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산다 (성영희 시집)

귀로 산다 (성영희 시집)

$10.00
Description
201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성영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귀로 산다』가 출간됐다. 좋은 시는 책에 갇혀 있지않는다.성영희 시인은 섬세하고도 우직한 시선을 견지하며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힘을 시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시를 읽으면 시 속 사물들이나 사람들이 손발을 움직이며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그의 시편에서는 파도 속 미역귀(「미역귀」)도, 공중 위의 페인트공(「페인트공」)도, 하역장의 나무들(「나무들의 외래어」)도, 몸통 절반이 잘려나간 지렁이 (「환지통」)도 온통 살아서 꿈틀거린다. “없는 발목이 가려워 자꾸 발을 뒤척이는 것처럼/꿈틀거리는 모습이 필생을 건 사투다“라는 문장에서 보듯, 성실하고도 날카로운 은유를 통해 그만의 시적 미학을 축조해 낸다. 만물의 치열한 고투(苦鬪)에 촉수를 곤두세운 시인은 마치 “어제 죽은 이의 사리를 계단에 펼쳐놓고 내일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헹구는 도비왈라”(「여름 궁전」)처럼, 폐허를 두들겨 흰 바람 펄럭이는 궁전으로 완성해 내고 있다.
저자

성영희

충남태안출생.2017년《경인일보》신춘문예와《대전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등단했다.시집으로『섬,생을물질하다』가있다.2014년제12회동서문학상을2015년농어촌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미역귀
연장의공식
여름궁전
아름다운대칭

꽃무릇
겨울숲
창문이발끈,

먼지의계보
아귀
의중
각오의삼색

제2부
우물우물맛있나요
이동만물상
씨앗의학습시간
칠월을순지르다
호미를걸며
잘생긴웃음
석양증후군
지붕문서
구들장
햇살핫팩
소반
빼앗긴옷
말표고무장화

제3부
페인트공
나무들의외래어
거미의생존방식
굴러야살지
환지통
하루살이
고사목
좁교
딱정벌레들
바닷속우체국
족족붙어있는자산어보
오동집
회귀보고에관한진정서

제4부
깃발
돌을웃기다
셔틀콕
여자만
연대를옮겨피다
해녀들
꿈틀,
여주
찬물
탁본
향일암
정점
가을길들이기
방민호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미역은귀로산다
바위를파고듣는미역줄기들
견내량세찬물길에소용돌이로붙어살다가
12첩반상에진수(珍羞)로올려졌다고했던가
깜깜한청력으로도파도처럼일어서는돌의꽃
귀로자생하는유연한물살은
해초들의텃밭아닐까
미역을따고나면바위는한동안난청을앓는다
돌의포자인가,
물의갈기인가,움켜쥔귀를놓으면
어지러운소리들은수면위로올라와
물결이된다
파도가지날때마다

온몸으로흘려쓰는해초들의수중악보
흘려쓴음표라고함부로고쳐부르지마라
얇고가느다란음파로도춤을추는
물의하체다
저깊은곳으로부터헤엄쳐온물의후음이
긴파도를펼치는시간
잠에서깬귀들이쫑긋쫑긋햇살을읽는다
물결을말리면저런모양이될까
햇살을만나면야멸치게물의뼈를버리는
바짝마른파도한뭇
-「미역귀」전문

추천사를쓴이정록시인의표현대로모름지기시는“삶을듣는귀”일진대,그것을가장잘구현한시가바로이시집표제작인「미역귀」일것이다.
“시의눈길과발길은,평정을잃고우는만물을달래어집으로데려간다.길은모두집에서나와집으로간다.자궁이란집에서유택이란집까지순환한다.시의길은소리의길이다.길은귀로산다.시인은한손으로손차양을하고,또한손으로귓바퀴를키워씨앗속새싹의소리까지듣는다.시는삶을듣는귀다.살림의시는‘바위를파고’바위가슴에귀를새긴다.귀는모두물결모양이다.마음을찾아가는오래된길같다.성영희시는귓바퀴의물결무늬를닮았다.”(이정록시인)
아기처럼자꾸뒷걸음치는어머니
잇몸뿐인저입에
나의빈젖을물리고싶어요
-「우물우물맛있나요」부분

중장비의괴력없이도지어지는
꽃들은이미씨앗에서부터학습받은
저희들만의설계도가있습니다
엽전을닮은접시꽃씨앗
그한알의낱알에서
우렁우렁학습소리들립니다
-「씨앗의학습시간」부분

누군가버드나무가지를꺾어땅에힘껏찔러넣어
자국도없이박혔다면
그속에서는뿌리가다시파랗고
우거진틈을내펼치고있는것이겠다
무심코던진돌멩이도
물보라를덜어낸다음에
그깊이로가라앉는다
벽에걸린겨울외투의의중이
나른한창밖을내다보는봄날오후
위층에서간헐적으로못박는소리가난다
삐걱거리는속내도아랑곳없이
시계초침은쉬지않고톡톡
휴일오후를박고있다.
무엇이든잘들어가지않을때는
그의중을물어살살
돌려줄것
-「의중」부분

가문밭에서는오이도비틀어진다.시든줄기끝에서꿈틀,몸한번틀었을뿐인데볕은순간을굳힌다.채소들이웅크리거나휘어진것은모두물을찾는몸부림일것이다.일직선인밭고랑도자세히보면물이많은쪽으로휘어져있다.
봄에로터리를치는트랙터도물의방향으로살짝방향키가돌았을것이다.휘어진꽃은없는데열매들이저렇게휘어진것은비틀리면서떨어진꽃의갈증을기억하기때문아닐까
휘어진열매와비틀어진채소들,아무도돌아보지않을때고랑은제물기를모아젖을물린다.그밭에서평생을보낸어머니도허리가휘어져있다.우주가꿈틀,휘어진것들로은혜를거둬들이고휘어진것들로뭉클하게한다.
-「꿈틀,」전문

정많고근심많은성영희시인은이시집에수록된여러시들을통하여어머니와아버지,소청도로돌아간친구같이정든사람들과삶의일상에서추출한보이지않는,그러나동시에보이고읽히고들리는사람들,물상들에대한사랑과관심과배려를노래했다.
특히「꿈틀,」이라는시편에는이러한시인의가치의식이자연적인물상들과인간과우주를하나로통합하는드넓으면서도날카로운은유적상상력에힘입어응집되어있다.이시에나오는물상들은오이부터,밭고랑도,어머니의허리도모두“휘어져있다.”그리고이휘어짐에는“볕”의기억이,그응집이,생명이살아있음을지켜내기위해몸을한번“꿈틀”하고뒤채인몸부림의흔적이기록되어있다.
시인은‘저자의말’을통해“보이지않는것/들리지않는것/만져지지않는것들이/문득문득시를데려왔다”고적고있다.이는곧타인에게는보이지도들리지도만져지지도않는것들이시인에게는고스란히보이고들리고만져졌다는말이기도하다.성영희의시세계가더욱미덥고따뜻하게여겨지는이유가바로여기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