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입술 - 실천문학 시집선 310

요즘 입술 - 실천문학 시집선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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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1년 계간 『시사사』 상반기 신인추천작품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7년 제23회 김유정 신인문학상, 2019년 제19회 평사리문학대상, 2021년 제11회 천강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안이숲 시인이 《실천문학사》에서 첫 시집 「요즘 입술」을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4부에 각 부당 12편씩 가족·사랑·삶·내면 등의 명료한 주제와 더불어 차용해 온 소재들을 비유와 암시와 상징의 결정체로 빚은 뛰어난 글솜씨의 시들이 실려 있다. 해설을 한 평론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가운데서 소재를 얻고 이를 재치 있고 순발력 있게 시화한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직접적으로 그 마음을 고백하거나 토로하는 손쉬운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객관화된 상관물에 빗대어 말하거나, 아니면 유효적절한 은유를 동원하여 본심을 숨겨둔 채 말한다.’고 설명했다. 추천사를 쓴 시인은 ‘애틋한 서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문장이 가히 놀라울 만큼 모던하고 감각적이다. 둘의 상반된 특징을 어쩜 이렇게도 절묘하게 잘 다루었을까? 나무의 수행이 드디어 상상력 넘치는 한 세계를 꽃피웠다.’며 상찬하고 있다. 과히 일독을 권할 만한 시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저자

안이숲

저자:안이숲

경남산청에서태어나경상대학교대학원을졸업했다.2021년계간『시사사』상반기신인추천작품상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7년제23회김유정신인문학상,2019년제19회평사리문학대상,2021년제11회천강문학상대상을수상했고,계간『시와사람』편집위원이다.

목차

제1부
나비경첩11
겨울에핀민들레14
유자라는집16
수목장18
새끼손가락20
내일은A+22
여름한낮의배달24
소금꽃이피는하루26
사시의눈28
숫자에도뼈가산다30
아버지32
명랑한유산34

제2부
줄자39
만년필42
요즘입술44
암거미46
선풍기48
인어공주육지적응기50
더이상타지않는젊음52
사과,하고싶습니다54
겁없이덜컥일수를56
너는불판위에서태어났다58
선인장60
감자의둥지62

제3부
신발장에적을두고있어요67
우는불꽃70
잎의자서전72
모자이크타일74
우리언젠가만난적이있지요?76
설계도78
금요일80
목수의집82
은행잎도서관84
자두의귀엣말에심은86
언제부터시작된걸까요?88
자음들의수다90

제4부
가슴안쪽에봄이건축된적있다95
유월의디즈니랜드96
바닥이날아간다98
4인치블록100
WD-40102
벽화에핀꽃104
뿔소라의집106
행위예술가,김108
피자를먹는저녁110
멸치똥112
석축의시간114
푸른옹기116

해설김종회121
시인의말139

출판사 서평

일상의시적변용과은유의성찬(盛饌)
-안이숲시집『요즘입술』에부쳐

―김종회(문학평론가,전경희대교수)

1.전설처럼애달픈가족사의비의(秘義)

이시집의1부는시적화자또는주변인물들의가족사와그비밀을탐색하는시편이주류를이룬다.이창작의방식은누구에게나공통되는보편적정서를소환하는데유익하다.사연없는무덤이없다는옛말처럼아픔과슬픔이없는가족구성원이어디있을까마는,유독이시인은그애달픈사연의구체적세부를능숙하게적출한다.다섯개의손가락으로가족곧오빠들을비유하며서로다르게‘각인된얼굴’을보여주거나(「새끼손가락」),국도3호선바퀴에깔려‘세상에서삭제’된동생을기억하거나(「내일은A+」),어려운삶을견디는힘으로서‘백일갓지난딸아이’를내놓는(「여름한낮의배달」)등여러모습이거기에있다.

