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편지

점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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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태일 문학상, 수주문학상, 김민부 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한 송유미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점자편지』를 《실천문학사》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4부 57편의 처절한 삶의 질곡과 고독한 존재에 대하여 날 이미지의 시어로 형상화한 살아 숨 쉬는 시들이 실려 있는데,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밑바닥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이산문제와 노년의 쓸쓸함에 대하여 핏빛 잉크의 철필로 쓴 점자 편지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듯 잘 드러내고 있다. 김다연 해설가는 송유미 시인에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삶을 깨닫는 실천적 과정이며, 생에 깃든 슬픔과 고난 안에서 끝끝내 ‘목울대가 까맣게 타버린 詩의 꽃’들을 피워 올리는 일이다. 『점자 편지』는 ‘귀 없는 새들만 알아듣는’ ‘숲의 말씀’처럼,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존재의 밑바닥에서 써 내려간 삶의 경전이다. 생의 싸늘한 잿더미 속에서 발견한 불씨 같은 성찰에는 치열하고 강인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시인의 시로부터 삶의 고통과 난관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고 상찬하고 있다.
저자

송유미

2002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에『살찐슬픔으로돌아다니다』,『당나귀와베토벤』,『검은옥수수밭의동화』,『당신,아프지마』등이있다.‘전태일문학상’,‘수주문학상’,‘김민부문학상’,‘김만중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고향윤슬11
점자편지12
점자숲오목눈이교실114
점자숲오목눈이교실216
소주병속에비둘기가산다18
노인이되어도나는노인인줄모를것이다20
목울대가까맣게타버린詩의꽃23
흑룡302호장례식에의초대25
방빼는날27
썩지않은군화29
수상한남대문시장복사점31
감자먹는사람들33
역전다방36
배롱나무구두병원으로맨발들모여들고38

제2부
봄이밑천43
머릿속지우개45
깡통부처46
병속의서울,나의우파니샤드47
그대쓸쓸한무덤을위로할한그루벗49
점자숲오목눈이교실351
검은해바라기52
언어의사원에서53
거꾸로선나무의말씀55
점자숲오목눈이교실457
여기쌈지공원에자장면두그릇배달요58
거미줄풀어나비를짜다60
화석62

제3부
붉은다라이의기적67
당나귀표직물공장옆양철지붕집68
새들의장례식69
호른애인71
돼지가고추장단지에빠진날73
장대비가마당을못질할때75
붉은다라이76
남해노도에서78
청보리밭교실80
어머니의달82
원형탈모앓는공터84
앵강만바람귀는사납다86
공장불빛으로만든아가씨88
18번상속90
잠만자는房이있습니까92
금붕어,閑94

제4부

유칼립투스물리치료실197
유칼립투스물리치료실298
유칼립투스물리치료실399
유칼립투스물리치료실4101
유칼립투스물리치료실5102
개똥익어가는계절104
아비의등뼈에서흘러나오는색소폰소리107
신의12번현을위하여109
갈참나무요양원112
은사시나무요양원一泊114
마당쓰는사이116
성묘118
파도로남은꿈120
너는나를나는너를건널수없다고돌아설때121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들리지않는슬픔을철필하다
-송유미시집『무점자편지』의시세계

Ⅰ.

척박한삶들을시세계속에그대로옮겨놓는일은아픔이다.오랜기간삶과시를쓰는행위를밀착시키고자했던시인은『점자편지』를통해시가말의유희나언어의향연이아닌삶의양식임을보여준다.한산문에서시인은‘시를쓴다’는행위에대해‘생과사가반복되고소멸하고탄생하는것들을처연하게바라보는한견의시선’으로세상에드리워진‘정체불명의슬픔’을형상화하는일이라고밝힌바있다.
『점자편지』는만져지는슬픔이다.‘두눈을감고꽃잎같은고사리손으로/부드러운살결을만지듯이읽어’야만읽히는약자들의울음을닥종이에철필로새겨놓았다.시인은‘가시손으
로/모래사막낙타가시풀의고독’을읽어내듯이밑바닥심층의통점을명료하게짚어내지만,그아픔을어루만지는손길은깊고따스하다.‘세계속에머물다흔적을남기지않고사라지는비영원성의존재들을향한안타까움에서생성되는이미지’들로자신만의시세계를구축해가는그의작업은현대시문학에있어소중한시적실천이다.

