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일지 (옥빈 시집)

업무일지 (옥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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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1993년 계간 《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옥빈 시인의 시집 『업무일지』가 출간됐다. 1부「출근」, 2부「점심시간」, 3부「출장」, 4부「퇴근」의 각 冒頭 시를 포함하여 출근하여 업무현장에서 공구와 기계들과 함께하고 퇴근하는 ‘업무일지’ 형식의 총 6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권덕하 시인은 해설에서 ‘도구와 기계의 원리와 시인의 감정과 마음의 이치가 잘 결합된 시가 일리 있는 삶을 증언한다. 노동 현장의 애환, 노동의 가치와 의미, 공구와 기계와 오래 사귄 이야기가 서정적으로 전개되는 그의 시집은 일과 명상이 함께하는 품격을 지닌다.’고 평하고 있다. 시인 또한 시인의 말에서 ‘이번 시집 『업무일지』는 그동안 써왔던 노동현장의 공구나 장비들, 노동자들에 대한 몇몇 서정을 묶었다.’고 밝히고 있다. 독자들은 이 시집의 표면에서는 면장갑-안전화-작업복-전기모터-베어링-커넥팅로드-수나사암나사-망치-줄자-파이프렌치-드라이버-수평자-가위-공기압축기-스패너 등의 작업 공구나 연장을, 오버홀-도비공-도장(塗裝)-머시닝센터 같은 작업공정(工程)을 만날 것이고 내면에서는 시인의 삶과 공구와 업무가 서로 하나로 연결되고 소통되는 숨결을 느낄 것이다.
저자

옥빈

충남계룡시에서태어나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기계과를졸업하고거제도의대우조선에입사하여7년간근무했다.현재대전에서기계장비를판매,설치하는자영업을하고있다.1993년계간《문학세계》신인상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그대가슴까지깊게물들이겠어요』,『흔들렸던추억은아름답다』가있다.대전광역시장문학부문공로상,정훈문학작품상,한국생활문학작품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출근
문서파쇄기통을비우며
아침회의
생산성향상에대하여
견적서를보내며
폭염주의보
기계점검
공空친날
사무실어항에는
배관공사
소나기
오버홀
눈사람발주사양서
노하우
도장塗裝

제2부

점심시간
면장갑
체크밸브
윤활유

전기모터
베어링을갈며
커넥팅로드
도비공
수나사암나사
안전화
작업복
전화기
카달로그
밥집

제3부

출장
저울
사다리
망치
줄자
파이프렌치
드라이버
수평자
연장
가위
머시닝센터
공구함
공기압축기
트럭
스패너
졸음쉼터에서

제4부

퇴근
못의말들
용접아다리
고철장
가계부
해장
늦은저녁
은행
문자메시지
감기몸살
야유회
월급
호미
지게차의기도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옥빈의시는우리생활에긴요하지만우리가잊고사는존재자들과사귄내력을밝힌‘교우록’이다.기계와인연이깊은옥빈시인이공구와기계장비와부품에주목하고거기에서그원리와쓰임새에따라의미를발견할때,기계는유의미한본래성을회복한다.시를통해기계부품하나하나가힘을정확하게전달하고규칙적으로실현하는원리와연결된생활의순리를노래하며,시인은공구나기계장비나부품들의존재에서생활을지속가능하게하는힘을드러낸다.그러한도구의활동을통해물질적으로현현하는세계는사뭇구체적이고선명하다.시인은공구와기계장비와기계부품들과따뜻한대화를나누며세상살이의원리와살림살이의이치를함께구현하고맥락을설정하는일에공감하고서로를긍정하며고개를끄덕인다.
시인은오랫동안사물과사귀면서소통한결과사물의말을자기식으로알아듣고받아적을수있게되었다.사물도다른존재자들처럼자신을표현하고있는데,시인은이런사물의표현에주목하여그표현의의미를알아채고자신의삶을연결한다.시는이렇게사물과시인이만나서이루는상호표현적관계의결실이다.

손잡이가달린철막대가전부다
참보잘것없고소박하다
십자나일자더하거나빼는일
이미정해진길이지만
늘무언가에쫓기며살아온것처럼
일의끝머리에서
마지막부품을조이거나커버를덮으며
다시는나사풀리는날이오지않기를
흔들리는날이오지않기를바란다
필요한곳에서나는
큰힘을내려는것이아니라
큰일을해내고싶은것이다
각기다른부품이나기능이
하나의목적을위해만들어지는
그곳에동참을하고싶은것이다
기계문명의기초였던나는
지금도소리없이일하고있다
격렬하거나창조적이지는못하지만
꾸준히풀고조이던날들
어느새멋진가계家計를만들어놓았다
(「드라이버」,전문)

“필요한곳에서나는/큰힘을내려는것이아니라/큰일을해내고싶은것이다”라고시인은드라이버의존재를밝힌다.비록드라이버가‘보잘것없고소박’하고‘큰힘’을내지는않지만,적재적소에서제힘을온전히발휘하여나사를제대로조일때‘큰일’을해낼수있다는것을체득하고있는시적진술에공감하며도구의존재감과힘과아름다움을새삼느낀다.

