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논설문집 2

우남 이승만 논설문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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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남 이승만 논설문집은 독립 자주 정신을 국민에게 일깨우고 세상의 문물과 사람의 도리를 가르친 선각자 이승만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그 뜻을 알리고자 만든 책으로, 1898년 〈협성회회보〉부터 첫 일간지 〈매일신문〉과 〈제국신문〉, 1913년 〈태평양잡지〉, 1931년 〈태평양 주보〉에 실린 이승만 박사의 모든 논설문을 3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

이승만

1875년3월26일.황해도평산군에서출생
1878년(3세)서울남대문교외염동으로이사/1885년(10세)서울도동으로이사
1894년(19세)배재학당입학/1896년(21세)협성회조직.협성회보주필
1897년(22세)7월배재학당졸업/1898년(23세)협성회회보,매일신문,제국신문창간.주필
1899년(24세)1월9일고종폐위음모혐의로체포수감1904년(29세)독립정신저술
1904년(29세)8월9일특사로출옥/1910년(35세)프린스턴대학졸업(박사)

목차

제국신문
서문_5

제4권

제38호
_
13
/
제41호
_
16
/
제44호
_
19
/
제61호
_
22
/
제62호
_
25
/
제63호
_
28
/
제64호
_
31
/
제66호
_
34
/
제71호
_
37
/
제73호
_
40
/
제75호
_
42
/
제77호
_
45
/
제78호
_
48
/
제80호
_
51
/
제81호
_
55
/
제83호
_
58
/
제84호
_
61
/
제88호
_
64
/
제89호
_
66
/
제96호
_
69
/
제97호
_
72
/
제98호
_
75
/
제100호
_
78
/
제109호
_
81
/
제110호
_
84
/
제111호
_
87
/
제114호
_
90
/
제118호
_
91
/
제123호
_
94
/
제124호
_
97
/
제125호
_
100
/
제126호
_
103
/

제5권

제32호
_
109
/
제33호
_
111
/
제34호
_
114
/
제35호
_
117
/
제36호
_
120
/
제37호
_
124
/
제38호
_
127
/
제39호
_
130
/
제40호
_
134
/
제47호
_
138
/
제62호
_
141
/
제64호
_
145
/
제65호
_
148
/
제83호
_
151
/
제92호
_
155
/
제93호
_
158
/
제97호
_
161
/
제98호
_
164
/
제99호
_
167
/
제101호
_
170
/
제102호
_
173
/
제103호
_
176
/
제106호
_
179
/
제112호
_
182
/
제119호
_
185
/
제127호
_
188
/
제133호
_
191
/
제135호
_
194
/
제153호
_
197
/
제156호
_
201
/
제161호
_
204
/
제162호
_
207
/
제163호
_
210
/
제164호
_
213
/
제168호
_
216
/
제174호
_
220
/
제182호
_
223
/
제188호
_
226
/
제189호
_
229
/
제190호
_
232
/
제191호
_
235
/
제192호
_
238
/
제193호
_
241
/
제201호
_
244
/
제202호
_
247
/
제203호
_
250
/
제204호
_
253
/
제210호
_
256
/
제212호
_
259
/
제213호
_
262
/
제218호
_
265
/
제226호
_
268
/
제239호
_
271
/
제240호
_
274
/
제243호
_
276
/
제245호
_
278
/
제246호
_
281
/
제247호
_
284
/
제248호
_
287
/
제249호
_
290
/
제250호
_
293
/
제251호
_
296
/
제252호
_
299
/
제260호
_
302
/
제261호
_
305
/
제262호
_
307
/
제263호
_
310
/
제265호
_
312
/
제266호
_
315
/
제267호
_
318
/
제268호
_
321
/
제269호
_
324
/
제270호
_
327
/
제271호
_
330
/
제288호
_
333
/
제294호
_
336
/
제296호
_
339
/
제297호
_
342

제298호
_
345

제6권

제9호
_
351
/
제10호
_
355
/
제11호
_
359
/
제13호
_
362
/
제15호
_
365
/
제20호
_
368
/
제22호
_
371
/
제24호
_
374
/
제25호
_
377
/
제28호
_
380
/
제29호
_
383
/
제30호
_
386
/
제32호
_
389
/
제33호
_
392
/
제35호
_
395
/
제38호
_
398
/
제39호
_
401
/
제40호
_
404
/
제41호
_
407
/
제42호
_
410
/
제43호
_
413
/
제44호
_
417
/
제45호
_
420
/
제46호
_
423
/
제52호
_
426
/
제76호
_
429
/
제77호
_
433
/
제78호
_
436
/
제108호
_
440
/
제109호
_
442
/
제116호
_
445
/
제126호
_
448
/
제143호
_
451
/

출판사 서평

*협성회회보의발간
1896년11월서재필은협성회를조직하여학생들에게찬반토론을훈련시켰는데,이승만은이협성회의창립멤버였다.1897년7월8일배재학당을졸업한이승만은이협성회를학교밖으로확장하려는시도로1897년12월상순배재학당의학생회인협성회제29회공개토론회에서회보발간을결정하고,이듬해1월1일학교구내에서창간하였다.창간시신문을전담한회보장(會報長)은양홍묵(梁弘默),주필에는이승만이취임하였다.신문의구성은4면으로,1면에는논설을싣고,다음에는국내의소식(내보)과외국의소식(외보),잡보와협회의소식,그리고짧은광고를실었다.
최종호가되는제14호까지한번도빠짐없이논설을게재하였는데,논설에서는학문의필요성,자기직분에충실할것,아동교육의중요성,매관매직과탐관오리의격퇴등을주장하였다.1898년3월19일에주간지를일간으로발간하기로결정하고,4월9일부터는우리나라최초의일간지인〈매일신문〉의발간으로방향을전환하였다.
〈협성회회보〉의발간에는처음부터순한글로하였는데,이는당시의문자생활을한자중심으로하던것과는반대되는것이었다.이는당시의이승만의사회인식이반영된것으로,한자를모르던대중들을위한다는뜻이반영된것이다.그러나본서에서는원래한자말을괄호안에되살렸는데,한자말을이해하는것이문장의뜻을명쾌하게하는데도움이된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

