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이 빛난다 (이세기 시집)

서쪽이 빛난다 (이세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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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천 덕적군도에서 태어나 바다를 모태 삼아 시작 활동을 해 온 이세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서쪽이 빛난다』가 출간되었다.
“서쪽이 내게 말을 한다. 안이 어두워야 밖이 잘 보인다.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가장 추운 말이었다. 서쪽이 내게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 말이다.”
시집 말미의 산문(「서쪽의 말」)에서 밝히듯 시인에게 고향섬과 바다는 곧 ‘서쪽’이며, 가장 아프고 추운 지명이다. 그 극한의 공간에서 길어올린 질박하고 웅숭깊은 언어들이 시집 전편에서 살뜰하게 빛난다.
어떤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거룩한 맨손’의 삶을 자처하는 사람들. 이세기 시인은 운명인 듯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 적는다. 시집을 펼치면 깅다리(싱어. 멸칫과의 바닷물고기), 갯바탕(갯벌이나 갯가), 북새(노을), 뻘뚱(보리수 열매), 노래기꽃(금잔화) 같은 토속언어들이 파닥이는 동시에 뭇 생명을 향한 경외감이 뜨거운 피처럼 솟구치며 전율을 전한다. 그리하여 시집 전편에는 생명의 감각, 상생의 감각, 우주의 감각, 윤리의 감각이 통째로 숨 쉰다.
이 시집을 넘기는 동안 독자들은 넓고 깊은 바다가 전하는 삶의 전언(傳言)들, 고달픈 섬사람들의 삶,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간과했던 신비로운 섬의 언어들을 발음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짭조롬한 바닷물이 시나브로 몸속으로 밀려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저자

이세기

1963년인천에서태어나1998년《실천문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먹염바다』『언손』,시론집『백석,자기구원의시혼』,산문집『이주,그먼길』『흔들리는생명의땅,섬』등을냈다.

목차

제1부
언리해변
뒤란께
뱃사람장례
피항
저녁새
갱국
선단여
여름을지내며
초복소식
장봉1
장봉2
민통선
객선에서

제2부
부두에서
어머니,저는바다에서태어났어요
맹골수로
새우두부젓국
방언
섬제비꽃
심청
바닷가장례식
진촌에서
부두
아무도울어주지않았지
그여름
내가아니다

제3부
진두부둣가
서포리1
서포리2
산집
산제비
입동저녁
자구리회를먹는저녁
첫가을
북리항
빼아리라는곳
여름산
서포리에서
저녁물

제4부
시암리
일월
봄풀
흰너울1
흰너울2
집에와서
팔베개를베고
철원
홍예문
하짓날
염포
텃밭
꽃을줍다
이곳
서쪽이빛난다

산문
시인의말
시어풀이

출판사 서평

이시집을읽을때는시집뒤쪽에실린시인의산문을두세차례정독해야한다.이산문이야말로이세기시세계의근간이요정수(精髓)이기때문이다.시인은바다가타전하는신비로운삶의암호를해독하기위해서해낙도와무인도를서성거린다.그러다가문득멈춰서서쓴다,“이제나는두렵다내가걸어왔던길이”(「집에와서」).그러나시인은결국그두려움을외면하기보다마주하기를택한다.
어쩌면『서쪽이빛난다』는신비로운밀어(密語)와짭조롬한모어(母語)로짜여진‘바다책’과같은시집이라고일컬어도좋을것이다.그속에는감미로운낭만보다는강퍅하고신산한섬생활이놓여있지만,누군가에게는그것이피맺힌그리움이자반드시기록해야만할역사이다.그리고그것은“평생배를타다물고기눈처럼/두눈을뜨고죽은아버지”(「새우두부젓국」)를떠올리는일에다름아니다.

강화도읍내밥집아리랑집엔
특별한차림표가있다

새우두부젓국

염하에서잡아온새우에두부와무를설컹설컹썰어
젓으로간을하여탕으로끓여내온국엔

내아버지의입냄새가난다

갯물을닮은짐짐한맛에는
섬그늘이바다에그리매가되어어리는날도있어
그런날과겹치는어느해거름저녁
숟가락으로새우두부젓국을떠먹을때면

섬으로들어와살았다는
가계가왜이렇게생각나는지
아버지의입냄새가왜그렇게생각나는지

새우두부젓국을먹을때면
보름사리보고동지나해에서들어온
산돼지털을닮은턱수염과
장딴지만한두툼한그물코를꿰던손이생각나고

평생배를타다물고기눈처럼
두눈을뜨고죽은아버지가생각날때가있다
-「새우두부젓국」전문

“나중에아버지는내게아버지로부터배울것이없다고했다.아버지는울었다.아주작고작은목소리로새나들을수있는목소리로말했다.너는배를타지말아라.그것은아버지와의결별을의미했다.그것은내관심의낯선영토가아니었다.그때나는바닷가에서벌거벗은한알의모래알과마주했다.누구도하나의모래알을위로하지않았다.어디에서왔든어디로가든모래알은그저한알의모래알일뿐.내가좋아했던것은모두서쪽에있고,그중내손에쥐어진단단하고부드러운한알의모래알을기억한다.”(산문「서쪽의말」)
그리하여시인은한알의모래알같은사람들의삶을쓴다.바다가몸이고바다가정신인사람들.생굴회와아랫목과복쟁이탕과군불과생솔가지,팥알고르는손같은풍경들이마치눈앞에살아펼쳐지는듯하다.시인이건네는서쪽바다의맛,서쪽바닷내의향연을어찌거절할수있을까.

생굴회를먹고뜨끈한아랫목에서
등을지지고있으면
방금끓여내온뜨뜻한맑은복쟁이탕이생각났다

군불을지피는지
생솔가지태우는냄새가났다

밤늦도록팥알고르는소리에
쓸쓸하게입동저녁이지나갔다
-「입동저녁」부분

흔히집집마다물메기물가자미가걸려있다

항구로들어오는
채낚기배는
왕새우발짓을한다

갓잡아온갓조개와돌미역줄기는푸르뎅뎅하고
날치회를먹는사람들은
모두그지방짐승의눈을닮았다
-「염포」전문

‘시인의말’에서밝히고있듯“시는자신이발딛고선땅에서언어를기른다.그렇게시는자신의육체를갖는다.”
시집?서쪽이빛난다?는거룩한맨손의힘을,모두가맨손이기때문에공평하게가난하고공평하게따뜻했던사람들의삶을이토록캄캄하고도환한언어로부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