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간을 읽다

낙남정간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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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87년 『문예중앙』(가을호)에 시 「비둘기」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살풀이」가 당선되어 시조 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다수의 시집과 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시인이자 시조 시인인 김보한 시인이 《실천문학사》에서 낙남정간 종주기를 시로 형상화한 산행시집 「낙남정간을 읽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제목처럼 영신봉에서 고암 나루까지 총 239.85km ‘낙남정간’을 종주하면서 그 산과 그 산에 얽힌 설화나 서사까지도 읽어내 시로 형상화한 역작이자 귀한 시집이다. 우리의 산줄기는 그 명칭이 일제강점기 시대에 낭림산맥이나 태백산맥 등 산맥으로 고착돼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답습돼 왔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우리 선조는 고유의 산줄기 분류 체계와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산경표’에서 기록한 대간·정간·정맥의 개념인데, 1990년대 이후 산악인을 중심으로 이 호칭이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거의 상식화되었다. 그러나 이 산경표는 아직 원본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까지 필사본만 18종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필사본 1종만은 1대간 2정간 12정맥으로 분류하고 있어 원본의 실체가 참으로 궁금해진다. 이 시집은 2대간 판본에 따라 ‘낙남정맥’이라 호칭하지 않고 ‘낙남정간’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시인은 이 시집의 서문 격인 「낙남정간」에서 박수치며 노래고 있다.
저자

김보한

1955년경남통영출생.동아대학교및동대학원,경상대학교대학원졸업.공학박사이다.경향신문신춘문예시조'살풀이'당선,문예중앙에시'비둘기'외발표등단.계간'시와생명'창간,발행인역임.시집으로는'인간도꽃이되던가','벙어리매미는울지못한다','툰드라를떠나는영혼','아름다운섬','섬과섬사이','새끼를깐다','진부령에서하늘재까지'가있으며시조집'어느길목에서','고향'등이있다.수상으로는'현대시조문학상','한국바다문학상'본상이있으며현재경상대기계항공공학부출강,계간'시계'발행인겸편집인이다.

목차

제1부
낙남정간11
영신봉13
촛대봉14
세석평원15
음양수에감기다16
남부능선에젖다17
한벗샘18
법우스님과천왕할미19
청학동삼신봉120
청학동삼신봉221
외삼신봉22
묵계재23
산죽밭24
고운동재25

제2부
배바위능선에서29
길마재닿다30
칠중대고지31
돌고지재32
어느산마루33
베토재34
옥정리35
마곡고개끌어안다36
석장대37
사립재38
선들재길39
솔티고개40
계리재에서41
무선산42

제3부
돌장고개45
봉대산46
옥녀가47
신진주난봉가48
부련이재50
가화천51
무량산52
연화산54
고개고개판국이다55
벌밭들56
발산재57
오곡재58
큰정고개59
여항산60

제4부
서북산에서다65
광려산66
대곡산68
무학산69
천주산70
북산맞는다72
봉림산74
정병산75
용지봉76
냉정고개에서77
황새봉78
나밭고개80
신어산81
고암나루82

해설김태경87
시인의말108

출판사 서평

낙남정간의심미적갱생과신성한융흥(隆興)
-김태경(문학평론가)


1.
지면에산줄기를일으켜세우는시인이있다.김보한시인이다.시인은시집「진부령에서하늘재까지」와「하늘재에서천왕봉까지」,시조집「백두대간,길을묻다」를발표하면서“현존하는거대한산줄기를직접체험하고느껴”본이력이있다.이른바‘현상의시’,즉산악시와산악시조를구현한것이다.그는“다시,현상의시학이다.山몸詩다.몸무게58kg배낭무게28kg남짓으로갈길또는산길을헤아렸다”라고자술하였다.이에대해,구모룡평론가는“지용과노산의산행시가없었던바아니지만경로와행보의총체에있어전무한문학사적사건으로기록될일”이라고평하였다.김보한시인이시도했던특별한시적행보는이번신작시집「낙남정간을읽다」에서도지속된다.

