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해로 간다- 실천문학 시집선 320

나는 발해로 간다- 실천문학 시집선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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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동순

저자:이동순
경북김천에서출생했다.1973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시가,198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문학평론이당선되어등단했다.시집으로『개밥풀』,『물의노래』,『지금그리운사람은』,『철조망조국』,『꿈에오신그대』,『봄의설법』,『가시연꽃』,『아름다운순간』,『마음의사막』,『발견의기쁨』,『묵호』,『강제이주열차』,『독도의푸른밤』,『신종족』,『고요의이유』,『내가홍범도다』,『홍범도』,『어머니』등24권을발간했다.2003년민족서사시『홍범도』(전5부작10권)를완간했다.평론집으로『민족시의정신사』,『시정신을찾아서』,『우리시의얼굴찾기』,『잃어버린문학사의복원과현장』,『달고맛있는비평』등이있다.산문집으로는『한국근대가수열전』,『나에게보내는격려』,『민족의장군홍범도』,『그간격조했습니다』,『나는백석이다』,『나는김자야다』,『나는왕평이다』,『나는홍범도다』,『나는신채호다』등다수를발간했다.1987년매몰시인백석의시작품을수집정리하여분단이후최초로백석시인의시전집을발간하면서시인을민족문학사에복원시키고백석연구의길을열었다.편저『백석시전집』,『권환시전집』,『조명암시전집』,『이찬시전집』,『조벽암시전집』,『박세영시전집』등을포함하여각종저서80여권을발간했다.신동엽문학상,김삿갓문학상,시와시학상,정지용문학상등을받았다.

목차

제1부|빛의개국
연기11
동모산13
빛나는발해15
걸걸17
천문령전투19
해동성국21
발해의크기23
발해청년들25
조우관27
말갈29
발해석등31
선구산성33
불빛속의나라35

제2부|산과바다의나라
발해정신39
살다라이야기41
정효공주무덤43
홍라피리소리45
발해특산47
발해목간49
발해시인양태사51
담비모피53
시인과승려55
육정산발해고분57
연해주발해성터59
발해시인들61
통긍산성63
발해여인의노래65

제3부|침묵의지도
상경성69
수수께끼70
망국72
발해공주74
기록되지않은나라76
팔련성78
발해일본도80
발해고성82
산성부근83
발해멸망85
발해치미87
발해부흥의꿈89
사라진말91

제4부|잊힌제국
돌유적95
발해97
조각난나라99
발해현장100
눈보라102
발해유민들104
발해마을106
만주왜적들108
침묵의여인들110
동북공정112
역사는무엇인가114
발해의슬픔116
들개118
그대이름은발해였다120

제5부|다시빛나는별들
백두산천지에서125
유득공127
박은식129
홍범도131
계연수133
신채호135
안희제137
남북국시대139
발해는무엇인가141
흐르는강143
발해를쓴다145
지워지지않는노래147

시인의발문149
시인의말167

출판사 서평

잊힌나라를부르는시인의목소리
―시인이동순,지워진발해의역사와사람들을시로복원하다
시인이동순의문학에는오래도록한방향을바라보아온시선이있다.그것은역사의중심에서밀려난사람들,기록되지못한삶,나라와고향을잃고떠돌았던이들,그리고우리문학사와역사에서잊히거나지워진이름들을다시불러내는일이다.
1978년발표한장시「검정버선」에서진주형평사와백정공동체의비극적삶을형상화했고,1987년에는분단이후최초로백석의시작품을수집·정리한시전집을펴내백석을우리문학사에복원했다.이후고려인강제이주의비극을시로증언하고,민족서사시『홍범도』전5부작10권을완간하는등그의문학은끊임없이역사속에서밀려난존재들의이름을찾아왔다.
그오랜여정끝에시인이이번에찾아간곳은발해다.

“발해는잊힌나라가아니라,지워진나라”
『나는발해로간다』에서이동순시인이만나는발해는교과서속에박제된고대국가가아니다.왕과장수의역사만도아니다.무너진성곽의주춧돌과부서진기와,도굴된무덤과이름없는뼛조각,기록되지않은여인과농부,악사와승려,멸망뒤뿔뿔이흩어진유민들의삶까지가그의시안으로들어온다.
시인은자료와유적,유물과논문을따라가면서발해가남긴희미한흔적에귀를기울인다.그리고그흔적앞에서발해를단순히‘잊힌나라’가아니라‘지워진나라’로인식한다.
그래서이시집의중요한출발점은역설적으로발해에관해남아있는것보다사라진것이다.
발해는수백년동안존속했지만발해인들이직접남긴기록은매우희박하다.언어와노래는사라지고수많은사람의이름도역사속에묻혔다.시인은바로그거대한침묵앞에선다.그리고「기록되지않은나라」에서“너의언어는사라졌으나/너의침묵이내시가되리니”라고노래한다.
시가역사를완벽하게복원할수는없다.사라진언어를되살릴수도,무너진성을다시세울수도없다.그러나시인은사라진이름을다시부를수는있다.
그것이『나는발해로간다』가선택한시의방식이다.

