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유령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발코니 유령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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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어머니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영랑 시인이 첫 시집 『발코니 유령』을 『실천문학사』에서 펴냈다.
“날카롭고 진폭이 큰 상상력과 정교한 이미지가 시적 공간을 매혹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현대인들이 처한 불안한 내면과 인간관계의 질곡 등의 무거운 주제가 섬세한 이미지를 통해서
조형되고 있어서 문제적”이라는 황치복 해설가의 표현대로 시인은 탁월하게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으로 “불안과 소외라는 이른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의 내면 풍경을” 적확하고 정교한 이미지를 통해서 잘 그려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개인의 자화상, 그리고 다양한 인간관계의 양상에 대”해 최영랑 시인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세심한 관찰과 탐구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난해한 양상들을 촘촘하게 이 시집에서 잘 그려냄으로써 시인의 시적 역량과 구상력이 한층 돋보이고 있다.
선정 및 수상내역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저자

최영랑

전라북도정읍출생.2015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제1부

커브
카페인
누군가들락거리고있다
오,칸나
훌라후프
발코니유령
고동의길
버블스토리
오후1시의빨랫줄
튤립
어머니의계절
고장난트렁크
무한화서

제2부

옹이의독백
이별에대처하는세가지방식
시소의감정
모르기때문에
은밀한상자
붕대
염소와말뚝
불면
길의잠적
두더지
카푸치노카푸치노카푸치노
간절기병을앓다
자물쇠를열다

제3부

잠이환하다
알레르기
구성을위한구성
매미의간증
엉겅퀴,잠시불러보면
뜬구름하루
모과향이둥글어질때
나의큐브
봄의오류
이방인

봄,지평선그위의애벌레
라쇼몽의시간
탱자

제4부

셰이크
멍의소용돌이
1인극장
냉동인간
산딸기랩소디
솜털
집중
깃을세워요그런데여름이와요
말백신
하울링
미라아이
불안한공중
팝콘이거나풍선이거나
분장법

해설황치복

출판사 서평

1.어둠,혹은불협화음의세계

시인이지닌특장점은바로현대인들의미묘한심리적구도를적절한이미지를통해서구축하는데에있는데,불안과소외라는이른바‘죽음에이르는병’을앓고있는현대인들의내면풍경을날카로운이미지를통해서적절히묘사하고있다.시인이바라보는세계의모습은대체로어둠에덮여있거나그늘에휩싸여있으며,불안과불협화음이지배하는음울한색채를지니고있다

그때,그의밖은그렇게유폐되었다

이제밖은바깥의소관
그러니까그는스스로유형지가되었다

유형지의방식은미래를미래답게하는것

언제부터였을까?그는지금
영하의기온보다더차가운그늘속에있다

자꾸만깊어가는그곳은
어둠의간절기
어둠의구간을견디는계절이창백하다
-「냉동인간」,부분

2.분열된자아와낯선자아,혹은분장법으로살아가기

시인이상정하는시적자아의모습또한매우낯설고이질적인존재라는점에서관심의대상이된
다.시인은문득자아를대하면서친밀한대상에게서느끼는낯설고두려운감정인운하임리히(unheimlich)를체험하는것이다.어둠이상정하고있는무지와무정형,무규정등의함의가자아에대해서도그대로적용되고있다.

욕조가몸을삼켰다
누군가내몸을빠져나가고있다는느낌
지금아무도없는욕실에서
알몸으로걸어나가는이는누구일까
그림자보다다정하게
기억보다명확하게
나를나보다먼저증명하는이누구인가

바닥까지침수된나는껍데기만남았다(중략)

붉은빛에에워싸인나
한바탕춤곡이나를붙잡고흔든다
누군가내머릿속마개를뽑는다
물속의퉁퉁분여자와
나를버리고빠져나간여자와
여자를보고있던여자가모두사라진다

아파트가스티로폼처럼가볍다
-「누군가들락거리고있다」,부분

이시에는욕조에몸을담그자욕조에잠긴육신의주체는그대로있지만,“누군가내몸을빠져나가고있다는느낌”이들면서자아의분열이이루어지고있는것이다.