산세의음극은양극과아옹다옹음양수를낳았다네쓰다듬는안개돌이의길목에서물안개드레스를간간이덮어주고있네,눈물샘의눈물은골짝숲길을빠져나가각별한영상도농축된옛사연도견고한광장위에서축음기로막막풀리네

날새노라앉았노라면옹달샘용솟음이해맑은옹알이로조잘대고지난했던울림들을귀살푸시들을수있다오,삭혀보시게통한의쓰라린애간장도이젠도닥도닥달래지고있고숱한세석산장돌아든실존의개념들도곰삭아옛정취를하나씩양각시켜조명발을받고있다오,쌍쌍이맺은백년언약선경의길도호롱불밝혀주네요

예전원시림남부능선의가시덤불앞에서수월하기만을빌었네산신의공덕에눈살피는뭇짐승들눈구멍건안하기만을다독였네,통일신라시대고승도선국사와동행하고서합장했다네백골로묻힌귀기鬼氣들의복장치는그눈빛마저감기데요-「음양수에감기다」전문

시인은위시에서‘산세’의‘음극’과‘양극’이“아옹다옹음양수를낳았다”는재치있는입담으로‘음양수’라는지명을풀어내고있다.곧이어음양수에안개낀모습을“쓰다듬는안개돌이의길목에서물안개드레스를간간이덮어주고있”다라고감각적으로묘사하여작품의품격을높여준다.“눈물샘의눈물은골짝숲길을빠져나가”고‘각별한영상’이나‘농축된옛사연’도“견고한광장위에서축음기로막막풀”린다는묘사도이를뒷받침하는적절한표현이라할것이다.
시인은신성하고웅건한산세와산의정기를나타냄과동시에기행시의필수요건인여정을조화롭게녹여내고있다.


2.
시인의입담은「옥녀가」나「신진주난봉가」등의작품에서유독돋보인다.그는“마법의실타래를풀었다가감았다가뒤채는”(「한벗샘」)듯한가사체와판소리사설형식의어조로작품감상의재미와몰입도를높여준다.또한시집제목에서도추론할수있듯이전설이나민담을소재로삼아마치이야기보물창고속으로들어가는체험을하게만든다.「법우스님과천왕할미」와「청학동삼신봉1」두작품이대표적인예시라할것이다.
민간신앙을숭배한한시「법우스님과천왕할미」에서,천왕할미는지리산산신혹은마고할멈,지리산성모등으로불리었다.자비심이많아서,사람들이어려운일이있을때천왕할미에게빌면그들이잘살수있도록불행을막거나소원을들어주었다.그래서사람들에게는늘공경의대상이었다.늙은할머니의모습이지만“신통술로뺨은복사꽃에비유되고칠흑못지않은머리카락에눈썹은중천에뜬마치반달”과같은선녀의모습으로나타나기도한다.

「청학동삼신봉1」에는법우스님과천왕할미의여덟딸중셋째딸에대한전설이담겨있다.

하동골최초의넝마무당은법우와산신천왕할미의기를받은셋째딸삼신봉이더이다

(중략)

그날로부터만인으로하여신줄기를내려점치고굿하여두루돌보게하였더래요,아마득한날부터누누대로기가꿈틀거려영남의새끼무당무녀巫女와박수를낳아무진장만인의수를헤아리기버겁더래요-「청학동삼신봉1」-부분

셋째딸은“하동골최초의넝마무당”이다.2연에는셋째딸이“삼신봉에서신령을얻게”된과정이드러난다.“꼬박굶듯이삼백예순날을밤낮호젓한산허리길을내며삼보일배해가며아픈맘과몸을정갈히닦고영신봉을거쳐남부능선을통과”하여얻는능력이었다.그능력으로“만인으로하여신줄기를내려점치고굿하여두루돌보게하였”다.이것이시작이되어이후“영남의새끼무당무녀와박수를낳아”백여무당이탄생하였다고전해진다.
이에덧붙여,시인은“구전의소문이자자”한‘경계석’(「돌장고개」)하나에도관심을가지고그것에얽힌이야기를집약하여풀어낸다.