Ⅱ.

서울역전,우리,孔兄,새벽댓바람부터병나발분다
데굴데굴굴러다니는소주병속으로질주하는KTX가
푸른바다에풍덩빠질무렵이면
뱃살출렁이는몸뚱이도바닥이나겠지
바닥새들비상하겠지
바닥을모르면서바닥을노래하는것도싱거운일이지…
너는뭐그리바닥을잘아냐고
원효도사천원한장주면성불시켜준다고손바닥내민다

헛소리미친소리에귀를씻고씻다보면
나도마개열린우리,孔兄이다…복제孔兄이다
거금오만원넘게내고,아등바등올라온
서울은빈병이다…나는병속의새다
하나부터열까지서울역사안에서해결되는상술속에서
한발도나가본적없는나의서울나들이,나는병속의서울,
서글프지만이런깨달음을얻는데
50년이걸린나의인생,
이제부터‘쥐뿔’‘개뿔’로살아갈것이다
노아의홍수에서공기만먹고살아남은…서울역비둘기들
쥐뿔도없는바닥하나믿고은일하다
-「소주병속에비둘기가산다-서울역」부분

「소주병속에비둘기가산다-서울역」은‘서울’이라는공간을빈병속으로옮겨놓는다.허상으로채워져있던것들이바닥나면서드러나는‘서울’의밑바닥에는‘바닥을모르면서바닥
을노래하는것’이‘싱거운일’이되기까지굴러다닌‘바닥새’들의영혼이읽힌다.병안에서모든것이해결되어한발도나갈수없는‘서울’은갇혀있다는생각에갇히게만드는도시이다.‘천원한장’에성불할수있다는노숙자신세원효도사의‘헛소리미친소리’에귀를씻고보면‘나도마개열린우리,孔兄’이라는것을알게된다.‘풍요속에서는절대입구를찾지못’할유리병속삶에서벗어나는길은‘바닥’까지내려와서‘바닥’을딛고‘비상’하는것뿐이다.‘쥐뿔’,‘개뿔’의힘으로바닥을살아내다‘개뿔하나없는바닥’이된후에야소주병밖으로날아오를수있다.

Ⅲ.

아-나비들마른나뭇잎속에숨어있다가떠나는가을
등굽은뇌졸중환자들이랑마구뒤섞인화투패두다가아네
화투한장넘기는장력에도기적이스며있다는거
끔찍한자식사랑도우물쭈물하다가떠나는배같은거여서
아무도면회청하는이없는
요양원물리치료작업실두레반앞에모여앉아
이해용수저와젓가락으로물리치료사선생들
재촉받으며종일밥먹는작업을하네아힘들어
한숟가락뜨는데1시간이라니고작젓가락질뿐인데
겨자씨한알로성을쌓는겁의시간이필요하다니
푸른빛강건너
나의젊은삶이야밥한끼는식은죽먹기겠지만
푸른빛강건너이편저녁불빛들은배가고프다
-「유칼립투스물리치료실2」부분


겨우‘한숟가락뜨는데’‘겨자씨한알로성을쌓는겁의시간’이필요한‘몸’들이둥글게모여화투를두다보면‘화투한장에넘기는장력에도기적이스며’있음을알게된다.‘기다리는것’은‘결국은노인이되는일「노인이되어도나는노인인줄모를것이다」’이지만,우리는젊음을갈망하며늙지않음에몰두하는사회안에서‘노인이되어도’‘노인인줄모’른채살아갈것이다.온갖상품과시스템이영원히‘젊음’에머물고싶어하는인간의욕망을부추긴다.그러나몸은욕망과무관하게소멸을향해다가간다.유칼립투스물리치료실연작시들은의식이요구하는움직임을몸이수행하지못하는것에서오는불일치의아픔으로가득차있다.


