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바라밀 -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311

목련 바라밀 -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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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99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제26회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던 이선 시인이 《실천문학사》에서 두 번째 시집 「목련 바라밀」을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4부에 각 부당 15편씩 삶의 본질을 천착하며 사회성 있는 묵직하나 소박한 총 60편의 시가 실려 있다. 해설을 쓴 평론가는 「생산적 여행자의 노마디즘 시편」이란 제목을 통해 ‘시인은 세상을 관찰한 결과에서 무엇인가를 체험하는 자로서 체험한 것을 자기 속에 가지고 살아간다. 나아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기록하는 자만이 진정한 삶의 생산적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생산적 여행자는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 방황했던 노마디즘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선 시인은 니체가 전언한 우리 삶의 시인으로 길가에서 부유하거나, 유랑하면서 생겨난 내재적 사유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한편 이 시집 「목련 바라밀」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차안과 피안을 넘나들며 삶에 대한 번뇌와 초월의 불교적 색채가 짙은 시들을 소박하고 잔잔하나 울림 있는 시어들로 웅숭깊게 빚어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들에서 독자들은 거리의 배회와 성찰로서 일깨우는 시인의 ‘쇠망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이선

저자:이선

충북음성에서태어나충북대학교대학원국문과를졸업했으며,1999년《충청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에『밤두시십분쯤』이있고,2020년제26회지용신인문학상을수상했으며,2023년인천문화재단예술창작지원금을수혜했다.한국작가회의회원으로있다.

목차


제1부
북광장에가면11
고장난해후13
누더기개14
골목길연가16
별하나18
파꽃하나19
바다에널다20
월드마트과일코너청년21
물비늘한그루23
그림자가사는창25
당신의내셔널지오그래픽27
허물어진나의거미줄29
코스모스밭31
안녕은돌고돌고33
안녕,복숭아35

제2부
금환식39
바다의덫41
사월의라일락42
또하루가43
목련바라밀45
지하철을타고46
아파트인드라망48
딱그만큼의지구50
멍든달처럼51
길잃은어린비둘기52
손수건54
폐차장으로지는가을55
서설56
입춘58
눈내리는밤60

제3부
정원63
할미꽃65
목단66
마당가에서면67
함박꽃따라68
포플러장례식70
남은꽃들72
오월73
움직이는그림속으로74
하루해76
플라타너스77
가로수길78
매미79
귓속말81
홀스트의행성83

제4부
홀로듣는소리87
태양의정원89
봄꿈90
목련92
오래된집93
슬레이트집뒤란에는95
안개행성96
일몰경전97
심무사가는길은안개속에98
우리는악어를타고100
굴삭기가보이는고물상102
저물다104
폭설106
연탄재107
오동나무109

해설권성훈113
시인의말127

출판사 서평

생산적여행자의노마디즘시편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학교교수)

1.
이선시인의이번시집『목련바라밀』은존재의가치를실세계의방식에얽매이지않고세계를하나의고원으로인식하고유랑하며끊임없이새로운것을탁마하는데있다.여기서시인은“빈티나서평화롭고/빈티나서자유로운”(「골목길연가」)사유를가지고‘낯선발길을내딛’으며사물과세계에대한본질을발견하게한다.그렇지만여행을하면서도아무것도보지못한자와세상속에서자신만을바라보는자는세계의보편적인사유를탑재하지못한다.이때아무것도보지못한자는세계를동일한세계안에서사유하는자이며,자신만을바라보는자는자신의세계에맞춰서외부의세계를인식하지못하는자를의미한다.이러한타자들은새로운세계의생산자로서‘언어의특임’을행사하지못한다.그렇지만여행이끝난지점에서인식하는시인으로부터생성된언어는실세계위에서본질을떠받치고있기에유통되는시적사유가출몰하게된다.이른바세계에서체험한‘서로데면데면’한것도,‘매일같이만나맨숭맨숭’(「북광장에가면」)한것도,그녀에게와서는이야기가되고시가된다.

2.
이같은시인은세상을관찰한결과에서무엇인가를체험하는자로서체험한것을자기속에가지고살아간다.나아가그것을지속적으로지니고기록하는자만이진정한삶의‘생산적여행자’가될수있다.생산적여행자를니체는“스스로우리는우리삶의시인이라고했다.그것은가장사소하고가장일상적인것에서사유하고사유로써살고자했던그의삶은자신에게맞는장소를찾아방황했던노마디즘의철학자라고할수있다.”이같은노마디즘으로통하는시인은자신이관찰한것을체험하고동화한뒤에집에돌아오자마자그것을행위와작품속에서기필코되살려나가는자가아닐수없다.생산적여행자는니체가전언한‘우리삶의시인’으로길가에서부유하거나,유랑하면서생겨난내재적사유를현실에서구현한다.

해후역1번출구시커멓게잠든남자
잔뜩쪼그린주림이정강이를타고흐른다
누구에게주먹을날렸는지어디
고꾸라졌는지
반숙란처럼푸들푸들부풀어오른한쪽
눈두덩에거즈를붙였다
남루한행색이스치기만해도
냄새가스밀듯한데
지나가는날흐린시선쯤진작에털어냈으리
나는곁눈질을하며계단을밟았다
어느생이었나,내사랑이었던것같아
유월숲을걸으며우리바라보던눈동자에
녹음이깊었으리
먼길돌아어찌하여여기보이지않는
계절의문턱을넘는가
아늑한잠에빠진당신곁을지나가는
내발길은폐허처럼갈곳없이
천년을건너온어느고장난해후
다시천년멀어진다
-「고장난해후」전문

그녀가향하는시선에서누구나길가에서흔히볼수있는“해후역1번출구시커멓게잠든남자”를들수있다.무심코지나쳐버린순간또는기억이지만그것이소환되면서“어느생이었나,내사랑이었던것같아”라고노숙자와동화된상상력이펼쳐진다.만약타자들과마찬가지로“지나가는날흐린시선쯤진작에털어냈으리”라며기억에서삭제했다면재생산할수없는풍경이다.그럼으로써노숙자는전생에서건너온사랑하는당신으로서“유월숲을걸으며우리바라보던눈동자에/녹음이깊었으리”라고‘먼길돌아’그곳에서만나고있는것이다.그것도“천년을건너온어느고장난해후”로서척박한폐허를드러내면서도지난한인연의매듭을형성하고있다.