오,그러니까출입구가많지않은알속이었군요
계단식으로세상에분포하는많은종들

저숲을한번보셔요
잡아먹히는초식동물들

가장안전한때가
유충으로태어나알로지낸날들이었고

피자배달을하면서승용차를피하지못했을뿐이에요
영정사진속의나는환하게웃고있네요
(중략)
야무지게묶인삼베옷은번데기보다할수있는게많아요
동그랗게등을말면날개의자세가돋아나니까
편백나무아래
세상에서가장화려한나비한마리날아오르네요

엄마,나비를생각하세요

나의발인이있는내일
꿈에그린아파트701호에도배를해주기로되어있는엄마

부디,그일정을취소하지마세요
-「수목장」부분

인용된시「수목장」은이시인의가족시편중에서도가장가슴에이는상황을담았다.시적화자‘나’는지금영정사진속에서환하게웃고있다.그리고짐짓아무일도없다는듯이자신의엄마에게말을건네고있다.‘나의발인이있는내일’을앞두고,화자는엄마에게당부한다.‘세상에서가장화려한나비한마리’를생각하라고.사자(死者)의영혼을두고하는약속이니,죽음이삶의끝이아니라는말로엄마를위로하는것이다.그리고또있다.‘꿈에그린아파트701호’의도배일정을취소하지말라고.이승을떠나는자식은엄마가일상의삶에서무너지지않기를간절히바란다.참척(慘慽)이얼마나아픈것이면,이를자식이짓는가장큰죄라고했을까.

2.타자와의사랑에대한시적정의

2부에실려있는시들은그와같은사랑의법칙을현현(顯現)하느라사뭇분주하다.‘죄지은인간들의혼이변하여태어난것이아귀’라는전제를미리설정해두고,‘시속120Km로급발진하며달려오는입술을/키스로받을때’한쌍의아귀가된다(「요즘입술」)는수사(修辭)는적나라하고섬찟하다.어느시인이남녀가나누는키스의본질을이렇게격렬한형이상의시어로표현할수있을것인가.열렬한사랑의표현을위해시인이동원한암거미의입을빌면,‘언젠가우리이썩은육지를버리고초록의한가운데로가자’(「암거미」)는청유가제시된다.심지어‘눈알과눈알끼리평생눈멀고싶어’라는광포한의지도숨기지않는다.

급히
동화속을빠져나온인어공주가있다

결혼한달전
철강공장에서급발진하는지게차바퀴에양쪽발을내어주고
파혼과지느러미를선물받은언니는
전설속바다를걸어나온왕족의후예

왕자도없는육지에서살아남는방법은
두손으로접영을익히는일뿐
(중략)
언니의횡단보도에초록불이켜지면
지나가는웃음에도반짝이는비늘을달아주어야한다

덜컹,
반으로접은언니의몸이한고비를건너간다
-「인어공주육지적응기」부분

이시인에게있어사랑은백화난만한화원의그림이아니다.그렇다고상식의울타리를벗어난그로테스크한형상을가진것도아니다.매우순정하고평범한사랑조차이시인의시어로치환하면,전혀새롭고충격적인표현법의겉옷을걸치는형국이다.인용된시에서결혼한달전에철강공장에서양쪽발을잃은언니를두고,‘파혼과지느러미를선물받은’인어공주로묘사한대목은그에대한확고한증빙이다.그인어공주는‘두손으로접영을익히는일’이당면과제이고.이를응대하는시적화자는‘언니의횡단보도에초록불이켜지면/지나가는웃음에도반짝이는비늘을달아주어야’한다는진술을연계한다.이대목을두고보면,과감한시적묘사와서술을내놓고있으나시인의눈길이따뜻하고온정적임을실감할수있다.

3.삶의곤고(困苦)를위무(慰撫)한상징의언어

‘눈물젖은빵을먹어보지아니한사람은인생의깊은의미를모른다’라는말이괴테의시에나온다.마찬가지로삶의곤고(困苦)를모르는시인은자기시의깊은바닥에타인의곤고를위무할힘을숨겨두지못한다.이시인은그여러문맥을직·간접경험으로체득하고있어보인다.그러기에가을국도가‘갈비뼈가다드러나도록붉은살점을떨어뜨리고있다’(「설계도」)고썼을것이다.이어서‘깜깜할수록우는소리가더깊다’(「목수의집」)고발화했을것이다.그러나그패퇴의지점에머물렀다면,시는세상을이길반탄력을얻지못한다.시인의눈으로보면은행잎이떨어져‘가을도서관’을오픈하는광경이생성되는데,‘흩어진문장을소화시키면샛노란명언들이태어납니다’’(「은행잎도사관」)고언명한다.속절없는조락(凋落)의뒤끝에새로운경계를열어보이는시의활력이거기에있다.