철거지역,노인병원영안실앞에는
버려진구두가꽃잎처럼지천이다
장거리문상객을위해서일까붉은다라이신발신은
배롱나무그늘아래그가누런삼베두건을쓰고
밤을새워검정구두를별빛처럼닦고있다.
가만히들여다보면상갓집으로모여드는것은
구두만아니라국화꽃도지천이다
검정구두와하얀꽃의성스러움은두말이필요없지만,
곡비가사라진마당에
상喪예의가너무나소홀해서
떠나는자는절대울지않는다는것을아무도모를것이다.
우수수바람에떨어지는꽃을보라,
바람이맨발에꿰면훌륭한당혜!
누가죽음은끝도시작도없는항해라했나
누가뭐라해도길고긴항해에는
소가죽구두가잘어울릴텐데
수의에걸맞은신발이시대에뒤떨어지게짚신짝이라니
이걸죽은자가어떻게산자에게
전달해야할지모르는비애로
세상모든검정구두들은오늘밤에도상갓집으로모여든다
-「배롱나무구두병원으로맨발들모여들고」부분

송유미시인의시에서‘신발’은삶에서죽음으로,죽음에서삶으로영혼을싣고떠도는배다.「배롱나무구두병원으로맨발들모여들고」는육신이떠나는자리에저마다의신을꿰차고온몸들이모여장관을이룬다.‘늙은아버지의몸’같이헐거워져가는한켤레의신발들이먼저떠나는‘몸’을애도한다.이시의시적화자는‘죽을힘을다해살다가끝내떠나고만/막내영정앞에’‘이헌신짝같은세상을네가버리고가는거’라며‘소가죽구두한켤레’를선물한다.이한마디말속에서생을떠나는자의발걸음은가벼워질것이다.또한켤레의신발속에서‘끝도시작도없는항해’를하다다시태어날몸에닿게되리라.‘몸의감옥을떠다니는나뭇잎한척’에실려가는영혼들의만남과이별을시인은이토록슬프면서도아름다운이미지로형상화시켜내고있다.

Ⅳ.

하루가무섭다어두워지는눈이무섭다
의사의만류에도삶의낙이이것뿐이라고
어머니철필로점자불경닥종이에옮겨새기신다
해진열손톱끝에봉선화꽃물번져간다
시치미떼고,연옥을찾아가는단테같이
주문呪文을하얀닥종이에새긴다
어디선가찌르르스르르우는풀벌레소리
잘알아보면,점자별과통신을하는소리…
제심장에다나이테를나무들이새기듯이
더듬더듬감은눈으로무얼쓰고싶은것인가
오늘만나도내일은알수없는내마음이
답답한마스크끼고앉아서철필로만다라새긴다
결국시작과끝이만나서바람에털리고야말
모래만다라처럼,빈손은백지로돌아온다
그래도자꾸점자별이되고싶어
만다라속을수놓는오롯한점자의시간
-「점자숲오목눈이교실3」부분

시인이『점자편지』를통해그려내는언어는바깥으로발화되는언어가아니라제가슴에철필로새겨넣은‘만다라’다.자꾸만어두워지는눈으로‘삶의낙이이것뿐’이라며‘점자불경
닥종이’옮기는어머니의심경이며‘제심장에다나이테를나무들이새기듯이’제가슴안에삭히는슬픔이다.‘오롯한점자의시간’속에수놓는것은‘결국시작과끝이만나서바람에털리고야말모래만다라’이다.그것은백지로돌아가는시이자,모래만다라를새기는서로의손끝에서야읽을수있는크나큰아픔이다.시인은여성의삶에담긴슬픔을시라는형식안에‘점자’를새기듯독창적이미지로형상화시켜냈다.

침묵은물그리메깊이잠들면고요한북잠든다는건두가지뜻이라지산다는건生을품은死,死를상대하는순간순간들(중략)흩어진뼛가루로뭉쳐진내열두개손가락으로도무지만져지지않는피붙이들…물위에쓴다…사랑이비산민교태언규린그리고연두…
-「고향윤슬」부분

시인의시에서나타나는척박한현실에서도일어서는힘은‘목숨을걸어야깊이를알수있’는사랑에서나온다.시인이품은사랑은역경속에서도삶을지탱하게만드는근원적힘이
다.그사랑은‘生을품은死,死를상대하는순간순간들’속에서만나고이별한인연들을향해있다.탄생과소멸을거치며‘비목속에서새겨진죽은이름’으로남겨진그리운이들의흔
적들은여전히남겨진이들의삶을빛내고있다.

세상의이면을읽어내는시의힘은여전히유효하고,그것이또우리가살아가는삶의힘이라는것을이시집의시들이증명하고있다.그소임을위해끊임없이세상가장낮은곳으로가고,그곳에서들려오는삶의소리들을찾아내는시인의작품은시간이갈수록더욱빛을발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