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연서

너무 늦은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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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95년 제2회 실천신인상으로 등단한 문계봉 시인의 시집 『너무 늦은 연서』가 출간되었다. 문계봉 시인이 등단한 지 스무 해를 넘기고서야 그의 첫 시집이 실천시선 253으로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시집에는 ?너무 늦은 연서?를 포함한 68편의 시를 수록했다.
수록된 시들의 문체는 서정적이나, 담긴 신념은 올곧고 단단하다. 그의 시를 읽으면 어쩐지 윤동주나 한용운의 시가 떠오르는 까닭이다. 오랫동안 시집 출간이 미뤄진 것도 결코 다름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겸손하고 강직한 가치관에 기인했으리라. 그의 시는 부드럽지만 또한 강인하다.
시집에는 혼란한 세상에서의 투쟁과 역사, 연민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천시선 253 『너무 늦은 연서』는 문계봉 시인이 독자 혹은 세상에 보내는 ‘너무 늦은 연서(戀書)’이다.
저자

문계봉

저자문계봉은충남예산에서태어났지만이내인천으로올라온후줄곧인천에서살아왔다.연세대에서신학(전공)과국문학을공부했고중앙대대학원문예창작과에서「해방공간의사회주의문학운동연구」로석사학위를받았다.1995년제2회‘실천문학신인상’으로등단했다.

목차

제1부
자화상
그들만의공화국
다시잠못드는밤에
밤길
면회2
그는더이상진보적잡지를읽지않는다
성하(盛夏)
유혹
재기(再起)
그리움뒤에는무엇이남는가
원죄처럼아리고애인처럼절실한

체게바라평전을읽고
봄,이두려운
진혼곡조(鎭魂曲調)
4월,그날
광화문광장예술가텐트촌에서

제2부
불면
이풍진세상을위하여
가수승미
꿈꾸는낙타
봄비
비와함께흐르는늦봄의오후
실연한애인들을위한보고서
소나기
순명(順命)
10월
11월
12월
겨울비
동지(冬至)
교감(交感)
꽃샘추위,황사
죽음의얼굴
너무늦은연서(戀書)
상처
사라진마을
상련(相憐)
홍예문에서
신포동백제호텔커피숍
나는시방위험한짐승이다
기다림을기다리다
시간의틈새
그방에서보낸한철
사청사우(乍晴乍雨)
시간(時間)

제3부
마음으로듣는소리
가을앞에서
슬리퍼를돌려놓으며
어느볕좋은날
열꽃
저울
이른귀가
수돗물좀꼭꼭잠가주세요
무상(無常)
겨울,가족공원에서아버지를만나다
영별을위한짧은여행의기록
겨울그서늘한

제4부
낯선곳에서당신의안부를묻다
당신과조용히늙어가고싶습니다
당신의꽃밭
동화(同化)
만우절
불면
상강(霜降)
하찮은대화
한그리움이또다른그리움을찾아가는길
흐리고불안한저녁

해설김응교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시에신체의움직임이보이는흔적은온몸으로시를쓴다는증거다.온몸으로쓴시는한번만읽어서는안된다.문계봉의첫시집첫시에는신체의움직임이명확히나타난다.
시를읽는다는동사는눈만돌리는것이아니라,눈으로보고,뇌를움직여상상하고,냄새를떠올리는육체적반응을포함한다.“소힘줄같은고집”,“힘줄의탄력”,“허기만큼의높이”,“삶의게릴라”같은표현은그의글이모두철저하게온몸을통과하여나온다는것을보여준다.이글에나오는온몸의시학,가족공동체와같은연대의식,운명과싸우는혁명의자세,이세가지의힘줄이그의시를이루는근육이라할수있겠다.

영화배우이소룡을닮은날렵하고세련된얼굴에그의형색은“낭패도모르는/기다림속에서든든하게무장된/삶의게릴라”바로그모습이었다.거친야생마가아닐까싶었는데그는무척따스하다.그때나지금이나그는주도하기보다는먼저경청하려고애쓴다.그의시는그런넉넉함이묻어있다.
이시집의1부는역사변혁에참여했던여러군상들을그린시편이다.그는“모자위눈을털며숙소의불을켜는/블라디미르일리치레닌”(「다시잠못드는밤에」)을호명하고,“꿈을실현하기위해결사의실천을경주하는”(「체게바라평전을읽고」)체게바라를불러낸다.암담하고지루하고잔혹한시대에그는적을비판하기보다대부분함께했던어진이들을그리워한다.“해지는인천에서/해뜨는강릉으로/친구보러가는길”(「면회2」),“돌아오는동료들의잠든이마위로/가장밝은광주의밤별하나반짝내려와박힌다”(「그리움뒤에는무엇이남는가」)등,특히“도둑처럼찾아든그매정한물결너머로부표처럼떠다니는너희의마지막웃음소리”(「진혼곡조」)로상징되는세월호참사를추모하는연작시 「봄,이두려운」,「4월,그날」,「광화문광장예술가텐트촌에서」등은그가바라는것이싸움이전에애도와사랑의회복에있음을보여준다.그의시는관념적인구호나이념이아니라,생생한삶을드러낸다.그삶이늘사랑으로향하고있다는것은시집후반부인3부4부의시들에서잘볼수있다.

그때내맘에도
많은빛들이살았지
내쪽에서등을진빛
무심하게방치한빛
감당하지못하자
스스로나를떠난빛
잃은빛과잊힌빛
나를떠난빛사이에서자주현기증을느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때부터지금까지
단한번도나를떠나지않은채
나와함께빛나온
대견하고고마운빛
무뎌진그리움일망정
끝끝내지키고싶은
결코잃어서도안되고
잊을수도없는빛
또는빚,당신
―「너무늦은연서(戀書)」

많은이들이그를떠났지만“단한번도나를떠나지않은채”그와함께빛나온“대견하고고마운빛”은무엇일까.“결코잃어서도안되고/잊을수도없는빛”은빚으로환치(換置)된다.빛의고마움은그가스스로빛으로살아다른이들에게갚아야할빚인것이다.이시는이시집전체를감싸는주제로다가온다.

문계봉의시를읽을때릴케와비슷한간절한종교성이나내면의역사성이느껴진다.야만적인현실에저항했던문계봉의시가마치릴케의편지처럼읽히는경우가많기때문이다.제4부의시에는‘운유당(暈遊堂)서신’이라는부제가달려있다.“~습니다”체로쓴그의서간체산문시는정겹고따스하다.또한산문시는사라져가는것에대한아쉬움을간절하게응시하게한다.손으로쓰는편지가사라진시대에종이편지한편한편아프게읽은기분이다.

어리광부려볼데없이그의시들은대부분경건하다.시집을읽으면사랑을기도하는근육에힘이붙는듯했다.그의시는날랜솜씨를오래끓인누룽지맛에숨기고있다.그누룽지맛에는군중속의고독도어려있다.지난세월과일상생활그리고가족공동체와보이지않는그대에게무한한사랑을호소하는시인이문계봉이다.크낙하면서도나지막한사랑이있었기에그는현실문제에도괴로워하고끊임없이연대해왔을것이다.시를어루만지는그의손길이모든상처를회통(回通)하며널리널리퍼지기를희망한다.(김응교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