응은해외웹을뒤져도딱히안나온다.가슴얘기빼고ㅋㅋ뭔가호르몬관해서이런기분적인얘기를정말로잘안하는느낌……그날그날우울하다감정기복이심해졌다이런얘기는하는데투약방법이나증량에따른변화같은거는기록이안된건지아니면그냥내가존나과민반응하는건지……)암튼뭐랄까순간적인강렬함에서항상적인안정화?당연함?일상화?같은걸로바뀐느낌

뭔가몸의급박함이사라진느낌……물기가……
원래좀더통제할수없는……몸에내가휘둘리는느낌이있었는데뭔가좀더차분해진느낌……
어떤불수의성이사라진느낌……그러니까결국에는사라진부분이아쉽거나불안하다는얘기다.
사춘기가지난느낌이이런걸까……
습기가……열기가빠져나간느낌……
기운이좀없는느낌?
만약에지금이수치가더높다고해도수치가더낮을때가기분이더좋았다면그때가더좋은거아닌가?

(오후6시)
헉아니다취소ㅋㅋㅋㅋㅋㅋㅋㅋㅋ몸갑자기다시뜨거워짐돌았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분해및흡수가확실히약보다늦나보다……하루정도시간차공격하는느낌”
---「387일째:1월10일」중에서

내가살아있음에긍지를느끼게해준것은트랜지션단하나뿐이다.그것이처음이며그이전에는내생존은그저저주에불과했다.물론그때그사건들로부터살아남았으니지금와서트랜지션을할수있었던거아니냐고말할수도있겠지만그건그당시엔알수도없고아직존재하지도않았던사건들이다.그때의자살충동은그무엇보다도진짜였고나는지금와서살고싶어졌다고해서그때의고통,그때의절망,그때진심으로죽고싶었던마음을변질시키고싶지않고더럽히고싶지않으며훼손하고싶지않다.다시말하지만그때나는죽었어야했다.

따라서나는생존자가아니며그저피해자다.내가피해입은사실들은내살아있음에그어떤긍지도가져다주지못했고내가살아남은건정말말그대로‘어쩌다보니’죽지못한것뿐이다.아주아주불행한우연의결과들이었을뿐이다.지금내기쁨과환희는과거의내진심을가짜로만들지못하며과거의나를진짜가아니었던것으로만들지못한다.절대로.
---「423일째:2월15일」중에서

나는대학교를입학하고얼마정도있다가,이미내가트랜스젠더라는사실을밝히고‘언니’라고부르고있었던(그리고내게그렇게부르게해줬던)동기들이○○학번‘여자들’단톡방을가지고있었던것들기억한다.당연히거기나는없었다.
시스젠더여자들이겉으로는내가여자라는것을이해(혹은인정)해주고자기들과같게생각해주는척하지만속으로는전혀그렇지않았던경우가얼마나많았는지……

내가요즘이런생각을더많이하게되는이유는오히려호르몬덕분에자아존중감이라는게생겨나서그런듯……그전에는어떤취급을당해도얼마나개무시당하고기만을당해도그냥아무생각없이그런가?(사실눈치는있었지만그냥넘어간거)헬렐레~이랬던건지……왜냐면그렇게라도넘어가지않으면,내가일일이따지거나내존엄을조금이라도주장한다면곁에가장자리에도못남아있었으니까……사실내가그들옆에서그들에게자신들과나를같게생각해달라고할‘권리’는없죠.어디까지나원래부터걔네가나를옆에있게‘해주는’거일뿐임.나는이제걔네가나한테그렇게해주시는거에대한필요를진짜좆도1도못느끼겠는것일뿐이고……ㅇㅇ안해줘도됨이젠나도니네옆에있기싫음.
---「455일째:3월18일」중에서

그렇게재생산에대한욕망이있기는커녕,동의없이삶이라는지옥과존재론적고통에한생명을마음대로던져놓는출산행위에대한혐오만가득한상태로살아왔다.자신들의이기적인욕망으로새끼를까놓고양육의고됨을토로하는부모들에대한저주.아이는본인선택이아닌탄생으로이제죽을때까지영원한고통을겪어야하는데,자기들은전적으로본인선택에따르는결과에불만을가지다니.재생산과정전체와그에연루된모든이들에대한분노가가슴깊은곳에서부터시도때도없이치밀어오르는것을참을수없었다.
그러다내차례가왔다.여성호르몬제와남성호르몬억제제를투여한다고해서완전하게불임이되는것은아니며애초에지금치료과정에서영향을받는몸으로는재생산을할생각이추호도없었기에불임이‘되었다’라는표현은부적합할지도모른다.그러나내몸에서불필요한생체과정을하나줄이고나니나의근원적인불임성과마주하게되었다.즉말한바와같이불임이‘된’것이아니라처음부터불임이었다는사실.내몸안에서는낳는것은고사하고그어떤생명도만들어내는것조차불가하다는사실말이다.
---「100%실패의트랜스모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