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를 쬐다 (윤이산 시집)

물소리를 쬐다 (윤이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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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09년 《영주일보》로 등단하며 “탁월한 시적 상상력”을 가진 신인으로 호평받은 윤이산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저무는 것 앞에 서면/다 내려놓고 엎드리고 싶어진다/아귀힘 풀고 무조건 다 져 주고 싶어진다//(중략)//오늘도 수굿이 해가 진다/그러라고 하루 한 번 해도 져 준다”(「저녁의 높이」)라는 구절에서 보듯 윤이산은 저물어 가는 것, 고통 속에 있는 것, “땅속에서 캄캄하게 울었을”(「감자를 먹습니다」) 대상들을 향해 지극한 시선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가만-스승」이란 시를 보면 “모두 우르르 몰려나간 뒤, 불 끄고 문 닫고 돌아서는 맨 나중 사람의 가만한 손놀림처럼 비가 온다 가만 다녀가는 이 겨울비가 ‘첫’을 불러오고 싹을 틔우고 애채를 키울 것이다”(「가만-스승」)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처럼 시인 윤이산은 ‘애채’(나무에 새로 돋은 가지)를 키울 ‘맨 나중 사람의 얼굴’을 자처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시집을 접하는 독자들은 김기택 시인의 표현처럼 “고통을 제련시킨 정신의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해설을 쓴 권성훈 평론가는 윤이산의 시집이 “관습화된 지각을 거부하고 남다른 감각으로 세계를 해학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손은 손목을 잡을 수 없고/이마는 뒤통수를 지킬 수 없고/오른 눈알은 왼 눈알을 보지 못하는//(중략)//온몸이 혀인 안개지대는/표지판이 없다”(「안개지대-일탈」)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윤이산의 시편들은 사물과 세계가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라는 현상이 아니라 어떻게 ‘보여 주지 않고 있는가’라는 반대적 의식에서 비롯된다. 즉 묵은 관습을 벗겨내어 그 안에 있는 근원적 세계, 즉 존재론적인 것을 즉물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같은 손의 손등은 손바닥을 잡을 수 없고, 이마는 뒤통수를 볼 수 없고, 오른쪽 눈은 왼쪽 눈을 보지 못한다. 바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로 뒤덮인 이 세계는 있음으로 없고, 없음으로 있는 ‘안개지대’가 아니냐고, 시인 윤이산은 58편의 시를 통해 세계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게 한다.
저자

윤이산

경북경주출생.2009년《영주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응시’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아무렴ㅣ별ㅣ간격ㅣ문득,생각나서ㅣ올라타다
필터링ㅣ슬쩍,받쳐주다ㅣ여량에서구절까지ㅣ선물
조연들ㅣ노을ㅣ칼맛ㅣ저녁의높이ㅣ쉰아홉ㅣ식구

제2부
큼지막한호주머니ㅣ선인장과도둑ㅣ봄날ㅣ오래된둘레
간보다ㅣ내장탕한그릇ㅣ늘봄ㅣ구름의방감자를먹습니다
조력ㅣ내게로온설렘ㅣ부부ㅣ무조건ㅣ욕지ㅣ여근곡

제3부
물소리를쬐다ㅣ배알을빼버리다ㅣ지금,여기
아무도꺼내가지않는ㅣ관성ㅣ절친죽이기프로젝트
방심ㅣ퀵배송된‘제수씨와젖통?의카톡ㅣ내가만난부처
과욕ㅣ길ㅣ보따리장수와의자ㅣ똥심ㅣ상강(霜降)

제4부
벗ㅣ오래된실패ㅣ안개지대ㅣ즐거운,질주ㅣ러닝메이트
대리인ㅣ등뒤ㅣ오른짝이아쉽다ㅣ일루젼(Illusion)
미안해요산초나무ㅣ그바다에다시,서다ㅣ내리막길
링반데룽ㅣ가만

권성훈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윤이산시의전편에는가족공동체를향한뜨거운시심이서려있다.어쩌면시인에게그것은뭉클하면서도서럽고,캄캄하면서도환하고,아프면서도따뜻한“배꼽이여럿”인감자같은것일터이다.

