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

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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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성영희 시인의 고유한 존재론과 함께 오랫동안 그녀의 몸과 마음을 관통해온 시간의 풍경을 담아낸 세 번째 시집 『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됐다. 이 시집에는 각 13편 4부 56편의 시들이 실려 있다. 이 시집에 대해, 시인 스스로의 고유한 존재론과 함께 오랫동안 시인의 몸과 마음을 관통해온 시간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합리적인 아폴론적 질서를 넘어서 어떤 근원적인 흐름을 포착하고 형상화하는 사유를 역동적으로 진행해간다. 그 점에서 그녀의 시는 다양한 생명의 공존 원리를 모색하는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근원적인 것들을 상상하는 기록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시간의 연속체로서의 삶을 응시하면서 섬세한 디테일을 이 시들의 편편마다 품으면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자기 확인의 속성을 탁월한 서정으로 보여준다. 오랜 시간 삶에 대한 지극한 관찰을 통해 다다른 존재론적 탐색의 모습을 선연하게 보여준 이번 시집의 뚜렷하고도 돌올한 성취를 굳건히 딛고서, 성영희 시인의 시적 심연이 더욱 깊어져가기를 마음 깊이 희원해 마지않는다, 며 유성호 해설가는 상찬하고 있다.
저자

성영희

충남태안에서출생했다.2017년《경인일보》신춘문예와《대전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등단했다.시집으로『섬,생을물질하다』,『귀로산다』가있다.2010년시흥문학상,2014년제12회동서문학상,2015년농어촌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목어11
각주12
물의끝14
물소리는귀가밝아16
장마18
특효를낚다20
열대야소고22
몸의전언24
뻘배26
식은꽃27
준비자세29
불꽃의속도31
명륜33
못박는나무들35

제2부

간다,라는말39
명줄41
갈퀴43
운문사,비밀의숲45
간월암47
어쩌면좋을까49
뒷모습을접다51
북향집53
새의뭉치54
환풍56
한밤의마을58
교차로60
우마사다리의귀가62
타워크레인64

제3부

희망번지69
클립70
북적거리는달밑72
저지대74
염원76
벚꽃엔딩77
벚꽃편지78
카페라떼80
산양82
정서진연가84
묘약85
손가락지휘87
나의책장89
시인신달자91

제4부

자작나무숲으로97
바람의
집98
말의감옥99
빨래집게100
수국102
대추103
오월용문사104탑106
감자꽃108
배번110
숨은방111
어떤연보113
둥근힘115
폐가의봄116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삶의궁극적긍정을소망하는심미적감각과사유
-성영희,『물의끝에매달린시간』의시세계

존재론적긍정의순간에다다르는언어

시인은서정시의자기탐구적성격을충족하면서다양한사물들로원심력을펼쳐가고있는데,그원심력의끝에서자신으로귀환하는과정을통해진정성있는자기확인의패러다임을아름답게들려준다.요컨대성영희의시는존재론적긍정의순간에다다르는언어로도약하고있는셈이다.

시간과생명탐구의이중주

성영희의시를개괄하는기본형질은시간의흐름을반영하는데서찾아진다.우리는그녀의시를통해시간이확연한물질성을갖춘실체일뿐만아니라‘흐름’이라는은유를동반하는관념이기도하다는것을알게된다.그래서시간은그녀의경험에의해작품내적으로구성되고있으며,우리는시인이고유하게겪는시간경험을따라그녀의시를읽어가게된다.이렇게지나온시간에관한내밀한기억을바탕으로한그녀의시는고통과그리움의시간을재구성함으로써자기확인의서사를하염없이펼쳐간다.풍경과내면의접점을통해시쓰기의최종지점을향하는것이다.그때시인은가장아름답고애틋한숨결로발원하는생명의움직임을바라보게된다.

산은편애가없습니다
세상에나무만한수도자가있을까요
가는것두꺼운것어린것늙은것
수종을가리지않고밤낮뿌리를내립니다
가옥이헐렁해지면바람에날아갈까봐
스스로부실한곳을찾아못박는거지요
한번도자리를옮긴적없는가부좌
굳어버린관절은
어린새들의요긴한둥지가되기도합니다
산짐승들은살림살이가비루해도
불평으로뒤척이거나불편해하지않습니다

-「못박는나무들」부분

산에는세상의가장위대한수도자인나무들이크기와수령(樹齡)과수종을가리지않고제각기뿌리를내리고있다.마치집이바람에날아갈까봐못을박는것처럼나무들은제각기자신들의뿌리를내린다.그럼으로써어린새들이깃들일둥지가되어주는것이다.장마에나무들이쓸려나간곳에인부들이심은나무들의넓은품은,안개와풀벌레소리까지끌어와이불처럼산을덮는다.이제나무들은겨울이되면제몸의물기를빼서어린생명들을덮어줄것이다.그렇게겨울내내흰눈을덮고못박힌나무들이야말로“눈보라뚫고귀가한아버지”같은존재로화한다.“바람의 집에 바람이 마를 때까지”(「바람의 집」)생명을길러낸‘나무-아버지’는“돌멩이처럼견뎠을/내아버지같은”(「몸의전언」)생명의담지자(擔持者)가된것이다.그이미지는“함께여서더눈부신”(「자작나무숲으로」)공존의장(場)을알려준아름다운존재론적표지(標識)로거듭나고있다.
이처럼성영희시인은시간과생명이라는거대한의제(agenda)를자신의시속으로끌어들인다.