이외에도시인은낙남정간을답사하면서그곳에서전해지는이야기를수집하여산문시에담았다.“신화와꿈의의식이오늘의바짓가랑이에배양토로뒤범벅시킨날산사랑님들이여산죽이그리워지면,꼭이곳와보시라”(「외삼신봉」)는권유와함께.김보한시인만의산악시를읽는맛깔스러움이이에도담겨있다할것이다.


3.
‘생물다양성’이유지될것으로보이는낙남정간이개간과대도시의영향으로훼손이이어지는현실은매우안타까운일이다.시인의작품을통해살펴보는바와같이낙남정간에는우리민족의혼과생의흔적이담겨있기때문이다.또한낙남정간만이보여줄수있는자연의풍만함과청정은그어떤대체공간으로도표현되기어렵다.낙남정간의존재적가치와위의(威儀)를가늠하면서‘가화천’으로이동해보자.

옹골진장마철이오진양호상부가만삭의산통끝에범람이네,잠잠하던내동면가화천물줄기는탱탱하게부풀어올라몸을풀자양수를터트리고물길을연다오,유수교아래수문水門에서가화강으로남실남실춤을추데,그대화가솟구치면가슴부풀고여간아니라장관이네

(중략)

가뭄엔백악기공용발자국도선명하다오,가화강상류에는공룡의이빨이선명하다네경린어류의비늘잔재도널렸다하네거북의배갑背甲도화석으로옹기종기있다오궁금하네

가화천은가화강이되고늘무슨꿍꿍이를낳네
-「가화천」부분


위인용시에서는,‘가화천’이의인화되어자연에서느낄수있는생동감과생명력을증진시킨다는것을확인할수있다.“진양호상부가만삭의산통끝에”낳은물길이“유수교아래수문에서가화강”까지‘장관’을이루고있다.자연이보여주는신비를생명의탄생으로비유하여아름답게표현함과동시에,넉넉해진‘가화강’이주변사람들의시름을덜어주는부분이병치되며그것이지닌가치를드높인다.자연과인간이조화롭게연결된지점을직접적으로보여주는것이다.
이처럼낙남정간에는“배경과평화를사랑하는생태둘레공동체가공존하는마을”(「배바위능선에서」)이터를잡고있다.시인은인간미가넘치고따뜻한공간을둘러보면서낙남정간의아름다운산하가지속ㆍ보존되길기원하는것이다.그리고그희원을산악시를통해서미학적으로집성하면서대상과의동일성회복을도모한다.


4.
시인이세상에보여주는시적성취는자아탐색과자연서정에만머물지않는다.시인은낙남정간을향한사색과산행체험에서더나아가영원불멸로숨쉬는민족적기억을바탕으로역사적상상력과의고적목소리를들려준다.그것은이땅의기억이자,낙남정간의은근과회한의정기라하겠다.또한준봉마다어려있는시원(始原)에대한흔적을더듬는시적행위이다.거기에는시간의폐허를경험하는아픔이담겨있고,비극에서벗어나밝은세상을이루고자하는의지적언어가살고있다.

