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꽃이라 부르는 저녁 (권덕하 시집)

귀를 꽃이라 부르는 저녁 (권덕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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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가시적 세계 너머에 있는 존재의 흔적들을 써내려 가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권덕하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귀를 꽃이라 부르는 저녁』을 냈다.
권덕하 시인에 따르면 시를 쓰는 일은 “자기의 독단을 줄이고 남이 되어 보려는 노력”이다. 시인은 ‘귀꽃’이라는 상징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관습적 인식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귀꽃’은 석등이나 석탑 등에 새긴 꽃 모양을 뜻하는데, 권덕하 시인은 그 귀꽃이 우리 몸에도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석탑의 귀꽃처럼 시인의 몸속 ‘귀꽃’ 역시 수많은 사물, 풍경, 사람들의 사연과 속울음을 듣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 느낌으로써 우리가 잃고 사는 사회적 삶의 원형을 되찾아 간다.
“외로움에 사무친 몸 기울어져/기가 막히면 가장 먼저 우는 꽃”이요, “오래 머뭇거리다/요연한 이별 한 번 못한 채/몸에서 가장 늦게 지는 꽃”(「귀꽃1」)이라는 구절에서 보듯,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늦게까지 견디는 필경사(筆耕士)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구메밥’(옥문 구멍으로 죄수에게 주는 밥)도, ‘소나기밥’(보통 때에는 얼마 먹지 아니하다가 갑자기 많이 먹는 밥)도, ‘입시’(하인이 먹는 밥)도, ‘메’(귀신이 먹는 밥)도 ‘헛제삿밥’도 “다 시장이 반찬이다”(「밥」)라는 숭고한 전언처럼, 그의 시에는 ‘귀꽃’으로 담아낸 뭇 생명에 대한 공평한 헌사가 깃들어 있다.
저자

권덕하

대전에서출생했다.1994년‘화요문학’동인시집『두고두고살아나는꽃』에시를,2002년《작가마당》에문학평론을발표하며등단했다.시집『생강발가락』『오래』,문학평론집『문학의이름』,문학연구서『콘라드와바흐찐』등이있다.

목차

제1부
수긍
귀를꽃이라부르는저녁
민달팽이집
더듬거리다
앞일
그림자놀이
산길
꽃자리
블랙박스
관심을보이다
사이
비꽃
식전
산책
하지

가을물안역
네이름
하나를보면
탁란
귀꽃1

제2부
시인
그리운비트
그믐에
산내에서
이명
십리사탕
다리

라플레시아
옛일
귀꽃2
밥이야기
어떤만남
생시에
유품
문명의문맹
알섬우화
갯비나리

대도시오감도

제3부
노루벌
이름
강릉
잠녜물질
불쑥
굴피
월동
겨울의액면
메리크리스마스
새벽달
우명리
늦봄
유월
부적
회오리승객
가을소리
고향집잔상
간이역
산내차고지
귀꽃3

저자발문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권덕하시인이세상을향해열어놓은‘귀꽃’은뭇생명을향한경외라해도좋을것이다.김현정문학평론가가표현하듯“온갖현란한시각적형상들이난무하는세상”에서시인은“남의말에오랫동안귀기울일줄아는넉넉한몸가짐을통해경청하는힘”의가치를드러낸다.
자본주의가팽배해있는이시대에도소통과상생,배려와나눔의살이를몸으로체득한생명들이얼마나많은지,그들이가진지혜로움이야말로얼마나빛나는‘시’인지시인은주목한다.
“바다에서평생물질을하며살아온이에게이렇게물었답니다.스킨스쿠버장비를사용하면백사람이하는일을혼자서할수있다던데왜그렇게하지않지요?그러자그는이렇게대답했답니다.‘영사는아흔아홉은어떵살코’(그렇게일하면이렇게사는나머지아흔아홉사람들은어떻게살아요).”(저자발문「시(詩)에관한열개의단상」중)
위대목에서보듯시인은두루보살피고두루함께살아가는생명의존재들에귀를기울여“시장너머에있는세상”을보여준다.

들숨과날숨사이무자맥질에
숨넘어갈듯
까무룩몸서리치는순간만으로
하루다섯시간

일년열달꼬박
숨비소리내쉬며
성산포바당에서오십년물질했는데

이어도사나이어도사나
혼잣소리흥얼거리며
자식들낳아길렀는데

스킨스쿠버장비사용하면백사람이하는일을혼자할수있다는데왜그렇게하지않지요,
기자가묻는말에

영사는아흔아홉은어떵살코
-「잠녜물질」전문

새들이일제히날아오르며제길가도서로부딪치지않는다이웃을밀치거나밟지않는다

천수만에사는어떤이는귀신같이새소리를낸다지만새들은사람목소리를흉내내지않는다

빈나뭇가지고요히밟는새는맨발이다

사람들은신발벗어야하는곳을성지라이르면서태어나딛는곳마다피어나는꽃을보지못한다

성지순례하다가폭탄이라는말에놀라좁아터진다리에서떠밀고넘어지다티그리스강으로입적한사람들

산더미처럼쌓인신발들사이새의맨발아득하다
-「새」전문

“사람들은신발벗어야하는곳을성지라이르면서태어나딛는곳마다피어나는꽃을보지못한다.”반면새들은어떠한가.새들은“사람목소리를흉내내지않는다”,그저“빈나뭇가지고요히밟”을뿐이다.무엇하나걸치지않은“맨발”로오롯이.
이처럼시인권덕하가보여주는세계는우리가익히보아온세상이지만,새로운창하나를더낸것처럼섬세한시선과상상력으로독자들을환기시킨다.무엇보다도,그는이번시집을통해“말의고갱이가지닌힘을구체화”해내어시읽는즐거움을가장정통적인방식으로구현해낸다.

두계역에내리자비바람몰아쳤어요비닐우산은마음먹고뒤집어지려하고빗물에찢긴부대종이사이로갈치맨살이드러났어요

이거뭐중앙시장서산갈치두마리도가리지못할우산들고그래도입속엔가득그리움이살고있으니까철길건너갔지요

아껴먹으며십리를걷고또아껴먹으며십리를걷고눈도따라십리는들어갔지만깨물면자책했을단단한맛지키며혀끝으로살살녹여먹는힘으로갔지요

어디다맡길수도없는동생달래며기억에젖고젖어질척질척한먼길외갓집까지뭔힘으로걸어갔겠어요
-「십리사탕」전문

세상의모든길은식당으로돌아온다일마치고우리는함께말없이밥먹는다밥을남기지않고먹는사람은반찬투정해본적도없을것이다밥이곧하늘이니까하늘에어찌투정하며하늘을어찌남길수있으랴
-「밥이야기」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