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만리 (정철훈 시집)

만주만리 (정철훈 시집)

$10.00
Description
정철훈의 신작 시집 『만주만리』. 2014년 4월부터 2017년 4월까지 3년에 걸친 내적 탐사의 산물이다. 우연히도 이 기간은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 해저에 침몰되었다가 극적으로 인양된 시간과 일치된다. 그러나 과연 우연일까. 침몰과 인양이라는 이 상대적이고도 양극화된 두 단어의 아우라는 시인의 기억 속에 가라앉은 앙금으로서의 이미지, 혹은 아버지 세대라는 선대(先代)의 과거사 속에 매몰된 시간에 대한 발굴과 그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니까 침몰과 인양 사이의 잃어버린 시간은 정철훈 시인에게 있어 역사의 매몰에서 발굴에 이르기까지의 또 다른 상실된 시간을 의미한다. 정철훈은 정밀하고 내밀한 탐사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시적 상상력으로 그 상실의 시간과 그 현재적 의미를 우리 삶의 지층에 불쑥 꺼내놓고 있다.
저자

정철훈

저자정철훈은1959년광주(光州)에서태어나1997년『창작과비평』에「백야」외5편을발표하며등단.시집『살고싶은아침』『내졸음에도사랑은떠도느냐』『개같은신념』『뻬쩨르부르그로가는마지막열차』『빛나는단도』,장편소설『인간의악보』『카인의정원』『소설김알렉산드라』『모든복은소년에게』,평전및탐사기『내가만난손창섭』『뒤집어져야문학이다』『감각의연금술』『소련은살아있다』『김알렉산드라평전』『옐찐과21세기러시아』등.

목차

제1부
심오한허공11
옌지(延吉)행14
내성적아침18
내손이면서내손이아닌22
머나먼헤이타이(黑台)25
미산(密山)행객차27
대성촌노큰마니30
1952년여름의옥수수밭34
헛강(鶴岡)의기적소리41
옌지(延吉)행침대버스44
손가락을잘라편지봉투에넣다46
베이다광장에서50
비내리는퉁화(通化)53

제2부
북창(北窓)59
멋진세상61
세상을놓는방식의골목길64
알마티사말33번지의밤66
뚜께에기대어69
어느무정부주의자를위한만가(輓歌)73
이별의마일리지81
견공(犬公)이라는당신83
냉동육이녹는동안85
빨강머리나타샤의노래87
백년만의출분(出奔)89

제3부
근황95
참쉽지요97
명함98
누수99
서재털기101
뒷고기103
학교에갑시다105
지구의가을107
어떤답장111
희미한의불멸113
북방115
내안에가라앉은주소117
빗방울은개별적이군119
모독121
내가구멍이다124
시신을두고밥을먹는다는것126
촛불의강128
탄핵김장을담그며129

제4부
후사(後事)133
춘천퇴골의아침134
산채를비비며136
한밤의토사물138
무심코140
방전142
천식과함께봄144
풀146
세상에서가장뜨거웠던사내148
미요나를놓치다150

시인의말155

출판사 서평

정철훈신작시집『만주만리』(실천문학사刊)

정철훈(58)의신작시집『만주만리』(실천문학사)는2014년4월부터2017년4월까지3년에걸친내적탐사의산물이다.우연히도이기간은세월호가진도앞바다맹골수도해저에침몰되었다가극적으로인양된시간과일치된다.그러나과연우연일까.
침몰과인양이라는이상대적이고도양극화된두단어의아우라는시인의기억속에가라앉은앙금으로서의이미지,혹은아버지세대라는선대(先代)의과거사속에매몰된시간에대한발굴과그궤적을같이하고있다.
그러니까침몰과인양사이의잃어버린시간은정철훈시인에게있어역사의매몰에서발굴에이르기까지의또다른상실된시간을의미한다.정철훈은정밀하고내밀한탐사정신을바탕으로한시적상상력으로그상실의시간과그현재적의미를우리삶의지층에불쑥꺼내놓고있다.

세월호선체가해저에가라앉아있던3년동안,나역시어떤침몰상태에있었다.부고가생활이되어버린느낌이다.생몰연대의괄호안에몰의연대를기입하는게일과처럼되어버렸다.괄호와괄호사이를넘나들며지난한과거사를복원하는일이내겐고통이자보람이기도하다.(‘시인의말’에서)

우선눈에띄는시편은‘만주만리’라는시집제목에서짐작할수있듯시인의백부와백모의자취가남아있는중국북만주(東北-둥베이)지역에대한연작시형식의시적탐사기일것이다.

헤이타이는내심상지도에서가장먼땅
그까까머리가살아있다면올해칠순이고
한번찢어진가슴은나이를먹지않는다

열세살손위지만형이라고부르고싶지않다
그가늙었다는걸믿고싶고않다
그는여전히옛주소지에살던
네댓살까까머리이다

버스에서내리다가중국아이의까까머리에
가만히손을대본다
아이야,나이같은건먹지마라
이건내손이면서내손이아니란다
(‘내손이면서내손이아닌’일부)

2016년7월,중국만주일대를찾아간시인은한국전쟁당시그곳으로피난을간백모의행방을탐문하다가백모를기억하고있는조선족할머니를극적으로만나당시의상황을청취한다.이녹취록은시로재구성되는데,한국전쟁당시북한공민들이만주까지피난을갔다는증언은매우희귀할뿐아니라그발자취를더듬어가는시인의내면또한내적분단상태를극복하고자열망으로가득차있다.

