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닦다 -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307

질문을 닦다 -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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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향숙

경북상주에서태어났다.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이수하고단국대학교일반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재학중이다.2019년경남신문신춘문예시「명왕성유일전파사」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토지문학제평사리문학상시부문대상,황순원디카시대상,이병주탄생100주년팬픽에서금상,호미문학상,최충문학상대상등을수상했으며,2022년올해의좋은시100선에선정되었다.2023년중소출판사출판콘텐츠창작지원사업에선정되었으며,공저로는『입김이닿는거리』외다수가있다.현재한국시인협회총무간사로일하고있다.

목차

제1부
연필의국경11
방울이라는바퀴12
밤이라는옷14
달빛성분검사서16
달의계곡18
마리오네트의저녁20
그녀는옷을벗어두고떠났다22
단추의어원24
나사26
라그랑주점28
휴일의뉘앙스30
질문을닦다32

제2부
광어37
명작38
빨래경전40
유치의시절42
봄의비탈에마을이있었다44
우리도쥐라고46
싸리나무48
당신을미리다녀왔습니다50
타이르는타일들52
삼강주막54
구석에는굳은살56

제3부
시드는혹은시드는61
비누의예의62
길잃은문장위를걷다64
이후,라는문장66
이응이굴러간다68
곰보꽃게거미70
숫자의엉뚱한휴일72
책의유령들74
봄의유목76
봄바람78
파랑의3중주80
바람무늬82
매듭84

제4부
사파리공식87
명왕성유일전파사88
타래난초90
소나기와손아귀92
북극곰94
실금96
화석98
지리산100
파문을건지다102
구름의순장104
열람용봄106
자루이야기108
단하나의방110

해설방민호115
시인의말140

출판사 서평

투시적관찰의놀라운힘
-방민호(서울대국문과교수,문학평론가)

1.
김향숙시인의시집은관찰자적시선의놀라운힘을보여준다.시라는것이현상에머물지않고본질로돌아가려는노력을표현하는것이라면,이를위해서는먼저관찰,대상에시선을고정해본래의의미를발견할수있어야할것이다.최근필자가본시들가운데이시인의시들처럼관찰다운관찰을보여준사례를본적이없었다.다음의시「방울이라는바퀴」를가지고이문제를먼저생각해보기로한다.이시는‘빗방울’을응시한‘결과’를언어로옮긴것이다.

빗방울이란이름
그건,땅에떨어지는순간에만얻게된다

아주짧은순간을일컫는
일그러지고부서져야얻게되는

바람과허공이하얗게부푼민들레속씨뭉치처럼
빗방울도날아다니는항목들이다

바다에서날아올라
구름꽃으로피었다가
당신에게내려앉는다

오랜시간빗줄기로내려오면서
동그랗게뭉쳐지는,짧은순간이름을얻어
깨어지는바퀴가되어흘러간다

순간은빗방울처럼위태롭다
그것들은미끄럽다
창문에동그랗게붙어서
무수한눈동자로들여다보고있다

방울들이떨어져야하는곳이있다면
그건,바닥에서얻게된
이름들이다

동그랗게뭉쳐져서
아직깨지지않은것몇개를
눈동자로쓰고있다
-「방울이라는바퀴」,전문

시인은“빗방울”은“땅에떨어지는순간에만얻게된다”는첫문장으로부터이시를시작한다.생각해보면과연그렇다.우리는빗방울을그것이공중에머무는순간에는의식하지못한다.그것은우리의머리나손등이나풀잎위에떨어져부서지는순간에만“빗방울”이라는이름을얻을만한명료한형태를그려내며,바로그“아주짧은순간”에,“빗방울”은,그이름에걸맞은형태를그려내는바로그순간에,바로“일그러지고부서”지고만다.“빗방울”은바로그순간의이름이며완성되는찰나에바스러지고마는이름이다.

어떻게시인은이“빗방울”의찰나를포착할수있었던것일까?이는놀라운관찰력,그보다도직관적투시의힘이라할수밖에없을것같은데,이와관련하여필자는고흐가그린해바라기에관해논했다는D.H.로렌스의언설을떠올린다.작가로렌스는독특한의미에서의리얼리스트여서관념적,사회적리얼리즘이포착하는현실과는전혀다른,존재의나상에의발견을추구한사람이었다.고흐는해바라기를여러번그렸는데,그가그린것은해바라기의무엇인가를로렌스는물었다.화가들이무엇인가를그릴때그들은무엇을그리는가?
어떤꽃을,인물을그린다면그는무엇을그리는것인가?그꽃이나인물의외관인가?그겉모습에의인상인가?고흐는다른무엇이아니라해바라기인것,해바라기가해바라기로서나
타나는그순간을그렸다고,로렌스는말했다고,어떤비평가는논의했다.
바로그렇게김향숙시인은“빗방울”이“빗방울”로서나타났다사라지는그절묘한찰나를통하여“빗방울”의‘존재그자체’를잡아채는놀라운포착력을보여준다.그순간이아니면누구도“빗방울”이“빗방울”이되고있음을,그와동시에“빗방울”아닌것이되고있음을깨닫지못할것이다.