하늘에설계도없는벽돌집한채짓고있다

오후의마지막구름에서자신의오른팔을꺼내
붉은노을과노을사이의빈공간에회색줄눈시멘트를꾹꾹눌러넣는다
해는지고밤은다가오고

급하게집을짓는노을의날림공사는이미예견된일

와룡산자락아래작은산밭하나매입해
제손으로직접집을짓겠다며안전모도제대로쓰지않은채사춤작업을하다가
노을이지기도전에목숨이먼저져버린여자
(중략)
노을등기부등본에자신의이름을소유자로새겨넣는다

양생養生의계절은들쑥날쑥하지만
금요일은새끼손가락의정기적인약속

살아한번도자기집을가져보지못했던그녀가
넓은하늘마당을혼자독차지하고
낙엽을쓸고있는일용직청소부에게도제붉은벽돌집을자랑하고있다
-「금요일」부분

4.세상의내면을보는형이상(形而上)의눈

인간에게사유(思惟)라는내면의영역과기능이있는이상,끊임없이환기되는문제가존재와본질이라는것이다.이것이외형으로나타날때현상이라는용어를쓴다.구체적언술로풀어서설명하기어렵다고할지라도,누구나이정신적구조를이해한다.하물며언어의연금술로자기세계를축조하는시인에게있어서야더말할나위가없다.시가시인의내면에잠복해있는의식의체계를형이상의관점으로해명하는일은지극히당연하다.이시집의4부에서,시인이그러한시각에무게를둔시들을함께배열한이유다.안이숲의시전반에걸쳐그와같은경향이약여(躍如)하지만,여기의시들을하나의단락으로구성한심사(心思)를유추해보면그의시에한걸음더가까이다가설수있을것같다.

건축현장가벽에피어난사람들의그림자는
진회색꽃이된다
꽃의증거가된다
(중략)
가로등불빛을등진가벽은밤에도
지나가는그림자들죄다모여사람꽃을피운다

두송이의목련같은젊음이늦은밤벽위에서
서로엉켜들고
떨리고
어쩌면나무는첫사랑을완성하고있는지도몰라

벽의하루를지나가는남자와여자
할머니
그리고그림자

우리는모두외벽을지나사람이된다
-「벽화에핀꽃」부분

안이숲시를통독하면서아직말하지않고남겨둔생각은,이시인이건축이라는공학적행위에많이곁을내어주듯이꽃이라는심리적상징에많이집중하고있다는것이다.그확연한예가인용된시의첫부분이다.‘건축현장가벽에피어난사람들의그림자’는‘진회색꽃’이요‘꽃의증거’다.‘가로등불빛을등진가벽은밤에도/지나가는그림자들죄다모여사람꽃을’피우는사태다.마침내시인은‘우리는모두외벽을지나사람이된다’라고확정한다.사람은모두외벽을지나온것이아니라,그반대인것이다.굳이자연스러운개념의생성과표현의순위를전복한원인이있다.그의시에있어서본질과현상의거리가그다지멀지않은터이기에그렇다.

이제껏우리가공들여살펴본안이숲의시들은,첫시집을내는시인이라고믿어지지않을만큼활발하게움직이는언어의잔치이자성숙한시의식의체계를갖추고있었다.첫시집이그러하다면향후그발전과승급(昇級)에거는기대는한껏확장되어도좋을듯하다.여기새롭고역량있는시와시인의출현에흔연한마음으로박수를보내며,그가앞으로우리에게더좋은시를만나게해주기를바라마지않는다.

시인의말

가족이야기를꺼내지않을수없겠다.
첫시집이니까.
엄마를떠올리면몸에바닷물이생긴다.
지독히운이없는여자,엄마의기록은어디에도없다.
하여,내가기억하고기록해주려한다.
엄마의이름은〈정순열〉이다.
그러니나를잊지마요.
아버지는용암이셨다.
가족중에내가아버지를제일많이닮았다고한다.
업보다.
이번생은어쩌겠노?
용암은용암이라서,다시뜨겁게흘러간다.
어떤외로움에도식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