3.
하늘에는맑은성좌
땅에는널브러진피고름역사

하늘과땅사이가너무멀다
엉금엉금기어가는

당신과나의바라밀다까마득히

하늘에는꽃이피고
땅에는꽃이지고
-「목련바라밀」전문

그녀는이시대를달리현현해서「목련바라밀」과같이“하늘에는맑은성좌/땅에는널브러진피고름역사”라고명시한다.이시의제목은‘목련’과‘바라밀’의합성어로서그녀가조직한조어다.목련이미지와바라밀의불교적가르침이만나새로운의미를창출하면서시인의메시지를조망할수있다.이른바불교에서바라밀(波羅蜜)은산스크리트파라미타(Paramita)의음역인바라밀다의줄임말로피안(彼岸:열반혹은해탈로깨달음)에이르(到)는것(到彼岸)을말한다.또한목련은봄을알리는순백의전령사로통하는데,우리가직면한현실은“하늘과땅사이가너무멀다/엉금엉금기어가는”진실과거짓속에서“당신과나의바라밀다까마득”한꽃이피어나고있다.마치“하늘에는꽃이피고”있지만“땅에는꽃이지고”있는아이러니한풍경을통해하늘과땅사이에서모순을찾게한다.

우거진매미소리
지나가는푸새밭나비들이
가다서다하며같이간다

끝간데없이빠져드는사왕천四王天
여기는눈부신그늘과향기와
노래가엉겨도는
내게는너무먼나라
돌아보면
빠져나온남섬부주南贍部洲도가니
아파트단지가아득히들려온다

가도가도
물들수없는나,
싱그러운잎사귀달고
머리짓누르는사바로
그만발길을돌린다
-「가로수길」전문

이세계를욕망에목덜미가잡혀있다고인식하는그녀는‘가로수길’을통과하면서“끝간데없이빠져드는사왕천”으로묘파하기도한다.사왕천은불교의육욕천의첫번째하늘이며‘수미산’중턱에위치하는신화적공간이다.여기서각각의욕계를다스리는주신이존재하는것으로이세상을거기에포함시킨다.그럼으로써인간의욕망또한욕계로이해하며한갓허상인것과동시에어떠한초월적인이치로전치하여보여준다.

그럼으로써“여기는눈부신그늘과향기와/노래가엉겨도는”신비한세계로전환된다.비록“내게는너무먼나라”일수도있지만,현실의비극속에서그또한신이다스리는나라라는초월적고원의식과더불어근원적세계를나타낸다.그것도“머리짓누르는사바”에서.이처럼그녀는욕망이만들어낸세계에대한아포리즘을견인하며「플라타너스」와같이“빈티나는무대로넉넉한길을열어주는”세계로안내하기도한다.

4.
차한잔들고창가로가면
맞은편101동이성큼다가온다

먼나라에서내려오신함석지붕들
푸른하늘모래알이야기를받아적느라
자글자글삼매에빠졌다

꼼꼼하게써내려간경문들
구절구절기왓장마다
흐르는법문이팔만이겠다

이렇게우리마주보는거울이듯
모든동과세대들
주고받는선문답이무량이겠다

(중략)

삼키고삼켜도끓어오르는솥단지삼독을
식어버린한모금의찻물로달래는
녹음이독물처럼퍼져나가는상심의계절

저멀리하늘가햇살비추이는아파트들
수미산그물망처럼펼쳐져있다
-「아파트인드라망」부분

타자가혼종하는인드라망세계는개별적존재들의혼합으로되어있다.자신만이세계에참여하는것이아니라자신도이세계라는무대에공동체로서구성되어존재로표출된다.개인이개인으로연결된세상은부분이전체를이루는각양각색의무늬를통해형성된인드라망이라고할수있다.이곳에서는작거나크고,낮거나높고,짧거나긴것이없는마치‘모래알’처럼모든것이구별되지않는평등에의물질을의미한다.다만이공간에서는서로를서로가덮어주는‘함석지붕’처럼머물러있기에‘기왓장마다’필요없는것이없듯이.모든것이기대여살아간다.이렇듯기왓장아래에거주하는‘모든동세대들’자체가이미‘마주보는거울이듯’인드라망이아닐수없다.

이선시인이이번시집『목련바라밀』을통해우리는그녀가정체없이이동하는존재로서유목적인사유를가진‘노마디즘(nomadism)시인’이라는점을발견할수있다.시인의시편에서의미하는노마디즘은시공간적인이동만을가리키는것이아니라척박한현실을초월하여새로운생성의현실로변화하는것을추구한다.생산적여행자로서노마디즘의본질은내부에서외부로나아가는것이아니라시적사유로부터출발하여출구없는출구를통해끊임없이연결된사유의바깥을통과하는데있다.그녀의시편은지난한삶의정오에서돌아와외부의세계를“틈새하나없는문”을사유로서다시나아가기때문에“흠집하나없는문턱”(「멍든달처럼」)을자유롭게이동할수있는것이다.

시인의말

나의그림자는그대로
나의둥지가되리라
오늘하루의평화와
오늘하루의전쟁속에
길위의모든그림자들이
무사하길
감사히나도함께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