폐허에서아직꺼지지않은불빛을찾다
이시집에는유난히돌과흙,성터와무덤,기와와석등같은이미지가자주등장한다.그것들은화려했던제국의영광을보여주는기념물이아니라대부분부서지고무너지고흩어진것들이다.
하지만시인에게폐허는단순한쇠락의흔적이아니다.사라진시간을증언하는장소이며존재와부재가동시에머무는역사의현장이다.시인은부서진기와하나를두볼에비벼보고,무너진축대와돌사자의귀하나를바라보며오래전그곳에살았던사람들의체온을상상한다.유적을관광의대상으로바라보지않고사라진시간과접촉하는통로로받아들이는것이다.
그렇기에이시집의폐허는절망으로끝나지않는다.
무너진왕조와사라진사람들의흔적속에서도시인은끝내꺼지지않는불빛을찾는다.발해라는나라는사라졌지만그들이남긴정신과삶의숨결까지완전히사라진것은아니라고믿기때문이다.
그불씨를다시발견하고오늘의언어로옮기는것이이시집에서시가담당하는역할이다.

왕조가아니라그곳에살았던사람들의역사
『나는발해로간다』의또하나의특징은역사를바라보는시선이다.
시집에는대조영과천문령전투,해동성국과상경성같은거대한역사의장면이등장한다.그러나시인의시선은거기에만머물지않는다.정효공주와발해시인들뿐아니라이름없는여인들,청년,농부,악사,승려,무사와유민들이함께등장한다.
역사는왕과영웅만으로이루어지지않는다.이름없이땅을일구고아이를낳고노래하고사랑하고늙어간수많은사람의삶역시한나라의역사다.
시인이오래전부터관심을기울여온것도바로그러한존재들이었다.형평사의백정들,강제로중앙아시아로이주당한고려인들,나라를잃고떠돌던사람들,기록에서지워진민초들에대한관심은이번시집에서발해의백성과유민으로이어진다.
그런점에서『나는발해로간다』는이동순시인이평생지속해온‘잃어버린존재들의이름을다시부르는문학’의연장선에놓여있다.
총66편으로이루어진이시집은발해의건국(1부「빛의개국」)에서문물과삶의풍경(2부「산과바다의나라」),멸망과침묵(3부「침묵의지도」),흩어진유민과만주국,동북공정으로이어지는오늘의역사현실(4부「잊힌제국」),그리고유득공·박은식·신채호로이어지는후대의기억(5부「다시빛나는별들」)까지5부로구성되어있다.

발해를통해되찾는‘북방’이라는정신
그러나이시집이과거의비극과망각만을이야기하는것은아니다.
시인이발해를통해오늘우리에게되돌려주고자하는또하나의중요한감각은북방이다.
여기서북방은단순한지리적공간이아니다.만주와연해주,광대한벌판과강과산맥을오가며살아갔던사람들의넓은공간의식이며,닫힌경계를넘어더크고넓게세계를바라보던정신적규모를뜻한다.
분단이후우리의공간감각과역사적상상력은한반도의좁은현실안으로축소되어왔다.이동순은발해를통해그잃어버린대륙적감각과북방의상상력을다시호출한다.그것은옛영토에대한복고적향수나영토회복의주장이아니다.시인이되찾고자하는것은넓게보고,크게생각하고,서로다른존재들과함께살아갈줄알았던정신의크기다.
시인은“모래야,나는얼마큼작으냐”라는김수영의물음을떠올리며,오늘우리가잃어버린정신의크기를되묻는다.특히시인이주목하는것은발해를이루었던공존과협력의경험이다.그는고구려유민과말갈이함께나라를이루었던역사에서오늘의분열된사회가되돌아볼공동체적가치를읽어낸다.
지역과이념,세대와계층의갈등이깊어진오늘,발해는천년전사라진왕국이아니라우리에게“함께살아간다는것은무엇인가”라는질문을던지는역사적거울이된다.

