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숫대 (정완희 시집)

붉은 수숫대 (정완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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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05년 《작가마당》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두 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정완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붉은 수숫대』가 출간되었다. 정완희 시인은 현재 한국작가회의 충남지부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완희 시인이 태어난 곳은 충남 서천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그는 평생 엔지니어로서 기곗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이다. 사실 정완희 시인의 또래 대부분이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산업화 바람에 떠밀려 도시로 나오면서는 오로지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청춘과 중년을 다 바쳐 왔다. 이 시집은 어쩌면 농촌(흙)이라는 심리적 터전과 도시(자본)라는 육체적 터전을 양가(兩價)적으로 두고 살아야 했던 한 인간(혹은 세대)의 내밀한 고백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은 자연의 품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희원하는 동시에, 도시에서 그러했듯이 흙의 터전 위에서도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실현하고 깨우치며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유기체적 시 세계를 구축해낸다.
저자

정완희

1958년충남서천군판교면에서출생하여2005년《작가마당》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어둠을불사르는사랑』,『장항선열차를타고』를냈다.

목차

1부
붉은수숫대
부활
해결사
살생
인부수첩28사과문에부쳐
견적서
구인유감
마취
스파크
안개의냄새
돌풍
땅콩
금강

2부
콩고르기

호박의진실
살충
약점
생존
나비조심
착과
머위
앵두
멧돼지다녀가셨다
고구마횡재하다
거지주머니병

3부
배꽃
개축
모시를키운다
산아랫집
감이떨어진다
낙하
삼발이
양보
부여에서버스를탄다
밀물그그리움속으로
마을버스
매미
판교는안녕하신가

4부
꽃들은말한다
꽃나비
동파누설
숙련
선유도
전철을탄다
제주
모슬포의일박
이중섭
합격
창동거리에서다
일광욕
진눈깨비

해설:흙의마음과뿌리내리기/김영호(문학평론가)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부푼꿈을안고고향을떠나왔지만도시는청년에게풍요만가져다준것이아니다.인간을소모품취급하는도시에서살아남아야한다는강박은그에게쉴틈을주지않았고,인간다운삶은저당잡혔다.그렇게쉴틈없이살아온대가로이젠“이십일간격으로뒷머리에서/지지직거리며스파크가터”(「스파크」)지는가하면,“세사람의직원을자”르고,“다음엔내차례가될수도있다”(「살생」)는강박과불안감에점점삶이아득해지기에이른다.정완희시인은더늦기전에자신의삶이달라져야한다고느낀다.
“냄새는습한저기압의흉흉한소문을타고/급성전염병이되어축축한들판으로/온세상으로퍼져나간다”(「안개의냄새」).이대로가다가는위험하다.“저계곡아래로추락할수도있다”(「돌풍」)는예감이든다.
표제작「붉은수숫대」는자본주의사회에서벼랑끝에내몰린“해고노동자”인동시에언제실직자가될지알수없는노년기에다다른시인자신을상징한다.

경작주는잘익은놈들만골라,남몰래
모가지만뎅강잘라갔다
온몸에흘러내린선명한핏자국

이제수숫대는
강남역네거리붉은현수막두른철탑위
붉은조끼입은해고노동자가되어
차가운바람앞에섰다

늦가을찬서리가내리고
겨울지나봄이올때까지
이파리껍데기모두칼바람에날리고
하얀몸통만남아비틀린세상에맞서며
-「붉은수숫대」부분

검붉은녹으로뒤덮인고철을열었다
경유와시너를발라기름때벗기고
망치와스패너산솟불로달구며
조심스레나사풀어부품들을해체하고
묵은때먼지두껍게녹슨몸체는
샌드블라스트.모래를날려새몸이된다
긴세월삭아서패인가슴과얼굴은
퍼디로메워예쁘게화장을하고
마모된베어링과손상된부품을바꾸어
모터와콘트롤패널을붙여기계를돌린다
생명을부여한다,감히신의영역이다
청음봉으로소음과진동맥박을체크하고
다이얼게이지붙여서정밀도를검사한다
사십년쓰다가십년은처박혔던고철덩어리가
새생명으로부활하는순간이다
앞으로사십년은더돌아갈것이다
나도이같이뱃살도빼고
물렁뼈마모된무릎관절을바꾸고
총기떨어진머리와
파워가떨어진심장과물총도바꾸고
바꾸고또바꾸어서
-「부활」전문

기계를복구해내듯인간의몸도‘부활’시키길바라지만언감생심!“무릎관절을바꾸”거나“총기떨어진머리와/파워가떨어진심장”을갈아끼울수없지만사유를전환시키면더이상의빠른자기소모는막을수도있다는깨우침이든다.
그리하여시인은고향으로돌아온다.고향으로돌아온시인이얼마나달라졌는지,얼마나행복해졌는지는두말할나위가없다.시인은텃밭농사를지으며소소한기쁨을누리고,집주변의짐승이며자연의품에서조화로운삶을이어가며욕심내려놓는법을익혀간다.
그러한새삶속에서빚어진시는담백하면서도순수하고,상생의미학이알알이담겨있다.특히“세상으로버려진콩들을본다/구르지않는다고왜모두썩은콩이겠느냐/나도한때는고단한노동에찌그러진콩이었으며/지금도잘구르지않는콩이나니”(「콩고르기」)라는단락은이시집의절창이라할만하다.
아울러“나도얼른옆으로비켜야한다/양보를해야한다/사이좋게햇빛을나눠야한다”라는문장으로끝나는시「양보」는‘더불어살아감’의지혜와일상의미학을물흐르듯자연스럽게노래한다.

쟁반에콩을굴려콩고른다
벌레먹어하얀속살드러내거나
찌그러진콩과납작한콩썩은콩까지
구르지않는것들은모두버린다

밭을갈아콩를심어윗순잘라주고
늦서리내린뒤에야낫으로베어
토방과마루에서보름을말렸다
마당에어머님쓰시던그물망깔고
도리깨휘둘러타작을했다

겨울이시작되면아버지는콩고르기를하셨다
서리태와메주콩과작은콩나물콩까지
겨울깊어져도네모난쟁반을놓지못했다
썩은콩한개에밥한그릇이버려지고
썩은조개한개에한솥국을버릴수있단다

세상으로버려진콩들을본다
구르지않는다고왜모두썩은콩이겠느냐
나도한때는고단한노동에찌그러진콩이었으며
지금도잘구르지않는콩이나니
-「콩고르기」전문

감나무에게자리를내어주지않는
백일홍의가지를잘랐다

감나무를파서옮겨주려다
그러면감나무가죽을수도있고
뿌리가다시자리잡는데
이삼년은걸릴거라서
사이좋게햇빛도나누라고
백일홍에게가지하나를양보하라고
조심스레양해를구했다

내가누리고있는이자리도
행여누군가에게얼굴을가리거나
시야를햇빛을가리거나
높이올라갈길을막았다면
나도얼른옆으로비켜야한다
양보를해야한다
사이좋게햇빛을나눠야한다
-「양보」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