2
삼라만상이자신을드러내는순간을포착하는시선은,시인의관심이생활속에서흔히보는물상들을향할때더욱큰호소력을발휘한다.이번에는시인의투시력이자연현상을향할때어떤일이일어나는지살펴보기로한다.투시는현상을뚫고본질로직입해야하는데,여기서시인이즐겨구사하는방법은비유법이다.그는자신의시에서라면안이하거나한가한비유를허용하지않는긴장력을발휘한다.비평을하는한편으로시를쓰기도하는필자이지만,이시인이그야말로평범한일상의자연현상을‘설명’하는수단들을접하고나면놀라운감각이란바로이런것이겠다,하고생각하지않을수없다.예를들면시인에게‘밤’은어떻게이해되던가?

밤은완벽한모직
세상이모두어둠이라면
행사와모임때마다갖춰야하는
드레스코드는없었을것이다

목소리와온갖소리로장식을달고
모직이나실크,리넨이나
디자인도계절에맞는패션으로유행을만들겠지

달이뜨지않는옷
어둠은영원한옷감이었겠지
감촉도화려함도재료도재단도필요없는

어둠을걸어둘장롱이없어
밤한벌껴입고
외출할수있을것이다

어둠은평면이니까
어떤굴곡도없는무형의세계
가위도없이저먼곳에불빛몇개달면
아득한이곳이된다

기형의몸들이
밤의뒷면에서드러내는무형의옷
누구나투명하고영구적인그한벌을얻으려
껴입었던낮을벗는다
-「밤이라는옷」,전문

요컨대,이시는그첫줄의시구“밤은완벽한모직”이라는하나의비유법으로모든승리를거머쥐고만다.이렇게‘밤=모직’이라는비유의충격에한번노출되고나면독자들은나머지행연들은전기에감전된쥐의얼어붙은몸으로다만그훑어내림을감지만할수있을뿐이다.
시인이이시선의힘을달빛쪽으로돌렸을때결과는더욱놀랍다고하지않을수없다.다음의시「달빛성분검사서」는그살아있는사례다.

달빛한조각책상에올려두었다
재물대위광학현미경을들여다보며
핀셋으로한자락얇게벗겨낸다

세포마다애간장타는냄새와
백일홍의젖은숨소리가묻어있다
울음을어루만지던서늘한달빛
가을오동잎에내려앉은
마지막달빛이야위었다

꽃잎에묻은지문과뒤뜰을지나간발자국
뜨락을쓸고간치맛자락의무늬도보인다
달을마중나오던하얀박꽃과달맞이꽃
분꽃의숨소리도들어있다

달빛이모과나무가지에앉아있을때
나지막이깔리던밤바람
먼바다를건너온돛의거친펄럭임과
달의맨손에묻은기도의성분을살피는중이다

만월로몸을부풀린신음과문양을관찰한다
낭떠러지를걷어달라는
순도백퍼센트염원도내포되어있다
달의그늘진뒷면엔기도한줌과
당신의빈손도들어있다

분석된달빛을기록해놓는밤
차면기울고기울면차는달빛은맑고따뜻하다
-「달빛성분검사서」,전문

여기서시인은자신의창작방법론을명료하게제시하기에이른다.그것은“광학현미경”으로사물‘들여다보기’바로그것이다.시인은마치중학교생물시간에현미경으로식물세포를관찰하려는학생처럼“핀셋으로”달빛“한자락얇게벗겨낸다.”
달빛을감상하는행위를이와같은광학적상상력으로표현할수있었던사례는일찍이없었으며,그충격은가히저옛날시인이백이달과제그림자와더불어술을희롱하던「月下獨
酌」의그것에근사한것이라고도생각된다.이렇게재물대위의현미경으로달빛을얇게벗겨내서그내부를투시해봄으로써그긴사람살이의긴궤적속에서사람들이달빛에부쳐온기막히게아름다운감정의사연들이하나씩하나씩모습을드러낸다.현미경으로들여다보았으므로아무리미세한감정의애환이라도시인,곧화자는너끈히관찰할수있었을것이다.

