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레몬 나무처럼

너는 레몬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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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0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노춘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너는 레몬 나무처럼]. 이번 시집에는 이미지가 서로 결합하고 어울리는 수일한 표현력이 바탕이 되어 세계와 존재에 대한 형상과 이면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노춘기 시인은 55편의 시를 통해 구구절절한 설명적 묘사를 하기보다는 풍요로운 시적 이미지의 향연을 펼쳐놓는다. 희고 붉은 색채 이미지가 다채롭게 전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튀어 오르고 솟구치고 흘러내리는 역동적인 사물의 생생한 움직임이 세계와 그 안에서 갈등하는 주체의 문제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통찰력을 가지고 읽어낸 세계는 치열하게 고뇌하는 선택의 공간이자 견뎌내야 하는 현실 그 자체이며, 그것들이 담담하고 관조적인 언어로 그려지고 있긴 하지만 그 안에는 삶에 대한 가장 진지하고 끈끈한 애정이 눅진하게 녹아 있다.
저자

노춘기

저자노춘기는1973년경남함양에서태어나,2003년[문예중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오늘부터의숲]이있다.2006년월하지역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다지나가버렸다
들개처럼
다리가길어졌다
나는온곳을잃고
면도
부러졌어사라졌어
소를쫓다
빗소리듣는다
달은간다
움푹파인구멍
가능한죽음

[제2부]
아미타,아미타
부드러운천둥소리
버스가올라간다
떠다니는집
밤의해안도로
빈집
아직벌들이그안에있다
열여섯,십이월,완월동
초콜릿페이퍼위에서
마더

[제3부]
나무의맨발
거꾸로선
별이보입니까
갸우뚱거리는풍선앞에서
거품,욕조
하이킥
나보다는너를
네가말하는동안
거짓말
버스를타고나에게로
변신
첼리스트는몸을흔들며
해안도로에서
뭉근머리트의별

[제4부]
까마귀
15분
그의등뒤에나비
깊은우물
별빛이찌른다
갑자기가난이
너는나보다
눈이없는것들이
동시에
두개의흰머리카락
동선(動線)
리빙울란바토르
마블링
목동사거리시베리아까마귀
잠자리떼,Society
발을잃다
비둘기,따뜻하다
오리가지나가는풍경에관한몇개의문장
다락방에내리는눈
산란기

해설조강석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수일한이미지가타종한세계의울림

2003년[문예중앙]으로등단한노춘기시인의두번째시집[너는레몬나무처럼]이실천문학에서출간되었다.이번시집에는이미지가서로결합하고어울리는수일한표현력이바탕이되어세계와존재에대한형상과이면이여실히드러나고있다.노춘기시인은55편의시를통해구구절절한설명적묘사를하기보다는풍요로운시적이미지의향연을펼쳐놓는다.희고붉은색채이미지가다채롭게전개되는것은물론이고,튀어오르고솟구치고흘러내리는역동적인사물의생생한움직임이세계와그안에서갈등하는주체의문제를강렬하게드러내고있는것이다.시인이통찰력을가지고읽어낸세계는치열하게고뇌하는선택의공간이자견뎌내야하는현실그자체이며,그것들이담담하고관조적인언어로그려지고있긴하지만그안에는삶에대한가장진지하고끈끈한애정이눅진하게녹아있다.

