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밤을 열면서

밤은 밤을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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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02년 《문학과 의식》에 시가, 2013년 《작가세계》에 평론이 당선되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해 온 권성훈 시인이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를 출간했다. ?배꼽?을 비롯한 5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이번 시집에서는 방민호 평론가의 표현대로 “사물을 읽는 몸”의 언어들이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롭고 촘촘하게 펼쳐진다. 시인은 자신의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물상)들로부터 삶의 단서들을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독자들 앞에 제시한다. 권성훈은 사물 겉으로 보이는 상식의 외간을 벗기고 적나라한 삶의 ‘비밀’과 ‘실상’을 우리 앞에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권성훈의 이번 시집은 세상 보잘것없는 것들이 펼치는 치열한 전복(顚覆)의 몸부림을 빼곡히 기록한 필사(筆寫)라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저자

권성훈

2000년『문학과의식』에시,2013년『작가세계』에평론이당선되었다.시집『유씨목공소』외2권과저서『시치료의이론과실제』,『폭력적타자와분열하는주체들』,『정신분석시인의얼굴』,『현대시미학산책』,『현대시조의도그마너머』,편저『이렇게읽었다―설악무산조오현한글선시』등을냈다.2018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상작가로선정되었다.

목차

제1부
발톱
슬픔의문장
유쾌한치킨
배꼽의각도
오늘병동
골방엽서
음력2월30일
남은이유
한길순대
감자탕
팬티스타킹
붉은습관
지퍼행간
보리살타돼지
꽃피는복날

제2부
바퀴의환승
수상한테라스
뒤쪽이앞쪽에게
골반의바깥
안전핀
단추
21세기형십계명
내비의눈물
네네
그래서환생
늪의킬로미터
짝짝이그림
발로만출애굽
변기

제3부
사시들
폭염주의보
철수세미
스티로폼
새사람
아하, 역돔
황태덕장
당신은시뮬라크르
드럼세탁기
모서리
나사
휴지에게사랑을배울때
하루도책상같이
치명적그루
조금, 만이라는

제4부
흡반별
정직한사각
혀의반성

한번도
봄날견인되다
더와다
시월
이상한개나리
폐차
자화상
손잡이
대충(大蟲)
가닿고싶은것과와닿을수없는것
닻과돛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권성훈의시에는자본주의시대에넘쳐나는물성(物性)과피내음이짙게배어나는데,특히우리가일상에서흔히마주할수있는장면들에주목함으로써삶의모순과부조리함을그만의방식으로그려낸다.

살아서입지못하는황홀한옷한벌
저승가는길을꼼꼼히재단해
이제야나를위해떳떳하게나를입어보는것
스스로입지못하는생애의끝한벌입는거야
매일같이시작되는하루를내손으로갈아입지만
벗었던세월만큼주름진길
그길을세상밖에서지우는화려한복화술
거울의눈치를살폈던관절마디를섞어서
내가안보일때까지나를반죽해줘
손댈수없을때까지후끈달구어지면
내몸도이렇게눈부신뜨거움을가지고있을줄이야
―「유쾌한치킨」부분

「유쾌한치킨」은한국인이가장선호하는음식의하나인‘치킨’으로써인간삶의야만성을찔러댄다.이시의화자는알몸으로튀겨져인간들의식탁위에올려질치킨인데,인간들의무지막지한탐식욕의희생양이되어지상에서의짧은삶을마감하게된치킨의마지막반어적야유,“내몸도이렇게눈부신뜨거움을가지고있을줄이야”라는말은자본주의시대속인간의단말마처럼여겨져서섬뜩함을안겨준다.

철수세미는사물을읽는몸이다.

철수가손을쓸때입을여는세미
거칠거칠한손은입보다가볍게
얽히고설킨입은손보다무겁게
철수세미의익숙한수화로
저녁에붙은반점을닦아낸다.
꽉다문벙어리저린가슴에서
웅크린윤기가뽀드득뽀드득빠져나온다.
궁금증의뒤꿈치를내려놓으며
소금기빠진밤이달팽이처럼지나간다.

발디딜틈없이비릿한하수구에들어찬다.

바람이드나드는맨얼굴로
아미타불빛나는철수세미
능청스럽게도너무아프게붙어있다.
―「철수세미」전문

이병든세계의일상을,철수세미처럼사물들을몸으로겪어가듯살아가는시인의생활은버라이어티로넘치면서도위태롭다.일개소시민으로살아가는그는언제나굴신과굴욕을감수해야하고,사랑을원하지만미움과질시가들끓는거리의삶에서벗어날수없다.웃음,야유와유머로세계를견뎌나가려하지만하루하루의삶은‘견고한’오물들을닦아내느라철수세미의몸뚱이가해져버리듯피투성이가된몸과마음으로얼룩져간다.
『밤은밤을열면서』는이처럼지금세계가병들어있음을뼈아프게느끼며자신의삶을질료삼아몸으로겪어나가는한시인의정신적풍경의기록이라할수있다.그는자신의삶주변에널린사물들,물상들속에서그것들의외관,그것들이피워내는냄새,그것들의황폐한존재방식으로부터자신이살아가며견뎌내는세계를처절하게인식하며,맞부딪혀나아간다.그처절한인식과항거의몸짓이바로이시집의제목‘밤은밤을열면서’와일맥상통하며닿아있다.

다음생애좋은곳에서태어나라

십년살다바다에묻은그애도그랬다

울음소리수리도않은채도로를넘나들며

녹슨바람에이는사월파도를태우는

밤은밤을열면서떠돌아다녔다
―「폐차」전문

「폐차」라는시에서보듯‘밤’이‘아침’을여는것이아니라‘밤’이‘밤’을연다는표현에우리는주목해야할것이다.오늘의밤은비록암흑뿐일지라도,병(病)투성이일지라도내일의밤은오늘과다르게열겠다는다짐,의지,그리고기대.권성훈시인은그간절한희원(希願)을이번시집에녹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