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뚫린 작은 구멍

소파에 뚫린 작은 구멍

$16.00
Description
2003년 전태일 문학상에 소설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장편소설 『식당사장 장만호』, 『흉터의 꽃』,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맘 마순영 씨』, 『배달의 천국』, 청소년 장편소설 『천사가 죽던 날』을 출간했던 김옥숙 작가가 2025년 부산문화재단 우수 예술작품에 선정돼 《실천문학》에서 첫 단편집 『소파에 뚫린 작은 구멍』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에는 제12회(2003년) 전태일문학상 수상 작품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 제14회(2005년) 전태일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목격자」, 2024년 부산 소설상 우수작품에 선정된 단편 「당신의 해피하우스」 그리고 2024년 제14회 천강문학상 소설 대상 작품인 「소파에 뚫린 작은 구멍」 등 7편의 빼어난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천강문학상 수상작 「소파에 뚫린 작은 구멍」 수록
모든 것을 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소파라는 소재로 오늘날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은 중년 남성의 세계를 그리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그 작은 구멍이 아니었을까?”
-「소파에 뚫린 작은 구멍」 중에서

「소파에 뚫린 작은 구멍」은 처음부터 대담한 서술로 독자를 휘어잡는 힘이 있다. 소파라는 하나의 소재에 집중하면서, 오늘날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고 밀려나는 중년 남성의 세계를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해 그려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부분과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부분을 태연하게 뒤섞어 긴장을 고조시키고 상상력을 끝까지 끌어올려 서사의 층위를 성큼성큼 바꾸는 대범한 구성이 돋보였다. 소설의 기본기도 잘 익힌 데다가 몰입감을 높이는 이야기꾼의 면모도 느껴져 두 심사위원도 흔쾌히 대상으로 선정했다. -천강문학상 심사평에서
저자

김옥숙

저자:김옥숙
경남합천에서태어났다.2003년《매일신문》신춘문예에시당선,전태일문학상에소설「너의이름은희망이다」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지은책으로『희망라면세봉지』,『평화의불꽃이된핵의아이형률이』,『김형률』,시집으로『새의식사』가있다.장편소설『식당사장장만호』,『흉터의꽃』,『서울대나라의헬리콥터맘마순영씨』,『배달의천국』,청소년장편소설『천사가죽던날』이있다.제14회천강문학상소설대상을수상했고,2025년부산문화재단우수예술작품에선정돼첫단편집『소파에뚫린작은구멍』을출간했다.

목차

소파에뚫린작은구멍9
아주긴배웅39
당신의해피하우스71
월남도화지103
아내는제주도에갈수있을까?135
목격자173
너의이름은희망이다203

해설강희철257
작가의말276

출판사 서평

김옥숙의소설집<소파에뚫린작은구멍>을통해,작가가직조해낸소설의세계와그안에담긴목소리가가진독특한점은스스로가어떤절대적인권능을통해인간에게불을전달하려는오래된문학적전통이지닌프로메테우스적욕망보다는인간에게어떻게든환상적인이야기를전달하고싶은‘헤르메스’와같은욕망을발견할수있다.

소파로변하고내온몸전체가귀와눈으로변해CCTV처럼아내를살폈다.아내는소파위에엎드려얼굴가득미소를지으며폰을들여다보았다.아내는지금깔고누운소파가남편이라곤상상도못할것이다.아내의핸드폰에는온갖이상한이모티콘과애교가득한멘트가가득했다.-<소파에뚫린작은구멍>에서

이단편소설집에서가장최근의대표작인<소파에뚫린작은구멍>은사물과인간을동일화한‘괴물’,즉인간영혼이깃든소파를만들어냈으면서도,주인공의육체는그어디에서도흔적을찾아볼수없는기이한결합과정을어떤설명도없이능수능란한거짓말로만들고,이환상을믿으라고권유하고있다.마치카프카가한인간을갑작스럽게거대한‘벌레’로마주하도록하는마법적인변신의과정처럼.이소설의내용을보면인간의어떤결여된욕망을상징하는‘구멍’을통해현대사회의알레고리를한남성의신체에부여한것으로보인다.소파로사물화된주인공은신체를억압당하면서자신이욕망하는아내의비밀을알게된다.그리고아내에의해자신의위치가옮겨지는순간또다른소파의주인이쓴글들을통해그가지닌비참한비밀도저절로알수밖에없게된다.
남자는책상이나소파에서뭔가를쓰곤했다.소파에누운남자는한숨을푹내쉬었다.한숨이너무진해곰삭은젓갈이나묵은지같다는생각이들었다.처음볼때보다새치가늘어남자는부쩍늙어보였다.남자는소파에드러누워노트에뭔가를쓰다생각에잠겼다.아마도일기를쓰는것같았다.남자는쓰던걸멈추고일어나화장실에갔다.나는남자가무방비하게펼쳐놓은노트위의글자를들여다보았다.-<소파에뚫린작은구멍>에서

이소설의주인공은사업실패후아무것도할수없는무능력한가장이었지만,이제소파라는것으로변화하게되면서타인의삶을더자세히볼수있는훌륭한관찰자가된다.하지만아내의불륜을누구에게도알릴수가없고,자신의소파에서죽게된남성이부패하더라도아무대처를할수없다.정말모든것을알면서도아무것도할수없는무능력의극대화된상태를보여주면서소설은끝을맺는다.