망설임으로써완성되는결단의역설
우리는누구라도삶의방향을결정해야할많은순간을필연적으로맞이하며살아간다.시인은삶의중요한일부인그순간들을‘길을걷는주체’의모습을통해시속에고스란히녹여내어새로이이끌어내고있다.이시집에서‘길’은삶을나타내는표상이다.그것은“누군가를만나야”(?열여섯,십이월,완월동?)하듯목적이있는외길이기도하지만,단순한양자택일의문제가아닌“만갈래로찢긴숲길”(?소를쫓다?)처럼다양한방향을고려해야하는갈림길로도나타난다.하지만시인이강조하고자하는것은그길자체가아니다.“쉽게선택하지않”고“마침내선택이완료되는순간까지지치지않고기꺼이갈등하겠다”(?시인의말?)며직접밝혔던것처럼,시인은선택직전의‘망설임의행위’에초점을두고자한다.
이시집에서는길위에,즉여러갈래의갈림길‘사이’에멈춰서서주변을둘러보고있는‘나와너’의이미지를곳곳에서만날수있다.그리고거기엔항상“부치지못한편지”(?달은간다?)를쥔,“손가락을펼수도구부릴수도없”(?별빛이찌른다?)는망설임이짝꿍처럼따라붙는다.어떤길을갈것인가에대한진중하고조심스러운태도가망설임속에서피어나는것이다.그래서이망설임은우유부단하고우물쭈물하는소극적인태도와는거리가멀다.우리의삶은단편적인것이아니라하나의선택이다음선택으로이어지는연속성을지닌것으로파악되어야하기에,고뇌하는망설임이야말로가장주체적이고결단력있는선택의자세임을역설한다고볼수있다.

점과점들이움직인다
점과점들이진행하고,정지하고좌우를둘러보고
다른점들과이어지는링크를껐다켠다
급선회하는지금이순간의너는흐릿한미래가오는길을
바꾸고,지나온길들의관성을끊고있다

자유그것은불확정에대한직시와옹호
너의길과그것의길은다르다
그것들의길은없다


안정과변화사이에서불꽃처럼번뜩이는선택의결과,
속도와순서는변화한다물풀처럼흔들리는수천의길들
여럿의너와여러겹의그것들이각각기록중인
느슨한점들이여,헛된연대여

끊임없이직면하는시야와사물들에부딪치고,깨뜨리고,젖히며빛나는바로지금
흐릿하게지워지는후행의흔적들
과거의선택들,타인의선택들,현재의시야와
개입하는타자들사이에서흐릿한배경속에서
점진적으로부각되는너

딱딱하고선명한이한점에붙들려
반투명의과거와
타인의미래가함께움직인다
_[동선(動線)]전문

“선택의결과”에따라“물풀처럼흔들리는수천의길”이또다시갈라지고,과거와현재의상황을통해앞으로의세계는“점진적으로부각”된다.이처럼‘미래’란타인과나의선택과영향에따라유기적으로변화하고구축되는복합적인관계망속에있다.선택의순간까지치열하게망설여야하는또다른이유이기도한것이다.망설임과삶의관계에대한진지한성찰의자세는이시집의대표시인?나보다는너를?을통해서도잘드러나고있다.

너는레몬나무처럼출렁인다
위와아래모두를향해눈을뜨는나무가있을까

너를생각하는게낫겠다
유연한가지를흔들며너는
미래를더듬는다
부풀어오르는고무풍선처럼
너는아무말이없지만

이건오늘의마음속에일어나는일
중간에그만두기어려운노래처럼
생각해보면좀쑥스러운이야기이지만

물결이라는게항상오고가는두겹의진동인것처럼
마음을멈추면유령처럼엄습하는문장이있다
손을내밀어흰꽃을매달아주고싶다

너는레몬나무처럼출렁인다
짧은표정이한쪽가지끝으로쏠리다가휘어진다
너와나의시간은반복속에있다
온곳을향하여끊임없이되돌아가는물결처럼

너를생각하는게낫겠다

나는이미손에흰거품을잔뜩묻혔다
여기저기의풍선들이각자의음을끌어올린다
_[나보다는너를]전문

“너”는“레몬나무처럼출렁”이며흔들릴수밖에없지만,그흔들림은자연스러운삶의과정이다.어떤나무라도“위와아래모두를향”하는것은불가능하다는존재의한계를지닌것처럼,하나의방향을선택해뻗어가기위해선“미래를더듬”으며충분히흔들리고망설여야만한다.또물결이“항상오고가는두겹의진동”이듯“시간은반복속에있”는것이긴하지만,갈등은“오늘의마음속에일어나는일”이므로현재를살아간다는건망설임의자세를유지하며끝없는선택지와싸우는일,바로그자체이다.그래서시인은망설임을나태함의증거로바라보지않고주체적인성찰의가치를지니도록시속에서새로운지위를부여하고있다.

