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커튼을 열다

밤의 커튼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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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일간지 신춘문예(2020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됐지만)나 문예지 신인상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첫 시집 『편안한 잠』을 출간하여 바로 2019년 문학나눔 도서에 선정되었고, 그 이후 전태일 문학상, 아산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최충문학상 등 그 외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박수봉 시인이 2025 경기문화재단 원로예술활동지원 공모에 선정돼 두 번째 시집으로 『밤의 커튼을 열다』를 《실천문학》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법대 출신 늦깎이 시인이 삶의 성찰을 현란한 시적 언어로 빚어낸 빼어난 48편의 시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법대 출신 늦깎이 시인이 삶의 성찰을
현란한 시적 언어로 빚어낸
詩 한 밥상

『밤의 커튼을 열다』

내 마음속 오래오래 가시지 않던 환지통
빈 가지로 몰려드는 그리움 가운데
너 아닌 것이 없다
-「나무와 나」 중에서
저자

박수봉

전북장수에서출생하여2018년시집『편안한잠』을펴냄으로서작품활동을시작하였다.2022년《전북일보》신춘문예에시「빈집」이당선되었으며,시집『편안한잠』이2019년문학나눔도서에선정되었다.전태일문학상,아산문학상,중봉조헌문학상,최충문학상등그외다수의문학상을수상하였으며,2024아르코문학창작기금과2025경기문화재단원로예술활동지원공모에선정되었다.

목차

제1부
약리도11
철새13
저녁의음표들15
닻17
매향리19
봄의전조증상21
4월의노래22
청년의수첩24
광화문에서26
봄을이식하다28
골목30
해바라기32
걱정을방목하다33
평화의종35

제2부
독거의영토39
세한도41
등의언어43
노인과자전거45
재활용47
장미여인숙49
거리의철새들51
애기똥풀53
억새들54
필드골프56
입동58
노모의수업시간60
꽃들의풍경62
두평사람들63

제3부
댕댕이소쿠리67
입춘을지나며69
짜장이식었다71
매형73
웃음의뒤편75
마르지않는어깨77
먼곳78
터미널80
나무와나82
흑백사진84
그림자86
장터에서87
나르키소스89
까치소리90

제4부
뿌리의발견95
봄을심는사람들97
아무래도설악을다녀와야겠다99
향나무101
고목103
능소화104
버팀목106
혜석을읽다108
버스킹110
물의경계112
회한114
목공116
배달의민족117
매미의꿈119

해설권성훈123
시인의말140

출판사 서평

몸의기억과비시非視적인언어도식

박수봉의시편에서두드러지는‘몸의문법’은경험을체화하는내적운동으로실존하는것을표현하는방식으로서세계와개방적소통을추구한다.이런점에서그의몸의기억은몸의문법으로나아가며그것은재현과비재현의도식을거치면서생겨난시의식이된다.그의비시적인언어적도식은지성으로습득되는것이아니라본질과교감하고사유로지각할때비의지적으로작동하는기제다.또한시를통해의식적으로재현하는것이아니라비재현성을통해몸의기억이반응함으로비시적인것이출현한다이를테면한번어떤기술이나습관을습득하고경험으로체험된과거가즉각적인행위로실현되는것처럼.다만저장된몸의프로그램에의해단순히기계적으로작동되는것이아니라의식하지않아도직관적으로발휘되는능력으로서언어가바로그의시편이다.

나는도시의하천에서태어났다
버려진것들이부유하는도시의슬럼가
갑옷처럼촘촘한비늘을입고
슬러지낀골목을온종일쏘다녔다
골목엔온갖부패가시야를가려나는
비늘을세우며거칠어지기도했다
나의거처는하류였다

(중략)

상류로오르는등용의꿈을꾸기도하였다
개천에서용난다는속설을믿고겁없이솟구치다
꼬리뼈와싹,부서지는소리에
나는그만가슴에서불씨를들어냈다
끊임없이꼬리를흔들어야떠밀리지않는세상

(중략)

갈수기渴水期,뻑뻑해지는물의속살이숨통을조여오고
종족들의허기진바닥핥는소리가
뿌옇게일어설때
물밖으로불쑥솟구쳤던약리도
그것은
떠밀린자들의
목숨을건춤사위
몸서리쳐지도록서글픈몸의문법이었다
-「약리도躍鯉圖」부분


