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 빈칸으로 (지연 시집)

건너와 빈칸으로 (지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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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3년 《시산맥》 신인상으로 등단한 지연 시인의 [건너와 빈칸으로]가 24번째 실천문학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상상적 초월에 이른 60편의 주옥같은 시가 실렸다.
[건너와 빈칸으로]는 묵음의 발화를 통해 타자화를 통한 자기 탄생의 계기를 능숙하게 포착한다. 새로운 존재의 나타남을 탄생이라고 할 때, 지연 시인에게 그 존재는 이전에 없던 것이라기보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탄생의 후폭풍을 재치 있는 상상적 서사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지연 시인의 독자성이 드러난다. [건너와 빈칸으로]는 “죽어서나 앞모습으로 사는”(이편의 식사) 우리들에게 던져진 새로운 질문이다.
저자

지연

1971년전북임실에서태어났다.2013년《시산맥》신인상으로등단했고,2016년《무등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었다.제15회시흥문학상을수상했으며2018전북문화관광재단문예진흥기금을수혜했다.

목차

제1부

무인택배함
배웅
빈칸
환풍기
투각(透刻)
이편의식사
구름의서쪽
자개농에발자국을끊으며들어가겠어
바람바이러스
수풍의돌림노래
참새걸음으로비가오는데
항아리속에떠다니는밥알처럼
달이따라온다
줄노트에대한기억
털레털레

제2부

당신이내내전화를받지않아
안녕,한때의별
B의터널
친절한금자씨2018
풍선이부푸는시간
환(還)
비상구
딱지들은우체통에간다
조용한아침
안개저장고
플레이밍
뿌리꽃
봄이되면누가나를
자작나무그늘에이불을깔다
옥수수대궁에앉아시집을읽으면

제3부

심심한위로가필요해
저수지를취하다
나팔꽃묵주를보다
안녕을공유합니다
소리를감는찔레꽃
귀가목련으로떨어지는밤
피에로와꽃새
봄에따시끼가피다
비의샤우팅
검지에핀으아리꽃
여뀌꽃이걸어오는시간
수박씨뱉어내듯비가내리고
가을이면
함박눈오던날
실뱀에관하여

제4부

본적(本籍)
비가오고이팝꽃이떨어지고진흙이흘러내리고
벚꽃은산부인과진료중
가벽(假壁)
안녕!오다
여기가아니다
뱀장어
친정가족은오후세시같아서
그러나사과는꽃관을준비하고
오후의입장
무릎을그러모으고
접시꽃CCTV
창밖에눈사람이있어
폐경
이별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지연시인은모르지않는것을묻는일에남다른언어감각을발휘한다.거듭말하지만,아는것을묻는것이아니라모르지않는것을묻는일이다.아는것과모르지않는것의차이는명백하다.아는것은보편적앎으로,나를포함한세계가모두알고있다.모르지않는것은개별적인것으로,그주체는유일하다.오직질문하는자만이모르지않을뿐,나머지는모르는것이다.지연시인의시적질문이모르지않는것을내용으로삼는다고한다면,거기에는타자의모름이전제되어있으며,지연시인의시는그모름을앎으로발견하는경이의순간을준비하고있음에틀림없다.

불이꺼졌어사람들이팝콘을씹으며웃고있어
오사삼바삭,다시
오초의시간이부푸는동안야광문이열렸어
나는비상구속에서영화를봤어

동네어귀의대문들이눈을감고있었어나도따라눈을감고더듬었어파충류등을피해서문고리에손을넣었어울퉁불퉁한정글침묵이나를집어삼켰어바람이나를덜컹이게했어맹렬하게비가내렸어나는문을찾지못하고진흙에빠진초록토끼높이뛰기하는비에게뛰어갔어열려있어도나는늘갇혀있나생각하면서닫혀있어도열려있는웅덩이를찰방밟았어

바삭,나를깨무는팝콘소리
―?비상구?전문

모든발견의순간은캄캄한어둠이배경으로놓일때극적효과를만들어낸다.이때어둠은빛이부재하는자연법칙의형식속에서완성되지만,상징적인의미에서어둠은인간이성과감성의상실상태를말하는경우가많다.신화에서알수있듯,지금까지인간이상상해낸거의모든종류의서사가어둠과맞선인간의이성과감성의투쟁이었다는사실은어둠이야말로모든극적드라마의산실임을증명한다.문학도예외가될수없다.시는(무)의식의블랙아웃상태에놓인우리들에게어둠을관통하게해줌으로써새로운사태와사건을발견하고그세계로진입하게한다.따라서시?비상구?에서우리가읽어내야할것은어둠의실체가아니라그어둠에은폐되어있는새로운사태의징후이다.징후는언제나발견되기를기다리는경이이고,징후는발견하는자를언제나새로운사태속으로견인해가는형식이다.‘비상구’는그와같은무수한징후가운데하나이다.
시?비상구?는“불이꺼”지는순간존재하기시작한다.그런데그순간에새롭게발견되는것이또있다.“바삭”거리는소리다.화자는불이꺼지는순간시각적존재에서청각적존재로개체의성질을옮겨간다.이러한변화는어둠을대하는인간존재의투쟁방식이다.이과정에서화자는어둠에서만존재론적위상을확보하는“야광문이열”리는것을보게되고,“비상구”라는새로운시각적존재가능성을발견하게된다.이와같은방식으로1연은(외부의압력에의한)시각상실→(내적필요에따른)청각작동→(다른존재형식을지닌)새로운시각획득이라는다소변형된형태의변증법적인식을보여주는데,그렇게해서탄생하게된새로운시각내용이2연의서사를이룬다.따라서‘비상구’라는‘야광문’적시각에포착된2연의내용은상실되기이전의시각으로바라본일상세계와다를수밖에없다.많은경우2연의세계를환상이나기이함같은용어로담아내려하지만,지연시인은그상황을“타자의부름”(?참새걸음으로비가오는데?)으로환기해낸다.중요한것은‘타자’가다른존재형식을지닌자기(I-Self)라는사실이다.아이-셀프(I-Self)로서의자기는자기(self)를스스로타자화할때도달하게되는극복된존재이며,자기(self)에게서발견해낸현실초과적인상태로서의존재이다.그런의미에서어둠속에서시각을상실한자기가‘비상구’를통해새롭게발견한시각적존재를지연시인은‘타자’라고부른다.발견된타자는언제나도래하지않는가능성이자곧도래할징후가된다.?비상구?에서그징후는3연“바삭,나를깨무는팝콘소리”를통해분명하게돌출되는데,알다시피‘나를깨무는’일이란시각상실의자기가타자로갱신되는순간과다르지않다.(문신,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