그때도여름이었을것이다
옥수수밭초입에이엉집이있었을테고
이엉집방한칸에세들어살던모자는
옥수수수염을따면서
남녘가족을떠올리며눈시울을붉혔을것이다

백모를본듯옥수수푸른잎을만지자
소스라치며뒤로물러서는것만같다
아무것도묻지말라는푸른색
아무말도하지않겠다는푸른색
옥수수는흙을움켜쥔채흔들리고있었다
(‘1952년여름의옥수수밭’일부)

뿐만아니라시인은지난3년동안선친의죽음과카자흐스탄알마티에거주하던둘째큰어머니의죽음,그리고역시알마티에거주하던둘째큰아버지의망명동지최국인의죽음에접하고조문객이되어그현장으로틈입한다.

서울-평양-알마티로상징되는세개의국경에몸을부비며디아스포라의애환을내문학의한지향이라고여겨왔으나요즘은그국경이란게지리적공간뿐만아니라죽음과배면을이루는생몰의국경으로다가오기도한다.(‘시인의말’에서)

이렇듯시인은탄생과죽음을표시하는생몰연대의괄호를스스로풀어내고그안에내재된진실과애환을추적하면서현대사의잃어버린공간과시간을복원하는일종의이야기시를1,2부를배치하고있는가하면,한존재의소시민적갈등과정서적소강(小康)을보여주는시편들을3,4부에배치하고있다.

여기는햇볕한점들지않는실내라오.오늘내가유난히바삭거림에대해생각하는것은손이며얼굴이얼구워질만큼추운실내때문만은아니라오.한장무릎담요를덮은채영하의온도를견디며앉아있는이냉혹한삶의포즈가상념의회로를작동시킨다는게아이티대지진후난민아이들의양식이되었다는진흙쿠키였다오.뜨거운햇살로구워져바삭거리는진흙쿠키말이오.바삭거린다는건외형이아니라내면의상태일터.주변의모든정서적습기를빨아들일준비가되어있다는민감함이전에없던바삭거림이라오.조금이라도습기가공급되지않으면갑자기타오르고마는과민성신경쇠약증말이오.바삭거림은언제라도자신을태울수있는불꽃을가진성냥과같소.아무도나의안부를묻지않는다해도오늘나의성취는이신경증적강박에의한바삭거림의획득에있소.내안에서낙엽한장말라가는소리가들려오오.그낙엽도외부에서온게아니라오래전부터내안에매달려있었던잎이었을뿐.바깥의소리를듣는데할애한한시대가끝나자한장뒹구는낙엽처럼내가무한한바삭거림이되었다는것.모든뉴스가하루밤사이에낡아버린다해도오늘나의뉴스는바삭거림의영원성이라오.(시‘근황’일부)

요즘내가좋아하는것은
사물이흐릿하게윤곽만보일뿐인
멍때리기라고써본다
쓰면서도멍때리기를한다

희미하게어긋나버린것들
어떤이별은그끝이잘생각나지않는다

가물가물한그이름
떠오르지않아새벽이오고
끝내모르겠다

한번비켜갔는데
왜포개져있는지
끝내모르겠다(시‘후사(後事)’전문)

유성호평론가는정철훈의최근시편에대해이렇게지적했다.

정철훈시인은자신이살아온시간을되새기면서그시간에대해자신만의고유한의미를부여해간다.그시간이남긴무늬야말로시인의직접적인삶의표지일터이고서정시가내장하는가장중요한내질(內質)이되어간다.그점에서정철훈시편은‘시간예술’로서의속성을강하게구비하면서,그누구도다닿기힘든삶의페이소스를음미하게끔해준다.이순을앞에둔정철훈시편의개화다.(유성호,‘이달의문제작-어느세대의기억과고백들’[문학사상],2016년5월호)

헤겔의말을빌리자면삶은두번반복된다.정철훈의이번시집은이명제를상징적으로보여준다.한번은그것을살아낸사람에의해,그리고또한번은그삶을규명하려는시간여행자에의해.시인은이러한정황을월트휘트먼의시구에빗대어이렇게토로하고있다.

시의피.어쩌면내첫기억이라고할어떤혀가시의피를묻혀나를핥았을지도모른다.나는그혀가월트휘트먼(WaltWhitman)이「나자신의노래(SongofMyself)」에서“네혀로부터멈춘것들을풀어내어라”고노래한‘혀’라고생각한다.하지만아버지의동시가많은아이들에의해불리고있는것과달리나의시는노래가되지못한다.노래가되지못하고,불리지않는시를써야한다는게내겐어느정도가혹한일이다.하지만그혹독함이내문학을움직이는아름다운동력임을알고있다.(‘시인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