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인생 (이철경 시집)

한정판 인생 (이철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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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1년 《발견》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철경 시인이 세 번째 시집 『한정판 인생』을 출간했다. 이철경은 이번 시집에서 상처와 결핍의 원체험을 통해 역설적인 삶의 희망과 빛을 노래한다. 「시인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 시인은 “과거 기억의 시적 형상화를 현실에 빗대어 문학적 치유를 보여주고자” 하며, 그에게 시 쓰기는 곧 “상처받은 영혼, 슬픔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자아에 대한 성찰과 희망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몸짓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상처투성이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을 믿고, 문학의 힘을 믿는다. “저 중년의 사내,/삼십 분 전/의자 난간을 부여잡고/흐느끼는 어깨를 보았다/저 꺾인 날개의 들썩임/전철도 부르르 떨면서/목 놓아 우는구나”(「밤 열차」)라는 구절은 ‘당신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감정을 전철의 떨림을 통해 형상화해내고 있으며, “이 세상에 신은 없는 듯하지만,/가끔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신의 분노」)라는 인식을 통해 삶의 피폐함과 현실의 부조리에 저항하며 순례길과도 같은 인생을 걸어간다.
저자

이철경

1966년전북순창에서출생하여강원화천에서성장했다.서울과학기술대전자공학과와고려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전공)을졸업했다.2011년시전문계간지『발견』에서신인상수상하며시인으로,‘목포문학상’평론본상과2012년『포엠포엠』평론상을수상하며평론가로등단했다.시집으로『단한명뿐인세상의모든그녀』,『죽은사회의시인들』이있다.

목차

제1부
제1구역재개발골목
더없이투명한블랙
작은꿈
일용할양식
순례자의길
싱글대디
빈자의시선
시인
경계선
칼끝
부재
인생의무게
한정판인생
허기에대한단상

제2부
밤열차
생명의전화
바람의감각
판공초
장롱속아이
내삶의전부가시
홈리스
행상
구비섬
내력
미스타페오
작은아이
언강
그림자

제3부
겨울강가에내리는눈물
무진동산
절체절명
사라진길
상흔
기억의투구
단한명뿐인세상의모든김지영에게
아빠찬스
얼굴
중력
세빙
퇴역장군
아비뇽의여인들
호칭의변천사
쳇바퀴

제4부
신의분노
머나먼길
푸른연못
시골장터좌판
누떼
기별
국민학교
짝사랑
하지정맥류
퇴근길
당신의숲
남주
1984속편

무서운안부

해설이경호_허기와기억의숲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시인은여섯살의나이에북한강근처의고아원에들어갔다.집안이몰락하면서가족이뿔뿔이흩어졌기때문이다.그의유년기체험이담긴시에‘폭력’‘허기’‘가난’등의이미지가자주등장할수밖에없는이유다.그리고어른이된이후에도「싱글대디」,「부재」같은시편에서짐작되듯그의삶은결코녹록하지않았다.그렇지만이철경은자신의상처에갇히지않는다.세상이그를부서뜨릴지언정그는단단한사금파리처럼스스로를벼리며,자신앞에놓인장애물들을통과해나아간다.자신의장애물을넘어선그는자기와닮은타인들의슬픔과마주하고,마침내그슬픔과결탁하여더큰장애물을향해,벽을향해몸을던지며나아간다.해설을쓴이경호평론가역시이점을강조한다.“주목할점은현실의상처를감당하는주체가개인이나집단의인간으로한정되지않고자연과어울리거나대비되고있다는사실이다.허기의고통이나상처라는원체험에대한기억으로부터소환되는대상들은이제시인자신의삶의영역을넘어서타자의생은물론이거니와소외된집단의현실뿐만아니라자연의영역으로까지확장되고있는것이다.”

저힘없이고개떨구던꽃들은
참회의눈물로누군가는서럽게울다가
생을놓는일이허다하다
제각기변명을바람앞에늘어놓으며
죽음에대한책임을회피하지만,
처음버려진골목을떠나지못하는유기견처럼
목련꽃난자한바닥에깨진달빛마저처절하다
-「제1구역재개발골목」부분

한겨울북한강은날마다얼고,얼지않은날은새벽마다안개를몰고쳐들어왔다저강이얼면넘어가리라다짐하지만,끝내강을건너지못한다나룻배가움직이지못하는날은이쪽강변과저쪽너머에새매처럼감시의눈이있었기때문이다안개자욱한날이면또누군가강건너읍내로가출을하고,일부는밀항하듯넘다가다시잡혀오곤했다
-「세빙」부분

추천사를쓴오민석시인이주목한것처럼이철경의시는‘서발턴(subaltern)’,하위주체의목소리를하고있다.“모든이론과철학의최종적인목표는,대신떠들어주는것이아니라서발턴들이스스로제목소리를내도록겸손히돕는것이다.이철경은제발로시인의세계로나간주변인이다.그는아무도가르쳐주지않는목소리로자신과자신이속한계급과계급을지배하는시스템에대하여외친다.”그의시들은이제“자신을주변화시킨체제를두려워하지않으며,그체제를교란시키고그체제에구멍을낸다.이철경의시에서우리는그어떤위력에의해서도무릎꿇지않는인간의마지막존엄성을읽는다.이철경의시들은말한다.체제여,다름아닌‘인간’앞에서그오만한가면을내리고무릎을꿇어라.”

도시한복판가장비싼공간을

무단으로점유한

자유라는저사내,

해가들지않는지하보도길옆에

하루한번씩

집을짓고부순다
-「홈리스」전문

막막한어둠속,날카로운칼끝이막다른문에부딪히며번득이는찰나의빛과소리에칼보다작아지는나를내려다보고있었다.

우리는모두칼끝의두려움에놓여있다.소속단체의칼끝,궁핍한굴레로되돌아갈칼끝,사회안전망에서비껴있는칼끝,바이러스창궐의칼끝,검사가휘두르는망나니칼끝,거짓뉴스에실린칼끝,거대제국주의칼끝,우리는모두막다른미닫이에기대어던지는칼날을피하며하루하루근근이사는것이다.미소를띠며던진칼날에심장이찔려피흘리다죽는경우를무수히목격한다.
-「칼끝」전문

비내리는밤길걷다가
불켜진버스정류장에서
내뒤를따라오는
작은아이를보았지

잠시,멈추어서서
가로등불빛에난사되는
신기루같은아이에게
말,걸어보았네

그는아무말않고
가다서기를반복하며
홀로걷는내게보폭을맞추며

중년까지따라올기세네

-「그림자」전문

금관의여왕이머물던왕년의의자인가
빛나던권좌에서떨어진그녀는
터를뒤로한채,
좌판의구석진모퉁이에
쭈그리고앉는다
허리춤깊숙이숨겨놓은
왕년의꿈이담긴전대에서
궐련을꺼내말아피운다
한모금씩필때마다쭈그러진입에서
순백의꿈들이허공으로사라진다
회상속추억이뭉게구름처럼
덧없이흘러간다
저기잠시권좌를비운사이,

붉은대야안,가득담긴다슬기가아우성이다
-「시골장터좌판」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