*매일신문의발간
1898년3월19일에협성회통상회석상에서주보로발행되던신문을일간으로변경한다는방침이결의된후,1898년4월9일에제1호가발행되었는데,〈내외국시세형편과국민에유조한말과실제의소문을많이기재할터이니,목적도극히중대하거니와우리회원이일심애국하는지극한충성의간담을〉보아달라고하였다.
이리하여발간되기시작한〈매일신문〉은유영석사장,최정식기자등과함께한국인이만든최초의일간신문이되었다.그러나석달후인7월9일부터회사경영진내에금전문제로알력이생기고,본사에서쓰던활판을주인이가져가는바람에신문이일시정지되기에이르렀다.이때에사장유영석,기자최정식,주필이승만등이해임당하고,7월19일부터새로구성된경영진에의해새로발간되었으나1899년4월4일자로종간되었다.
〈매일신문〉은그구성과내용이〈협성회회보〉와거의같았으나발행이주간이아니라일간이라는점만달랐다.

*제국신문의발간
1898년8월10일이종일과함께〈제국신문〉을창간하였다.신문제명을제국이라한것은“이신문이우리대황제폐하의당당한대한국백성에게속한신문”이라함인데,“동양반도국사천여년사기에처음되는경사라,우리가이같이경축하는뜻을천추에기념하기위하여특별히제국두글자로신문제목을삼았다”고밝히면서“본사주의인즉신문을아무쪼록널리전파하여국가개명에만분지일이라도도움이될까”함이라고밝혔다.이에대하여〈매일신문〉에서는“근일에〈제국신문〉이새로났는데우리매일신문과는도무지상관이없으니혹신문보시는군자들이제국신문을매일신문으로그릇아실듯하기로자에광고”한다는광고문을게재하였다.
1899년1월9일수감되어징역형을살기전에는그의생각이입헌군주제를옹호하고있었으므로,8월부터12월말까지의그의논설과관보,외국통신,전보등도그에맞추어작성되고있었다.그러나당시의정세는대한문과종로거리에연일시위군중이데모를벌이고,이에맞추어보부상패들이반대시위를하는등의형편이었으므로극도로혼란스러웠다.
연말을앞두고는중추원에서박영효씨와서재필씨를천거하는문제로의관삼십명이가하다하여추천하였는데,이에대해윗선에서는크게노하여의장등과몇의관을면관하라고하고이승만등에게도체포를명하였다.이리하여이승만은제국신문의논설도쓰지못하고피신할수밖에없었다.

*태평양잡지와태평양주보
〈태평양잡지〉와〈태평양주보〉등의발간은하와이정착으로부터시작되었다.
하와이로건너간이승만은하와이군도를방문하여교포들의생활상을살펴보고그에따른대책을수립하였으며,하와이교민들의계몽과한국독립을위한자주독립정신의고취를위하여잡지의창간을서둘렀다.그리하여2월에하와이에도착한그는그해9월부터〈태평양잡지〉를창간하였다.
그러나〈태평양잡지〉는1913년9월부터1930년10월까지18년동안출판되었으나1915년부터1922년까지,그리고1926년부터1929년까지의기간에는잡지의복사본이남아있지않으므로발행여부를확인할수없다.
1913년부터1914년까지의잡지는거의모두이승만이사장과주필을겸하여개인잡지마냥혼자서원고작성과편집을하였던것으로보이고,1920년대에는다른주필들이주로집필하였던것으로짐작된다.1930년3월호로속간된이후5월호부터는집필자를밝히는편집체제로바뀌었다.따라서본서에서는주로이승만이직접집필하였던1913년과1914년의글들이취합되었다.
창간호인1913년9월호가없어서잡지의창간목적과취지등을볼수없으나,11월호부터보건데,잡지의주요내용들은주로국내,국외의사항들과국내의정치,사회,문화등으로당시하와이한인들의독립자주의식과계몽에필요한사항들을다루었다.당시에개통된파나마운하와뉴욕의지상세계,필리핀과중국의내정과독립자주,발칸반도와청국북경의소문등은모두당시의조선과관련된제3세계문제를다룬글들이다.
특히하멜의일기는당시까지조선에서는전혀미지의글이었던것을이승만이처음으로번역한것으로,이책이후에국내에서발간되게된것은이승만이번역하여태평양잡지에연재한것을국내의다른필자들이보고서재번역한것으로추정된다.
〈태평양잡지〉는1930년대에들어와서동지회를대신하는〈태평양주보〉로바뀌고,그경영도완전히동지회대표들에게로넘어갔다.그대신이승만은이제잡지의발간이란일상의업무로부터해방되어〈일본의가면을벗기다(JapanInsideOut)〉라는책의집필과대한독립운동을위한직접적인일에관여할수있게되었다.태평양주보에게재된이승만의논설은그런가운데이승만이직접쓴일부논설문을전부엮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