닫힌세계에공극(空隙)의숨결을뚫다
이시집의주체는적극적으로망설이는신중한자세를발판삼아삶을더나은것으로만들기위해노력하지만,그삶이이루어지는세계가따뜻하고밝은것만은아니다.그곳은“뿌리가없”는상태라도굳세게버텨내야하는치열한공간으로나타난다.세계속의모든존재는“어느골목길”에서서비를맞으며“뺨을때리는냉기에맞서”야하는숙명속에서살아간다.(?빗소리든는다?)

나는골목안쪽에서태어났다
바깥을상상한순간이미
이탈은불가능한것이었다
눈앞의길위에서산것들이
태어나고죽어간다
잡풀의꼭대기에서바람은꽃을열고세상을열고
반드시다시닫는다
흔적은바람의의도가아니지만
쥐약을깨물고죽은우리개,밍크는
죽고나서도골목에서울고있었다
내가왜태어났느냐는
결국죽음이후의문제라고생각했다
_[가능한죽음]부분

“나는골목안쪽”이라는현실세계에서태어났으며,“골목안쪽”의반대되는곳인“바깥”으로의“이탈은불가능”한것으로처음부터결론이나있다.어차피벗어날수없다면그대로머물러야만한다.골목에서살아가기위해‘나’가치러야할갈등과투쟁은탄생했을때부터예정된수순이었다.그렇기에“태어나고죽어”갈때까지몸을의탁해야하는세계는그자체로고단하고가혹한것으로보이기도한다.그렇다면세계에갇힌주체는그무게를어떻게견뎌낼수있는가?이탈을꿈꾸는것외에닫힌세계에대한다른해법은정녕없는것인가?

진흙위에떨어진
빗방울처럼

빗방울을끌어안은
진흙더미처럼

냉담한네몸에
구멍을뚫고

그구멍을벼리어
내눈을뚫고
_[나와너]전문

그답은시집의곳곳에등장하는‘틈새’와‘구멍’의이미지에서찾을수있다.시인은밀폐된세계에“구멍을벼리어”놓음으로써결박되어살아가는이들에게숨통을틀어주고자한다.진흙더미에빗방울이떨어져둥그런구멍을뚫고진흙더미가그구멍을끌어안은것처럼,세계또한숨을쉴수있는“구멍을벼리어”그것을자신의일부로삼을수있다.“바깥을지향할수없다면내부를비우는방법을익혀야한다”(?해설?)는철학적해법이시의언어를통해전달되고있는것이다.
이처럼이시집은삶을인내하는주체의진실한망설임의자세와세계에대한냉철한해석,그리고그가능성을어두운심연에서건져올려우리앞에다양한모양으로펼쳐준다.가볍고자극적인이미지들이눈과귀를사로잡는오늘날,시인이풀어놓는진솔한이미지는진지한무게감을가지고묵직하게날아와절박한노크처럼메마른가슴을두드리고있다.이제잠시멈추어서서내세계의구멍은안녕한지,나의길을되짚으며다시망설여야할때다.

●표4글
노춘기의시앞에서‘왜?’라는질문은부질없다.영문도모른채햇빛은유리조각으로빛나고,별들이발아래에서치솟는다.흰턱을쳐든여자는나무위로솟구치고,수천개의손가락이숲밖을가리킨다.이유도없이비단잉어는어깨에서튀어나온다.그는기어코필연과결별하고결단코우연과접속한다.아니,그래보인다.현란해보이는이이미지들의촉수는사실처음부터같은곳을향해흔들리고있었다.나무뿌리를뽑았을때처럼어둠을품고있는거대한구멍.기억과역사도그곳에서뽑혀나왔을것이다.해골의눈구멍처럼기괴해보이지만정작그곳은자궁이자귀이자입이다.누군가태어나고어떤말이들리고그가말한다.‘그립다.얘야’,‘나를버리지마세요’.어느새우리삶의윤곽도황금빛으로녹아내린다.노춘기의시는최초의감정으로우리를인도한다.우리는그앞에서다시섬세하게공감하며연대하는방법을떠올린다.

_김종훈(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