동학농민운동당시양씨와이씨의깔깔한생명들의피난처양이터닿네

혁명의전장에서난세에몸을던진허공속투혼들을온유로담대한포용으로그들누리에은혜와자비로서치유해주세요,절절한고백을들이대며황급하게헐레벌떡치올라서네야트막한갈등의재양이터재머리를쳐들고반기네주변사물들이빤한몰골을드러내고웃는다오

연이어〈방하착放下着〉이라방하고지에서속세의집착을버리고해탈을꿈꾸라하는가끝내잇닿은곳돌고돌아넘는재돌고지재닿네,하동보부상들큰마을거쳐진주·산청지방으로돌아가는단골그들연방새벽녘길불밝히고순박한사투리에시끌벅적하다네,어른어른옛고개가일렁일렁하네요-「돌고지재」전문

위인용시는동학농민운동당시“혁명의전장에서난세에몸을던진허공속투혼들을”호명한다.그리고“온유로담대한포용으로그들누리에은혜와자비로서치유해주”길기도한다.이름도없이사라진영혼들을위로하고그들의명예를기리는시인의넉넉한마음이헤아려지는지점이라하겠다.이러한시적실천행위는“순박한사람들뻘밭속향나무가불과얼마안되어용한미륵불이될세상당도하리라”(「선들재길」)는믿음에근거할것이다.
재차강조하자면,시인은“왜적이눈에빤해궁리끝에낸방책”(「석장대」)의산성산과망루대,“임진난리통에고종후장군의피터지던싸움터있네이길못넘긴다고매섭게가로막고호통치던선열들의전장터”(「발산재」)를사수하던역사의전적지발산재,“백의종군한성웅이순신의다리쉼자리터만온후”(「베토재」)한베토재,“정유재란때연합군을이끈명군의제독마귀가왜군을격퇴한”(「마곡고개끌어안다」)마곡고개,“임진왜란때절멸의위기에서오롯이사랑한나라를지키고자군사를무리없이정병한”(「정병산」)정병산등을거닐면서역사적인물과지나간시간을소환하여명명하고낙남정간의가치를재확인시킨다.낙남정간의여정지를주요대상으로삼으면서그곳에얽힌자연풍광과역사적기억을접목하여김보한시인만의서정적이고서사적인이야기를담대하게풀어내는것이다.
요컨대,시인의필치로인해,낙남정간은“사위를껴안은채역사의모티브로길주위옹골찬자연추억기록물숲”이된다.“기억과현실의존재가치가아름을사랑으로다독여져치유된상처를생각”(「사립재」)하게만드는것이다.이로써낙남정간은저마다의공간들에내재한돌올한산정(山頂)과더불어민족이공유하는상처와회복의시간을모두품어안게된다.그가운데시인의땀내음과발자취가스며있다.


5.
시인은2003년10월진부령에서부터백두대간남진구간단독종주를시작하고2013년10월에마무리하기까지,10년이라는기나길고험한여정을마무리했다.곧이어2018년4월1일‘낙남정간종주’를마침으로써명실공히산악인으로서자리매김하게된다.그리고오늘에이르기까지3권의시집과1권의시조집을통해산악시와산악시조를구현하기위해서긴시간매진했다.그렇기에이번에펴내는시집『낙남정간을읽다』는또다른유의미한가치를부여한다고평가할수있을것이다.낙남정간에대한이번시집은현재까지시의생산적인측면에있어서,그누구도관심을두지않았던초유의사건이기때문이다.
또낙남정간을시로풀어내어이미있는존재를다시금아름다운언어로갱생更生하고낙남정간의존재적가치를부각하는점이외에도,산에서겸손함과정겨움,푸름을배우는인간의덕목또한엿볼수있었다.
“길의끝이인생길의끝인지궁금하오꼬불꼬불내리뻗은저길이인생의끝인지궁금하오,저길이확실히어딘가그립다오,길이여안녕,운명길이더힘차게뻗길합장한다오,뒤범벅갈림길도오늘따라궁금해진다”(「오곡재」)는그의고백처럼,김보한시인의고귀하고특별한시적행보로생성된시편들이세상에차츰드러나독자와공유하는계기를마련하길기원한다.그리고시인은이번시집의눈에띄는성과를자양분삼아,앞으로도또다른여정이더욱눈부시게빛날것이라믿어의심치않으며,그리되기를심연에서부터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