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푸른 산소다 - 실천문학 시집선 315

노동은 푸른 산소다 - 실천문학 시집선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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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철영

저자:박철영
전북남원에서태어나한국방송대학교국문학과를졸업했다.2002년《현대시문학》신인상에당선돼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비오는날이면빗방울로다시일어서고싶다』,『월선리의달』,『꽃을전정하다』가있다.<더좋은문학상>을수상했다.현재《미래시학》편집위원,《현대시문학》부주간이고,순천작가회의회장을역임했다.한국작가회의회원이며,《숲속시》동인이다.

목차

제1부
불꽃살이11
말을참는사람12
괭이밥14
노동자론15
온토막16
해체작업18
안전미팅20
노동은푸른산소다22
밤에도벚꽃은핀다24
닭발도주리를튼다26
발판공입문28
공단의가을30
나는네가한일을알고있다32
4월33

제2부
경고37
외심씨外傳38
알렉산더들이나타났다3
청년비계공41
슬라바청년43
안드레이김44
이명46
김직장47
안씨관찰기49
비계공종환씨51
비계공의달집53
비계공의하루55
율촌공단아라리57
조회59

제3부
철근쟁이의詩63
작은일64
철야65
을들의소리66
빵67
오버타임69
셧다운71
단책에7자걸이73
3톤의눈물75
부력인생77
버티기같은79
공친날80
13명의전사일기82
용접공의노래84

제4부
짬짬이단잠89
힘줄과핏발91
빗살무늬토기에대한기억93
달궁아래94
페르소나96
사람도세월만큼힘들게한다98
포항100
여수밤바다에서102
뜬금없이103
그날104
외박106
폐항108
인월110
절연112

해설고선주117
시인의말137

출판사 서평

노동현장의불평등차별등을詩로직조하고
노동의긍정성을노래하다

근래들어노동현장의목소리를세세하게담아낸시집이드문데,이시집『노동은푸른산소다』에실린시편들을통해2025년의노동문학현장과현주소를가늠해볼수있다.여기실린시들은곳곳이노동현장으로점철돼있어마치현실판『노동의새벽(박노해시집)』을읽는듯한착각을불러온다.더욱이시적기교나장치들이과도했더라면노동현장에대한전경이많이망가졌을텐데시인은최대한현장감을살리는데주력한다.발판공,비계공,용접공들의땀과고난한삶의현장이영상을보듯선명하게그려져있다.일상이그만큼진솔하게시인이노동현장에서만난기억들을문학적으로기교없이형상화하고있는것이다.
아래의시「발판공입문」,「청년비계공」,「용접공의노래」을읽어보면잘드러나있다.

가장먼저해결해야할목표는
손짓으로만소통하는수화를익히는일

(중략)

발판이허공을향해끝없이올라가는동안
간간이육두문자가쏟아지기도하고
심할때는표정까지일그러지곤하여서
쉬는틈에도발판의종류와길이를
끊임없이머릿속에입력하는것
사람과사람사이를알아가는일처럼
발판의모양과무게도그속이다양하였다
옷으로가려진몸뚱어리곳곳의푸른멍과
옹이가진손과발목을훈장처럼꺼내보이는비계공들은
그들의생채기가자신의자존심이었다
하루종일허공에혼잣말을주절거리다
작업대를내려오는저녁이면
바닥에뒹구는말들이홍수를이루고있었는데
그렇게해도한번자리에서밀리면
항상밑장깔이신세에서벗어날수없었다
-「발판공입문」부분

막장을기는현장엔막장이없다
생을일으키고바로세우려는
투혼의밑장을괴는터전만이존재한다
4·5파이6미터파이프로
바닥에베이스를박아세우면
넘어져선안된다는약속이시작되었다

(중략)

자칫무릎이상하는일도다반사
그렇게깨지고터지다보면
스스로곧추서는법을알게되었다
스물아홉A씨는파이프세울때
맨밑바닥의보조공이다
비계군단의위계는군대보다엄격해서
위로누르는만큼가해진중력을
아래에서버텨내야한다
자칫하다간가지에달린사과가
곤두박질치듯내리꽂히기도하는게
이곳이다
지켜보는것만으로도아슬한생의전선이다
중요한것은서로에게잘엮여져야한다는것으로
밑바닥부터꼿꼿하게바로서야한다는것이다.
-「청년비계공」부분