소멸을딛고나아가는존재생성의원리

기다림도오래되면
저렇게기우는가
지붕도담장도기우뚱저무는데
저홀로만발한복숭아나무

뒷산소쩍새만
목이쉬도록
봄다지도록
-「폐가의봄」전문

성북동길상사에가면
성모마리아인듯부처인듯
두염원하나로모은
관세음보살상있다
모든조화와융합이란
이렇게맑고온화한것이라고
고요한미소로화답한다
-「염원」전문

이두편의서정시도성영희의단정한사유와감각을선명하게보여준다.앞의시편은봄을맞은폐가에서부르는만가(輓歌)이자새로운탄생을예비하는송가(頌歌)이기도하다.오래된기다림이기울어지붕으로담장으로한없이저물어간다.그런데“저홀로만발한복숭아나무”만이“뒷산소쩍새”와함께봄날다가도록“폐가의봄”을지키고있지않은가.남은자들에의해폐가는새로운생성의지점이되기도한다.뒤의시편은,‘염원’이라는제목이암시하듯,성북동길상사에서바라본“성모마리아인듯부처인듯”한관세음보살상에서“모든조화와융합”의소망을꿈꾸고있는작품이다.맑고온화한조화와융합이야말로모든존재자들이“강물속같이투명에이르는일”(「장마」)이며“지금까지의헛것들을결박이라도하듯”(「말의감옥」)해방하는힘일것이기때문이다.
이처럼성영희는소멸과생성의동시성을노래하면서이러한양상을매개하는것이다름아닌조화와융합의과정임을알려준다.이때그것을가능케하는힘은일상을규율하는합리적작용이아니라현재의삶에존재하는시간의흔적을재현하고그때의순간을구성해내는상상적작용속에서움튼다.결국성영희시인은동일성의감각에서구축되는서정적원리를통해모든시공간의균형적공존을아낌없이찾아와배열해간다.그녀는사물의질서와내면의경험을결합하면서그과정에서발생하는화음(和音)을포착하는데진력하는것이다.동시에그유추적형상과논리를통해발화함으로써풍경사이로비치는비유의그림자를통해세계내적존재로서살아가는우리의삶을흔연하게만나게해준다.소멸을딛고나아가는존재생성의원리가그러한역설을움직이는근원적힘이되어준것이다.

삶의기원과궁극을상상하는서정시

물의끝에서시간은시작된다
세상의물줄기그끝에매달려있는동굴의시간
한방울물이빚어낸무수한파편들뭉쳐있다
지금까지의무한초침이
캄캄한동굴안을순筍의왕국으로만들고있다
제몸을끊고울리는몰입으로
또하나의뿔을만드는완고한단절
저단파短波의소리들이
웅숭깊은받침하나를만들고있다
좌대를만들고그좌대위에서물이자란다
끊어지고부서지는소리들이키운
단단한기둥,
물의미라가동굴에순장되어있다

뾰족한짐승의울음소리가
동그란파장으로번지는동굴안
한줄기빛이물방울에걸렸다
물의끝에서시간이다빠져버리면
세상은잔물결하나없는대양이될까

시간이물로돌아가는회귀의방울들
일센티종유석에천년이살고있다
-「물의끝」전문

이번시집의표제가숨겨져있는이시편은다시‘물의끝’으로돌아와새로운시간을시작하는시인의의지와다짐을잘보여준다.세상의물줄기가모두그끝에매달려있는‘시간’은캄캄한동굴을“순(筍)의왕국”으로만들어준다.“제몸을끊고울리는몰입”은단파(短波)의소리들로하여금웅숭깊은받침하나를만들게끔해주는것이다.“끊어지고부서지는소리들이키운/단단한”물의기둥은뾰족한짐승의울음소리로번져가는데,시인은“한줄기빛이물방울에”걸리고“물의끝에서시간이”빠져나간간극을바라본다.그렇게시간이물로회귀해가는순간에오랜시간이담긴종유석의형상이새로운시간의결정(結晶)처럼다가오고있는것이다.
이처럼성영희시인은오래도록스스로를규정해왔던시간의결을회복하고자시를써간다.그러한근원적기억을통해자신의존재론적기원과궁극을구성하는시쓰기과정을보여주는것이다.그과정에서삶의기원과궁극을상상하는서정시가씌어지는것이다.

원체험과현재형을매개하는심미적기억

결국성영희시인은의식과무의식속에깊이각인된시간경험을새롭게만들어가면서,시간의가파른흐름을삶의불가피한실존적형식으로받아들인다.그러면서도거기서비롯되는유한자(有限者)의겸허함을보여주고,메말라가는삶에대한확연한역상(逆像)으로서의매혹을보여주고있다.중요한것은,그녀의시에나타나는매혹이가혹한절망이나달관으로빠져들지않고세계내적존재로서의인간적실존이가지는고유한긴장과성찰을따뜻하게제공하고있다는점일것이다.또한그것은소박한자기긍정으로귀결되거나시간자체에대한한없는미적외경으로나아가지않고시간의흐름에따라마모되어가는삶에대한궁극적긍정을소망하는심미적감각과사유의기저(基底)로나타나기도한다.그래서우리는,오랜시간삶에대한지극한관찰을통해다다른존재론적탐색의모습을선연하게보여준이번시집「물의끝에매달린시간」의뚜렷하고도돌올한성취를굳건히딛고서,성영희시인의시적심연이더욱깊어져가기를마음깊이희원해마지않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