역사를‘설명’하지않고사람의목소리로‘들려주는’시
『나는발해로간다』의시적형식에서도주목할부분은구술적리듬이다.
“치미야치미야”,“말하라,발해”,“정효야정효야”처럼사라진존재를직접부르는호명의방식이작품곳곳에등장한다.설화처럼이야기를풀어가기도하고민요조의호흡과입말을끌어들이기도한다.
이는기록이부족한발해의역사를문헌적설명으로채우기보다,그시대사람들이입에서입으로전했을법한살아있는말의숨결을되살리려는시적선택이다.
따라서이시집의시들은단순한역사적‘재현’이라기보다증언에가깝다.‘설명하는시’라기보다‘들려주는시’이며,발해를완전히복원하려는시가아니라끝내복원될수없는것들을향해오래손을뻗는몸짓이다.

우리는왜이토록작아졌는가
결국『나는발해로간다』가향하는곳은과거가아니라오늘이다.
발해라는잃어버린나라를찾아가는긴여정끝에서이동순시인이우리에게던지는질문은단순하다.

우리는왜이토록작아졌는가.
왜북방의기억을잃어버렸는가.
왜삶의규모와상상력은점점더왜소해졌는가.
―「시인의발문」에서

시인에게발해는역사적실체인동시에하나의상징이다.잃어버린왕국의이름인동시에오늘우리가회복해야할정신적지평의이름이다.
그러므로“나는발해로간다”라는선언은천년전의왕국으로돌아가겠다는말이아니다.
그것은망각된역사로가겠다는뜻이며,지워진사람들에게로가겠다는뜻이다.좁아진우리의역사적시야를넘어북방의넓은바람과만나겠다는뜻이고,분열과갈등을넘어다시공동체를생각해보겠다는뜻이다.
무엇보다그것은잊힌이름을잊힌채내버려두지않겠다는한시인의문학적선언이다.
백석의이름을문학사에되돌려놓고,형평사와민초들의삶을노래하고,홍범도와고려인들의역사를시로증언해온이동순.그오랜문학적여정이이제발해에닿았다.
『나는발해로간다』는그렇게천년의침묵을건너우리에게도착한한권의시집이다.
그리고시인은그오래된폐허앞에서다시묻는다.
“발해는끝내사라졌는가.”

시인의말

나는발해로간다

언젠가부터나의마음깊은곳에이름없는나라하나가자꾸피어올랐다.
문득문득떠오르면서도책을펴면사라지고지도위에손을얹으면사라져버리는그런나라.발해(渤海)였다.한때찬란했으나지금은완전히잊어진나라.왕이있었고,백성이있었고,말과문서와노래와법이있었건만무너진뒤로모든게침묵했다.그이름조차남의입을통해왜곡된모습으로만거론되던나라.나는묻고싶었다.우리는왜이나라를외면해왔던가.정말몰랐던것인가,아니면너무오랫동안말하지않아서잊는척했던것인가.
이시집은그런물음에서시작되었다.자료와유적,유물과논문을따라가며나는역사의가장조용한언저리에서살아있는목소리들을들었다.무덤벽화속인물들의눈빛,사라진성곽의주춧돌,깨진그릇하나,무명인의뼛조각,도굴된무덤에서흘러나온바람결…
그모든것이나에게말하고있었다.‘발해는잊힌나라가아니라,지워진나라’라고.
그래서나는이시를썼다.한편한편이모두그들의이름을다시불러주는의식이었다.발해의지워진말을되살리는부활의노래였다.정혜공주와정효공주를비롯해이름없이살아간백성들,침묵속에서나라를일군여인들,사신,무사,승려,농부,악사,시인까지…그들의잃어버린시간위에나는시인의손으로밝은등불하나씩올려주고싶었다.
오늘우리는국토도,정신도,말도무참히쪼개지고근본이흔들리는시대를살고있다.
이런때일수록우리에겐‘다시하나가되는정신’이필요하다.말갈과고구려가하나되어공존과협력으로일군나라.그정신이바로발해였다.
발해는단지과거의왕조가아니라오늘우리가회복해야할공동체의이름이다.그리고이시작품들은그회복을위한한줄한줄의기도이며오랜침묵을견뎌온영혼들에대한늦은,그러나간절한응답이다.이시집을읽는그대도어느한구절에서그대안에잠들어있던발해를다시깨우게되기를바란다.
부디그렇게되기를.-2026년8월,이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