당신은방수공사를해준업체를다시불렀다.사다리차까지불러옥상난간벽벽돌을다걷어냈다.난간벽외벽방수를한다음페인트를발라마무리했다.수리비로3백만원의돈이또들어갔다.이러다보증금으로받은돈전부를수리비로홀랑다날릴것같았다.그집은밑빠진독처럼돈먹는블랙홀이었다.당신은세상만사가다귀찮았다.-<당신의해피하우스>에서

<당신의해피하우스>는이단편집에서유일하게‘당신’이라는표현으로2인칭을지향하는소설이지만,사실이소설또한2인칭자체를실험적으로쓰고있기보다는1인칭의또다른변형가능성을모색하고있는것에가깝다.그런점에서김옥숙작가의소설은모든소설이1인칭의시점을쓰거나그시점의다양한‘변용’적관점을쓰고있다고볼수가있다.왜이렇게소설을쓰게되었는지는그의소설중가장인간의부조리함을잘들어낸소설,<아내는제주도에갈수있을까?>와<목격자>를통해이해해볼수있지않을까생각한다.

기대가없으면실망도없는데,같이운동하던동지와결혼했으니민주적인가정을꿈꾸었겠죠.민주?민주적인결혼생활?완전개뿔이지.예전에우린조직상부에서지침을내리면그게불합리하든말든무조건상명하복이었잖아요?-<아내는제주도에갈수있을까?>에서

목격자라고밝힌후감당해야할상황들이눈앞에훤하게그려졌다.경찰서에가서진술해야할지도모른다.가해자와피해자가뒤바뀐상황,분명골치아픈일에휘말릴것이다.가해자편을드는경찰에맞서진실을밝힐용기가나지않았다.동굴에들어가보지도않고검은박쥐와구렁이,천길낭떠러지를상상하는피해망상환자같은내모습이한심했다.-<목격자>에서

이두소설은남성화자를통해지금까지한국사회가지닌근원적문제를살피게한다.바로파시즘적인사회질서에잠식된인간의부조리다.과거진보운동권에있었음에도현실의어려움을내세워가정내에서아내를착취하는남편의이야기인<아내는제주도에갈수있을까?>와어린시절친구의죽음을목격하고도진술하지못했고,어른이되어서도뺑소니사건의목격자이면서여전히침묵하며가족과자신의평안만을지키려애쓰는남자의이야기를다룬<목격자>를통해,작가가지닌세상에대한문제의식을비판적으로잘드러낸다.
김옥숙작가의단편소설에서수많은화자가등장하지만,그리고수많은여성들이자신의체험으로형상화되지만,그가오히려가장잘다루고있는것은‘남성’화자라는특이한1인칭시점의구조이다.작가는여성으로서말하기힘든사회부조리의가장큰문제들을부조리한‘남성’을앞세움으로써더면밀히보여줄조건을형성한것이다.그런점에서김옥숙작가는가장‘지식인’적이고‘문학가’적인목소리를흉내내기보다현실을가장잘조망하고가장쉽게이야기할수있는자신의‘화법’을강점으로1인칭이란시점을계속해서실험해온독특한소설가다.겉으로는같은‘직구’만던지지만빠르기가다양하고회전수도다양한그런구종을장착한노련한투수처럼그의소설은계속같은방향성을지니지만미세하게다른방법론들을실험하고있다.

저자의말

몇달전,동사무소무인발급기에서주민등록초본을발급받았다.서른번이넘는이사의이력을들여다보고있자니,마치내가아닌다른사람의초본을들여다보는기분이들었다.젊었을땐내가이토록이사를많이하는사람으로살줄은상상도못했다.
올가을,또다시새로운동네로이사를간다.내가살았던집,지금사는집,그리고앞으로내가살게될집을떠올려본다.내가살았던수많은집들중에서,유독변두리아파트의기억이가장선명하게남아있다.아파트였음에도문을활짝열어두고살았다.옆집아이들,아랫집아이들이밤낮없이우리집에몰려와웃음꽃을피웠다.나또한아이들을데리고아랫집과옆집을수시로드나들었다.하천가에자리한변두리아파트였기에넓은하천부지에작은텃밭을가꿀수있었다.아침저녁으로물을주러텃밭에나가채소와들꽃위를날아다니는나비를홀린듯바라보곤했다.앞으로얼마나자주이사를다니게될지도모르고이동네에서오래살수있을거라믿었다.
거짓말처럼숭례문이불타던그해,정들었던그집을잃고급하게이사를했다.그집을떠나와불면증에시달리던나를더욱깊은우울속으로밀어넣은것은바로한배우의죽음이었다.텔레비전만틀면환하게웃던그녀,요정처럼해맑았던그녀가두아이를남겨두고다시는돌아올수없는길을떠나다니믿기지않았다.그다음해에는,큰산같았던노무현대통령마저세상을떠나는사건이벌어졌다.나와는아무상관없는그두사람의죽음이이상하게도혈육의죽음처럼느껴져오랫동안무력감에시달렸다.한치앞도내다볼수없는것이삶이었다.그사람이누구든,어떤일이든일어날수있었다.당장무슨일이벌어져도,끝없이넘어지고엎어지더라도,불완전하고모순투성이인삶을끌어안고살아내야했다.그럼에도불구하고살아내야했다.
때때로소설가란활자로삶의집을짓는사람이아닐까,하는생각을한다.한치앞도알수없는삶,때로는가장어리석은선택을하는내자신과타인을이해하기위해,인간의불완전성과불가해한삶을헤아려보기위해시지프스의바위를굴리는일.바로활자로집을짓고,부수고,다시짓는일이소설을쓰는일이아닐까.솜씨가모자라외풍이심하고비가들이치고물이새는집을짓기도하지만,더단단한집을지으려했던시간들이이첫소설집에담겨있다.

너무늦은첫소설집이세상에나올수있도록손을내밀어준실천문학사에깊은감사를드린다.한치앞을모르는것이삶이기에나의미래는바로지금,소설의집을짓고있는지금의나다.앞으로도계속쓰고또쓸것이다.

2025년가을
김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