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마음은 벌써- 실천문학시집선 321

저만치 마음은 벌써- 실천문학시집선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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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석구

저자:이석구
충남청양에서태어나성균관대한문학과를졸업하였다.2004년《월간문학》신인상과2005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시조로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커다란잎』,『마량리동백』,『그늘의초록을만졌다』가있다.서울문화재단에서‘2026년창작집발간지원사업’의지원을받아이시집을발간했다.

목차

제1부
연못과오리와연꽃11
알츠하이머대화12
송하보월도13
고고14
풍설야귀인도,최북16
월하정인 17
모란병풍18
저동항에서19
그여자의자두21
홍어22
밤길23
엉겅퀴24
수국25
사월26
먼등대 27
오!해당화28
강화도에서29
곡우무렵30

제2부
옥잠화33
유두차삿날,수졸당34
동암에서누에를치다35
그집동암에서36
수련의낮잠37
얼음판화38
해변의호수39
폭염주의보40
나의벽으로41
내사춘기의선사시대42
나의선사시대목록43
나의서귀포목록 46
왕진나루 50
갯벌체험51
겨울천수만52
산촌53
독거54
오늘저녁에55

제3부
요양원에서59
날마다오늘60
집61
7월62
입추63
응시64
풍죽65
연애66
능산리67
생일68
행각69
일박70
와불71
봄날72
냇가에서73
연못74
무섬마을75
마른장마 76

제4부
시월79
달빛을밟다80
11월81
봄날의텃밭82
버드스파이크83
소서84
오늘의꽃85
옛날길음동86
구례를지나며87
어느생태학자의수첩88
겨울폭포에서91
콩92
해바라기가있는93
간월호94
신왕리정자나무96
지나간여름97
장항습지 98
아버지와걷던길99

시작노트103
시인의말118
시어로나오는동식물알기119

출판사 서평

내시의시작은처음부터그여자다.그여자는나의중심에서움직인다.그여자가자라면서경험하고간직한추억의말한마디,그여자가말하고싶거나전하고싶은즐거운듯밝고환한눈빛,명랑한손길에서나는움직인다.그여자는나의아내다.-‘시작노트’에서

내눈이천개라도전부다못보았을
내손은천개라도만질수없는것을
내코가숨쉴수있는
향기로운꽃잎들
-시「오늘의꽃」에서

당신은꽃잎처럼
가장아름다울때
반짝인다
-시「나의선사시대목록」에서

저만치먼저가닿는마음,사람과자연을함께바라보다
“저만치마음은벌써산방산에오른다”(「나의서귀포목록」)고시인은노래한다.몸보다마음이먼저움직이고,그마음을따라시선도사람과자연,과거와현재사이를오간다.이석구시인의신작시집『저만치마음은벌써』는자유로운시의호흡과시조의절제된가락이한권안에어우러진시집이다.이시집은두형식을넘나들며한사람을향한마음에서시작해옛그림과산천,병들어가는지구로까지시선을넓혀간다.“내시의시작은처음부터그여자다.그여자는나의중심에서움직인다”고시인은시작노트에서밝힌다.그여자는다름아닌아내다.

아내의고향으로향하던어느여름밤,하늘가득쏟아지던별을보며시인은「밤길」을쓴다.“골짜기흘러내린물소리들으면서/아내가운전하며이태만에친정가네”(「밤길」)로시작하는이시는은하수아래졸며가는밤길의정취를절제된가락으로그려낸다.「동암에서누에를치다」에서는아내의유년,할머니의잠실에서뽕잎을주던기억이“빈집의영혼이라는/첫잠자는아늑한방”(「동암에서누에를치다」)으로되살아난다.시인에게아내가살아온시간과기억은시가시작되는자리다.

이사적인서정은옛그림으로확장된다.이인상의「설송도」를바라보며쓴「고고」에서“산다는건하염없이쌓이는눈발같아”라고노래하고,“눈발이날릴수록사방은당신의집”(「고고」)이라며눈과비바람에도흔들리지않는소나무에서선비의꼿꼿한정신을읽어낸다.옛그림은지나간유물이아니라오늘의자신을돌아보는거울이된다.
시선은다시산천으로향한다.북한산의얼어붙은폭포앞에서“아무도못가본길폭포는길을안다”(「겨울폭포에서」)고노래하고,금강옛나루터에서는“물살을뚫고나온갯버들애기버들”(「왕진나루」)과돌아온왜가리·수달·고라니를통해막혔던강이다시흐르는기쁨을전한다.정형의틀을지키면서도행과연을자유롭게운용하는시조와자유로운시의호흡이이렇게한권안에서자연스레교차한다.반면방조제로에워싸인간척지에서는죽어간큰고니를발견하고“고니의울음소리를너구리가물고간다”(「얼음판화」)며훼손된생태계의그늘을바라본다.

시집의후반부는기후위기라는오늘의현실로이어진다.「폭염주의보」는열대야의풍경으로폭염을그려내고,「어느생태학자의수첩」은비닐봉지를미역인줄알고뜯어먹는거북이의모습으로플라스틱문명의그늘을드러낸다.그러나시인은절망에머물지않는다.“내눈이천개라도전부다못보았을/내손은천개라도만질수없는것을”(「오늘의꽃」)이라며다헤아릴수없는생명앞에겸허해지고,“당신은꽃잎처럼/가장아름다울때/반짝인다”(「나의선사시대목록」)며다시생명의아름다움을바라본다.
한사람을향한애틋한마음에서출발한시선은그렇게시와시조의가락을오가며더넓은생명의세계로나아간다.아내의기억을귀기울여듣던마음과옛그림속소나무를바라보던마음,막힌강과죽어가는새를안타까워하는마음은서로다르지않다.사람을사랑하는마음이자연을사랑하는마음으로넓어지는것이다.시인의말에나오는“꽃의색은내가살아있음을느끼게한다”는문장은이시집전체를이해하는또하나의열쇠가된다.

『저만치마음은벌써』라는제목처럼시인의마음은늘대상에게저만치먼저가닿는다.아내에게,옛그림속선비의정신에게,훼손되어가는강과산에게,그리고우리가지켜야할모든생명에게.시와시조가어우러진이시집은가장사적인사랑에서출발해자연과인간이함께살아가는공존의자리로나아간다.

시인의말

꽃의색은위험하다
만지면내가물들고흔들면꽃은상처를입는다
꽃의색은내가살아있음을느끼게한다

피어나는꽃은꽃대가기울어지고바람과햇살에꽃망울을터트린다

꽃을잡고꽃속의꽃가루를날리며
꽃밭을걷는다

내게꽃은아름다워서위험하고
꽃밭에들어온그늘은새파랗다