3.면,각,모서리의인간관계,혹은경계와울타리

시인의이번시집의가장큰특징가운데하나는직선,곡선,각,면,모서리등의수학적,혹은기하학적상상력이자주등장하고있다는점이다.그러한기하학적개념과도형들은주로인간관계,혹은좀더구체적으로는너와나의관계를설명하고해명하기위해서등장하고있는데,그것은결국상자라든가큐브,혹은울타리나경계라는입체나도형의형상으로연결되어인간관계의종합적인구도를설정하는데에이르고있다.

주춤주춤나타난커브가나를삼킨다

직진하려는나의관성이휘어진다액셀을밟고있는데
자꾸브레이크를밟으라한다나는다시액셀,너는브레
이크

횡단보도에부서진감정들이쌓인다방지턱을넘으며
방지턱을지우며나는방향을핸들에게맡기고구부러진
태도를펴는일에몰두한다

곡선으로사라진네가처음으로보였다내가내뱉은비
난이등뒤에들러붙어있었다너는떠도는어둠이었다가
가까워지는빛이었다가지금다시내게커브의속성을건
네고있다

너는매일커브속에서커브를반복하고있다
반경이긴후유증이나를길들인다
-「커브」,전문

4.안과밖,혹은시소위의우리

당신은안에있나요밖에있나요

안에있는당신과밖에있는당신은같은목소리인가요
트렁크처럼놓여있는당신은비밀번호를누를때마다
긍정도부정도아닌신호음만냅니다

그런당신과나는날마다안부를주고받습니다
나는말을걸고당신은내손을잡습니다

당신은왜내내지퍼를꽉물고고장난트렁크흉내를내나요

나는안쪽을기웃거리는데당신은이미여행을떠나고없습니다

경쾌한저녁을연주하던도마소리가
안쪽으로들어가지못하고떠돌고만있습니다

안쪽엔내가모르는이정표가,아니어떤목적지가있는걸까요

기억을빨리닫아버리는당신,나만그언저리를내내맵돕니다
-「고장난트렁크」,부분

위의시에그려진나와당신의관계란서로소통이안되고단절되어있는안과밖의관계라고할수있다.물론시적주체는“당신은안에있나요밖에있나요”라고묻고있지만,안에있든밖에있든그것이중요한것은아니다.당신은철저히내면의풍경을고장난트렁크안에감추고있다는점에서자폐적인자아상을대변해주는데,그렇기때문에그의안을확인하는것을불가능하다.
자기만의구조물,혹은입방체를형성하고거기에갇힌기계문명화된현대인들의인간관계의한모습일것이다.

너는풍선을불고
나는풍선을터트리고

너는하늘공원으로날아오르고
나는풀밭으로내려오고

우리는교대로
올라가는추락
내려오는상승

하늘로솟는풀밭
풀밭으로착지하는하늘

순간,호흡을가다듬고서로의등을가만히쓸어주고

우리는다시거품을만들고거품을빼고

너는이륙하는말들을허공에띄우고
-「시소의감정」,부분

위의시에서시소에올라탄두사람의관계는안과밖의관계와는또다른점에서현대인들이맺고있는인간관계의특징을보여준다.안과밖의관계란어떤울타리를경계로한시적으로분리되어고립과분열을경험하는관계를상징한다면,시소의관계란영원히상대방을상쇄하고억제하는작용으로묶여있을수밖에없는어떤숙명이라든가구조등을연상시킨다.그러니까현대인들은어느공동의목표를추구하거나동일한가치를함께추구하는것이아니라제로섬게임(zero-sumgame)처럼한쪽의이익은다른쪽의손실로이어지고,한쪽의손실은다른쪽의이익으로이어질수밖
에없는영원히화해불가능한대립적관계의망속에서살아가고있다는하나의메시지를읽어낼수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