또록또록야무지게도영근것을삶아놓으니
해토(解土)처럼팍신해,촉감으로먹습니다
서로관련있는것끼리선으로연결하듯
내몸과맞대어보고,비교분석하며먹습니다
감자는배꼽이여럿이구나,관찰하며먹습니다
그배꼽이눈이기도하구나,신기해하며먹습니다
호미에쪼일때마다눈이더많아야겠다고
땅속에서캄캄하게울었을,
길을찾느라여럿으로발달한눈들을짚어가며먹습니다
용불용설도감자가낳은학설일거라,억측하며먹습니다
나혼자의생각이니다동의할필요는없겠지만
옹심이속에깡다구가들었다는건
반죽해본손들은다알겠지요
오직당신을따르겠다는그일념만으로
안데스산맥에서이식탁까지달려왔을감자의
줄기를당기고당기고끝까지당겨보면
열세남매의골병든바우엄마,내탯줄을만날것도같아
타박타박떨어지는눈물을먹습니다
-「감자를먹습니다」전문

누가펄펄끓는하루를들고가다그만,양동이를엎질러버린게틀림없다.이녁까지뜨끈하다.
-「노을」전문

별이작게보이네!를
별이착해보이네!로잘못들은나는
까치발을쳐들고
별의면모를찬찬히뜯어본다
탯줄로연결된듯
잘람잘람물소리를내며
내게로흘러드는

저,갓씻어나온어린것을
아무손에라도넌지시
건네주고픈
비개인저녁

착해보이는것들은
다멀리있어

그래도
가만팔을쭉-
뻗어본다
내둘레가
별까지늘어난다
-「내게로온설렘」부분

누구라도유년의뜨락에는,청춘의들판에는“펄펄끓는”서정이있었을것이다.작은별을향해“까치발”들던선한얼굴이있었을것이며,그리운사람을위해“넌지시건네주고픈비개인저녁”이있었을것이다.윤이산시인은그어슴푸레한시간을호명하는동시에이시대와인간을향한날카로운통찰도놓치지않는다.
「길」이라는시는압축된상징과가쁜호흡으로‘자본화된죽음’을통렬하게묘사한다.“죽음에도착하기도전에갑자기죽음이벌떡,튀어나올까봐보험들고간다”라는구절에이르러서는물질만능화된현실세계속의인간을떠올리며기어이쓴웃음이터지고만다.

죽음이간다죽음이죽음을따라간다죽음이죽음을끌고간다죽음이죽음을밀면서간다죽음이꼬리를물고간다떠밀려가던죽음이슬쩍,샛길로빠져버리자빈자리를향해액셀러레이터를밟는다간혹뒤집혀찌그러진죽음이새어나오기도한다죽음이죽음을향해서간다와이퍼로죽음을닦으며간다내비게이션의안내를받으며간다죽음끼리마주보며간다맞은편죽음이건너올까찐-한썬팅속에숨어서간다죽음에도착하기도전에갑자기죽음이벌떡,튀어나올까봐보험들고간다
-「길」전문

모두우르르몰려나간뒤,불끄고문닫고돌아서는맨나중사람의가만한손놀림처럼비가온다가만다녀가는이겨울비가‘첫’을불러오고싹을틔우고애채를키울것이다

가만,나의뒤를닫아주고돌아서던맨나중사람의얼굴이나를열고있다
-「가만-스승」전문

시집의가장마지막에등장하는「가만-스승」이라는시에서는“모두우르르몰려나간뒤,불끄고문닫고돌아서는맨나중사람의가만한손놀림처럼비가온다가만다녀가는이겨울비가‘첫’을불러오고싹을틔우고애채를키울것이다”라는구절이등장한다.이처럼시인윤이산은‘애채’(나무에새로돋은가지)를키울‘맨나중사람의얼굴’을자처하고자한다.그리하여이시집을접하는독자들은김기택시인의표현처럼“고통을제련시킨정신의향기가온몸으로스며드는것”을경험하게될것이다.

벼랑끝에선길을돌려세워
담배한개비물려주는

물소리에손을씻고있노라면
가난처럼간단하고
단촐해지는

아무렴,
내가다잘할수도
내가다옳을필요도없는거,맞지?

벼랑끝을돌려
물소리밖으로돌아온후에도오래
잠잠히타오르는물소리

-「물소리를쬐다」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