바람에데어도화상이지
쇳물을뽑아내는거대한설비장치도
하찮은바람에부딪혀화상을입는다
바람이가슴으로스며들때마다
데인상처의틈새는더커지고
그바람구멍을메우는것이용접공의일이다
익숙한철야는천팔백도고열과
밤을꼬박새울수있는
올빼미의눈을가져야한다
날카로운발톱으로바람을누르고
너덜너덜해진바람집속으로빨갛게타들어간
자신의살덩이를밀어넣어야한다
부서져주저앉아버린거대한설비덩어리
서서히맞물려돌아가는것을본뒤에야
충혈된별자리를매듭처럼풀어내는김반장
부서진기계는고쳐놓았지만
밤사이몸에서빠져나간살틈으로
비집고들어온뼈마디를스치는바람결이
관절들의마디에서쇳소리를지르게한다
용접공은제몸에난바람구멍조차
스스로메울수없어
일생바람의노래를유행가마냥듣고살아야한다
-「용접공의노래」부분

시인은위시들을투박하지만노동현장의풍경을진솔하게시라고하는그릇에차곡차곡담아내고있다.노동현장이나노동현장의문화,노동현장사람들을결코미화하거나포장하지않는다.정제된감정과가식없는시어들,시적장치를뺀담담함등이오히려시적상상력을독려한다.더욱이시적기교나장치들이과도했더라면노동현장에대한전경이많이망가졌을텐데시인은최대한현장감을살리는데주력해노동현장의척박한환경을그만큼진솔하게보여주고있다.비계공이야말로죽기살기로떠받치는노동현장의비계를책임지는사람들이다.삶이각박할뿐아니라사회구성원중약자적위치에서살아가는사람들의현실을은연중노출한다.그들은그들삶에들어와있는노동의무게를감당하며묵묵히살아내고있다.

세월이흘러도변하지않는것은있다

개똥이말똥이만복이가이바노프성을달고
비탈리가되든알렉산더가되든
촉촉이젖은눈을보면알아챌수있다

가끔시베리아곰을닮은것처럼
왕방울눈이사나워보여도
가슴깊이숨겨진사연이란것이
슬픈족속들의모습이어서

살기위해조선땅을떠났거나
연해주에서중앙아시아로강제이주된
한민족의아들이다시아들을낳아대를이어온
소련에서러시아로바뀌는혹독한세월을견디다가
그래도이곳을또다른조국이라며찾아온
동포3세

F4비자로근근이일자리찾아헤매다
눈칫밥으로때우고배워가는
발판비계공으로자리잡은안드레이김
(후략)
-「안드레이김」부분


이시「안드레이김」은동포3세출신이주노동자에관한시다.노동현장에한국인만있던시대는끝났다.이주노동자들과공존해야하는시대를맞은것이다.산업현장을보면어느덧이주노동자들이셀수없을만큼많이분포해있다.그만큼이주노동자는우리안의이주민이아니라우리와함께살아가야하는동반자가되었다.이들과함께일을하고점심을같이먹으러가며,같이어울려놀러가기도해야하는세상을맞은것이다.이시는두가지민족의아픔을노출한다.약소국식민지국가민족으로서조국을떠나연해주와중앙아시아를떠돌아야했던재소(러시아우즈베케스탄등)동포에관한이주사의아픔이드러나는동시에여전히굴곡된노동현장에서의재외동포로서의살아남기이다.이주노동과단절된한민족의또다른전형이스며들어있다.

노동자가일하러나가는것은
햇볕이필요해서다
사무실따위에갇혀
창백한얼굴로평생을살지않겠다고
책상머리를박차고용접기를손에잡은거다
햇볕이부족한지구에서살아가려면
인공으로라도불꽃의온도를올려
스스로광합성을이루는거다
그래야폐속의더러운공기를정화할수있다

(중략)

영혼을맑게하는것은노동의푸른몸짓이다
사라진희망을만드는열정으로
세상을바꾸려는강한의지여서
용접봉에서빠져나온불꽃으로
노동은언제나푸른산소의시간이었다
-「노동은푸른산소다」부분

이시집은노동현장의가학성이나불평등,차별등에대한인식을중요하게보여주고있지만,인간근원의심성에서바라보는노동에대한얼굴들을다채롭게조망하고있다.그대표적인시가이시집의제목이기도한「노동은푸른산소다」이다.이시에서노동은억압당하고차별당하는불평등부정의노동이아니라‘영혼을맑게하는것은노동의푸른몸짓이’고,‘사라진희망을만드는열정’으로‘세상을바꾸려는강한의지’이며,‘언제나푸른산소의시간’으로긍정의노동이다.또시인은「노동자론」에서노동자는‘노가다하는사람만진정한노동자’가아니라‘땅파먹고살았던우리네부모’처럼‘진실로이땅의노동자로살다간’‘내아버지같은사람’이진정한노동자이며시인역시진정한노동자인아버지의아들로서‘노동자의성골聖骨임’을공표하며능청을떨고있다.시인은당연히일용직이나비정규직등불평등의노동현장에대한날카로운시선으로시집의곳곳을번뜩이게만들고있으면서도,이시집『노동은푸른산소다』을완독한독자는노동이인고의작업만이아니라힐링이자재충전의푸른산소가될수있음을스스로의가슴으로느끼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