이시집의첫장을장식하는시편「약리도」는원래‘뛰어오르는잉어그림’이라는뜻으로,민화의소재가되어왔다.여기서잉어는재현된몸의기억이지만시인으로부터새로운존재론적해석이가능해진다.이를테면전통적으로약리도는입신출세(登龍門)이지만현대적재출현으로자기실현과성장을의미하는것으로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으로통한다.
이시의화자는‘도시의하천에서태어나도시의슬럼가에서갑옷처럼촘촘한비늘을입고골목을쏘다니는’이른바‘하류인생’을살아왔다.그렇지만하류로부터“상류로오르는등용의꿈을꾸기도하”면서“개천에서용난다는속설을믿고겁없이솟구치다”라는약리도를재현시키고있다.잉어의몸을재현하는시인의기억은자발적인것이며동시에비시적인것으로창작된비재현성을견인한다.이는수동적인삶이아닌,스스로운명을개척하고한계를뛰어넘으려는의지적인행위로과거화자또는청춘의자화상으로보인다.평범한존재에서특별한존재로의변모하기위해“물밖으로불쑥솟구쳤던약리도”처럼거듭나기를바라는화자의도전정신과주체성이배여있다.


비오는저녁늘어진전깃줄에
까마귀떼가날아와앉는다

높고낮은음으로오선지를채우는
검은음표들
어둠으로이어진세상을응시하고있다

저무섭게고요한시선들은
세상속으로흘러드는전선에어떤
곡조를심고싶은것일까

지붕없는삶들의젖는면적이갈수록
늘어나는것을보면서
빗물에미끄러진영혼들의별자리를밝힐
진혼곡을만드는지도모른다

슬픔이그치지않아길어진전선에
착상된음표들이
꼬리를치켜들고비의무게를견디고있다

(후략)
「저녁의음표들」부분

여기서시인이현시하는‘저녁의음표들’은“비오는저녁늘어진전깃줄에”앉아있는“까마귀떼”를통해생겨난기억의재현이다.전깃줄에앉은까마귀떼를통해“높고낮은음으로오선지를채우는/검은음표들”이라고하는데그것은몸의기억이현출되기때문이다.그러면서허공에“검은예복을갖춰입고”앉아있는까마귀를음표이미지로치환시키는데비재현적기억이출현하고있다.시인의비재현적기억은재현이아니라비시적도식으로서창조된사유로서파급된다.이제까마귀와동화된음표는몸의기억에서허공의몸을파고들면서“저무섭게고요한시선들은/세상속으로흘러드는전선에어떤/곡조를심고싶은것”이라는새로운표상이되기도한다.허공에서발휘된‘까마귀음표’라는시적발상의전개는신체의기억을소환하며“빗물에미끄러진영혼들의별자리”를응시하면서‘진혼곡’이라는사람의넋을위로하는것으로점철된다.

아무런수식도없이치켜세운
수직의뼈

수세기를한획으로
압축하였다

제몸썩혀비워낸몸통에
별빛우려낸마음을담고

살가죽에피어나는검버섯으로
감각의지평을늘리고있다

무수한줄기로뻗어가던사유가
옹이로박혀단단해진상징

수목원뜰고목한그루
아직도그의시는퇴고중이다
-「고목」전문

고목은말라서죽어버린나무이거나,더크지않는오래된나무를말한다.이런나무를“아무런수식도없이치켜세운/수직의뼈”라는시행을통해고목이가진몸의기억을증거한다.‘아무런수식이없다’는건나무에아무것도피어나지않은채로뿌리와나뭇가지만앙상하게있다는것에대한비유다.게다가고목의기억을고목의몸을통해‘수세기’를한획으로압축하고,별빛우려낸마음을담고,감각의지평을늘리고,뻗어가던사유와옹이로박혀단단해진상징’등으로파편화시키고있다.

입구와출구가동시에열리는버스터미널
배웅과마중이부딪쳐일어나는소음이
대합실가득먼지처럼떠돈다
-「터미널」부분

박수봉시인의시편에두드러지는시의식은삶의통찰로서세계의본질을투과하고있다는점이다.이시에서보이듯희망과절망이하나로부터시작되고이어진다는것을입구과출구가하나인‘터미널’을통해성찰하게만든다.물론만남과이별역시도하나의공간에서이루어지며종국에는삶과죽음도이와다르지않다는것을환유한다.여기서“배웅과마중이부딪쳐일어나는소음이”우리가사는세계이며,이것은잠시터미널에머물렀다가떠나가는삶으로형상화된다.존재의있음은세계라는‘대합실가득먼지처럼떠돌다’가는것이라는근원성을구현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