3.
삶의경건함에새삼눈뜬사람의허허로운심정을시적으로축조해놓은작품이바로「자루이야기」라고할수있다.

티베트천장天葬터
실려온관棺은고작
웅크린자루하나

체면만겨우가린자루
오토바이뒷자리에짐짝처럼실려
구름중턱까지왔다

잘풀리지않는매듭을
한참이나푸는천장사
꼬이고꼬인저승의길
이승의방식으로풀기에는
매듭이너무질기다

구름을벗긴오전이
태양을슬그머니꺼내놓는다
웅크린시신을꺼낸빈자루
유족에게돌려준다

생전의망자는저자루에칭커를담고
소금을사서머리에이었다
올해는흉년이라자신의일생을담았다

불룩한부피의생애였다고여겼지만
자루를여밀만큼은남겨놓았다

물과칭커가루를개어
주린속을달래는천장사
비루鄙陋와해탈解脫이
한가지맛이다
-「자루이야기」전문

여기나오는“천장”은티베트사람들의고유한장례의식으로독수리에게육신을떼어주고떠나는장례의식이다.이천장(天葬)이조장(鳥葬)과같은것을가리키는다른말인지,뭔가
다른점이있는지확신할수없지만,여기서문제는그런것은아닐테다.
한사람의삶이그가보리(“칭커”)를담아놓던“자루”하나에오롯이담겨끝막음에다다르는이광경은우리네삶의의미를되돌아보도록하고,욕심과망상에서놓여날것을주문하고남음이있다.어쩌면시인은이광경에대한서경적묘사로써“문장”과“경전”의무게를충당하고자했다고도할수있을것이다.시인에게삶은그가그토록집요하게매달리고자하는시와같고,그“문장”으로빚어놓은“경전”같은것이라고해야하는지도모른다.시인은삶의일상적허상을꿰뚫는투시적시선으로그본질에직입하고자하는,놀라운비유법을구사하는언어의승부사라해야할것이다.그럼으로써그가이일상을얼마나날카롭게해부하고그속을백일하에뒤집어보이는지,또그러면서도일상을얼마나치열한수행의도장으로만드는지이시집은알수있게한다.이화려한비유법의시집속에는한사람의은밀한수행자가살고있어세상의진실을두쪽내어보일언어의칼을벼리고있다.

작가의말
구름을퇴고하다소나기를터뜨렸다

어떤문장이빠져나간자리
물결이드나들어한동안일렁거렸다

끝없이지구를헤매는검은비닐봉지

그리고

제목없이떠도는나

추천사

박덕규(시인,문학평론가)
김향숙의시는사물에대한감각이특별하다.연필·비누·나사·마리오네트등일상의물품을비롯해난초·나무·사과·새·거미등주변에서만나는자연물,심지어문자·문장·숫자같은기호들이시세계로들어와눈앞에서구체적인실체를드러낸다.그런데그사물은특정한시공에놓인우연적존재인가하면어느덧외양을감추고그위에드리우는본질의그림자를허용하기도한다.“어떤문장이빠져나간자리/물결이드나들어한동안일렁거”(‘시인의말’)리는과정이라할까,“거품이거품을걷어내는방식”(「비누의예의」)이라할까.이에따라김향숙의시는,사물을드러내되그것이보여주는일회적현상에현혹되지않고조금씩‘미끄러져’그궁극의가치에도달해가는릴케식‘사물시(事物詩,Dinggedicht)’에조응한다.

성선경(시인)
김향숙시인의시에는밝음과어둠이씨줄과날줄로얽혀있다.우리들의삶에서늘상견되는모순의생에대한비애가하늘반대편에서사는곰보꽃게거미처럼“천형처럼지고갈운명”으로놓여있다고노래한다.서로상반되는이삶의비애속에“생의끝까지감당하려는몸속엔/바다와육지를품은뜨거운심장이있다”고직관(直觀)한다.밝음과어둠,이상반되는삶의비애를시인은퉁치고눙치면서“흑백텔레비전에는명왕성冥王星이하나들어있다/어쩌면모든가전에도있는지모른다”고삶의본질을관(觀)하면서통(通)하고뭉개면서일으켜세운다.시의본질이란본래이밝음과어둠의거미줄속에다녹여져있는것이아닌가?이문장들속에우리들의삶이씨줄과날줄로엮이어뜨거우면서차갑게요동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