문이열리면다시돌아갈수없다고향은늘아득하다

먼길을흘러오는동안그는골목길과대로사이에서방황했다

청춘은돌아갈수없기에아름다운것,과거는추억으로흐르고,때가되면그리움으로물결친다

선택된길이란살아갈날들의풍경을그리는일이다

살아남기위해바람의방향과물줄기를꼭그려야한다

물과공기의사용량만큼그가화첩속에빛의방향을남기고있다돌아갈수없는출발선을그리고있다
(「체크밸브」,전문)

시인은시‘체크밸브’를통해삶의이치를말한다.시인의설명에따르면체크밸브(checkvalve)는“유체의흐름이역방향으로일어날때닫혀역류를막는밸브.유체가한쪽으로만흐르도록만든장치”다.이러한장치는우리의삶의원리를함축하고있다.역류를막는체크밸브는돌이킬수없는시간적존재의삶을체현한다.시간으로구성된우리가매순간을살면서지나간순간을물리적으로돌이킬수없다는실존의현실을시는표현하고있다.

축의중심을잡는일이나
안아주고지탱해주는하우징처럼
사랑의시작은뭉클하다

틈새가벌어지는일
둥글게부대끼며사는동안
닳아진볼처럼
사랑도나이를먹는다

속이거북해진날들이더해가며
토해내었던각혈처럼
사랑도아플때가있다

축에베어링을맞추고
하우징을조립한다
이몸살같은사랑을
다시시작해야겠다
(「베어링을갈며」,전문)

시인이기계부품에서의미를발견하고그것을우리삶의원리와연결하여맥락을설정한다.우리는사실을해석하고우리가사실에부여한의미의세계에서살아간다.우리는외부로부터주어진의미를수용하기도하지만스스로발견한의미를더욱소중하게여긴다.기계부품을삶을은유하고환유하는존재자로여길때,곧기계와일을할때자신과일을분리하지않고일을하면서협력하는존재자와하나가되는일은의미의원천인인간의정신적현실을물질적으로체험하고공감하는것이다.

저기서여기까지
처음부터결정된것은아니었다
어쩌다여기까지흘러왔는지힘들었던삶의추억이자꾸나를울렸다
공고를졸업할무렵미래는잴수없는불안이었다
그렇게팽개쳐진날들은독서처럼조용했고,내가방관했던세상은너무도빠르게흘렀다
여기까지기록할역사가너무빈약하다
빼앗긴자유와희망의눈금은보이지않았다
다시시작하자

여기서저기까지
알맞은자리저만치안개의강이흐른다
꽃이피었다가지는강둑을따라내인생의그래프는자주반복주기를갖는다
미래는그렇게먼거리가아니었다
내가풀어놓았던저기까지의일들을방관할수없다꼼꼼하게눈금을읽어야한다
하루가너무빠르다
저기까지기록할이력은짧지만나는전문가다
아름다운추억의거리를재야겠다
(「줄자」,전문)

시인은자신의삶을반추하면서숱한일들이이어져‘저기서여기’에이른개인사적현실이곧삶이라는것을깨닫는다.그는구체적인개인이겪은단한번뿐인순간의현실을서사적으로구성하기보다는우선‘줄자’를써서재봐야할추억으로여긴다.“저기에서여기까지”를되새기면서여기에이른내력을되짚어보고,비록“빼앗긴자유와희망의눈금이보이질”않지만자신을다독이며“꼼꼼하게눈금을”읽고“다시시작하자”는시인의마음가짐이가슴을울린다.“힘들었던삶의추억이자꾸나를울렸”던삶의여백과시의행간에는삶에대한책임감이짙게배어있다.
옥빈의시를읽을때일과직결된시는아름답고,시와직결된일은참되다는것을새삼공감한다.공구를쓰고장비를다루고여럿이함께일하며느끼는경험을온전히전달하며뜻을불리는일에부지런한시인은보이지않는마음의움직임이잇달아이어져여기에이르는정황을몸으로기억하고거기에이름을붙인다.공구와기계장비를다루고도면을보고설비를살피고부품을교환하는일을통해삶의기술과원리를그는터득한다.일하며느끼는감정과생각이땀방울처럼맺힐때일에깃든의미를시인은되새긴다.일을통해시인은세계를깊이체험하고,자신의의지를관철시켜달성한결과를확인할때보람을느끼고,그렇게체험한바는의미있는기억으로몸에깃든다는것을안다.생생한체험이남긴인상적인기억들이언어화되고뜻을불릴때삶의원리와의미를체험하고공감하는일이생기며그런정동과의미의맥락이반복되면서새로운의미가생성된다.그렇게일터에서체득한의미와가치의맥락에서형성된경험이무의식과연결되어새로운맥락을창출하고삶에만족감을높인다는것을이시집은증명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